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새 마흔 다섯해를 살아온 중늙은이 입니다.
제 아내와는 한살 터울이지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다른 지역을 기웃거려 본 적이 없는 경상도 사내.
아내는 전남 나주가 고향이지만 광주에서 자란 전라도 토박이입니다.
제가 아내를 만난 것은 17년 이었습니다.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열렬한 팬인 저는 광주에서 벌어진 롯데와 해태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롯데가 참패하는 바람에(김봉연의 3점홈런.김준환의 2점홈런. 김성한의 3점홈런. 김종모의 3점홈런으로 모두 홈런에 의한 11점을 빼앗겨 6회까지 9:0으로 앞서다가 10:11로 역전패한 경기라서 똑똑히 기억함) 화가 나서 부산에서 함께 야구경기를 보러갔던 사람들과 술에 취해 대인동인가 대신동인가 하는 터미널 부근에서 꽤나 난동을 부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당시에는 꽤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9점을 이기다가 3회를 버티지 못하고 11점을 빼앗겨 역전패를 당했으니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유달리 승부욕이 강한 저는 터미널 안에서 술에 취해 애꿎은 의자를 발로 강하게 차 버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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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제 발에서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이 부랴부랴 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 결과는 엄지발가락은 부러졌고 발등에는 금이 가는 참담한 부상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저는 부산에 오지도 못하고 아는 사람하나 없는 광주의 한 정형외과에 입원하는 환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신은 제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제 아내가 될 그 여자가 바로 그 병원의 간호사였던 것입니다.
아픈 것은 고사하고 병원에 있는 동안 그 여자를 꼬시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은 자명하지 않았겠습니까?
보름동안 입원하고 있다가 퇴원한 뒤에도 저는 틈만 나면 광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후 기어이 제 여자로 만드는데 성공했지요.
만세! 마아안세! 만만세!
결혼을 하고 난 후.
아내는 제 둘째 매형이 원장으로 있는 부산에서 꽤나 유명한 산부인과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매형이 산부인과 원장이라서 미인들에게 탈취당할까봐 우리 누나의 감시가 보통이 아니었고 그래서 간호사인 제 아내를 첩자로 들여보내 매형을 감시하려는 누나의 보이지 않은음모(?)가 있었고 그 감시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슴).
그런데 결혼을 한 후에도 제 아내는 해마다 5월이 되면 광주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남편인 저한테까지 뚜렷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모르는 제가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제 처가집 식구들은 우리가 결혼한지 2년인가 지난 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갔으니 광주에는 친척도 없었으니까요.
몇년이 지난 후에 참다못한 제가 광주를 남몰래 찾아가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아내의 말은 이랬습니다.
"관현이 오빠를 보려구요..."
관현이 오빠?
저는 눈이 홱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이 여자가 나 모르게 만나는 남자가 있었남?
하지만 이후의 아내의 말을 들은 저는 이내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박관현!
그 분이 살아있었다면 저와 아주 가까운 처남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박관현은 전남대 학생회장으로 80년 5월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민주화를 요구하며 독재정권에 맞서는 항거의 뜻으로 교도소에서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결국 사십 며칠을 투쟁하다가 끝내 차가운 독방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처음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묘가 지금 광주 망월동에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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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처와 처가집 식구들은 제가 부산 토박이라서인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말을 했더라면 저도 처음부터 아내와 함께 그분의 묘를 찾았을터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놈의 지역감정이라는 놈이 그런 기가막힌 상황을 연출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저한테는 지역감정이 없고 누구보다 아내를 사랑하니까요.
다만 전라도 출신이라는 천형의 멍에가 제 처를 움켜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
시간이 나면 저는 아내와 함께 망월동을 찾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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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경선이 시작되고.
광주의 경선이 있던 날.
아내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광주의 경선현장을 보면서 움직이지 않더군요.
저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누구보다 그 지역감정에 의한 피해자였으니까요.
경선현장을 보면서 아내가 기도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제 아내는 기독교 신자입니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기도하는 아내.
제가 들은 한마디는.
"하나님! 이 민족을 사랑하신다면 노무현 후보를 선택해 주세요... 그분만이 이 나라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전라도 출신이면서도 부산출신인 노무현씨를 위해 어깨를 들썩이며 제 아내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노무현씨가 이겼습니다.
저는 만세를 불렀습니다.
노무현씨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제 아내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작은 오열을 하다가 성경책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교회에 가서 마음껏 울고 기도를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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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나는 매형과 누나한테 박관현씨에 대해 얘기를 했습니다.
누나는 모르는 것 같았지만 매형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80년 당시에 서울의 종합병원에 있었던 매형은 동료들과 후배들을 통해 박관현씨에 들어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적당한 시기에 함께 망월동을 한 번 다녀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존경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매형! 매형은 한나라당 000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하고 꼽던데 내 집사람한테 미안하지 않수?"
매형의 말이 걸작입니다.
"처남! 모를 때는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알고난 후에도 그러면 바보지... 내가 더 이상 바보가 될수는 없지... 그리고 내가 한나라당 000을 전폭 지지했던 것은 아니라구... 대안이 없어서 할 수 없이..."
매형의 다음 말은 제 처가 말하지 않아도 자신도 노무현씨가 가장 뛰어난 대통령감이라고 진즉부터 여기고 있었다나요.
더구나 더욱 웃기고 걸작인 것은 제 누나의 궤변입니다.
병원장 사모님 티를 내느라고 갖은 폼을 잡고 다니는 누나는 부산여성단체에서 간부일을 보기도 하고 한나라당 지구당 일이라면 빠지지 않고 다니며 가끔은 후원회비도 낸 것으로 아는데(사실은 한나라 당원도 아니면서 폼재느라고 그랬을 겁니다.) 동생인 나한테까지도 안면을 싹 바꾸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노무현씨는 조직도 없고... 자금도 없을텐데 어떻게 선거전을 치룰까?... 부산에서 후원회 행사같은 것은 안하나?... 니 매형 카드로 어느정도는 결재할 수 있는데... 나도 노무현이가 좋더라."
이전에는 노무현씨의 노자도 꺼내지 않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열렬한 지지자로 바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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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사흘 전.
제 아내가 핏덩이 사내아이를 우리집으로 데려온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아이를 우리 아이로 키우자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어느 미혼모가 편지를 써놓고 사라졌고 그래서 구청에 연락한 다음 홀트복지재단에 맡기기로 했는데 도저히 못보내겠다나요.
처음에는 미치겠더군요.
이 나이에 나더러 또다시 핏덩이의 아빠가 되라니오?
사실은 제 큰딸이 고1 작은 딸이 중1인 딸딸이 아빠라서 아들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막상 아이를 데려오니 정신이 없더라구요.
물론 딸들은 제 어미 편을 들며 환호성을 지르고...
저는 조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경험해 본 분은 아시겠지만 생전 처음보는 아이를 받아 들이는 것이 확실히 쉬운 문제가 아니더군요.
그런데 어제저녁.
아직 이름도 짓지않은 핏덩이를 목욕시키면서 아내가 하는 말.
"이제 이 땅에도 노무현이라는 희망이 생겼으니 이 아이의 이름을 희망이로 하는게 좋겠어요... 당신의 성씨가 노씨가 아니라서 노희망은 안될테고... 어머? 이제보니 노희망이라는 이름이라면 이상하겠네?... 희망이 없다라는 뜻이잖아요... 역시 내가 당신한테 시집오길 잘했네요... 차희망! 희망이 가득찼다는 말이잖아요... 멋지지요?"
제가 차(車)씨 성이거든요.
그러면서 자장가를 부르는 제 아내의 얼굴에 정말 희망이 흐릅니다.
이제 정말 좋은 세상이 올거라나요.
결국 저도 승낙하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좋으면 저도 좋으니까요.
제 딸들도 그렇고...
어쨌든 노무현씨 때문에 저는 핏덩이 아빠가 되고 말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중늙이인 제게 아들을 주시다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