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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급 태풍 너구리의 북상 소식에도 불구하고 우리 느림보 전사님들은 이번 주도 어김 없이
채비들을 단단히 갖추고 성주 독용산으로의 출진을 망설이지 않는다.
조기 출발이라 이른 시간에 오리역 승차장으로 살방 살방 걸어 가니 이내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한때는 꽃돼지 대장으로 불리었으나 명품 느림보 산악회의 일원이 되어 맹훈련을 거듭한 끝에
지꿈은 자랑스럽게도 꽃돌이 대장님으로 통칭되는, 아주 날렵하게 생긴 어떤 분께서 금연 탓에
부풀어 오르고 있는 내 뱃때지를 걱정스레 내려다 보시면서 이번 성주 독용산은 삐이코스도 없을
뿐 아니라 계곡으로의 하산길은 등산로 자체도 뚜렸하지 않은 오지 탐사 산행길인데 하시면서
여간 걱정을 하는 표정이 아니다. 어금니를 굳쎄게 깨물면서
어떤 선사의 글 한줄을 쏙으로만 되내여 본다.
독용산성에서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느림보의 맹꽁이는 되지 않겠노라고. 흠 흠.
맹금류의 대표적인 매와 수리는 매목에서 매과와 수리과로 나뉘어 지는데 먹이를 잡는 방법과
비행술에서 약간의 차이점을 보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똥가리는 수리과 이지만 정지 비행술의 달인 황조롱이는 매과에
속한다. 그리고 초여름철에 산행을 하노라면 호르딱 벗고 호르딱 벗고 하면서 특이한 울음을 우는
새는 검은 등 뻐꾸기인데, 한가지 느림보에 와서 놀라웠던 일은 어느 때 어느 산행을 하다가
카캇카 하면서 거의 금속성에 가까운 새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앞서 가시선 강 대장님께서 어어
이건 매의 울음 소린데... 매의 울음소리를 알아 듣는 이는 흔치 않다.
멍창도땅 괴산 촌X 이여서 그러한가? 캬 캬.
겨울 날 철책선이 있는 철원땅에 주로 내려 않는 새가 바로 독수리인데 하이피수리,관수리,
필리핀수리,물수리, 등등의 수리는 직접 사냥을 하지만 독수리 또는 대머리독수리나 남미 안데스의
콘돌 같은 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다른 동물의 사체를 뜯어 먹고 사는 청소동물이다.
사체의 눈이나 벌어 진 배 부위로 우선 머리를 집어 넣어, 먹기 쉬운 내장을 먼저 꺼내 먹어야 하는
독수리는 머리통에 피 같은 물질이 묻어 나지 않도록 털이 없는 즉 대머리 새다.
부처님이 설법 하셨던 인도의 영취산 이름에서 유래된 독수리 취란 글자가 우리나라의 많은 산에서
등장을 한다. 먹이를 발견하기가 용이한 고지대엔 아무래도 독수리가 많이 살았을 터이다. 헌데
독수리의 독이란 한자어가 대머리 독이란 사실을 아는 이는 참으로 많지가 않다.
그래서 대머리 독수리란 말은 반복하여 강한 느낌을 줄수는 있지만 역전 앞 처럼 앞 전짜를 두번
이나 불필요하게 쓰는 사족이다. 구냥 독수리가 맞고 몽골 지방에서
우리들의 매처럼 사냥에 동원되는 검독수리라는 새 또한 대머리가 아니니깐 그냥 검수리라고 표현
해야 된다. 여기 검수리에서의 검은 검은 색갈의 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칼 검자...
서양에서는 목 부위의 털이 금색을 띈다고 해서 골든 이글이라고 불리운다.
독용산은 은둔의 비경이란 말이 어울리게 우선 산행 들머리를 찾는 일 부터가 몹시도 어렵다.
습기 가득 품고 있는 풀숲길을 하염없이 오르노라니 온 몸이 금새 땀으로 흥건하다.
운무에 휘 감긴 아름드리 나무가 몹시도 아름다운 어느 독용산성 성벽길에 오르니 알총처럼 앞서
갔었던 우리 느림보의 대표 여전사분들께서 마악 점심상을 펼치고 있었다. 내가
걸음이 느려서 그러하겠지만 난 산행을 할 적에 옆은 고사하고 앞 뒤도 돌아 보지 않고 죽기 살기로
쏜살처럼 내 달리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의아하다.
욕구 불만 아님 가정 불화 아님 원만하지 못한 성생활 이 또한 아니문 속에서 펄 펄 끓어 오르는
홧불을 끄기 위해서... 흐 흐 흐.
드뎌 우람한 자태의 산성 성문이 그 모습을 드러 낸다. 오늘의 이바구는 산성과 대머리로 압축을
해 본다.
수도 서울에 있는 성은 도성이라 하고 지방의 읍내에 있는 성은 해미 처럼 읍성이라고 하고 동네
뒷편에 있는 산에다 성을 쌓으면 산성 이라고 한다.
평소 산성에다 식량과 무기를 비치해 두었다가 외적의 침공을 받으면 자기가 살던 동네는 먹을 것
입을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깨끗히 불살라 버려서 ( 청야 작전) 적들이 사용을 할 수가 없게
만들곤 산성에 틀어 박혀서 적이 물러 갈 때 까지 흔히들 말하는 농성을 하게 된다. 성벽이란
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되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선 열배 이상의 병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공격시 예상되는 피해도 엄청 나다고 한다. 그리고
성벽을 축조할 적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물을 어떻게 얻을 것인 가 즉 취수를 하는 방법인데
성벽을 쌓는 산 정상 부위에서 물이 솓아 오르는 우물이 있을 경우엔 남근의 귀두 부위 처럼
동그랗게 띄를 두르듯이 쌓는 퇴뫼식으로 산성을 쌓게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엔 물이 흐르는
계곡까지 즉 으 으 음 여근 꺼증 성벽을 아우르듯이 쌓는 포곡식으로 쌓게 되는데 이곳 독용산성은
포곡식이라 한다.
성문에 올라 성주땅 일대를 내려다 보니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개구멍 바지 입고 삘 삘 기어 다니던 시절에 잠시 살았던 이곳 성주땅은 경상도의 봉화,울진 영양
처럼 산세가 험한 곳도 아닌 내륙지방인데도 거의 오지와 비슷한 곳이다. 성주라고 하면
참외의 주산지란 것 외에는 아는 이가 거의 없다.
그리고 산의 이름에 하필이면 독수리 취도 아닌 대머리 독을 넣었을까? 이때 비록 찰나적인
순간이였지만 마른 하늘에서 뇌성이 울리는 가 하더니 번쩍하는 섬광이 보이더니만 내가 잠시
천리를 꿰 뚫어 볼수가 있는 신통력을 얻게 된다.
대한노인회장을 역임했던 이 규동 장군이 바로 이곳 성주 출신이시고 그 분의 따님이 바로
이 순자 여사님이시니 우리나라의 대표 대머리이신 5공의 전 두환 대통령이 바로 남편이 되시는
것이다. 순간 좀 전에 먹었던 밥알이 뱃속에서 곤두 선다.
짜릿한 전율에 휩 쌓여 잠시 몸을 부르르 떨어 본다.
천년 세월이 흐른 뒤에 출현할 어떤 인물이 심한 대머리일 것을 예상한 우리 선조들께서 이 산과
산성의 이름을 독용? 글구
은둔의 감춰 둔 땅 독용산 처럼 재산도 꼬불쳐 두고서리...
정치적인 인물에 대한 썰레발이는 삼가하는 것이 몸에 이로울 듯 하여 대충 이쯤해서 접어 버리는데
단 한가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왜곡된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 중의 한 분이 바로 전 대통령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요즘 세간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열중하는 것이 바로 티비 드라마 정 도전이다.
정 도전에 대해서 왜들 이리들 열광을 하고 선죽교에서 이 방원의 철퇴를 맞고 쓸어 진 정 몽주는
왜들 만고의 충신으로 받들까?
우리 민족은 패자를 연민하는 참으로 묘한 인성을 가진 민족이다.
유도 레슬링 권투 무에타이 등 등 세계 어느 나라의 무술 같은 격기 운동을 보라.
단판 승부이다. 무술 같은 운동에선 한번 지면 끝장이기 때문인데 삼세판이니 오판삼승이니 하는
것은 대한민국 씨름 밖에 없다. 패배를 인정치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방원은 아버지인 태조 이 성계를 따라 젊은 시절 부터 전쟁터를 누볏을 뿐 아니라 정식으로
과거에 급제를 한 수재이고 단양 도담 삼봉의 이름을 자신의 아호로 사용하는 정 도전은 출신
신분이 낮아 태조 이 성계의 역성 혁명에 가담하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고 노련한 정치가였던
정 몽주는 함경도땅 무식한 군바리 출신인 이 성계가 권력을 잡기 보단 구냥 신던 신발이 편하다고
고려 정권이 유지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다.
두 사람은 정치싸움에서 패배를 한것 뿐이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정 도전 대감 뿐 아니라 자신의 처남 심지어는 자신의 동생들 꺼증 모조리
도륙을 했던 인간 백정에 가까운 태종 이 방원의 아들 세종대왕은 든든한 왕권으로 이조 오백년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문화의 꽃을 피운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나 이조 말엽
강화도에 있던 일자무식 떡꺼머리 총각 강화도령을 철종대왕으로 모셨던 이씨 조선은 마침내
일본 쬭바리들에게 나라를 송두리채 넘기는 치욕의 역사를 쓰게 된다.
정 몽주가 득세를 하여 몰락하는 고려정권을 유지하였음이 과연 옳았을까? 신하의 권력을
강화하는 신권주의를 부르짖었던 삼봉 대감이 방원을 누르고 권력의 실세로 등장하였음이 과연
우리 역사에서 옳은 길이였을까?
아이러니칼한 역사? 참으로 모를 일이다.
어쩜 별 다른 일이 없으면 7월 22일 문경 대야산에서 얼굴을 뵐 수도 있을터인데 더운 여름날
건강에 유념들 하시고 우리 다음에 만날 적에도 어제처럼 기쁜 얼굴로 만나요.
탄천변에서 피래미나 잡아 묵고 있는 중대백로 돌삐 인사 드립니다.
첨언 ; 계곡길이 몹시도 길고 험한 산행길을 하염없이 내려 오노라니 쏘가리 조 대장님께서
황급히 손짓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종종 걸음으로 뛰어 가니 흐미나.
1톤 트럭 뒷좌석에 우리 느림보 전사님들이 가득 타고 있다. 뒷풀이 장소에서 룰루 랄라 하며
하차를 하고 선 감사의 마음에서 인사를 건넬려고 운전석쪽으로 고개 디밀어 보니 어마나.
우리 느림보 리무진을 운영하시는 전 사장님께서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곱게 매고 선 앉아
계신다. 아마도 무전으로 오늘의 산행이 힘들다는 소식을 들었던 가 보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1톤 트럭을 잠시 빌려서 올라 오신 것이다. 원래 예로부터
달구지 곤죠라고 하여 핸들을 잡는 운전사 아저씨들은 죄송하지만 성질머리 좋은 분이 거의 없는데
우리 느림보 리무진 전 사장님은 어느 별나라에서 오신 천사이신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글구
황기를 비롯한 여러 약재를 그득 넣고 포옥 딿인 오늘의 뒷풀이 영계백숙은 다가 오는 복날을 미리
당겨서 하는 음식인데 너무도 감사하고 고맙게도 우리 느림보의 철암님께서 흔쾌히 쏘셨다고
하신다. 공덕을 쌓는 방법 중에서 가장 으뜸은
진리를 모든 이들에게 널리 알리는 법보시이고 버금은 배 고푼 이들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저는 절멋던 시절 나를 흠모하고 따르면서 손을 잡아 주지 않으면 한강다리에서 뛰어
내리겠다고 겁을 주는 분들을 위해서 육보시를 하기는 엄청 마니 햇섯졈. 쪕 쪕
철암님과 그 가족분에게 복락과 행운이 가득하시길 두손 부여 잡고 빌어 봅니다.
그라고 참으로 묘하게도 제가 며칠 전 부터 백숙이 먹고 싶었지 멉니껴? 사실
요즘은 전통 백숙을 파는 가게가 별로 없습니다. 남한산성에 가면 있긴 한데 거긴 꺼증은 너무 멀고
해서 예팬네 한티 백숙 얘기를 꺼냈더니 더버 죽겠는데 깨스 레인지 앞에서 백숙을 끓이 고라 고라
하면서 개콘 편하게 있어 코너의 김 준현이 마누라년 처럼 길길이 날뛰길래 구냥 주린 창자를
부여 안고 참았었는데 느림보 덕분에 소원을 풀게 되었는데 닭백숙을 그냥 먹는게 아니더만요.
우리 느림보 산악회에서 포토제닉, 날씬한 두 다리가 바비 인형, 피부는 아이보리, 얼굴은 오드리
헵번, 지중해의 붉은 장미를 연상 시키는 화려한 자태, 마음씨는 십일면 관세음보살, 머 더 업나?
이룬 느림보 여전사 몇 분께서 섬섬옥수로 닭뼈를 손수 발라서 턱 끝에 대령해 주신다.
달구똥 가튼 감읍의 눈물을 뚜욱 뚝 떨구면서 소주 한잔에 포식했던 그 닭죽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 입니더. 철퍼덕 엎드려서 큰절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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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께서 오랫만에 산행 나오시니 이렇게 구수한 산행기가 올라옵니다.
산행 나오지못할때에도 한주에 한번은 산행기방에 불을 켜주십사 부탁드립니다.
너무 무리한 청인가요?
한달 뒤에 만나도..일년뒤에 만나도 ..언제나 어제 본것처럼 정겨움이 넘치는 돌삐님..
느림보식구들 모두 돌삐님을 사랑하십니다.
가끔씩 깜짝 놀랄 육두문자를 써서 당혹스럽게 하시긴 하지만.ㅋ
독용산에서 禿이란 대머리독이더군요.
산이름이 독특하다 싶었는데 그산의 긴 성벽은 인상 깊었습니다.
좌우로 험준한 벼랑길이 이어져 가는 성벽따라 걷는 산길..
안개 자욱한 산길이 분위기 최고였습니다.
정상에서 가야산 톱날 능선을 봤어야하는데 ..좀 아쉬웠습니다.
은광폭포 십리길을 계곡을 이리저리 건너며 하산길..
물소리 폭포소리 들으며 계곡의 유혹에 몸을 던지기도 하면서..ㅎ
재미있었던 독용산이었습니다.
지역주민끼리 탄천에서 뵙자구요.
산행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