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활동은 아이들이 안그래도 힘든 활동 더 힘들어 할까봐 걱정이 될정도로 너무 더웠다. 솔직히 더운것 보다 땀 때문에 더욱
힘들었던것 같다. 이번에는 종로구쪽을 돌며 계동 배렴가옥, 구 민형기 가옥(현 북촌 문화센터), 원서동 고희동 가옥,
화동 구 경기고교(현 정독도서관) 을 모니터링 하는 활동을 했는데 안그래도 몇일 전 가봤던곳며 1년전 활동한 경력이 있던 사람들을 가본 경험이 있어서 길찾기가 수월했다.
먼저 처음으로 우리는 구 민형기 가옥 을 가보았다. 이곳은 1921년에 민형기 재무관의 자택으로 지어졌는데, 2000년 시민연대에 의해 북촌을 살리자는 제안이 일어나면서 2002년 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북촌 가꾸기의 일환으로 철거하여 복원한 도시형 주택으로 근대한옥의 건축술이 잘 담겨 있다. 건축가 김철민에 의해 한옥공간을 전시, 문화, 사무공간으로 바꾸었으며, 각종 문화행사들을 개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갔을때는 조그마한 전시공간 밖에 못봤지만 아름다운 한옥의 모습은 잘 볼수 있었다.
참고로 이곳은 등록문화재 제229호 로 지정되어 있다.
다음으로 우리는 계동 배렴가옥을 찾았다. 지금은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고 있지만 한국화가인 제당 배렴 선생님이 말년에 이곳에 사시면서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배렴 선생을 알려면 먼저 우리나라 미술의 전통인 실경산수화(진경산수화 라고도 한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실경산수화는 화가의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을 자신의 개성에 따라 사실적으로 꾸미는 것으로, 가장 한국적인 자연풍토의 미적 감각을 보여주는 분야이다. 겸재 정선선생 때 활발했던 실경산수화가 조선 말기에는 쇠퇴했다가 1920년대 몇 분이 맥을 다시 이었는데, 그 중의 한 분인 청전 이상범 선생의 열다섯 나이 어린 제자가 바로 배렴 선생이다. 이곳은 현재 도시 개발공사 소유, 북촌 게스트하우스 관리 로 되어있으며 등록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있다.
세번째로 우리는 원서동 고희동 가옥에 갔는데, 원서동 고희동 가옥은 창덕궁 담 옆에 있다. 그런데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것이 이상할 정도로 고희동 가옥은 문화재로서 의 기품이라던가 아름다움 이 없었다. 사실 이전에는 이것보다 더 심해서 거의 폐허 였다고 한다. 고희동 가옥은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후진을 양성하고 근대적 화단 을 형성하고 이끌어 나간 고희동 선생이 살던 목조 기와집 이다. 이 건물은 5년 전부터 서울시나 문화재청에 매입을 하도록 건의 하였으나 매입을 하지 않아서 결국은 한샘에서 매입을 하게 됐는데. 최근에 문인이나 예술가들의 생가에 대한 보존 여론이 일어나면서 관계기관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 가옥을 매입하려고 했으나 한샘에서 높은 가격을 불러 매입을 하지 못하다가 한샘이 건물 한 쪽을 헐어 버리자 급기야는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여 더 이상 훼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 문화재를 보존하려고 하지 않고 뭐든 부수고 다시지어 새것이 되어야 만족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안타까움을 느낄수 있었다. 이곳은 등록문화재 제84호 로 지정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화동 구 경기고교에 갔다. 이곳은 본래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김옥균과 서재필 등의 집터였다. 1899년에 칙령 제11호에 의해 신학제가 공포되었고 이에 따라 1900년에 관립중학교가 설립되어 조선 정부에 몰수된 개화파 관료들의 집터에 개교하였다. 이후 교명이 관립한성고등학교(1906년), 경성 고등보통학교(191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1921년), 경성 제일 공립 고등보통학교(1922년), 경기공립중학교(1938년)로 변경되었다. 해방 이후 1951년에 경기 중·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가, 1971년에 중학교는 폐쇄되었다. 한국 전쟁 시 미군 통신부대로 사용되다가 1956년에 반환되었다. 1976년에 경기고등학교가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하면서 1977년부터 정독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료관동은 1927년에 건립되었고, 도서관과 휴게실동은 1938년에 건립되었다. 건축 당시 철근 콘크리트와 벽돌 벽 구조, 스팀 난방시설을 갖춘 최신식 학교 건물이었다.
이곳은 등록문화재 제2호 로 지정되어있다.
솔직히 추운것보단 더운것이 더 낳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왔는데 이날만큼은 생각이 바뀔만큼 무더운 날이었다.
힘들기보다 더운것 때문에 고생꽤나 했을 우리 동아리원들 고생해줘서 너무 고맙고 (물론 나도~~) 문화재를 모니터링 하면서
때론 잘 보존되어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 슬프고 화가 나기도 하며 때론 감동을 받기도 하지만 솔직히 오늘은 실망이 컷다. 새로 생긴 등록문화재 마크 가 가옥 같은경우는 안붙어있는 경우가 태반이며 너무 안쪽에있어 찾기 힘든경우도 있고 등등 아직도 문화재를 다루는 우리나라의 시선과 의식이 너무도 낮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후기는 이것으로 끝인데 민지는 이미 봤다고 하지만 혹시나 해서 <서울시 등록문화재 조사 보고서>에 대해 조금 올려본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조사 보고서>
1. 서울시 등록문화재 현황
- 전국에 등록문화재는 현재(2005년 2월), 146 곳이 등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 서울에는 28곳의 등록문화재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 28곳을 분류하면 문인/예술/정치가의 가옥이 9곳이며, 관공서나 학교, 고궁내 건물 등이 19 곳으로 분포되어 있습니다.
2. 서울시 등록문회재 28곳의 조사 결과
☞ 등록문화재 표식이 부착안된 곳이 많습니다.
- 등록문화재의 표식은 기존의 작은 석비 모양과는 달리 둥그렇게 생긴 표식을 건물에 붙여 놓아서 산뜻은 합니다. 그러나, 등록문화재 표식이 부착된 곳이 열 곳 이내입니다.
- 등록문화재 표식이 붙어있는 곳은...
입구 바깥쪽 잘 보이는 곳에 부착했으면 합니다. 입구 맨 안쪽에 주로 부착되어 한참을 이리저리 찾아야 합니다.
- 등록문화재 표식이 없는 곳은...
문인들 가옥은 단 한 곳도 등록문화재 표식이 없으며 단지, 주소로만 확인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예로, 등록문화재 134호인 동선동 권진규 아뜰리에의 경우는 동네에 번지 분할이 안되어서 같은 번지가 200 가구가 넘습니다. 한 번 가서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 등록문화재 안내판도 필요합니다.
- 책자로 발간된 등록문화재 30선에 나와 있는 것 이외에는 문화재에 대한 자료는 홈페이지의 등록문화재 현황에 단, 설명 몇 줄 뿐입니다. 인터넷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등록문화재에 대한 자료는 거의 없습니다.
-홈페이지에도 지정문화재처럼 문화재에 대한 설명과 함께 등록문화재 입구에도 등록문화재 표식만 달랑 붙여 놓을 것이 아니라 안내판 설치도 필요합니다.
☞ 일부 등록문화재 유감
- 등록문화재는 지정 기준과 심사에 의해서 등록되었겠지만 문인이나 예술가들 가옥 몇 채는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등록문화재라는 것이 단지, 건물만 보고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의 인지도에 따라서 였겠지만, 이미 일부분 허물어진 가옥(등록문화재 84호, 원서동 고희동 가옥)이나 납득이 가지 않는 경우가 몇 곳 있습니다.
첫댓글 수고했어 민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