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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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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관로(官路) 삼천(三千) 리, 절반(折半)은 산을 뚫었어라. [제4편]
문 무 추천 0 조회 203 26.09.22 15:1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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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26.09.22 15:46

    첫댓글 * 21세기 오늘을 기준해서 : "이계 홍양호"의 문집 기록을 보면 :
    황당하다 못해, 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의 이웃나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분명한 것은, 이계 홍양호는 조선족이며, 또한 한족이며, 조선왕조의 관리였다는 것이다.
    18세기를 꽉 채우고 영면하신 분이니 겨우 2백여 년 전의 인물이다.
    '조선의 임금이 북쪽 사막 땅을 통치하였다'라는 말은, '반도 조선'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설명하면 설명할 수록, 답답한 이야기다.
    이렇게 답답한 이야기만 하다 보니, 필자도 답답한 마음 뿐이다.
    사이다처럼 시원한 기록은 없을까?
    그러나 그 시원한 '사이다'같은 소리를 할 무리들은, 반도의 사학계인데... ...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맬 수 있을까?
    이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 자기들만의 조그만 놀이터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 과연 재미가 있을까?"
    * 관로 3 천리 중 절반을 착산(鑿山 : 산을 뚫음)하여 길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도 남는다.
    참 흥미있는 이야기다.

  • 작성자 26.09.23 20:15

    * 반도 땅에 있었다는 1910년 당시의 '양반가'는 팔도 여러 곳에 있었음에도,
    유독 충청도에만 많이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 충청도에 양반가가 많이 정착하게 된 원인은?
    그래서 '충청도를 양반'이라는 이칭까지 붙었던 같은데 말이다.
    * 이런 유추에는, 양반가가 많았다는 것은, 그곳에는 노비출신, 천민층, 하인출신들 또한 많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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