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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2002.6.3.월요일 딴따라딴지 리비지티드 위원회
1980년대 중반은 울나라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격동의 시기였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해 미디어의 도움없이 오직 음반과 공연만으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했던 대 밴드 들국화를 선두로, 동물원, 다섯손가락, 어떤날 등 소프트한 록 밴드들의 참신한 음악이 과거의 전편일률적인 '가요' 를 밀어내며 10대, 20대 젊은층 사이에서 급부상했던 것이다
'리싸이틀'이 아닌 '라이브 콘서트' 란 말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이때고, '구룹사운드' 나 '보칼' 이라고 불리우던 밴드의 명칭이 '그룹'으로 통일된 것도, 소극장을 중심으로 한 장기 순회공연이 시작된 것도 이 시기다. 그 밖에도 이 즈음에 나타난 크고 작은 변화들은 일일히 손으로 꼽기도 어려울 정도인데, 이는 그간 쌓여있던, 혹은 정치사회적인 이유로 억눌려있던 밴드 음악, 록 음악의 잠재력과 에너지가 폭발한 결과였다.
그러나 그 많은 변화들 속에서 특히 울나라 대중음악사에 크게 의미지워질 사건은 바로 '국산 헤비메탈'의 발흥이었다.
이전에도 '무당' 등 일부 선구자적인 밴드가 활동했었지만 본격적인 서구형 헤비록이라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현실적으로 이때까지 국내에 프로페셔널한 헤비메탈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의 이 시기에 이르러 기타 중심의 강한 사운드와 뛰어난 연주력을 앞세운 시나위, 백두산, 부활의 세 팀이 거의 같은 시기에 음반을 발표하며 바야흐로 울나라 헤비메탈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던 거다.
그리고 이들을 우리는 한국의 1세대 헤비메탈 밴드라고 부른다는 사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다.
...그러나 오늘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이들의 음악이 아니라, 이런 흐름의 영향속에서 활동을 펼쳤던 2세대 메탈 밴드들의 앨범 되겠다.
시나위 백두산 부활에 바로 이어 앨범을 발표하고 데뷔했던 카리스마, 작은하늘, 뮤즈 에로스 등의 경우 앨범 발표 시기만 늦었을 뿐 사실상 1세대들과 인적구성 및 언더그라운드 활동 배경을 공유하는 1.5 세대라면, 오늘 소개하는 2세대 팀들은 연령적으로나 데뷔시기 면에서 1세대와 3,4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있으며 음악 활동의 공간적 배경도 다른 경우다.
1세대에 대한 평가 이전에 본지에서 이들을 먼저 다루고자 하는 이유는, 그간 LP 로만 남아있던 2세대의 대표적인 밴드들이라고 할 스트레인저, 아마게돈, 디오니소스, 아시아나의 앨범들이 최근 CD 로 복각, 출시되었기 때문이다. CD 가 대중화된지 이미 십년에 가까운 시기가 지났음에도 이제서야 이런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90년대 초에 활동하던 이들 밴드가 가진 묘한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1세대가 누렸던 강력한 초장 끗발이 수그러들고, 따라서 단지 헤비메탈 계열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음악팬들의 눈과 가슴이 보다 차가워지던 8말9초의 시기. 비록 연주 스타일이나 쟝르, 지역적인 측면에서 다변화를 통해 많은 새로운 시도들이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는 라이브 중심의 록 음악을 계속 받쳐줄 시스템의 총체적 미비와, 대중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밴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비지니스적인 문제에 부딪혀 한계를 맞고 있던 이율배반적인 시기가 바로 이때인 것이다.
따라서 이번 CD 복각에 발맞추어 이들의 음악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해당 밴드들의 음악적 성과를 십여년이 지난 지금의 관점에서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함은 물론, '록 르네상스'의 과정에서 나타난 울나라 밴드 음악의 변천사를 이해하고 그 한계 또한 짚어본다는 점에서 시기적절하다고 보여진다.
사설은 이제 고만하고, 그럼 하나씩 짚어가보자.
* 아래 각 앨범에 대한 글은 두명의 필자가 나눠 쓴 관계로 문체나 관점이 상이할 수 있다는 점, 마 참고로 알고 읽으시라. 앨범의 소개 순서는 원 출시일자에 기준하였다.
디오니서스 (Dionysus): Legend of Darkness
출시일: 1989.10.11
멤버: 배재범(기타), 이승철(보컬), 유원석(베이스), 박오식(드럼)
8말9초 당시 메탈씬의 특징은 부산과 인천세가 두드러졌다는 것인데,
특히 오늘 소개되는 네팀중 세팀이 당시 부산 헤비록의 메카였던 '메탈 라이브'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활발한 활동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속주 기타리스트 배재범을 필두로 하여 메탈 라이브 1기 출신들로 구성된 '디오니서스' 는 전형적인 바로크 메탈 계열의 밴드다. 그리스 신화의 술과 잔치의 신(로마 신화에서는 바쿠스, 박카스)을 밴드 이름으로 끌어들여온 것이나 앨범 제목 '어둠의 전설' 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이 표방하는 음악은 강하고 빠르고 어두운, 중세 혹은 그 이전 시대를 연상케 하는 색깔로서, 비교적 정통적 메탈을 구사하던 시나위나 가요풍이 첨가된 록을 연주했던 부활/백두산 등 1세대 음악과는 확실히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사실상 디오니서스의 오너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기타리스트 배재범은 앨범 발매전부터 이미 엄청난 속주로 부산바닥을 중심으로 상당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필자또한 잉베이 맘스틴에 밀리지 않는다는 그의 전설적인 실력을 간간히 전해듣고 있던 터이기도 했다.
중세풍의 짧은 신디사이저 연주곡 <Mecca>로 시작, 강렬한 기타 리프와 속주가 광풍처럼 치닫는 연주곡 <Violent V>로 이어지며 막을 여는 본작... 이때부터 앨범 내내 이어지는 배재범의 속주는 열악한 기타 사운드 - 3,4 만원짜리 국산 기타로 녹음했다는 - 에도 불구하고 국내최초의 잉베이 맘스틴 계열 네오 클래시컬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3곡을 제외한 전 앨범이 연주곡이라는 점은 배재범이 평소 공언해온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B.J.B 라 칭하며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를 자임했던 배재범 |
주목받던 보컬리시트 이승철 - 부활의 이승철과는 동명이인, 이후 이시영으로 개명하고 스트레인저, 미스테리 등에서 활동 - 의 힘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Metal Hands> 와 <S.O.S>, 무반주 연주곡 <Caprice Op.1> 등을 통해 핑거보드를 종횡무진 치닫는 상하행의 스케일 연주는 물론 매우 빠른 스윕피킹 등 헤비메탈이 생겨난지 불과 4년이 되지 않은 울나라의 연주자로서는 놀라운기교를 보여준다.
이런 곡의 분위기와 연주 스타일은 앨범 타이틀이기도 한 연주곡 <Legend of Darkness> 에서도 또 한번 선보이고, 그외 박오식의 투 베이스 드럼 솔로를 들을 수 있는 <Mad Frog>,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곡 '지고이네르바이젠' 일부를 야심차게 편곡/연주한 <The Moon of Gypsy>, 아르페지오 기타로 발라드틱하게 시작되어 바로크 메탈로 귀환하는 <Penitential Tears> 등 총 여덟곡이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은 국내 최초의 바로크 메탈이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인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일단 앨범의 중심이자 포인트인 배재범의 속주 기타... 사운드의 열악함은 당시의 여건을 고려했을때 이해한다 하더라도, 스피드와 관계없이 연주 전반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불안정함은 그가 스스로를 늘 잉베이나 그 이싱에 견주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솔직히 실망스럽다.
특히 비브라토(바이브레이션)나 롱 톤 (긴 음)에서 음정 불안 및 감정이 살아나지 못하는 점이나, 미들 템포 솔로에서 드러나는 리듬의 치밀하지 못함은 물론 음을 대충 후리는 눈가림식 연주의 버릇도 간혹 눈에 띄고 있다. 또 야심적이었던 속주 무반주곡 <카프리스 오퍼스 1>의 경우도 곳곳에 핑거링 및 피킹 미스가 많으며 음악적인 구성면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The Moon of Gypsy> 의 경우 기타 튜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등 원곡의 감동 재현이라고 말하기에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데, 이런 면모들은 잉베이가 보여준 전체적인 안정성과 연주상의 디테일적인 치밀함, 뛰어난 음악적 곡 구성과는 사뭇 대비되는 부분들이다.
또한 세 곡에서 들을 수 있는 이승철의 보컬 역시 음정 불안이라는 측면에서 아직 다듬어지지 않는 상태이며, <메카> 등 키보드 전주곡들도 정통 바흐풍의 클래시컬 프레이즈를 흉내만 낸, 음악적으로 맞지 않는 연주라는 점이 시대적인 한계를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다.
음악팬들의 지지와 비난이 극단적으로 엇갈렸던 이 앨범은 이처럼 8말9초 울나라 메탈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외국 초일류 뮤지션들과의 비교에 앞서, 이들이 짧은 울나라 메탈 역사에도 불구하고 패기와 자신감으로 새로운 쟝르에 도전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글: 파토)
아시아나 (Asiana) : Out On The Street
출시일: 1990.3.20
멤버: 임재범(보컬), 김도균(기타), 김영진(베이스), 유상원(드럼)
오늘 소개되는 나머지 세 앨범과는 달리 이 음반은 1세대 밴드 출신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만들어낸 작품이다. 따라서 2 세대 밴드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음반 발매 및 활동 시기가 겹친다는 측면에서
같은 선상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임재범과 김도균, 울 나라 헤비메탈 1세대의 감격적인 조우만으로도 당 앨범의 가치는 크다. 거기에 시나위 세번째 앨범, 카리스마(이근형, 김종서, 김민기)의 유일한 앨범에 베이스주자로 참가했던 김영진이 가세함으로써 아시아나는 그 위용만으로도 당시 울나라 록계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89년 라우드니스(Loudness)의 내한공연시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유상원이라는 재야 드러머를 픽업해
영국으로 날아가 본작을 완성했다.
당 앨범은 울 나라 헤비메탈 음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완성도와 독특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음은 물론, 비슷한 스탈의 외국밴드의
앨범에도 전혀 뒤지지 않는 육중한 음악성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종종 라우드니스와 비교되곤 하는데, 사운드적으로 오히려 LA메탈쪽에
가까웠던 그들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당시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를 탈퇴한 존 사이크스(John Sykes)가 결성한 블루머더(Blue Murder)나 오지오스본(Ozzy Osbourne)을 떠난 제이크 이 리(Jake E. Lee)가 주축이 됐던 배드랜즈(Badlands) 정도가 사운드상
아시아나의 맞은 편에 있었다 할 수 있겠다.
물론 밴드의 작곡자였던 김도균, 임재범 콤비의 성향이었겠지만 브리티쉬 록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고, 70년대 아메리칸 하드록의 맥락 또한 감지되는 것이 당 앨범 사운드의 핵심이다. [Breaking Out],
[Struggle], [Out On The Street] 같은 발군의 리프 아이템은 그들 콤비의 발상이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이나 딥퍼플(Deep Purple) 등
블루스를 근간으로 하는 정통적 하드록에 강한 인상을 받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Tom Kat]의 그윽한 블루스필과 [Paradom]의 드라마틱한 악곡 전개는 70년대 아메리칸 하드록계의 중요 밴드였던 마운틴(Mountain)에 비견할만 한 것들이다.
아시아나 전후의 임재범. 이후 '이밤이 지나면' 으로 주류 가요계에서도 성공을 거둔다. |
당 앨범에 녹아있는 멤버 개개인의 연주력 역시 절정에 달해있다.[Struggle], [Paradom]에서 임재범의 보컬은 블루지함과 파열적인 샤우트가 팽팽한 긴장을 이루고 있고, 희대의 록 발라드 [Missing You], [Dancing All Alone]에서는 소울풀한 기운마저 감돈다.
강력한 완력을 바탕으로 지판이 타오르는 듯한 비브라토와 벤딩, 펜타토닉에 의한 호방한 연주를 구사한 김도균의 연주는 앨범 전반에
걸쳐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고, 요소요소 적절한 프레이즈를 찔러넣는
김영진의 베이스는 특히 [Out On The Street]과 [Tom Ka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종 믹스다운시 이펙팅 작업과 볼륨조절에 실패한 답답한 레코딩에도 불구하고, 테크니컬한 그룹송 [Asiana] 에서는 전 멤버의 완벽한 호흡과 고도의 양식미까지 느껴진다.
무엇보다, 당 앨범의 중요한 가치는 서양 하드록의 방법론이 김도균,
임재범 콤비의 음악적 역량을 거쳐 구체적이고 독창적인 사운드 정체성으로 조합됐다는 사실이다. 세마치 장단을 변용한 리듬과 김도균의
가야금주법이 삽입된 [Asiana] 때문만이 아니라 나머지 7개 트랙 모두에서 본토와는 확실히 다른 보컬 멜로디가 등장한다. 한반도 태생인 이들의 어쩔수 없는 지역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요적이지
않은 한국적 작곡이 구현되어 있다는 평가는 반드시 언급해야겠다.
또 그것들이 본토의 맥락과도 확연히 구별되는 오리지널리티였음 역시 힘주어 말하고 싶다.
*원래 본 앨범에는 [Solder's came] 이라는 곡이 한 곡 더 수록되어
있었는데 당시 김도균의 말에 의하면 밴드의 필이 가장 절정에 달했을 때 녹음된 트랙이 그 곡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지곡 판정으로 아직까지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데 [Solder's came]은 5.18을 노래하고
있다고 했다.(글: 쪼인트)
아마게돈 (Armageddon) - The Tears of a King Bird
출시일: 1990.6.30
멤버: 박진서(보컬), 김정태(기타), 구재옥(베이스), 박철우(드럼), 정홍재(키보드)
부산 메탈라이브가 배출한 또 하나의 팀, 아마게돈.
절제된 연주와 드라이한 사운드가 특징인 아마게돈은 앨범 한장만을 남기고 소리소문없이 해산한 단명 밴드다. 그러나 짧은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부산 지역에서의 라이브를 바탕으로 한 지명도를 통해 나름대로 팬들의 기억속에 남은 팀이라고 하겠다. 특히 용과 새를 합쳐놓은 듯한 화려한 앨범 자켓이 한번보면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주는데, 위 그림에서는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는 비논리적 치아 구조를 가진 이 괴수(...극락조?)의 비극이 '극락조의 눈물' 이란 타이틀의 의미라는 농담이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기도 했었다. (참고로 시나위 1집 자켓 뒷면에 등장하는 쪼매난 뻐드렁니 괴수 역시 입을 다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기회 있으면 확인하시도록)
이들의 사운드는 오늘 소개된 다른 팀들에 비해서 정통 메탈에 가깝다. 특히 기타리스트의 개성이 돋보이는데, 톱 트랙 <Sun Rise> 등 에서 보여준 빠른 16비트 리프의 안정됨과 깔끔함은 당시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 국제 수준이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다. 이런 리프 스타일은 본작의 여러 곡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라프 뿐 아니라 앨범 전체에 걸친 기타 김정태의 깨끗한 연주는 파상적인 테크닉 공세를 펼치던 당시의 여타 밴드들에 비교해 구조적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마이클 솅커와 게리 무어, 랜디 로즈, 때로는 잉베이의 영향도 느껴지는 그의 톤과 주법은 비록 솔로에서 앞으로 나서주는 뻔뻔함이 좀 약하긴 하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기본에 충실한 연주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테크니컬한 기타솔로가 맛있는 <No need to Lament>, 구조가 약간 어색하고 가사가 진부하긴 하지만 역시 리듬과 기타솔로는 일품인 <사라진 도시>, 랜디로즈 풍 오프닝 리프의 멜로디 감각이 기가막힌 타이틀 트랙 <The Tears of a King Bird>, 맛있는 베이스 리듬과 솔로의 멜로디 메이킹이 뛰어난 <The Murmur> 등의 면면을 통해서 이들 아마게돈이 가진 당시의 다른 밴드들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기타 연주곡 <신기루>는 양풍과 가요풍 멜로디가 뒤섞인 묘한 곡으로 완급과 드라마틱함이 제대로 표현된 곡 구성과 나설때와 물러설때를 아는 지능적이고 감각적인 기타 연주가 많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훨씬 나은 음악적 성과물을 일궈냈을 것으로 생각되어 안타깝다.
그러나 역시 시대가 시대인 만큼 아쉬운 점들도 없지 않다. 가장 문제되는 점은 보컬의 역량부족으로, 대부분의 곡에서 고음처리 미숙으로 인해 의도한 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이 시대 밴드의 대다수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것인데, 제 아무리 기타 사운드 위주의 메탈 음악이라지만 직접적인 호소력을 표현해내는 보컬에 문제가 있을 경우 결국 곡 전체의 분위기를 망가뜨린다는 점이 전반적으로 과소평가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한가지 이 앨범의 마이너스 요소는, 소위 '대중성'을 노리고 수록된 가요풍의 곡들이다. <소년의 꿈> 과 <비오는 날에>가 그 주인공들로서, 대부분의 이런 시도에서처럼 가요로서의 매력도 없고 음악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이런 모습은 옛부터 지금까지 많은 록 계통 음반에서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한 단편인데, 기왕에 히트를 목적으로 할거면 부활의 '희야' 나 '사랑할수록' 처럼 확실하게 어필한 요소들을 갖추던가, 아니면 그냥 음악적인 것에만 투철하는게 차라리 낫다. 어정쩡하게 가요같은 곡 하나 넣어놓으면 그게 저절로 히트할거라는 안이한 생각으로 음반 전체의 분위기를 흐려놓는 짓은 이제 더 이상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대부분의 경우 밴드의 의사가 아니라 제작사의 압력이다.
상당한 음악적 능력과 가능성으로 무장했던 아마게돈은 이후 미스테리에 가입하여 안회태 등과 함께 활동한 드러머 박철우 외 이렇다할 후계 연결점들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이들과 같은 팀이 이처럼 단명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8말9초의 상황이 이미 록 르네상스 후광이 흐려지면서 종착역으로 향해 가는 시점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글: 파토)
스트레인져 (Stranger) - Sailing Out
출시일: 1990.9.15
멤버: 이시영(보컬), 임덕규(기타), 박인호(베이스), 엄창언(드럼), 김동규(키보드)
스트레인저는 디오니서스, 아마게돈과 함께 90년대 초반, 부산발 헤비메탈 폭풍의 마지막 주자였다. 당 앨범은 기타리스트 임덕규의 솔로 앨범으로 기획되었으나, 진행과정에서 상업성 등 기타 이유로 밴드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굳이 헤비메탈 사운드의 기타종속적인 성격과 연관없이 여타 국내 메탈밴드들의 앨범에 비해 기타의 비중이 월등히 부각되어 있다.
연주곡 3곡을 포함한 총 여덟 트랙을 담고 있는 당 앨범은 전체적으로
바로크메탈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기타 사운드의 질감이 다소 독특하다. 이것은 당시 임덕규가 레코딩 당시 특이하게 '마샬(Marshall)'이 아닌, '메사부기(Mesa Boogie)' 앰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미들톤이 강하게 빠지는 장비 특성과 아울러 임덕규의 드라이한 배킹은 그리 새롭지 않은 리프 아이템에 강력한 추진력을 더했다고 할 수 있다. [Take Away(This Pain)]과 [Sailing Out]의 경우가 그런데, 3연음에 기반한 진부한 리듬이지만 적절한 피킹 하모닉스와 타이트한 다운피킹에 힘입어 파워보다는 직선적이고 호쾌한 사운드를
들려준 것이다.
또한 당 앨범의 음악적 발상이 바로크메탈 스탈의 추종내지는 차용의
성격이었기에 자연스런 선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외국의 비슷한 계열의 음악에서 정형화 되어있는 패턴이 악곡상 많이 등장한다는 점을
놓칠 수 없다. [Stranger]의 리프 아이템은 잉베이(Yngwie
Malmsteen)의 [Rising force]와 흡사하며, [Sailing Out] 역시 [Far
beyond the sun] 이후 바로크메탈 연주곡에 널리 사용되던 리듬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줬던 기타리스트 임덕규 |
창작상의 그런 맹점과 상관없이 기타리스트 임덕규의 연주가 상당한 수준인 건 분명했다. [Take Away(This Pain)]과 [Song Of Dreaming] 솔로에 나타나는 유려한 선율감이라든지, 탁월한 피킹실력은 진귀한 것이었다. 게다가 [Stranger]와 [Error & Trial]에서 들을 수 있는 스윕 아르페지오를 이용한 약식코드 플레이와 빈틈없는 라인전개, 뜨거운 감정흐름은 그가 슈퍼 기타리스트로 대성할 가능성까지 보여준 건 사실이다.
단지, 기타리스트로서 자신의 연주관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교적인 플레이에 몰두한 것이 자충수로 작용하지 않았나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당 앨범에서 임덕규의 연주는 기교적으로는 완결성을 가진
것이었더라도, [Sailing Out], [Stranger] 등에서의 솔로는 심하게 말해 바로크메탈 기타분야에서 이미 스테레오타입화 되어 있던 프레이즈의 단순한 나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앨범 차원에서 볼 때, 보컬리스트 이승철의 기량이 절정에 달해있고, 박인호라는 베이시스트의 범상치 않은 연주가 구석구석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해야 겠다. 당시로서는 거의 전무했던 장르에 과감히 도전해 여타 국내밴드와 달리 연주력상 미숙한 점이 완전히 사라진 완성도 있는 트랙들을 싣고 있다는 사실은 출중한 사이드맨들의 활약에 힘입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레코딩 스케줄에 맞추어 지방에서 급하게 상경하는 등 악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당 앨범임을 감안할 때, 이들의 음악적 저력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히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당 앨범은 이례적으로 많은 판매고를 올렸다. 비록 '우리나라 뮤지션 중에서도 이런 연주가 가능한 사람이 있었나'하는 정도였지만 그것은 수많은 록키드들을 낳는 계기가 되었고, 국내 록신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역사적 의의 역시 당 앨범의 중요한 가치임을 부정할 수 없다. (글: 쪼인트)
위의 네 팀 외에도 (당근) 많은 2세대 헤비메틀 밴드들이 있었으나 오늘은 복각판들을 중심으로 소개 드리는 만큼 여기서 그치기로 한다.
이들은 어려운 시기에 등장하여 1세대의 참신함과 크래쉬로 대변되는 3세대의 쌈빡함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고, 국내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왔던 다양한 실험을 겁없이 펼쳤던 사람들이다. 비록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사운드나 연주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십여년이 지금까지도 그다지 훌륭해졌다고는 볼 수 없는 울나라 록 씬을 생각해 본다면 어려운 시절 일궈낸 그 성과물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의 영향으로 인해 기타나 베이스를 잡고 밴드를 만든 많은 사람들은 물론 그들 후배 뮤지션들이 또다시 일궈낸 각종 성과들이 눈에 띄지는 않더라도 분명 지금 이 시점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욱 분발하여 국내에도 외국 수준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메탈 음악들이 나와야 할 것이고, 80년대 록 르네상스가 가져다 줬던 영광과 절망의 교훈에서 우리가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음악이 공존할 수 있는 보다 훌륭한 음악판 시스템 창달을 위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독자열분들도 이 기회에 이들의 음악을 다시한번 접함으로서
과소평가되고 잊혀져 가는 울나라 록 음악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딴따라딴지 리비지티드 위원회
파토(pato@ddanzi.com)
쪼인트(nimilo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