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셔브롬1.2봉 등정/박정헌 캠프4에서 패러글라이더 활강 성공
날개야 돋아라 한번만 더 날자꾸나” 글 윤치원 원정대원·사진 원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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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동릉의 최난 구간을 지나 플라토로 진입 중인 윤치원 대원. |
영화 에서 포터들이 임금을 더 올려주지 않으면 더 이상 짐을 운반하지 않겠다는 장면이 생각나는 아침이다.
원정팀들이 워낙 많다 보니 보너스를 많이 주는 쪽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아니나 다를까, 포터를 빼앗긴 팀 사다 부하들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에 상대팀 부하들도 참지 못해 결국에는 주먹이 오가고 나무지팡이가 무기가 되는 큰 싸움이 되어버렸다.
한참을 싸운 후 동네 어른처럼 보이는 노인 한 분이 나서서 한참을 얘기하고서야 소동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옆에 있는 쿡에게 무슨 내용인지 물어보니 “계속 싸우면 집에서 총 들고 나온다”는 말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포터들의 싸움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다른 원정팀의 보너스 수준과 비슷하게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결코 싸지 않은 구경값이었다.
첫 단추부터 매끄럽지 못하더니 약 30개의 짐은 포터가 구해지는 대로 올리기로 하고 쿡을 남겨놓고 카라반을 시작했다.
도중에 많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돈을 태우는 일 없이 카라반 8일 만인 6월 22일 베이스에 도착했다.
노멀 루트에서 남동릉으로 변경
이미 많은 팀들이 베이스에 진을 치고 있었다.
카라반 내내 생각한 것이 먼저 들어가 있는 팀들이 마지막 캠프 정도 루트 작업을 마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조금은 편하게 등반하고 싶은 욕심이었으나 캠프2를 만든 팀은 하나도 없었고, 캠프1을 만든 팀도 얼마 되지 않았다.
보통 이쯤이면 등정 팀도 몇 팀 나올 법도 한데 5, 6월 날씨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며칠간의 짐정리를 마치고 날씨가 좋은 틈을 타서 캠프1로 진출했다.
사면에서 큰 눈사태가 나도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설원 한가운데에 캠프1을 만들고 베이스로 복귀하였다.
캠프1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지만 고소 포터를 고용하지 않았으므로 대원들이 짐을 운반해야만 했다.
베이스에서 캠프1은 아이스폴 구간으로 별로 어렵지는 않지만 히든 크레바스에 간혹 빠지는 경우가 있어 안자일렌을 해야 한다.
캠프1을 다녀와서 루트를 노멀 루트에서 남동릉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조금은 득을 볼 생각도 했으나 루트 작업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을 뿐더러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서였고, 8000m를 거저 먹겠다는 심보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나 또한 그런 마음을 먹지 않았던가. 아무튼 이율배반적인 사고를 뒤로하고 선이 깔끔하고 어느 팀도 등반하지 않는 남동릉을 택해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로프와 스노우 바가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과 남동릉에 대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부족한 스노우 바는 대나무를 이용해 만들었고, 텐트 팩에다 슬링을 연결하여 하켄도 몇 개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등반에 필요한 준비과정을 모두 마쳤다.
캠프1에서 캠프2까지는 설사면 구간으로 조금은 경사가 있는 편이다.
덕분에 신설이 쌓이지 않아 운행하기에는 좋았으나 햇볕이 드는 시간에는 크러스트가 되지 않아 운행이 힘들어졌다.
캠프2 운행 첫날 총 스물서너 마디 중 열다섯 마디를 마치고 캠프1로 내려왔다.
준비해 간 확보물을 거의 다 사용하였다.
다시 장비가 올라오려면 하루가 걸리는 터라 쉬더라도 베이스에 가서 쉬기로 하고 오후 늦게 캠프에서 베이스로 하산하였다.
이후 며칠간의 휴식과 부족한 장비를 보충하였고 베이스 매니저를 자청한 대장님은 기상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와 메일받기에 분주했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다른 원정팀들도 기상정보를 메일로 받아보고 있었다.
우리 팀이 받아보는 예보는 약 일주일분 기상을 매일 예보하는 것이었는데, 풍속·기온·습도가 주 내용이었다.
우리는 이 기상예보를 쿡이 가져오는 각국의 운행 일정과 더불어 운행을 계획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자료로 삼았다.
이틀이나 삼일 정도 날씨가 좋아진다는 예보를 받고 7월 6일 새벽, 캠프2도 만들어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상에 오를 준비를 모두 마치고 캠프1로 6명의 대원이 이동하였다.
다음날 캠프1~2 구간을 마무리 짓고 오후 4시쯤 캠프2를 만들었다.
6명이 텐트 두 군데로 나눠 하루를 보내고 아침에 한 동을 거둬 캠프2~3구간 작업에 나섰다.
이 구간은 멀지도 어렵지도 않은 무난한 구간으로 캠프 자리를 좀더 올리고 싶었으나 장소가 여의치 않아 적당한 곳을 택해 캠프3을 구축하였다.
3~4인용 텐트에 6명이 지내는 것은 눈보라 속에서 운행하는 것보다 힘든 고역이었다.
그래도 텐트 밖보다는 나은지라 하루만 버티자 생각하며 칼잠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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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쪽 히말라야가 장관인 정상에 선 박정헌 대장. 캠프4에서 정상까지 많은 눈으로 12시간이나 소요되었다. |
캠프3에서 지친 세 대원 하산 조치
간밤에 시작된 눈은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 내렸다.
이틀을 비좁은 텐트에서 보내자 식량과 가스가 바닥나기 시작하였고 배가 고픈 두 명의 대원은 먹지 않아도 될 고소를 먹어 텐트 귀퉁이에서 하루 종일 잠만 자고 있다.
이틀 동안 내린 신설로 운행이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과 앞으로 기상이 악화될 것이라는 베이스의 연락에 우리는 하산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침부터 하산을 서둘렀는데도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베이스에 도착했다.
캠프1에서 하루 쉬었다가 내려올 수 있었는데 이렇게 베이스를 고집한 이유는 풍족한 음식과 여유로운 잠자리가 한 몫 하였지만 무엇보다도 편안한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상예보는 그리 틀리지 않아 며칠동안 계속 눈만 내렸다.
그동안 외국팀이 주최하는 화합파티에 참석하였다.
거의 모든 행사가 그렇듯 술과 춤이 빠질 수 없는 법. 하지만 여기서는 술이 없다.
술을 마시지 않고 춤춰보기는 오랜만이다.
술 취하지 않고 춤추는 저들이 그저 신기하게 보일 뿐이다.
베이스에서 날씨가 호전되기를 기다린 지 꼭 열흘 만인 7월 20일, 이삼 일 날씨가 좋아진다는 예보를 받고 오후 5시쯤 캠프1로 이동하였다.
밤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오랜 휴식 때문인지 운행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서너 시간 휴식을 취할 생각이었으나 간밤의 운행이 조금은 피곤했는지 아침 7시가 넘어서야 운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캠프2를 거쳐 캠프3까지 운행해야 한다.
캠프2에는 2인용 텐트 한 동만 있기 때문이다.
재현 선배, 도병 형, 명환 세 대원이 조금씩 처지기 시작한다.
야간운행의 피로가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세 대원을 캠프2에 머물도록 하고 나머지 세 대원은 캠프3으로 올라갔다.
엄청 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어둠이 깔릴 무렵에야 겨우 캠프3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날 캠프2의 세 대원이 캠프3에 합류했다.
얼굴을 보니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다.
상태를 자세히 살피니 올라와야 할 게 아니라 내려가야 할 상황인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만만한 친구 명환에게 체력이 남아있는 대원이 부족한 대원을 도와 내려갈 생각은 않고 올라왔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여기서 내려가면 정상은 물 건너간다’는 것을 그도 나도 알고 있었다.
결정 내리기 어려운 답을 이 캠프까지 들고 온 것이다.
하산에 대한 결정을 보류한 채 내일 아침 상태를 보고 판단하기로 하였다.
아침이 되어도 몸은 회복되지 않았고 우리는 하산을 권유하였다.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 세 대원을 내려 보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고개 돌리면 보이는 정상. 모든 것을 무시한 채 반갑지 않은 손님을 내몰듯 그렇게 내려 보냈다.
야속하게 보이더라도 그들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하산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캠프3~4 구간은 고정 로프가 부족하여 경사가 심한 구간만 로프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대체로 무난하게 등반할 수 있었고 캠프4 직전의 눈처마 부분은 한참을 헤매다 배낭을 벗고서야 올라설 수 있었다.
아마 남동릉에서 제일 힘들었던 구간이 아닌가 생각한다.
바위에 눈이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잡석에 눈이 붙어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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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캠프3을 향해 주마 중인 최강식 대원. |
박정헌 마지막 캠프에서 패러글라이더 활강
해가 가셔브룸4봉에 걸려있다.
머지않아 해가 질 것이다.
운행을 멈추고 적당한 곳을 찾아 캠프2에서 회수한 2인용 텐트를 설치하였다.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서너 시간 머물 장소였으므로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정쯤에 기상하여 대충 준비를 마치니 2시쯤 되었다.
텐트 밖으로 먼저 나간 막내 강식에게 눈 상태를 물으니 대답이 영 시원찮다.
넓은 설원이라 크러스트가 되어있지 않았다.
오늘 하루 고생길이 눈앞에 선하다.
세 명이 교대로 러셀하며 설원 끝부분 정상 꼴 직전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었다.
어제 저녁에 예상했을 때는 넉넉잡고 두세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은 거리가 8시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이후 꼴에서 정상 부위로 이어지는 넓고 가파른 설사면 구간도 엄청난 러셀을 요구하였다.
손과 발은 기계적인 오름짓을 반복하고 눈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겨온다.
한참을 올라 정상 직전 눈처마 부분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다시 로프를 맸다.
눈처마를 넘어서니 중국 쪽 히말라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K2가 보이고 오밀조밀한 산세를 지닌 중국 쪽 히말라야가 장관이다.
발토로 지역의 산세와는 사뭇 다르다.
이윽고 정상. 오후 2시가 넘어선 시각에 올 시즌 초등을 할 수 있었다.
촬영과 휴식을 취하면서 한 시간 정도 정상에 머물렀다.
정상에서 캠프4까지 하산 시간은 약 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중간 중간 등반대장의 글라이더 비행 장소를 물색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결국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마지막 캠프까지 내려왔다.
마지막 캠프 근처에서야 겨우 적당한 장소를 찾아 어둠이 깔리기 직전에 이륙할 수 있었다.
저 멀리 날고 있는 기체를 보면서 ‘짐꾼 한 명을 날려 보냈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26일 모든 캠프를 회수하고 어둠이 깔려서야 캠프1에 도착하였다.
앞으로 기체 들고 다니는 친구들과는 등반을 자제해야겠다고만 생각한 하루였다.
다음날 아침 텐트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일어나니 우리의 막강한 체력을 지닌 쿡들이 올라왔다.
운행 시간을 물어보니 오늘은 외국팀 하이포터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온다고 예전보다 조금 더 걸린 3시간 30분이란다.
놀라운 속도다.
우리의 막강한 쿡은 속도뿐만 아니라 짐도 엄청나게 지고 씩씩하게 내려간다.
이삼 일 짐정리를 마치고 하행 카라반을 시작하였다.
역시 포터 구하기가 쉽지 않아 꼭 가져가야 할 짐만 챙겨 카라반을 시작했다.
K2 등정 50주년 기념 이벤트와 입산료 50% 할인행사가 많은 트레킹팀과 원정팀을 몰려들게 하였고, 이 때문에 포터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PTDC(Pakistan Tourism Development Corporation)에서는 이번에 상당히 재미를 본 모양이다.
앞으로 3년간 입산료 50% 할인을 추진할 계획이며, 정부에 건의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다고 한다.
4일 만에 카라반 시작 지점인 아스콜레에 도착하였다.
포터들 임금과 외상으로 먹은 염소값을 지불하고 스카루드로 가는 지프에 몸을 실었다.
어둠이 깔린 도로를 달리며 원정 기간 동안의 일들을 생각해 본다.
고맙고 감사했던 일, 그리고 반성해야 점들…. 그동안의 일들이 꿈결인 듯 스쳐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