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오로와 선교’를 주제로 10월 25일 수원가톨릭대학교 부설 전례사목연구소 주최의 제5회 학술연구발표회가 개최되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이번 발표회에서는 ▲바오로의 가치 패러다임 전환과 율법(이용화 신부)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본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곽진상 신부) ▲바오로 신학사상에 비춰본 공동체 상생의 공통분모(박현창 신부) 등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들의 발표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방상만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송용민 신부, 유희석 신부가 각각의 논평을 발표했다.
한편, 이날 부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는 축사를 통해 “바오로 해를 지내고 있는 이때에 바오로 선교정신과 신학사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학술발표회를 갖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며, “이를 통해 살펴보는 바오로의 깊은 신학적 열정과 지식은 신앙인들이 정체성을 확보하는 토대와 바탕이 되고 그의 선교적 신앙심을 본받고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한다”고 전했다.
이날 학술연구발표내용 요약은 아래와 같다.
■ 주제 1 "바오로의 가치 패러다임 전환과 율법"-구원 이해 (이용화 신부 발표)
바리사이파 출신의 유다인으로 율법을 누구보다도 철저하게 신봉한 바오로는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계기로 가치 패러다임을 경험한다. 이는 율법중심의 사고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이 사건은 바오로를 박해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인들을 옹호하는 회심체험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만민의 구원을 선포하는 사도직으로 부르심을 받는 소명체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치 패러다임의 전환은 바오로로 하여금 옛 율법-구원관에서 벗어나게 한 중요한 계기가 작용하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비록 바오로가 특별한 개인 체험으로 유다인에게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지만 그의 의식체계가 완전히 유다인의 전통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필립 3,5-6)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율법의 실천에 의지하는 자들은 다 저주아래에 있다’(갈라 3,10)고 극언하지만 이를 문자에 얽매어 해석하기 보다는 통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갈라티아서의 집필 동기도 모세 율법의 준수를 강요하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경고하기 위한 것으로 보며 이는 공동체의 분열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전략한 '율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것이지, 율법의 본래 정신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로마서에서도 바오로는 율법의 역기능에도 불구하고 순기능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는데, 법에 대한 그의 이중적 태도에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포용함으로써 공동체 일치를 배려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바오로가 율법을 버리고 그리스도만을 취하는 양자택일의 논리에서 벗어나, 양자를 통합하고 전통의 유산과 새로운 신앙을 조화시키려 노력한 분임을 알 수 있다. 다마스쿠스 체험 이후 바오로의 구원관은 중심의 축을 ‘율법’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바꾼다. 그의 독특한 구원관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죄'에 빠져있는 인간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숙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구원관은 편협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궁극적으로는 타종교의 구원을 이해하고 타종교간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바오로의 '화해(구원) 사상'에 역점을 둔다면, 구원의 주체는 항상 하느님이시고, 인간은 그 대상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나 바오로는 ‘화해’(구원)를 전적으로 하느님의 몫으로 돌리지만, 궁극적인 화해(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신자(특히 사목자)들에게 그리스도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과 '화해의 봉사자'가 되도록 독려한다.
■ 주제2 "조직신학적 입장에서 본 사도 바오로의 복음 선포"-현대의 선교를 위한 신학적 기초
(곽진상 신부 발표)
복음 선교에 앞서 ‘내가 선포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내 자신에게 어떻게 복음으로 다가오는지 대한 숙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본질적인 문제의 접근을 회피한 채 어떻게 효과적인 선교를 할 것인가의 문제에만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대한 해답을 탁월한 복음 선포자요, 선교의 모범인 사도 바오로를 통하여 구하고자 한다.
바오로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이며, 이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된 자'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또 유대와 그리스, 로마라는 다양한 문화적․종교적 배경 안에서 복음을 선포했다면, 그의 복음 선포 신학은 오늘날 다원주의적 종교 문화 안에 살고 있는 우리의 신학적 질문들에 중요한 답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바오로가 선포한 복음의 핵심은 예수가 주님이라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이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예수 안에서 벗겨진 신비(에페 3,3-9, 골로 1,26-29 참조)가 “선교와 교회 생활의 중심이고 모든 복음 선포의 기초”(선교사명, 44항)라고 선언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악과 죄와 죽음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새롭고 신성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바로 이것이 인간과 역사를 변혁시키는 ‘기쁜소식’이요,” 이 기쁜소식은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해 교회에 맡겨졌다. 사도 바오로는 그 증인이다. 부활하신 예수를 체험한 바오로는 이 복음을 만방에 전하였다. 그의 열정은 근본적으로 복음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앙리 드 뤼박은 이미 1945년에 선교에 관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교회는 구원의 위대한 수단이며 동시에 창조의 궁극적 목적이다. 교회는 가시적인 몸이며 동시에 신비롭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에 이르는 길이요, 동시에 이 길의 종착점인 생명 자체이시다. 이와 같이 교회를 생각할 때, 교회는 구원의 길이요 동시에 종점이다. 교회는 구원의 실재인 영적인 일치이다.” 교회는 복음의 힘으로 태어나고 복음을 새롭게 전파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 나간다. 왜 선교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사도 바오로처럼 말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 주제3 "바오로 신학사상에 비춰본 공동체 상생의 공통분모" (박현창 신부 발표)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을 보내며 교회가 추구하는 근본방향은 바오로의 교회정신과 영성을 우리 삶 속에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에 있다.
그러나 공동체 사목과 관련된 바오로의 신학사상을 액면 그대로 우리 시대에 적용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어 현대 통계학이 풀어낸 분석 자료(최근 10여 년간 교세 통계지표의 여러 항목 중 공동체 사목의 현주소와 변화된 시대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세대, 신앙, 영성에 관한 통계 중심)의 도움을 받아 한국 천주교회의 시대 징표에 초점을 맞춰 교회의 성장에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지 실천신학의 귀납적 접근방법으로 논고를 전개하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통계수치를 진단해보면 연평균증감은 60세 이상 연령대에서 연령이 높아질수록 사회참여의 축소와 노동력 감소, 절대적 삶의 가치 추구와 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고려해볼 때 소폭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예상을 뒤엎는 20대의 신규 영세자의 증가는 군종교구의 신규 입교자 충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군종사목의 세심한 사목적인 배려가 시급함을 엿볼 수 있다.
10년간의 성별분포를 살펴보면 여성 신규 입교자 비율의 감소가 드러나는데, 사회학적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젊은 여성층의 경제활동과 사회 참여의 증가로 신앙을 돌아볼 여유와 시간마저 빼앗기고, 20대의 직장 여성이 신앙에 입문했다하더라도 결혼이나 출산 등을 계기로 배우자와 함께 자연스런 '신앙의 냉담시기'로 접어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또한 이는 저출산과 신앙의 대물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냉담자, 행불자, 사망자와 같은 '종교적 이탈'은 교세의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 도시본당에서 농촌본당으로 대형본당에서 중․소형본당으로 내려갈수록 봉사 재원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맞벌이가정이 증가하고 주 5일 근무제의 정착으로 여가생활 및 사회활동 등 변화된 신앙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신자로서 자부심, 공동체 의식과 결속력의 저하는 민간신앙, 신흥종교에도 쉽게 노출되어 있다. 2006년 말 현재 미사참례 외 기도생활을 중심으로 살펴본 바 정성과 시간을 필요로 하고 인내와 함께 깊은 묵상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신앙행위일수록 현대 신자들에게 실천의 의지가 전반적으로 빈약해 보임을 알 수 있다. 교회의 세속화 현상은 21세기 변화된 종교 환경과 맞물려 교회 영성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교회 성직자들의 세속 사회적 관료화 경향확산, 교회의 외적 성장에 대해 지나친 관심을 두는 풍조가 만연할수록 영성생활과 은사 중심의 성사생활의 토대가 조금씩 허물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발표자가 교회의 미래상으로 주목하고 있는 현 사회 20~30대 초반의 소위 ‘88만원 세대’는 탈脫권위주의, 수평적 토론문화, 사교적인 정보교류 등 이들이 갖고 있는 사회의 문화코드와 종교에서 요구하는 인내, 자비, 관용, 질서, 예법과 같은 신앙의 코드가 서로 공통분모를 찾아내기가 용이하지 않다. 더구나 이미 교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88만원 세대 가운데는 입교 후 세속화 현상에 떠밀려 내면의 잦은 갈등으로 교회 울타리를 손쉽게 벗어나고 있다.
발표자는 이 세대에게 희망적인 신앙의 키워드로서 바오로의 ‘공동체’(오이코도메) 사상을 제시한다. 바오로 공동체(오이코도메)에 흐르고 있는 사상은 친교와 사랑은 무질서와 분열을 질서정연하게 바로 잡아주는 상생의 원리로 작용한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신앙의 연결고리로 서로 깊게 패인 상처를 치유하고 선사 받은 영적 은사를 공동선을 위해 극대화시켜주며 나약한 처지와 탁월한 재능, 소유와 빈곤, 너와 나를 하나로 묶어 상생할 수 있는 시대의 운명 공동체로 성장시켜 준다.
'움직이는 교회'인 우리 자신이 사랑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마르지 않는 원천을 찾고 그 사랑의 원리에 자신과 이웃의 삶을 투영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공동체 상생, 서로의 소박한 친교와 사랑의 나눔에서부터 미래를 위한 작은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상숙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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