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행4:1-12)-2024.4.21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승천을 확인한 제자들은 성령강림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제자들에게 큰 권능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받기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권능을 가지고 증인이 된 것입니다(행1:8). 사도들에게 임한 권능은 사도행전3장에 나타난 성전미문의 앉은뱅이 치유사건입니다. 그동안 제자들은 주님이 나타내시는 권능을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들이 직접 주님께서 남겨두신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첫 번째 역사가 앉은뱅이 치유사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치유사건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장차 사도들이 사도행전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던 것이지요. 앉은뱅이 치유사건은 예루살렘에 큰 이슈가 되었던 것입니다.
(1) 사단은 예수 부활의 도를 가장 싫어합니다
복음서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사도들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부활의 도를 전합니다. 베드로는 요한은 솔로몬 행각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자 제사장들과 성전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예수 부활의 도를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두개파에 속한 자들로서 천사와 부활과 내세를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 손으로 잡아 죽인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의 도를 전하지 못하도록 가두어버린 후에 다음날 산헤드린 공회를 열어 심문하면서 내린 결정은 예수 이름을 전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사도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 안에는 이미 성령을 통해 복음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복음은 가둘 수 없습니다.
(나눔) 사단이 예수님의 부활의 도를 전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를 말씀해 보십시오
(2) 아무도 사도들의 복음의 열정을 잠재울 수 없습니다
관원들이 제 아무리 사도들을 억압할지라도 사도들 안에 있는 복음을 억압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은 역설적이게도 가두면 가둘수록 강해집니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핍박사를 보거나 오늘날 지구촌에 기독교를 핍박하는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어떤 근거도 없이 사도들을 가두고 심문했습니다. 그들이 심문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정말 유치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쳐주었냐는 것입니다. 병을 고친 것이 중요하거늘 그들은 엉뚱한 질문을 한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그들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복음을 전할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지요. 그래서 당당하게 예수 이름과 성령의 권능으로 행했다고 선포합니다.
(나눔) 성령 받은 이후 사도들에게 임한 복음의 권능에 대해 말해보시고 토론해 보십시오
(3) 사도들의 권능은 전적으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입니다
아무도 성령 받지 않으면 주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일이 쉽고 편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고전2:4). 만일 자기 자신이 주의 일을 감당하려고 하면 사람을 의식하게 되고 일의 성과에 따라 자기감정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자기 공력과 의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성령받지 않은 상태로 원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열매가 아닙니다(학1:6절을 보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5장18절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본문의 사도들도 성령이 충만하여 관원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칠수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관원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전한 것입니다(10-12절).
(나눔) 사도들에게 임한 성령의 나타남과 권능에 대해 성경을 근거로 설명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