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가 I’m F(ine)였던 시절
요즘 국제 정세와 경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문득 오래전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나는 잠시
영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마침 그때가 바로 한국 경제를 뒤흔들었던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흔히 말하는
IMF 시절이었다.
1997년 9월 영국으로 떠날 때 환율은 원화와 파운드화가 대략 1450대 1 정도였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남짓
지나지 않아 환율은 3200대 1까지 치솟았다. 한국에서 받는 월급을 파운드화로 바꾸고 나면 한 달 월세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때 우리 가족이 살던 집의 월세가 500파운드였는데, 환율이 폭등하자 내
월급으로는 방세조차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이제 돌아가야 하나…”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어렵게 시작한 생활을 중간에 접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가족과 상의 끝에 **“빚을 내더라도 1년만 버텨보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우리는 영국
에 남았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삶은 결코 넉넉하지 않았다. 생활비가 부족해 빚을 내는 일이 잦았고, 한창 자라는 아이들
에게 과일조차 마음껏 사 주지 못했다. 가끔은 청과시장에 가서 상품가치가 떨어져 버려진 바나나를 주워 와 아이
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슴이 저릿한 기억이다.
영국 물가는 전반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비쌌지만, 유독 우리나라보다 싼 농산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감자였다.
우리는 감자를 많이 사다 삶아 먹기도 하고, 칩으로 튀겨 먹기도 했으며, 때로는 된장국에 넣어 반찬처럼 먹기도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의 식탁에는 늘 감자가 올라왔다.
경제적으로는 분명 어려운 시기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시절은 마음만큼은 풍요로웠다. 주말이 되면 나는 아이들과
아내를 데리고 시내 공연장에 가곤 했다. 당시 우리가 자주 찾던 곳은 David Hall이라는 공연장이었다. 한 달짜리 패밀리
티켓을 미리 사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음악회나 오페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가족과 함께 감상했던 작품 가운데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La Bohème이다.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
작곡가 Giacomo Puccini가 만든 작품으로, 1830년대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비극
을 그린 이야기다. 1896년에 초연된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오페라 가운데 하나다.
1막은 파리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시작된다. 시인 로돌포와 그의 친구들은 가난하지만 자유로운 젊은 예술가들이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여인 미미가 촛불을 켜 달라며 방을 찾아온다. 그녀가 떨어뜨린 열쇠를 어둠 속에서 함께 찾다가 두 사람의 손이
맞닿는다. 그 순간 로돌포는 유명한 아리아 “Che gelida manina(그대의 찬 손)”을 부른다.
“그대의 손이 차갑군요.
나는 가난한 시인이지만 꿈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어 미미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Sì, mi chiamano Mimì(내 이름은 미미)”를 부른다.
“사람들은 나를 미미라고 불러요.
나는 꽃을 수놓는 일을 합니다.
조용히 사는 것을 좋아하고
봄과 꽃을 사랑합니다.”
이 두 아리아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두 사람의 자기소개이자 사랑의 시작이다. 로돌포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미미가
자신의 소박한 삶을 들려준 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음악학자들이 이 장면을 두고 **“오페라 역사상 가장
완벽한 첫 만남 장면”**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야기는 이후 크리스마스의 파리 거리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장면과 사랑의 갈등을 거쳐, 결국 병든 미미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진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 가족의 삶도 어쩌면 그 오페라 속 젊은 예술가들의 삶과 조금 닮아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난했지만
서로 함께 있었고, 작은 음악회 하나에도 기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그 힘들었던 IMF 시절이 내게는 이렇게 기억된다.
IMF가 아니라, I’m F(ine)이었던 시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