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솔루트 파워
고 노무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났지만 아직도 그 충격은 가시지 않고 있다. 그 비보를 접한 사람들마다 느끼는 술회는 각자 달랐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사건 그 자체였다. 비록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현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검찰 조사를 받는 처지였다고는 하나, 한 국가의 수장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낭떠러지 끝으로 자신의 몸을 던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을 정의하면서, 비극은 가장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 가장 비천한 형태로 전락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평범한 전직 세일즈맨이었던 한 가장의 죽음을 다룬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이후, 현대적 비극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정의되긴 했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하는 그 낙폭의 커다란 차이는 비극을 심화시키는 수단이 된다. 무엇이,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그를 떨어뜨리게 헸는지 그 죽음의 이유와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홍역을 치르며 집단적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암살당한다는 설정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다룬 가브리엘 레인지 감독의 [대통령의 죽음]을 비롯해서, 실제 미국의 존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다룬 [JFK] 등 대통령의 죽음을 다룬 영화는 의외로 많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대통령 경호원 출신으로 등장하는 [사선에서], 스페인 마이욜 광장을 배경으로 대통령 암살을 저지하려는 경호관으로 데니스 퀘이드가 출연하는[벤티지 포인트], 마이클 더글라스, 키퍼 서더랜드가 국구안보국 비밀요원으로 등장하는 [센티넬] 역시 대통령 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려는 경호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대통령 자신이 직접 자살하는 경우는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극히 드물다. 현실 속에서도 거의 일어나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되고 구성되는 영화에서도 대통령의 자살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주연의 [앱솔루트 파워]는 스릴러 형식으로 전개된다. 루터 휘트니(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혼자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프로 도둑이다. 은퇴할 나이가 된 그는 마지막 한탕으로 워싱턴의 거부이자 정계 막후 실력자인 월터 설리번의 집을 털 계획을 세운다. 설리번은 아내와 사별한 뒤 젊은 아내 크리스티와 함께 살고 있다. 부부가 바하마로 여행을 떠난 사이 설리반의 집에 침입한 루터는, 2층 침실로 들어서다가 비밀 유리문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값비싼 보석과 현금이 들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집으로 들어온다.
이중창으로 되어 있는 유리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가 없다. 따라서 도둑 루터는 집으로 들어온 두 남녀가 술에 취해 변태적인 성관계를 하는 것을 고스란히 목격한다. 여자가 칼로 남자의 팔을 찌르고 목을 겨누는 순간, 갑자기 총성이 울린다. 살해된 사람은 설리반의 젊은 아내였다. 설리반과 깊은 친분 관계에 있던 리치몬드 대통령(진 해크만)은 TV연설에서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사건이 전개되면서, 그날밤 대통령이 설리반의 아내와 변태적인 성관계를 했었고 비밀요원이 우발적으로 설리반의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이 밝혀진다. 결국 사건은 리치몬드 대통령이 자살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물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지만 최고 신분에 있었던 대통령의 자살은, 그 이유가 어떤 것인든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김동길 교수는 [노무현은 단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뿐이다! 이 비극의 책임은 노씨 자신에게 있다]라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지금은 할 말이 없다]라는 글에서 말했다. 수백만 조문 인파와는 동떨어진 이런 발언을 봐도, 하나의 사건을 보는 극도의 상이한 시각을 알 수가 있다. 분명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가 갈등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또 삶의 본질적 비극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