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극기 게양법 |
|
외국기와 함께 게양할 때(외국기는 알파벳 순) |
한국에서 국기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1876년(고종 13) 1월이었다. 운요호 사건[雲揚號事件]을 계기로 한일 사이에 강화도조약의 체결이 논의되는 동안 일본측은 "운요호에는 일본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었는데 왜 포격을 가했는가?"하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나 당시 조선은 국기가 갖고 있는 의미와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조정에서는 국기제정의 필요성이 활발하게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사 겸 수신사인
박영효 등 일행이 인천에서 일본 선박 메이지 마루[明治丸]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갈 때, 태극사괘(太極四卦)의 도안이 그려진 기를 국기로 할 것에 의견을 모아 선상에서 이것을 만들었다. 이는 도일(渡日) 하기 전에 이미 조정에서 구상되고 논의되어 어느 정도 찬성을 본 것을 다소 수정한 것이라 한다. 당시 수신사 일행에는 후일 개화당의 주역이었던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도 있었다. 이들 일행은 8월 14일 고베[神戶]에 도착해 니시무라야[西村屋]에 숙소를 정하고, 이 건물에 배 안에서 만든 태극사괘가 도안된 기를 게양했는데, 이것이 태극기의 효시이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기연 중앙에는 적색과 청색의 태극이 도안되어 있고, 사방 모서리의 대각선 상에는 건(乾)·곤(坤)·이(離)·감(坎)의 사괘가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다. 태극은 우주자연의 궁극적인 생성원리를 상징하며, 빨간색은 존귀와 양(陽)을 의미하고, 파란색은 희망과 음(陰)을 의미하는 창조적인 우주관을 담고 있다. 사괘의 건은 천(天)·춘(春)·동(東)·인(人), 곤은 지(地)·하(夏)·서(西)·의(義), 이는 일(日)·추(秋)·남(南)·예(禮), 감은 월(月)·동(冬)·북(北)·지(智)를 뜻한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태극기는 그후 널리 보급되었으나 도형의 통일성이 없어서 사괘와 태극양의(太極兩儀)의 위치를 혼동하여 사용해오다가 1948년 정부수립을 계기로 국기의 도안과 규격이 통일되었고, 문교부 고시 제2호(1949. 10. 15) 및 문교부 개정고시 제3호(1966. 4. 25)에 의거하여 '국기게양의 방법'이 공포·시행되고 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