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뜨거운 여름날 개에 자주 가셨는데 난 어딘지 몰랐다.
돌고개 넘어 시아버지 묘소 앞을 지났다고 했는데 금곡 앞 갯벌인가보다.
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송강 앞바다인 줄 알았다.
최근 '송강굴'로 들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반 누군가의 집엣 잔 기억을 떠올려도 알 수가 없었다.
송강엔 동기들이 많았는데 여자애들 기억은 없다.
상남이나 비슷했는데 왜 학교에 다니지 못했을까, 여자애들이 없었을까?
그때 누구집에서 잤을까?
학균이나 삼균이집은 아니고 선종이나 광희집이었을까?
재군이나 화석이는 나이가 더 있었던가?
(재군이는 하남이었나?)
금곡 앞 작은 방조제를 막느라 산을 허물었을까?
채석장 같은 절개지는 이제 흔적이 가물하다.
간척지 가운데 길은 반듯한데, 야산 가 길은 여전히 구불어졌다.
그 앞에 정자를 세웠는데 누가 쉬어가는지는 모르겠다.
야산을 깎아 태양광 패널단지를 만들 모양이다.
방조제 동쪽 끝에 차를 세우고 둑의 시멘트 안간위를 걷는다.
아슬하다. 이런 놀이도 곧 끝날 것이다.
물때도 모르는데 마침 물이 빠져 뻘이 검게 드러나 있다.
구부러진 물줄기를 보며 작게 보이는 붉은 칠면초를 찍는데 잘 안된다.
둑 끝엔 몇 대의 작업차가 서 있다.
아직 마칠 때는 아닌데 더워서인지 쉬고 있다.
끝에서 거친 황토 산길을 걷다가 끝에서 갯벌로 내려가 본다.
발이 빠지기도 하는데 갈대를 눕혀 밟고 송강쪽으로 걸어가 본다.
더워서인지 게도 안 보이고 붉은 발 하나만 가진 농게가 달아나다 구멍 속으로 사라진다.
해안 초소가 무너져 풀나무 사이에 덮혀있다.
장선포에서 시작해 고흥반도의 바닷가를 한바퀴 돌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난 차로 다니거나 둑길이나 농로로 다닌다. 난 사람이니까.
송강마을이 가까운 듯한데 돌아온다.
바지에 갯벌흙이 튀어오르고 신발도 물기가 밴다.
둑길을 다기 걸어 차를 지나 동쪽 방조제로 가 본다.
임산물 관리하는 곳이라고 출입통제 푯말이 서 있는 작은 산이다.
짧은 산길 끝에 집이 나티니고 사람이 없다,
바닷가의 운치를 즐기며 살 계획이 거창한 사람이 살았던 곳인 것 같다.
풀밭을 지나 건너 밭으로 나가니 할머니가 엉덩이를 깔고 밭풀을 매고 있다.
조용히 지나 마을로 들어서 지(쥐)섬을 보고 논 사이로 내려간다.
논 끝에 둑으로 오르는 길이 없어 또 논둑을 걷는다. 약을 쳤는지 풀이 없고 둑은 노란색이다.
참새들이 떼지어 그들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그러다가 벼를 보니 그놈들이 먹어 뼈만 남은 이삭이 보인다.
난 농사꾼이 아니다?
걸으면서 갯벌을 잘 찍고 싶은데 욕심이다.
고흥 갯벌이 유네스코 유산이 되었다는데 일동에게 물으니 여자만 쪽이고 득량만은 포함되지 않았단다.
이름붙이는 건 인간의 일이다. 자연이 입이 있다면 무어라고 할까?
지섬 앞까지 걸었다가 돌아오며 작은 가방에 넣어둔 캔맥주를 딴다.
아직 찬기운이 남아 잇다.
걸으며 마신다. 찍어보기도 한다. 나르시즘이 중병이다.
다시 돌고개를 넘어오며 동네를 찍어본다.
마륜지에 쓸 동네 사진으로는 안되겠다. 드론 촬영을 배워야 하나, 누구한테 부탁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