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6 연중 제26주일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8-43.45.47-48
38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39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42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듯이' 식구가 많은 집안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아마도 식구들은 제일 만만한 관계기 때문에 그런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으르렁거리고 싸우며 미워하고 원수처럼 지내는 모습들이 참 안타까웠다. 그래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명절이면 식구들 뿐만아니라 일가친척들이 모여 북적대던 그때가 그립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서울에 가면, 버스 터미널이나 서울역에서 북적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늘 설레고 좋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좋다. 속초 중앙시장에서, 시골 오일장에서 북적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다. 밥집에서 이렇게 즐겁게 봉사할 수 있는 것도 사람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종갓집 대가족 안에서 태어나 살아온 영향도 있지만, 무엇보다 성경을 읽으면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나는 성선설을 따른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거룩하고 존엄하고 아름다운 본성을 지닌 소중한 존재로 믿는다. 본래 다 착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죄인들이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정도의 차이와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동성애자들은 중풍병자들처럼 돌봄을 받아야 할 불쌍한 환자들이다. 사이코패스나 범죄자들 역시 돌봄을 받아야 될 불쌍한 인격장애자들이나 정신질환자들이다. 본성은 다 착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 낙태도 반대한다.
죽음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인류. 늘 불안하고 두렵다. 그 절정이 죽음을 앞둔 사람의 절망의 고통이다. 이런 인류의 모습은 구약성경 <코헬렛>이 잘 보여준다.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시면서, 죄와 죽음에 대해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복음선포는 절망에 빠진 인류에게 강한 희망을 준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실현된다. 이 십자가 사건은 죄와 죽음의 절망을 부활, 곧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의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희망사건이다. 사탄, 악의 유혹에 빠져 죄와 죽음의 노예로 살아가는 인류를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값을 치르고 해방시켜(구속救贖)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는 하느님의 인류 구속(救贖)사건이다. 죄로 말미암아 낙원에서 쫓겨나, 그 본래의 모습이 훼손된 상태로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에게 다시 낙원 문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존엄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주시는 하느님의 인류 구원(救援)사건이다. 죄와 죽음으로 말미암아 절망의 고통에 빠진 인류에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되찾아 주는 사건이다. 죄와 죽음의 불안과 두려움에 빠진 인류에게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의 길을 열어준 사건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추석 전날.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고 있는 사람들. 나는 사람들을 본다. 주인공은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