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0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류해욱 신부
그리스도왕 대축일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오늘 정확한 명칭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오늘은 바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께서 왕이심, 즉 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왕이며 임금이시고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왕으로서 즉 임금으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믿으며 그것을 미리 경축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권력을 가지고 다스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섬긴다는 의미, 바로 봉사직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그분께서 나는 다스리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다시 오실 때는 찬연히 빛나는 모습으로 오시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상에 달려 있던 다른 죄수 하나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청합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때가 아니라 바로 오늘 정녕 낙원이 들어가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때만 왕이신 것이 아니라 오늘도 바로 왕으로서 죽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섬기는 왕으로서 죽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시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서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을 하나만 택하라면 바로 이 복음 말씀의 대목을 택하겠습니다. 제가 거의 매년 피정 중에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오늘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되리라.’라는 말씀은 참으로 제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이 대목이 그렇게 제게 와 닿는 까닭은 저도 바로 그런 죄인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저도 그 죄수처럼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인데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죄수가 ‘저를 꼭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단 한마디 말을 드렸을 뿐인데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와 함께 오늘 낙원에 들어가게 된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우리 죄인을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제가 성서 묵상을 통한 십자가의 길 책을 쓰면서 두 개의 다른 묵상을 실었는데 이 성서 대목에 해당하는 제11처의 묵상을 첫 번째 묵상에서는 예수님의 오른쪽에 있던 이 죄수에 초점을 맞추었고, 두 번째 묵상에서는 예수님의 왼쪽에 달려있던 불쌍한 죄수에 초점을 맞추어서 썼습니다. 짧은 묵상이니까 각각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묵상. 우리가 아는 가장 먼저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산적인 디스마스이다. 그는 바로 그날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것을 약속받은 사람이었으니까. 마지막에 웃는 자가 진짜 웃는 자다. 문제는 언제가 마지막인지를 우리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여,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오늘도 절실하다.
전설에 의하면, 산적 두목의 아들 디스마스는 아기 예수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내 주며 말한다. ‘축복받은 아기야, 언젠가 나에게 자비가 필요할 때 오늘을 잊지 말고 기억해 주어라.’
예수를 구해 주었던 산적 디스마스는 골고타 언덕에서 다시 예수님을 만난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 비록 산적이라 하더라도 디스마스는 늘 구원을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마지막 순간이 온다. 그러나 일상을 뛰어넘는 마지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늘 깨어있어야 한다. 두 번째 묵상. 예수님의 왼쪽에 매달려 있던 죄수를 생각해 보자. 그는 같은 십자가형을 당하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남을 저주하고 모욕하고 있다. 참으로 불쌍한 영혼의 소유자인 그. 그는 어쩌면 이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따뜻한 사랑과 신뢰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타인에 대한 이해와 사랑보다는 증오심과 악으로 가득한 불행한 사람이었다. (중략)
주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십자가에 달린 당신을 보고 함께 달린 죄수조차도 조롱을 보내고 있습니다. 불행한 영혼을 지닌 그 죄수를 당신은 하실 수만 있다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어깨를 감싸 안아 주셨을 것입니다. 상처투성이인 그의 몸과 마음을 크신 사랑으로 감싸주셨을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누군가에게 조롱 받을 때 분노하지 않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사랑이신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선다면 참으로 지금이 은총의 때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십시오. 때를 놓치지 않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화해와 일치에로의 회심의 때입니다. 지닌 이기심을 버리십시오.
여러분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우상들을 깨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참 사랑이신 그분께로 돌아서십시오. 당신 안에 참으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시는 그분을 진정한 마음의 왕으로 섬기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를 참으로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류해욱 요셉 신부님/예수회, 영성 피정 지도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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