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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03
씬1. 그 구석방
지난 회와 장면이 연결된다.
장수장과 변씨가 추궁하듯 무섭게 어린 궁예를 보고 있다.
궁예는 유모가 준 신표를 가슴속에 넣은 채 손으로 옷깃을 꼭 쥐고 있다.
변씨 : 왜 말이 없느냐? 너는 궁예라고 하였지? 어디 왔느냐? 어미는 누구이고 어찌해서 쫓겼느냐?
궁예 : ........
변씨 : 바른대로 이르지 못할까? 너는 대체 누구이냐?
그래도 궁예는 입을 앙다문 채 말이 없다. 작은 외눈이 더욱 반짝거린다. 이제는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변씨 : 말하지 못하겠느냐. 이 댁은 오늘 참으로 경사스러운 날이니라. 헌데 너희 모자가 들어와 불경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필 이런 날에 말이다. 나는 알아야겠다. 얘야, 무슨 죄를 짓고 쫓겼느냐?
궁예 : 죄를 짓지 않았사옵니다.
변씨 : 그러면 왜 관인들에게 쫓겼느냐? 그 품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 내놓아 보아라.
궁예 : 아니 되옵니다.
변씨 : 어서 내놓아 보아라.
궁예 : ........ (당차게 노려보며 더욱 꼭 끌어안는다)
그때 변씨가 주춤하며 허리를 숙인다. 왕륭이 다가온 것이다.
왕륭 : 아이 어미가 숨을 거두었다고?
변씨 : 예, 주군. 하필 이런 경하스러운 날에......
왕륭 : 어린아이에게 무얼 그리 추궁하는가?
변씨 : 아무래도 불길하여 그 사정이라도 좀 알아볼까하여.......
왕륭 : 놓아두게. 가엽지 않은가? 어미를 잃었어. 쯧쯧쯧.
변씨 : 하오나.......
왕륭 :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야, 어디 인력으로 되는 것인가? 시신을 거두어 주도록 하게.
변씨 : 예.
왕륭 : 얘야, 이름이 궁예라고 하였지?
궁예 : ....... (끄덕인다)
왕륭 : 어디로 가는 길이었느냐?
궁예 : 세달사로 가... 가옵니다.
왕륭 : 세달사? 거기는 왜....?
궁예 : 범교 스님을 찾아가는 길이옵니다.
왕륭 : 범교 스님? (알겠다는 듯) 그랬었구나. 큰 스님이시지. 어미가 죽어서 안되었구나. 이보게, 변사부....
변씨 : 예, 주군.
왕륭 : 이 아이를 도와주도록 하게.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그 일은 더이상 추궁하지 말도록 하게나.
변씨 : 예.
왕륭 : 그리고 이 집안에 대를 이을 아들이 세상에 나왔네 그려. 마땅히 부처님께 감사의 예를 올려야하지 않겠나?
내 아우를 보낼 것인즉 그때 이 아이도 딸려 보내게나.
변씨 : 예, 그리 하겠사옵니다.
왕륭이 돌아서 나간다.
변씨가 깊이 허리를 숙여 굽힌다. 그리고는 도리질을 하며 문을 닫아준다.
씬2. 그 방안
아직도 그대로 있는 시신 앞에서 궁예가 품속의 신표를 꺼내본다. 그리고는 입술을 깨문다.
씬3. 안채 방
한씨가 여전히 누워있다.
왕륭이 대견한 듯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왕륭 : 너무도 고생이 크시었소, 부인.
한씨 : ........ (희미한 미소)
왕륭 : 이 아이가 장차 대 성인이 된다고 하셨소. 도선대사님께서 말씀이오.
한씨 : 소첩도 모든 것이 신기하고 두렵기만 하옵니다. 어쩌면 그렇게 예언이 적중하는지요.
왕륭 : 도선대사는 온 나라가 받들고 존경하는 대 선사십니다. 어서 기운을 차리시구려. 참으로 큰 일을 하셨소이다.
한씨 : 오래도록 후사가 없어 조상님들께 죄스러웠사옵니다. 이제서야 한시름을 놓을 것 같습니다.
왕륭 :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요. 대가 끊기는가 하여 얼마나 노심초사를 하였던지, 허허허.
왕륭이 흐뭇하게 왕건을 보는 그 모습 위로......
해설 : 왕륭, 태조 왕건의 아버지로서 왕건이 등극한 이후 세조로 추존되는 사람이다.
이들의 조상은 고려사의 기록이 미진하여 확연치는 않다. 다만 왕건의 아버지는 왕륭이고 왕륭의 선대는 작제건이며,
그 윗대는 당귀인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당귀인이란 당나라의 귀한 사람이란 뜻이다.
이는 왕건의 조상이 당나라에서 건너왔으며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재당신라인, 즉 한반도의 후예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멸망한 백제와 고구려의 많은 난민들이 당나라로로 건너갔었다.
그들은 주로 해상무역업에 종사했는데 훗날 신라로 돌아오니 그 대표적인 예가 장보고이다.
당귀인이란 왕건의 조상은 아마도 장보고처럼 당나라에서 활동하던 옛 고구려의 후예가 아닌가
학계에서는 보고 있는 것이다.
왕륭 : 조상님의 음덕입니다. 그분들의 서원이 하늘에 닿아서 우리 건이를 세상에 보내주신 거에요.
한씨 : 소첩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왕륭 : 분명 큰 인물이 될 게요. 그렇구말구. 아우를 세달사에 보냈소이다.
우리 건이의 출생을 축원하고 산천에 기도를 드리라 하였소이다. 허허허.
씬4. 산길
왕평달이 장수장 및 몇몇 군사들을 이끌고 눈 쌓인 산길을 가고 있다. 절에 올릴 예물 보따리들도 따르고 있다.
궁예도 말 위에 올라 그들과 함께 가고 있다. 여전히 표정은 굳어있다.
왕평달 : 전에 어디서 살았느냐?
궁예 : ......
왕평달 : 아버지도 아니 계시느냐? 일가친척들은.....?
궁예 : .......
왕평달 : 허 그 녀석, 도대체 말이 말이없는 아이로구나. 무엇을 물어도 통 대답하는 법이 없구나.
궁예 : ......
왕평달 :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세달사가 나오느니라. 범교 스님은 나라의 큰 스님이셨다.
전에는 서라벌에 계시는 대왕폐하의 스승이기도 하셨지. 우리 성주님께서는 그 절에 큰 시주님이시니라.
그래 세달사에 가서 무엇을 하려느냐? 이제 네 어미도 죽었는데......
궁예는 그래도 대답이 없다.
왕평달 : 그런데 눈은 어찌해서 다쳤느냐? 어째서 외눈박이가 되었어?
궁예는 물론 대답이 없다. 혼자 말하던 왕평달이 피식 웃는다.
그들 그렇게 계속해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산길을 돌아 멀어진다.
씬5. 세달사 외경
부감으로 보여오는 세달사이다. 눈 쌓인 세달사는 한눈에도 큰 절임이 드러난다.
카메라 다가가면.......
씬6. 동 산사 안
승려들이 저 만큼 일주문을 사이에 두고 눈을 쓸고 있다. 곳곳에 건물이 웅장하게 들어서 있다.
그 일주문 안으로 왕평달 일행들이 말에서 내려, 오고 있다.
합장을 하고 지나치며 요사채 쪽으로 오면 저만큼 지나치던 종간(20대 초반 정도)이 이들을 본다.
서로 일면식이 있는 듯 합장을 한다.
종간 : 어서오시오소서, 시주님. 어인 걸음이시옵니까?
왕평달 : 기도를 좀 드리러 왔습니다, 스님. 성안에 기쁜 일이 있어서요. 큰 스님은 계신지요?
종간 : 예. 저 안에 스님방에 계시옵니다. (궁예를 보고) 이 아이는.......?
왕평달 : 허허허. 큰 스님을 찾아뵈려는 손님이십니다, 그려.
궁예 : ........
종간이 그런 궁예를 예사롭지 않게 본다. 나이차가 십여살은 되어보인다.
종간 : 가시지요.
이들 함께 간다. 그 건물 쪽으로 사라지면.......
씬7. 어느 산사 방 (범교의 방)
뜨락이 잘 정돈되어 있는 조용한 방이다.
섬돌에는 짚신 한 켤레가 놓여있다. 풍경이 흔들리고 있다.
종간이 그들을 조용히 데리고 온다. 왕평달도 몸을 다시 추스리는 모습이다.
종간이 아뢴다.
종간 : 큰 스님, (사이) 큰 스님...
범교 : (E) 왜 그러느냐?
종간 : 성 안에서 손님들이 오셨사옵니다.
범교 : (E) 그래, 안으로 뫼시어라.
종간이 조용히 문을 열면 그 안에 눈썹까지 흰, 백발이 성성한 노승 범교가 마치 신선처럼 앉아서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도대체 나이가 얼마쯤 되었을까?
범교 : 들어들 오시구려.
그러면 왕평달과 궁예만 안으로 들어간다.
씬8. 동 방안
왕평달의 삼 배가 끝이 났다. 몸을 고쳐 앉으면.....
이미 범교는 쏘아볼 듯 궁예만을 보고 있다. 그리고는 눈을 지긋이 감는다.
왕평달 : 큰 스님, 저희 성주님께오서 아드님을 출생하셨사옵니다.
범교 : ........
왕평달 : 하여 부처님과 산천의 신들에게 제를 올리러 왔사옵니다.
범교 : 좋은 소식이로고. 성주님께서 기쁘시겠소이다.
왕평달 : 이를 말씀이옵니까? 온 송악 고을이 지금 잔치 분위기이옵니다.
범교 : 제를 지내려면 법당으로 가셔야겠고....... (궁예를 본다)
왕평달 : 아하, 이 아이 말씀이옵니까?
범교 : .........
왕평달 : 말씀을 드리옵자면 사연이 좀 있사옵니다. 거리를 헤메던 걸인 모자가 있었사온데........
궁예 : 나는 거지가 아닙니다.
왕평달 : (머쓱해서) 하여간.... 그런 연유로 성주님의 내아에 묵게 되었습지요. 엄동설한에 얼어죽을뻔 하였으니까요.
참, 이 아이의 어미는 저희 관아에서 그에 숨을 거두었구요.
범교는 눈을 감고 있다. 왕평달이 보다가 얘기를 계속한다.
왕평달 : 아마도..... 뭔가 죄를 짓고 쫓기는 것 같았사옵니다. 서라벌의 명을 받은 군사들이 왔었사옵니다.
범교 : ...... (여전히 눈을 감고 있고) .......
왕평달 : 한사코 세달사로 가야한다는 것이었지요. 큰 스님께 말이옵니다.
범교는 아직도 눈을 뜨지 않고 있고 종간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있다.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흐르고 범교가 눈을 뜨고 왕평달에게 말한다.
범교 : 알겠소이다. 왕시주께서는 그만 법당으로 가보시지요.
왕평달 : 예, 큰 스님. 허면 이 아이는...?
범교 : 그냥 두고 가시오.
왕평달 : 예, 스님. 그럼.......
왕평달이 극진한 예를 표하며 조심스럽게 방을 나간다.
그리고 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궁예와 범교의 시선이 그렇게 마주치고 있다.
범교 : 나무관세음보살.
종간 : ........?
한탄처럼 한숨을 내쉬는 범교를 보며 종간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다.
씬9. 그 방 밖
방을 나오던 왕평달이 고개를 갸웃한다. 잠시 방 쪽을 보다가 시종들과 함께 법당 쪽으로 간다.
왕평달 : 들 가자. (혼잣 소리로) 생각할수록 묘한 아이야.
씬10. 다시 범교의 방
침묵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범교가 입을 연다.
범교 : 이름이 무엇이냐?
궁예 : 궁예라 하옵니다.
범교 : .........(이미 안다) .....어미가 죽었다고 하였느냐?
궁예 : 예.
범교 : 네가 나를 찾은 까닭이 무엇이냐? 이 늙은 범교를 찾았다면서.....?
종간 : .....?
궁예 : 예. 어머니께서 큰 스님을 뵈라 하셨사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보여드리라 하셨사옵니다.
궁예가 신표를 꺼내 보인다. 종간이 흠칫 놀란다.
범교는 이미 그것을 보고 다시 눈을 감으며 불호를 왼다.
범교 :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서가모니불...... 업장이로구나. 업장이야.
종간 : ........?
범교 : (종간에게) 나가 있거라.
종간 : 예, 스님.
종간이 나간다.
이제 두 사람만 방에 남았다.
범교 : 죽은 너의 어미가 무어라 하더냐?
궁예 : 이것을 보여드리면 큰 스님께서 다 말씀하여 주실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범교 : 쯧쯧쯧. 그 아이가 괜한 짓을 하였구나. 딱한 일이로다. 그에 그렇게 죽었단 말이지.
궁예 : .........
범교 : 무엇이 알고 싶은 게냐?
궁예 : 돌아가신 어머님께서는 저를 보고 신라왕실의 왕자라 하셨사옵니다.
씬11. 그 방 밖
종간이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란다.
씬12. 다시 범교의 방
궁예 :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은 어머니가 아니라 저의 유모라 하셨사옵니다.
범교 : ........
궁예 : 알고 싶사옵니다. 그것이 사실이옵니까?
범교 : ........
궁예 : 수없이 도망다녔사옵니다. 여러 번 쫓기며 죽을 뻔 하였사옵니다.
말씀해주시옵소서, 스님. 저는 누구이옵니까? 이 노리개는 무엇이옵니까?
범교는 무거운 한숨을 내뱉는다. 그러기를 얼마일까?
범교 : 알기는 알아야겠지. 한낱 미물도 오고 감이 분명하거늘 하물며 너의 일이랴...... (사이) 다 맞는 말이니라.
궁예 : ........?
범교 : 죽은 그 여인은 너의 유모였느니라. 그리고 너는 지난 해에 세상을 버리신 경문대왕 폐하의 아드님이시니라.
씬13. 그 방 밖
종간이 숨을 삼킨다.
범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범교 : (E) 너는 분명 왕자의 신분이니라.
씬14. 그 방 안
범교 : (한숨) 이 늙은 중의 나이 올해 90이다. 한 세상 마감이 눈 앞인데 오로지 한 가지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일이었느니라. 모든 것이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이 미련한 중의 잘못이었느니....
궁예 : ........
범교 :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여기서 듣고 여기서 버리도록 하거라.
어차피 너는 왕실을 떠난 몸이고 이제 의지할 곳이 없지 않으냐?
궁예 : ........
범교 : 아주 오래전, 네가 태어나기 그 이전에 신라왕실에는 헌안대왕이라는 분이 계셨느니라.
그 분에게는 따님만이 두 분이 계셨고 대를 이을 왕자가 없으셨지.
그리하여 왕위를 이을 사위감을 여러 화랑들중에서 고르고 계셨느니라.
그 때는 이 못난 중도 승려의 신분을 간직한 채 화랑으로서 참여하고 있었지. 그때는 그런 일이 흔했느니라.
궁예 : ......... (범교의 말을 듣고 있다)
범교 : 헌안대왕께서는 많은 화랑중 응렴이라는 화랑을 내심 마음에 두고 계셨느니라.
응렴이란 화랑은 이 범교와 아주 친한 사이였지.
옛날을 생각하는 늙은 범교의 얼굴에서 함성 소리들이 들려온다.
씬15. 회상 (어느 들판)
화랑들이 말을 타고 달리며 과녁에 화살을 쏘고 있다.
여러 화랑들에 이어 위홍이 응렴에 앞서 달리며 화살을 날리면 과녁에 명중한다.
과녘판을 보고 있던 군사가 기를 흔들며 “명중이오” 소리친다.
그 뒤로 다시 응렴이 이어달리며 활을 쏘자 먼저 박혀있던 살이 두 쪽으로 갈라지며 다시 명중된다.
“와”하는 함성들이 인다.
대신들 속에 범교, 일관 등 여러 얼굴들이 보인다.
한 쪽에 나와있던 헌안왕과 두 공주가 보고 있다. 미소짓는 헌안왕의 얼굴 위로 범교의 소리.......
범교 : (E) 응렴이란 사람은 그 아우 위홍과 더불어 뛰어난 화랑이었지. 아주 미장부였고......
그 때문에 대왕께서도 사랑하시고 두 공주도 사모하였느니라.
응렴이 왕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예를 올리면 헌안왕이 기뻐하여 술을 하사한다. 그것을 받는 응렴.
두 공주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응렴이 하사받은 술잔을 화랑들 앞에 높이 치켜 올린다. 화랑들의 함성이 어우러진다.
그 화랑들 속에는 젊은 범교와 더불어 위홍이 뜻모를 미소를 짓고 있다.
씬16. 서라벌 길
길 양 옆으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그 가운데로 응렴이 말을 타고 가고 있고 왕실의 근위병들이 에워싸고 가고 있다. 혼인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응렴의 행렬은 길을 지나 대궐 정문인 귀정문을 지나고 궐 안으로 지나간다.
씬17. 서라벌 궁궐
그 궐 안 길로 응렴이 들어오고 있다.
근위병들이 예를 다하여 대궐의 정전인 정전 쪽으로 그를 인도하고 있다.
문무백관들이 모두 나와 말에서 내려 헌안왕이 앉아있는 옥좌 쪽으로 오고 있는 응렴을 부러운 듯 보고 있다.
궁중 음악이 뜰 가득히 펼쳐지면서 그곳에는 왕의 첫 번째 공주인 영화공주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맞는다.
그들 두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걸어가 헌안왕에게 절을 올린다.
헌왕왕이 두 사람을 자신의 옥좌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히고 백관들에게 손손을 들어 성혼이 되었음을 알린다.
백관들이 일제히 엎드리며 ‘감축드리옵니다, 대왕폐하!’를 합창한다.
그 위로 들려오는 풍요로운 궁중 음악 소리.
응렴과 영화부인의 얼굴에서.. 그 위로.......
범교 : (E) 결국 응렴이란 화랑은 헌안대왕의 사위가 되었다. 그는 두 공주중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 공주인 영화공주를 택하였느니라. 영화공주는 그 동생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하였지만
대왕의 맏따님이었으므로 그 쪽으로 결심을 한 것이다. 그래야만이 왕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느니라.
그런 일이 있기까지는 어느 미련한 중의 어리석은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느니....... 그 중이 바로 나 범교였느니라.
설명이 계속되면서 문무백관 속에 화랑복 차림의 범교가 지나쳐간다. 매우 상기된 범교의 표정에서......
씬18. 인써트
서라벌 궐 안에 사계절이 지나쳐간다.
안압지에 핀 만발한 기화요초와 그 위로 쏟아지는 비.
그리고 늦가을로 변하면서 가득한 낙엽무리가 황량하게 대궐 뜰을 휩쓸어가고 있다.
그 멀리 정전 건물이 비치면서 을씨년스런 바람소리.
텅빈듯한 그 대궐의 모습에서......
씬19. 내전
대왕부부가 거처하는 침전이다.
왕비인 영화부인이 뭔가 아양을 떨 듯 차를 권하고 있으나 왕이 된 응렴은 그저 답답하고 권태로운 표정이다.
어린 두 왕자가 옆에 있어도 별 관심이 없는듯 하다.
마지 못해 차를 받아 마시며 딴전을 피우듯 글을 읽고 있는 응렴.
범교 : (E) 그랬느니라. 이 미련한 중이 사람을 잘못 보았느니.......
그는 훌륭한 화랑이기는 했으나 대왕의 재목이 아니었던 것이니라. 장인의 뒤를 이어 대 신라국 48대 경문대왕이 되셨으나
곧 대궐의 모든 것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지. 왕후인 영화부인과는 두 아들을 두었으나 화목하지 못했고
다시 그 동생으로 하여 후비를 삼았지만 또한 마찬가지였느니라. 왕실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느니....
어떻게하든 마음을 돌려보려고 자신의 동생마저 후비로 권했던 영화부인은 점차 표독한 여인으로 변해갔느니라.
뭔가 애써 자상하게 말을 걸던 영화부인이 그예 노기를 띄운다.
이어서 궁녀들에게 과일상을 들여오는 영화부인의 동생마저 외면하며 응렴이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두 여인의 표정이 독하게 변한다. 영화부인이 과일상을 내동댕이 친다.
씬20. 들판
말을 달리는 응렴과 범교. 미친듯이 질주하고 있다.
그렇게 얼마쯤을 달리다가 메밀꽃이 바다처럼 펼쳐진 개활지에 이르러 말을 멈춘다.
응렴의 표정이 한없이 외로워 보인다. 그 외로움 속에서 천천히 말을 몰아가던 응렴이 문득 한 곳을 본다.
그 꽃밭 속에 한 여인이 밭일을 하다말고 응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두 남녀가 가까워진다. 수줍은 듯 몸을 사리는 그 여인.
범교가 멀찌감치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보고 있다.
비로소 사랑에 눈 떠가는 응렴의 뜨거운 시선에서........
범교 : (E) 본래 경문대왕께서는 따듯하고 심약한 분이셨지. 그런 분이 부인들의 힘으로 왕위에 올랐어.
게다가 처음부터 애정이 있었던 결혼이 아니었으니 어찌 궁궐이 감옥과 같지 않았겠느냐?
그 와중에서 한 여인을 만났느니.....
아름다운 배경 음악이 깔리면서 응렴과 그 여인은 수줍은 듯 꽃밭 사이를 거닐기 시작한다.
춤추듯 너울거리는 그들의 표정에서.......
씬21. 현실 (범교의 방)
궁예가 외눈을 반짝이며 듣고 있다.
범교는 긴 한숨을 내쉰다. 궁예는 직감적으로 어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범교 : 그것이 바로 너의 업이 된 것이니라. 너의 운명을 만들어낸 것이야.
궁예 : ........
범교 : 대왕께서는 그 여인을 궁으로 데려오셨다. 그리고 후궁에 머물게 하셨지. 그 다음 일들은 굳이 말하고 싶지 않구나.
(긴 한숨) 촌부의 딸이었고 착하고 순하기만 했던 그 시골처녀는 지옥같은 생활을 견디어 나갔단다.
두 왕비의 시샘이 극에 달했던 것이지.
궁예 : ........ (입을 앙다문다)
범교 : 그리고 네가 태어났단다. 궁예 네가 말이다.
간난 아이의 울음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 위로.....
범교 : 그때 경문대왕께서는 너의 어머니를 왕후들로부터 보호하고자 궁궐의 후원 외진 곳에 떨어져 살게 하였었지.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가 점점 커져온다. 그 울음 소리는 서서히 궁예의 얼굴로 겹쳐들면서.......
범교 : 그날, 그러니까 네가 태어나던 날은 바로 오월 단오였어. 그날따라 하늘엔 무지개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었단다.
사람들은 단오날에 무지개를 보며 후궁에서 태어난 한 왕자의 탄생을 축복했었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왕비들은 그렇지 않았단다.
씬22. 궁궐 내전 외경 (회상)
밖에는 궁녀들이 대기해 서있다.
문의왕후 : (E) 아들을 낳아....?
씬23. 동 궁궐 내전
휘장이 가리워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일관에게 묻고 있는 문의왕후(영화부인).
문의왕후 : (휘장을 걷으며)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후원에 있는 그것이 아들을 낳았단 말이렷다.
일관 : 예, 그러하옵니다, 황후마마.
문의왕후 : (분함을 참으며) 아들을 낳았단 말이지. 아들을......
일관 : ........ (눈치만 본다)
문의왕후 : 아이가 날 때 천문을 보았느냐?
일관 : 예, 마마.
문의왕후 : 그래 어떠하더냐?
일관 : 참으로 복스러운 탄생이시옵니다. 무지개빛 서기가 하늘에서 뻗쳐내려와 용마루에 내려앉았사옵니다.
또한 이 날이 천중가절이라하는 오월 단오, 중오일이옵니다. 이 얼마나 상서로운 탄생이시겠사옵니까?
참으로 감축, 또 감축 드리옵니다.
문의왕후 : (벌떡 일어서며) 지금 감축이라 하였느냐?
일관 : .........?
문의왕후 : 네 놈이 아무래도 지금 제정신이 아닌 모양이로구나. 무얼 감축한단 말이냐?
일관 : 왕후마마, 그것은 저....... 대왕폐하를 도와 대신라국을 이끌어갈 출중한 인재가...탄생되시어서......
문의왕후 : 닥치거라, 이놈! 정궁인 내게 대통을 이을 왕자가 둘씩이나 있거늘,
감히 뉘 앞에서 근본도 없는 천한 것의 자식을 두고 왕실을 운운하느냐?
일관 : ......... (주눅이 들었다)
문의왕후 : 너의 직책이 일관이 아니더냐? 나라의 길흉화복을 점친다는 놈이 고작 한다는 소리가 이 모양이니
어찌 궁궐이 어지럽지 않겠느냐? 네 놈이야말로 역적과 다를 바가 없구나.
일관 : 왕후마마. 소신이 어찌........ 소신이 어떻게 그런.......
문의왕후 : 다시 일러보거라. 그 아이가 어떻다구?
일관 : 송구하옵니다, 왕후마마. 신이 아뢰옵는 것은.......
후궁에서 태어나신 왕자 아기씨께서... 여러가지로 다른 아기씨들과 달라서.......
문의왕후 : 무엇이 다르다는 것이냐?
일관 : (떨며) 그것이 저..... 태어나실 때부터 이가 있으실 정도로 성숙하신데다가..... 후궁을 둘러싼 무지개빛 서기하며......
문의왕후 : 뭣이라고...? 그 어린 것이 이가 있어? 보통 요사스러운 것이 아니구나. 이야말로 왕실에 큰 일을 낼 징조가 아니더냐?
일관 : ..... (두렵다)
문의왕후 : 이 사실을 누가 또 알고 있느냐?
일관 : .....왕후마마 뿐이시옵니다. 제일 먼저 이리로 달려왔사옵니다.
문의왕후 : 그래. 흠..... 다행히도 네게 아직 살 길이 남아 있었구나. (독기 서린 목소리로)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겠노라.
천한 것의 자식이 태어났을 때 하늘에 서기가 뻗쳐 있었느냐?
일관 : .....
문의왕후 : 묻는데 왜 대답이 없느냐!
일관 : 그것은 서기가 아니라..... 도.. 독기요, 변괴이였나이다.
문의왕후 : 단오날에 무지개가 꽂힌 것이 서기가 아니란 말이지?
일관 : 오월 오일은 술의 날로서 이 날은 마귀사신을 쫓는 날이온지라.....
문의왕후 : 그렇다면 천한 것의 자식놈은 천운을 타고 난 것이 아니었구나.
일관 : 예, 황후마마.... 신이 다시 생각해 보건데.... 아마도.... 마귀의 조화로 태어나지 않았나 보옵니다.
그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문의왕후 : (차가운 미소) 그럴테지. 과연 이 나라의 일관이로다.
어서 대왕폐하께 가뵈어라. 나라의 흉사를 빨리 알려야 하는 것이 너의 일이 아니더냐?
일관 : 예, 왕후마마. 잠시나마 천기를 잘못 읽은 이 죄인을 용서하시니 망극하옵니다.
문의왕후 : 말이 길구나. 어서 폐하께 가 아뢰어라. 어서.....
일관은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하고 내전을 빠져나간다.
문의왕후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그려지고 있다.
씬24. 후원
궁궐의 외진 곳에 있는 작고 아담한 집이다.
그 밖같으로는 가까이 정자가 보이고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넓다란 갈대밭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몇몇 시비들이 후원의 그 집을 들락거리는 것이 보이고 유모가 집안으로 들어간다.
씬25. 동 집안 방
후궁인 궁예모가 아기를 어르고 있다.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유모 : (E) 마마... 쇤네이옵니다.
궁예모 : 들어오게.
유모가 들어온다. 그리고는 아기를 보며 옆에 앉는다.
궁예모 : 그래, 궁궐에 분위기가 어떠하던가?
유모 : 조금 전에 일관이 폐하께서 계시는 정전으로 향했다 들었사옵니다.
궁예모 : 그래.......
유모 : 얼마나 기쁘시옵니까? 왕자 아기씨의 탄생이 너무도 상서로워서 모두들 큰 인물이 났다고 야단이라 하옵니다.
일관도 아기씨를 뵙고 그리 말하지 않았사옵니까?
궁예모 : 폐하께서 기뻐하실게야, 사내 아기씨를 보게 되면 이름을 궁예라고 부른다 하시었네.
얼마나 좋은 이름인가? 활을 잘 다루는 사람이란 뜻이 아닌가?
유모 : 그러하옵니다. 본시 무예를 좋아하시니 그리 하신 모양이옵니다.
궁예모 : 그런데 폐하께서는 어찌 이리 아니오시는고?
경문왕 : (E) 무엇이라?
씬26. 동 궁궐 대전
경문왕 : 다시 한 번 말해보거라. 무엇이 어째? 아이를 내치라?
일관이 눈치를 보며 부복한 채로 경문왕에게 아뢰고 있다.
일관 : 그러하옵니다, 대왕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이번에 보신 왕자 아기씨께서는......
하늘의 이치를 거슬리고 나셨으므로......
경문왕 : 그게 무슨 말이더냐? 일관 너의 입으로 성스러운 아이의 탄생이라고 말하였다던데.....
일관 : 그렇지가 않사옵니다. 예로부터 오월 단오생은 그 기운이 드세어 역적의 사주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사옵니다.
더구나 그날의 일기가 불순하여 하늘에선 독기 서린 흰 무지개빛이 내려왔으니
이 또한 불길한 징조라 아니 할수 없사옵고....
경문왕 : 닥쳐라. 어디서 함부로 망언을 늘어놓느냐?
왕실의 피를 이은 왕자 아기이니라. 아이를 내치라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일관 :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경문왕 : 그만 물러가라.
일관 : 왕실의 안위를 생각하는 신의 진언을 가벼이 듣지 마시옵소서.
경문왕 : 물러가라 하지 않느냐!
일관 : 폐하, 통촉하시오소서. 왕실의 화근을 자르시오소서.
경문왕 : 화근이라니.... 화근이라니....? 네 이놈 이제 갓 태어난 어린 것을 놓고 화근이라고 하였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경문왕의 진노하는 표정에서.......
씬27. 몽타즈
평의전에서 사태를 심각하게 논의하는 대신들 모습. 의견이 분분한 듯 흥분하는 대신도 있다.
그들 사이 위홍의 모습이 심각하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간다.
계속해서 왈가왈부 놀란이 많은 대신들.......
그중 화랑 범교의 모습이 어두워져 있다.
씬28. 후원 그 방
궁예모가 충격의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모가 그 앞에서 어쩔줄 모르며 그런 궁예모를 보고 있다.
궁예모 : 지금 뭐라 하였는가? 일관이 그런 말을 해? 우리 궁예가..... 우리 궁예가 변고로 태어난 아이라니?
유모 : 지금 궐안이 난리라 하옵니다. 많은 대신들이 입궐하여 일관이 한 말을 놓고 삼삼오오 논란이 분분하다 하옵니다, 마마.
궁예모 : 자네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분명 일관은 이 얼마나 상서로운 일인가하고 말하지 않았던가?
유모 : 왕후마마의 심술이 아니겠는지요?
궁예모 : 설마...... 설마 아무 죄도 없는 이 어린 목숨을 놓고 그리 하겠는가?
유모 : 그 분들의 장난이 틀림 없사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사옵니까?
궁예모 : 헌데...... 어찌 폐하께서는 아직도 기척이 없으신고?
씬29. 대전 밖
많은 신하들의 무리가 이구동성으로 떠들고 있다.
일관 : 대왕폐하, 신의 뜻을 가납하시오소서!
일동 : 폐하, 일관의 뜻을 가납하시오소서!
일관 : 천년 대 신라국에 명운이 걸린 일이옵니다. 속히 아기씨를 궐 밖으로 내치시옵소서!
일동 : 내치시오소서!
씬30. 동 대전 안
경문왕이 범교와 마주해있다. 밖에서는 여전히 신료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경문왕 : 이보시오, 범교 스님.
범교 : 예, 폐하.
경문왕 : 경이 오늘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주선하였소이다. 왜 그리 하셨소?
나는 화랑으로 족했던 사람이오. 차라리 내 아우 위홍이 나를 대신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저들은 내게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생명을 내놓으라고 하고 있소이다.
범교 : ........
경문왕 : 이 모든 것이 두 왕후가 사주한 일이 아니겠소? 그렇소, 아니 그렇소?
범교 : 소승은 차마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경문왕 : 경이 원망스럽소. 어찌하여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하였단 말이오.
범교 : 망극하옵니다, 폐하. 경문왕 많은 신료들이 나보다는 왕후들의 말을 더 두려워하고 있으니,
어찌 내가 지존의 몸이라고 할 수 있겠소이까?
밖에서는 여전히 신료들의 청하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고......
경문왕 : 나는 태어날 왕자의 이름까지 정해 놓았소이다. 아이의 에미가 불쌍하지 않소이까?
범교 : .......
경문왕 : 이렇게 무능한 나를 그래도 지아비라하여 그토록 믿고 순종했던 사람이오.
아무리 후궁이라지만 그 동안 왕후들의 구박이 얼마나 자심하였소. 아.. 아... 이 일을 어이할꼬....
범교 : 폐하.....
씬31. 내전 외경
문의왕후 : (E) 폐하께서 어떻게 이럴수가 있으시오.
씬32. 동 궁궐 내전
두 왕후와 위홍이 마주해있다.
문의왕후 : 아직도 그 어린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구요?
위홍 : 워낙 인정에 약하신 분이신지라......
제2왕후 : 일관은 이 나라의 길흉대사를 점치는 사람입니다. 한 나라의 운명이 좌우된다고 하였는데도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계시다니요?
문의왕후 : 이번 일을 경은 어찌 생각하시오? 폐하의 아우님인 경의 생각을 듣고 싶구려.
위홍 : (머리 숙이며) 신의 뜻은 왕후마마와 추호도 다름이 없사옵니다.
문의왕후 : 불행중 다행이구려. 역시 경을 이리 오시라한 것이 잘한 것 같구려.
위홍 : 망극하옵니다, 왕후마마.
문의왕후 : 참으로 딱한 일이시오. (사이)... 지금의 폐하께서 왕통을 이으시기 전에
이 나라에 한다하는 수 많은 가문에서 왕실의 사위가 되고자 했습니다.
우리 자매는 그러나 경의 형님을 모셨소이다. 그리고 폐하가 되셨습니다.
위홍 :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문의왕후 : (역정) 그걸 안다는 분이 이토록 우리를 박대한단 말이오?
위홍 : ........
문의왕후 : 폐하께 가서 이르시오. 천한 후궁의 아이를 택하실 것인가, 아니면 우리를 택하실 것인가?
위홍 : 마마.....
문의왕후 : 아직도 조정의 많은 중신들은 왕실의 정통을 잇고 있는 우리 자매를 잊지 않고 있소이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위홍 : 어찌 모르겠사옵니까?
문의왕후 : 잘 생각하시오.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은 바로 경 뿐이오. 그래서 부른 것이오.
위홍 : 기다려주시오소서. 신이 나서서 방안을 찾아보겠사옵니다.
씬33. 후원
궁예모와 유모가 공포에 사로잡혀 어쩔줄 몰라하고 있다.
아이가 계속 울어대고 있다.
궁예모 : 이상한 일이 아닌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 폐하께서는 어찌 이리도 무심하신고?
유모 : 마마,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사옵니다. 어떤 대책을 세우셔야 하실 것이옵니다.
궁예모 : 어떤.....?
유모 : 일관이 왕후마마에게 겁박을 당한다 들었사옵니다. 그리하여 거짓 사실을 아뢰었구요.
궁예모 : 어쩌면 좋은가?
유모 : 송구한 말씀이오나, 폐하께서도 어쩌지 못하실 것이옵니다. 두 분 왕후마마의 뜻을 한 번도 물리치지 못하신 폐하시옵니다.
왕자 아기씨를 보호해야 하옵니다. 방안을 찾으시오소서.
궁예모 : 어이할꼬... 이 일을 어이할꼬.....? 이보게 유모, 어찌하면 좋을꼬?
씬34. 대전 외경 (밤)
깊은 밤에도 불구하고 대전에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다.
씬35. 동 대전
경문왕은 여전히 고민스럽다. 긴긴 한숨을 내쉬며 부들부들 떨고 있다.
위홍이 바짝 다가서며 청한다.
위홍 : 어서 결단을 내려주소서, 폐하. 폐하가 앉아계시는 옥좌뿐 아니라 이 아우와 가문의 운명이 달린 일이옵니다.
경문왕 : ......
위홍 : 이 조정의 대신들이 지금 누구를 따르고 있사옵니까?
경문왕 : ...... (한숨) 어찌하라는 것인가?
위홍 : 두 분 왕후마마의 청을 가납하시오소서.
경문왕 :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결국은 그 어린 목숨을 빼앗겠다는 것이 아닌가?
위홍 : 형님폐하께오선 두 분의 왕자님이 이미 계시옵니다. 내치시오소서. 그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옵니다.
경문왕 : 이 사람아 우리는 형제일세. 아우가 되어서 어찌 그리 모진 말을 하는가?
위홍 : 천하의 권력이 왔다갔다 하는 일이옵니다.
경문왕 : 나는 이 왕자리가 싫네.
위홍 : 모든 것은 이 아우에게 맡기시오소서. 훗날 분명히 지금 형님께서 갖고 계시지 못한 대권을 이 아우가 찾아내 드리오리다.
상대는 여인들이옵니다. 지금은 아우의 말을 들어주소서.
경문왕 : ....... (한숨만)
위홍 : 그리 해주오소서, 폐하.
경문왕 : 그 불쌍한 것을 내 손으로 내치라 하는가?
위홍 : 어서 영을 내리시오소서.
경문왕 : ....... (비참하다) 항간에 나의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지. 사람들은 나를 가르켜 당나귀 귀를 가졌다고 수근거린다지.
상전과 다름없는 왕비의 소리를 귀담아 듣다 보니 내 귀가 당나귀 귀만큼이나 커졌다고 말일세.
위홍 : ........
경문왕 : (자조적으로) 대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 허허허....
해설 : 당나귀 귀. 우리 동화에 나와있는 내용의 하나이다. 한 이발사가 임금님의 당나귀 귀를 보고서 혼자만 끙끙 앓다가
참지 못하고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 백성들이 이를 다 알게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바로 경문왕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심이 없이 마구 흔들렸던 경문왕의 줏대 없음을
후세인들이 비웃었던 것이다. 그러니 어찌 후궁의 소생인 궁예가 무사할 수 있었겠는가?
위홍 : 폐하,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것이 불안하옵니다. 어서 윤허하시오소서. 신이 다 처결하겠사옵니다.
경문왕 : .......
위홍 : 어서 영을 내리시오소서.
경문왕 : ....... (마지 못해) 죽이지는 않겠지?
위홍 : 이 아우를 믿으시오소서.
경문왕 : 정말 그리하겠지?
경련하고 있는 경문왕의 얼굴 위로 다급한 말발굽 소리들이 들려온다.
씬36. 어둠 속
십여필의 말이 횃불을 들고 달리고 있다.
위홍은 무예복 차림으로 군사들을 이끌어가고 있다. 모두 검을 매고 있다.
위홍 : 폐하의 영이 내리셨느니라. 요상한 어린 것을 잡아죽이고 이참에 아이의 후궁을 다 태워버리도록 하라.
계속해 달려가는 급박한 말발굽 소리에서......
씬37. 후원 마당
어둠속을 한 시녀가 급하게 달려오고 있다. 방 쪽으로 다가들며 다급하게 외친다.
시녀1 : 마마... 마마... 급변이옵니다, 마마.
씬38. 동 집 방
급히 방문을 여는 궁예모. 그리고 옆에 있던 유모도 긴장해서 시녀를 본다.
궁예모 : 무슨 일인가?
시녀1 : 어서 피하시오소서. 군사들이 오고 있사옵니다.
유모 : 군사들이라고 하였나?
시녀1 : 예. 이미 남쪽 후원의 문을 열고 이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하옵니다.
궁예모 : 이보게 유모, 어찌하면 좋은가... 어찌하면.....?
유모 : 피하시오소서. 어서 아기씨를 안고 나가시오소서.
궁예모 : (아기를 안고 일어선다) 폐하를..... 폐하를 뵈어야 한다. 내 아기를 죽이러 오다니.....
폐하는 모르실게야. 폐하를 만나뵈야 한다.
유모 : 늦었사옵니다. 어서 여기를 뜨시오소서. 어서요, 마마......
궁예모 : 어이 할꼬... 어이 할꼬....
유모 : 무엇하시옵니까? 어서 밖으로 나가시어요.
궁예모 : (허둥거리며) 폐하, 살려주시오소서. 폐하...... 군사들이 온다하옵니다. 우리 궁예를 죽이러 온다 하옵니다, 폐하.....
유모 : 어서요, 마마.....
유모가 잡아끌듯 궁예모를 이끌고 밖으로 나간다.
씬39. 동 집 마당
궁예모와 유모가 나와 당황하며 어디로 갈까 허둥거리고 있다.
이미 저 먼곳 쪽에서 불길이 솟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유모 : 마마, 이 쪽으로......
궁예모 : 유모, 저기 불이 붙지 않았는가?
유모 : 그러하옵니다. 남문 쪽인 것 같사옵니다. 저 쪽으로 가시오소서. 동문 쪽에는 군사들이 없는 것 같사옵니다. 어서......
그들이 한 쪽 길을 택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씬40. 후원 마당
위홍과 군사들이 달려오고 있다. 사방의 갈대밭이 불에 타고 있다. 온통 불길이 번지고 있다.
여기저기 두어채의 건물에서 시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온다.
위홍 : 모두 베어라. 이 후원에 있는 자는 하나도 살려두지 말아라.
살육이 벌어진다. 군사들은 닥치는대로 시녀며 수발을 들던 내관들까지도 가차없이 죽이고 있다.
위홍 : 그 어린 것을 찾아라. 가옥마다 샅샅히 뒤져라. 어린 것이 있는 집은 저 위일 것이니라. 나머지는 저 위로 가라.
군사들 건물들을 뒤지기 시작하고 나머지는 위홍이 가르친 집을 향해 달려나간다.
위홍의 눈이 계속 번들거린다. 그도 곧 궁예가 있던 집으로 달려간다.
어둠과 불길, 사방은 그렇게 타오르고 있다.
씬41. 후원 궁예의 집
위홍의 군사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모두 궁예들을 찾고 있다.
한꺼번에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씬42. 동 집안
군사들이 각 방문을 부수며 샅샅이 찾고 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나간 뒤가 아닌가?
위홍이 궁예모가 머물던 방을 보며 입술을 깨문다.
위홍 : 멀리가지 못했을 것이다. 쫓아라.
군사들 : 예!
위홍 : (한 군사에게) 북문과 남문 쪽도 모두 막았으렷다.
군사1 : 예. 북문쪽은 이미 군사들을 시켜 불을 놓아 아무도 갈 수가 없사옵니다.
위홍 : 남문은....?
군사1 : 그곳에는 많은 군사들이 칼을 들고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개미새끼 한 마리도 이곳을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저 갈대밭 너머 강물 속에 빠져 죽지 않는 한 말이옵니다.
위홍 : 그 갈대밭을 모조리 불 질러버려라.
군사1 : 이미 그리 전했사옵니다.
위홍 : 잘했다. 쫓아라, 길은 저 쪽밖엔 없다. 가자.
이들 달려간다.
씬43. 그 누각
허겁지겁 달려오는 궁예모와 유모. 이미 시비도 보이지 않는다.
숨이 턱에 닿도록 엎어지는 궁예모. 아기는 계속 울어댄다.
간신히 다시 일어나 아이를 감싸 안는데,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온다.
궁예모 : 유모, 군사들이 오지 않는가?
유모 : 그런 것 같사옵니다.
궁예모 : 어찌 할꼬.. 더이상 길이 없지 않은가?
유모 : 마마, 피하시오소서. 불길이 다가오옵니다.
온 숲에 불이 번지고 있다. 군사들의 함성 소리는 더욱 가까워 온다.
그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저 만큼 누각이 보여온다.
유모 : 어서... 어서.... 이 불길을 피하시오소서.
궁예모는 다급하다 못해 누각으로 올라간다. 유모는 뒤를 쫓다가 쓰러졌다.
어느새 군사들이 가까이 온다.
유모는 어쩔줄 모르다가 급히 누각 밑으로 들어가고 궁예모는 누각에 올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씬44. 그 누각
저 만큼 강물이 보여온다. 곳곳에 불길이 번지고 있다.
군사들이 어느새 누각 밑에 당도했다.
위홍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다.
위홍 : 하하하하. 어린 것은 저 위에 있구나. 이제 되었다. 뭣들 하느냐?
그러자 군사들이 와하며 누각으로 올라간다.
궁예모는 아이를 안은 채 어쩔줄을 모르고 있다.
군사들은 모두 누각 위로만 정신이 팔려있다. 위홍도 군사들을 따라 누각으로 올라간다.
궁예모가 한 쪽으로 몰린다.
위홍 : 아이를 내놓으시오.
궁예모 : .....아니 되오. 폐하의 아드님이오.
위홍 : 그 아이는 대역의 운을 타고난 아이요. 폐하의 영을 받고 왔소이다. 어서 아이를 주시오.
궁예모 : 아니되오. 그럴리가 없소. 폐하께서 그런 영을 내리실 리가 없소.
위홍 : (군사들에게) 뭣들 하느냐? 아이를 빼앗아라.
궁예모 : 아니 되오.
그때다. 궁예모는 보았다. 그 누각 아래 유모가 손짓하고 있다.
그리고 누각 위의 군사들도 그때서야 보았다.
궁예모 : 유모, 아이를 받게.
소리와 동시에 아이가 밑으로 던져진다. 사람들은 모두 놀란다.
유모가 그 아이를 받았다. 그리고 함께 나뒹굴고 일어나며 달려간다.
위홍은 아차 싶다. 급히 소리친다.
위홍 : 저 계집을 쫓아라.
군사들이 달려간다. 불과 얼마 안되는 지척의 거리인 것이다.
군사들과 유모의 거리가 바로 닿을만한 그 무렵, 그 숲 속에서 검은 복면의 사나이가 말을 타고 나타나며 칼을 휘두른다.
몇몇 군사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다.
그 사이, 그 사내는 허리를 굽혀 번개처럼 아기를 안은 유모를 끌어올린다. 그것은 아주 순간적인 일이다.
모두들 뻥하게 보고 있는 사이, 사내는 짧은 숲의 거리를 지나 냇가를 가로질러 사라진다.
위홍 : 쫓아라! 어서 쫓지 않고 뭣들 하느냐! 대체 저 놈이 웬 놈이란 말이냐? 저 놈이.......
기가 막힌 위홍의 얼굴에서 천천히 디졸브......
씬45. 어느 길
그 사내가 달려오고 있다. 달빛만 교교하게 비치고 있다.
간난 아이가 울음에 지쳐 헐떡거리고 있다.
사내가 어느 곳에 이르러 그들을 내려준다. 유모는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고.....
사내가 복면을 내린다. 그는 범교였다.
유모 : 아니...스.. 스님... 범교 스님.
범교 : 이제부터 궁예라는 왕자는 이 세상에 없네. 그리 알게. 자네가 이 아이의 어미가 되는 것이야.
유모 : 스.. 스님...
범교 : 말을 준비해 놓았으니 멀리 떠나도록 하게. (보퉁이를 주며)
대왕폐하께서 만일을 위해 신표로 전해주시라 하시더군. 잘 간직하게.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겠지. 나무관세음보살.
그대로 말을 타고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멍하니 섰던 유모, 비로소 정신을 차리며 자신이 안고 있는 아이를 본다.
아이는 여전히 쉰 소리로 곧 숨을 멈출 듯 울고 있다.
그러다가 그 유모의 비명소리. 간난 아이의 얼굴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유모 : 이 피... 이게 어찌된 일인고... 이게 어찌된 일이람... 세상에, 이 피가 무슨.....
손으로 얼굴을 닦으려 하다가 그 손을 본다. 손가락 하나에 피가 진하게 묻어있다.
다시 비명을 지르며 아이의 얼굴을 살피면 이미 한 쪽 동공은 보이지 않는다.
유모 : 아이구 세상에.... 눈.. 이 눈... 이 눈이 어디가셨는고... 우리 왕자님, 이 눈....
아이구 부처님, 이 년의 손가락이 왕자님의 눈을 다치게 했사옵니다.
아이구 부처님...... (통곡) 이를 어이하옵니까..? (에코우) 이를 어이하옵니까....
아이를 끌어안고 우는 절규같은 유모의 통곡 소리에서...... 아주 길게 디졸브된다.
씬46. 현실 (세달사, 그 범교의 방 밖)
추녀에서 눈이 녹은 물이 툭툭 떨어지고 있다.
종간이 숙연하게 방 안의 동정을 듣고 있다.
씬47. 동 방 (범교의 방)
무거운 침묵이 오래도록 흐르고 있다.
어린 궁예는 울고 있다. 그의 애꾸눈이 더욱 선명해 보인다.
범교가 긴 한숨을 놓는다.
범교 : 그리 되었느니라. 누각에서 너를 밑으로 던질 때, 너를 받아들던 유모의 손가락에 눈이 찔렸던 것이야.
그렇게 잃어버린 것이야.
궁예 : .......
범교 : 더 듣고 싶은 것이 있느냐?
궁예 : 스님, 저희 어머님은 어찌 되셨사옵니까?
범교 : 글쎄다. 이제 그 일을 다 잊어버리거라. 이미 오래전에 일이니라. 나 또한 그 일로 대궐을 떠났으니까.
궁예 : .......
범교 : 사람 사는 것이 인연 아닌 것이 없고, 업이 아닌 것이 없다 하였느니라.
이제 네가 나에게 왔으니, 어쩌겠느냐? 속세의 것일랑 훌훌 다 강물에 띄워버려라. 그리고 머리를 깎도록 하여라.
한 세상 부처님 모시고 사는 것도 해볼만한 일이거니.....
궁예 : 어머님은 살아계시옵니까?
범교 : 쯧쯧쯧. 잊으라 하지 않았더냐. 그 일은 기억에 남은 게 없느니라. 밖에 종간이 있느냐? ....(사이).... 종간이 있느냐?
종간 : (E) 예, 스님.
범교 : 이 아이를 데리고 나가거라. 곧 머리를 깎을 것이니라.
문이 열리고 종간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궁예를 눈짓해 일으킨다.
궁예가 한 번 더 범교를 바라보다가 종간의 눈치를 받고 방을 나선다.
범교, 다시 긴 한숨을 내쉬며 나무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린다.
씬48. 동 세달사 대웅전
많은 승려들이 모여있고 범교가 상좌에 앉아있다. 삭발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종간이 궁예의 머리를 밀어주고 있다. 긴 머리카락들이 잘라나가 떨어진다.
궁예가 눈물을 머금고 있다.
범교 : 지금부터는 부질없는 세상사 다 잊거라. 다 털어버리거라. 너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니라.
세속에 일들이 다 무슨 소용이더냐. 부처님께서도 왕자의 몸으로 세상을 버리고 부처에 이르셨느니라.
궁예 : ........
범교 : 너 또한 부처님과 같이 큰 도를 이루어 참 진리를 깨닫도록 하거라.
궁예의 머리는 드디어 민대머리가 되어간다.
가득한 불경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종간도 경건하게 지켜보고 있다.
궁예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다. 그 궁예의 모습으로 카메라가 다가들면.....
궁예 : (마음의 소리, 에코우) 아니옵니다. 나는 신라의 왕자이옵니다.
언젠가는 그것을 찾겠사옵니다. 잃어버린 것을 꼭 되찾겠사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