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디자인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디자인 전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공동감독을 맡은 유명 건축가인 승효상과 중국의 예술가 아이웨이웨이는 전시장을 하나의 ‘가상 디자인 도시’로 꾸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작동을 멈춘 일부 작품들이 그대로 방치됐고, 도슨트 부족으로 일부 전시실은 전혀 관리되지 않는 등 전반적인 운영 미숙을 드러냈다.
이번 디자인비엔날레 25만7000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52일간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유료 관람객은 20만6000여명이었고, 도심 곳곳에 설치된 어번폴리를 둘러본 관람객도 64만명에 달했다. 무엇보다 다소 어려울 수 있었던 전시 주제 ‘도가도비상도’(圖可圖非常圖)가 잘 녹아난 전시 구성이 돋보였다.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 디자인은 아니다’는 뜻이 담긴 전시 주제를 설명해주는 이색 작품들은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줬다.
광주를 주제로 한 작품을 대거 선보인 점도 고무적이었다. 1980년 5월 사라져버린 아들을 애타게 찾는 엄마의 절규, 젊은 시절 희귀병을 앓아 시력을 잃고 점자 도서관에서 일하는 광주 시민의 목소리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재탄생했다.
외국 작가가 찾아낸 광주의 도심 디자인의 패턴과 독창성을 보여줬다. 작가가 직접 광주에 머물며 상가와 마을 뒷골목, 전통시장 등을 곳곳을 걸으며 사진을 담고, 기물들을 모아 분류해낸 광주에 관한 기록을 선사했다.
이들 작품은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 생활 속에 담겨 있던 디자인의 가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이 같은 ‘예술을 통한 광주의 재발견’에는 ‘광주비엔날레와 광주디자인비엔날레가 광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해답도 담겨 있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6일자 기사를 통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상품 위주의 전시를 탈피한 규모와 경쟁력을 갖춘 작품을 선보였다”고 극찬했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뉴욕 타임즈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가장 경쟁력 있는 디자인 이벤트로 정착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그동안 광주비엔날레에 비해 해외에서 지명도가 떨어졌던 디자인비엔날레가 이번 전시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미국의 예술전문 매체인 아트인포도 승효상 총감독, 무명전 브렌단 멕케트릭 큐레이터, 광주폴리 김영준 큐레이터의 인터뷰 등을 시리즈로 기획해 현대디자인의 새로운 정의를 선보인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자세히 소개했다.
이 밖에도 아트데일리(미국), 도무스(이탈리아), 디자인붐(이탈리아), 아트인포 차이나, 젯매거진(인도) 등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성공적이 개최와 의미를 각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성공 노하우를 프랑스와 터키에 수출하는 쾌거를 거뒀다. 2년에 한 번 미술 비엔날레만을 개최했던 이들 국가들이 미술과 디자인비엔날레를 번갈아 여는 광주를 벤치마킹, 디자인비엔날레 창설을 준비하고 있다.
또 어번폴리의 해외 순회전시가 추진되고, 일부 작품은 대기업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는 등 예술성과 산업화라는 두 마리 토끼도 잡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광주를 따라 어번폴리를 추진하겠다며 광주시와 협의를 마쳤다. 어번폴리를 광주 대표 문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해외 순회전을 추진하고 있다.
출품작에 대한 러브콜도 이어졌다. 최근 포스코의 고위 간부들이 이번 전시에 소개된 ‘바이크 행어’(Bike hanger)의 구입 및 제작 여부를 의뢰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원이 많은 포스코는 공장에 이 환경친화적인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하기 위해 재단 관계자들과 협의 중이다.
이번 전시에는 컴퓨터와 모니터를 활용한 작품이 많았는데, 준비 부족으로 개막과 함께 10여점의 작품이 작동되지 않았다. 충분한 준비 과정없이 전시장을 오픈하다 보니, 처음부터 작동이 안 되거나 갑자기 멈춰버린 설치작품과 영상작품이 속출했다.
일부 작품은 작가와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전시장 시스템과 작가가 보내온 시스템이 서로 달라 다시 제작하는 경우도 잦았다.
개막 첫날 작동을 멈춘 ‘시선추적소프트웨어와 인터페이스’와 ‘뇌-컴퓨터 이터페이스’는 폐막할 때까지 먹통이었다. 또 음악을 들어야 하는 ‘테라노바 남극교향곡’의 고장난 이어폰도 폐막식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직원들의 불친절에 항의하는 관람객의 글이 잇따랐고, 도슨트의 부족으로 전시장 안쪽의 작품들은 전혀 성명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또 단체관람객 위주로 전시가 진행되다 보니 오전에만 7000∼1만명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날도 있어 느긋한 관람이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