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롯데 kia전을 보다가 어디서 얼굴이 낯익은 사람이 통역을 데리고 마운드 위의 윤석민에게
무언가 말을 하러 올라 왔었는데아...저사람은 하면서 놀라움과 반가움이 교차 됬습니다
바로 2008시즌 호크스에서 투수코치를 하던 스기모토 코치가 전통의 붉은 점퍼를 입고 있더군요 .
.작년 v10을 달성하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간베 투수코치 ( fsh 타구단 소식지 에
이야기 있습니다 )가 천거했다는 사람이 스기모토 투수코치라는데 ㅡ,ㅡ .....
반가움과 함께 의아감이 교체 했습니다 .... 전통의 호크스 투수진을 살리지도 못하고 위대한
투수코치 오바나 (현 요코하마 감독) 의 뒤를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강의 호크스 투수진을
낭떠러지로 이끌어간 --2008년 시즌 꼴지의 수모를 이끈 장본인중 한명 ---
스기모토 코치가 과연 kia에 도움이 될수 있을지 ??
스기모토 코치에 대한 기억이라면 ...종철님 말씀처럼 호크스 투수진을 널뛰기 로테이션으로
만든 장본인 , 사이토의 건강상태를 제대로 파악못해 ... 어깨를 재생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거 ㅡ.ㅡ ..
아라가키의 맨탈컨트럴을 제대로 시키지못해 10승대 투수를 3승대 투수로 전락시킨거
...좋은 것은 하나도 없네요 ....
호크스 응원을 하다보니까 호크스를 거쳐간 많은 옛식구들도 한국에서 자주 봅니다
나이트(삼성)라던지 구톰슨 (전 kia)니코스키 (전 두산 ) 등등 ... 스기모토 코치도 그런
인연중에 다시 우리나라 리그에서 재회하긴 했는데 그리썩 .
.반가운 느낌이 나지 않는것은 왜일까요...?
(참고)
KIA 타이거즈가 일본인 투수코치 스기모토 타다시를 영입하는 것을 끝으로 2010년 코칭스탭 인선을 마무리했다. 스기모토는 올해 KIA의 1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확정됐는데 칸베 토시오 전 투수코치가 떠나면서 추천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스기모토는 1980년 드래프트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에 3순위로 입단한 이후 주니치 드래곤스를 거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에서 현역생활을 마감했다.(1992년을 끝으로 은퇴)
현역시절 스기모토는 입단 첫해 7승(8패)을 거뒀는데 7승을 모두 완투승(1완봉)으로 작성한 진기록도 가지고 있다. 12년의 현역생활중 그의 전성기는 주니치시절로 2년연속(1986-12승,1987-13승) 두자리수 승리를 올렸고 이후 뚜렷한 성적은 거두지 못한걸로 기록되어 있다. 통산 성적은 81승 90패, 평균자책점 3.87이다. ※ 1986년 요미우리전에서 90km의 슬로 커브를 던지다 끝내기 홈런을 허용해 벤치에서 글러브를 팽겨친 일로 유명한데 왜 그 상황에서 저런 공을 던졌는지에 대한 조롱이 한동안 회자됐다고 기록되어 있음.
스기모토의 현역시절은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KIA를 응원하는 팬들에겐 과연 그가 은퇴후 어떤 투수코치였느냐, 그리고 디펜딩 챔피언팀의 1군 투수코치를 맡을 능력이 있느냐가 관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 스기모토가 소프트뱅크의 좌완 쌍두차마, 와다 츠요시와 스기우치 토시야를 키웠다?
항간에서는 스기모토가 소프트뱅크(당시 다이에, 이하 소프트뱅크로 언급함) 2군 코치로 있었던 시절(1995-1997)을 언급하며 와다와 스기우치를 키웠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건 틀린 이야기다. 스기모토가 은퇴후 첫 지도자 생활을 했던 1995년에 와다와 스기우치는 소프트뱅크에 입단하지도 않았던 시기다. 덧붙여 현역시절 좌완 투수로 활약했던 스기모토이기에 막연히 좌완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도 잘못된 정보다.
물론 이 당시에는 2군코치 생활을 했기에 그의 정확한 능력은 재단할순 없다.(지도자 초보라는 것도 감안)
스기우치는 입단 첫해인 2001년을 모두 2군에서 보내긴 했지만 이듬해부터 1군 멤버로 지금까지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고, 와다는 입단 첫해(2003년)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그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수상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두명의 좌완투수와 시기모토의 2군코치 경력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스기모토의 소프트뱅크 투수코치 제2기 시절, 그러니까 스기모토가 소프트뱅크를 떠나 세이부에서(1998-2001) 1군투수코치를 거쳐 다시 소프트뱅크로 건너왔던 때는 3년이 지난 2004년이다.(2001년 세이부는 리그 3위를 기록했는데 당시 감독이었던 히가시오 오사무는 이해를 끝으로 스기모토와 같이 해임됨)
물론 당시 소프트뱅크로 왔을때는 2군 투수코치의 보직이었다. 2004년에 스기우치는 전년도 10승을 거뒀지만 부상으로 재활을 했던 시즌이었기에 스기모토 코치와는 상관이 없고, 와다는 이해에 1군에서만 뛰었기에(10승 6패) 역시 스기모토 코치와는 관련이 없다.
▲ 스기모토, 소프트뱅크 1군 코치생활(2006-2008)과 요코하마 시절(2009)
스기모토가 일본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자료를 수집해 봤는데 거의 찾을수 없었다.(선수도 아닌 코치에 대한 평가가 있을리 없다)
하지만 결코 좋은 평가를 들었던 코치는 아닌듯 싶다. 다만 일본야구 평론가인 토요다 야스미츠(니시테츠 라이온스 -현 세이부 라이온스- 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대타자 출신)가 스기모토 투수코치에 관한 악담을 여러번 했는데 "멍청한 계투" "이해할수 없는 투수교체" 라는 등 비아냥이 상당히 많았다. 쓴소리의 대명사인 토요다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수도 있겠지만 2007년쯤부터 스기모토 코치에 대한 비평은 상당수 다른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흔히 있었던걸로 알려져 있다.
(2007년 5월 31일 요미우리와의 교류전에서 6회말 소프트뱅크는 3-0으로 리드하고 있다가 어이없는 계투진 투입으로 요미우리 야노 켄지로부터 대타 만루홈런을 얻어맞고 패했다."야노 켄지"를 검색하면 당시의 상황을 볼수 있다)
스기모토가 소프트뱅크의 1군 투수코치로 마지막을 보냈던 해가 2008년이다.
이해 소프트뱅크는 1996년 이후 무려 12년만에 리그 꼴찌의 성적을 남기며 추락했는데 부상선수들의 속출로 인해 마운드가 붕괴되며 팀 평균자책점이 전년도(3.18)보다 1점 가까이(4.05) 상승한게 컸다.
스기모토가 1군 투수코치로 있을때 기존의 사이토 카즈미,스기우치 토시야,와다 츠요시,아라카키 나기사로 이어지는 막강 투수들은 단 한시즌도 함께 해본적이 없었다는 점도 눈여볼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없는 사이 대체할만한 젊은 선수들이 그 공백을 메우지 못했는데 그만큼 이미 실력이 검증된 투수들을 제외하곤 스기모토 코치 손으로 키운 선수가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스기모토가 떠나고 작년시즌 소프트뱅크는 스기우치와 외국인 투수 데니스 홀튼, 단 2명만 규정이닝을 채웠을뿐, 마운드의 세대교체는 언감생심이었다. 비록 팀이 A클래스에 들긴 했지만 상당수의 소프트뱅크 팬들은 팀 마운드 붕괴의 원인으로 스기모토 코치가 물려준 유산(나쁜 의미)으로 해석하고 있다.
스기모토 코치는 작년에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의 1군 투수코치를 맡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전년도에 이은 2년연속 자신이 몸담고 있던 팀이 꼴찌를 기록하는 수모 아닌 수모를 당했던것.
물론 팀 꼴찌의 모든 책임을 스기모토에게 전가할수는 없겠지만 작년 요코하마 팀 평균자책점은 센트럴리그 6개팀 가운데 유일하게 4점(4.36)대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들듯 싶다. 원래 요코하마팀은 전력 자체가 약체였고 작년 팀 타율 역시 꼴찌(.239)였다.
▲ 2010년 KIA 마운드 스기모토가 미칠 영향은?
개인적으로 이부분을 언급하는게 상당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선수들이 가진 기본적인 재능이 새로운 코치로 인해 한순간에 바뀔것이라고는 예상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다만 KIA 라는 팀은 전통적으로 좌완 선발투수 부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제2의 양현종을 키워낼 코치가 분명 필요한 시점이긴 하다. 스기모토 코치에 대한 평가는 아직 한국에서 보여준것이 전혀 없으므로 시즌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우려가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일본에서 보여줬던 모습이 그냥 무난한 수준보다는 더 아래쪽에 치우져 있다는 점이다. 현 시점에서 스기모토에 대한 평가는 이게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