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36>안시성(THE GREAT BATTLE), 2018
 
양만춘과 고구려인 5000명
당나라 수만 대군 물리치다
 
감독: 김광식/출연: 조인성, 남주혁, 박성웅
645년 고구려가 당나라와 싸운 전쟁 그려 - 잊혀진 역사 속 승전사 스크린으로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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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섬 없는 기개, 기적을 이루다
안시성 전투는 645년 고구려가 중국 당나라와 싸운 전쟁이다. 수나라에 이어 중국 대륙을 차지한 당 태종은 신라·백제의 요청과 자신의 ‘형제의 난’ 수습책으로 고구려를 공격할 명분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연개소문이 친(親)중국 성향의 영류왕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 것을 빌미로 공격해 왔다.
당 태종은 고구려의 개모성·비사성·요동성·백암성 등을 함락시켰다. 하지만 안시성은 무너지지 않았다.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주민들이 하나가 돼, 당나라의 공격을 잘 막아냈기 때문이었다. 뜻밖의 고구려군의 저항에 당황한 당 태종은 안시성의 높이와 맞먹는 흙산을 쌓았다. 그러나 흙산의 한쪽이 무너지면서 되레 양만춘에게 빼앗기고 만다. 당 태종은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과 5000여 주민들이 힘을 모아 3개월 만에 수십만의 당나라 군대를 기적적으로 물리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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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 저항에 당황한 당 태종, 성 높이 맞먹는 흙산 쌓아
영화 ‘안시성’은 고구려 장수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를 그리고 있다. 잊혀진 역사 속의 승전사, 안시성 전투를 소환해 드물게 고구려의 기개를 보여준 블록버스터 전쟁영화다. 당나라 군대에 맞서 안시성을 지키려는 고구려 안시성 성주 양만춘과 주민들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영화는 주필산 전투에서 당나라에 패한 후, 양만춘(조인성)을 죽이라는 연개소문의 비밀 지령을 받고 안시성에 잠입한 태학도 수장 사물(남주혁)이 양만춘을 만나면서 전개된다. 이후 사물은 양만춘을 암살할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으나 당나라 군대에 대항해 싸우는 양만춘과 그를 따르는 부하와 주민들을 보고 생각을 바꿔 이들과 합세해 당군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다.
상영 시간이 2시간15분이나 되는 영화는 안시성을 중심으로 공격과 방어를 이어가는 전투 장면에 대부분을 할애할 정도로 전투 자체에 집중한다. 압도적인 물량을 쏟아부은 전쟁 스펙터클이 시각적 쾌감을 주며 전쟁 영화의 판타지를 선사한다. 실제 전투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지 않은 만큼 허구의 영역이 넓어져 전쟁영화에 항용 나오는 장치들을 총동원할 수 있었다. 선봉에 서서 전투를 이끄는 전쟁영웅 양만춘을 포함해 공성탑(攻城塔), 운제(성을 공격할 때 사용하던 높은 사닥다리) 등의 무기들이 등장하는 공성전(攻城戰), 여인부대의 활약, 감초 역의 조연급 장수들, 애절한 멜로 등 고대 전쟁영화의 특징들을 두루 동원했다. 주필산 전투와 두 번의 대규모 공성전, 토산 전투 등 화려한 전쟁 장면들을 실감 나게 보여준다. 전투 장면에 활용된 상당 부분의 CG도 전쟁영화의 스펙터클에 일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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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타임 대부분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에 할애
영화는 성주 양만춘이 5000여 주민과 하나가 돼, 당나라 군대를 물리치는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재현해 낸다. 양만춘이 주민 위에 군림하는 성주가 아니라 주민과 고락을 같이하는 지도자였음을 여러 장면을 통해 보여준다. 검소한 주민 복장으로 진흙탕에 빠진 나귀의 수레바퀴를 빼주는 첫 등장 장면이나 아기를 낳은 주민 집에 들러 아기 이름을 ‘만춘’으로 지어주며 격의 없이 대화하는 장면 등이 그것들이다. 양만춘은 고구려 장수로서의 기백도 남달랐다. 영화 중반, 당나라와의 전투를 앞두고 사물이 “어차피 질 싸움인데 왜 하시는 겁니까?”라고 묻자 양만춘은 “넌 이기는 싸움만 하느냐?”라며 수성(守城)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삼국 통일한 신라, 고구려의 승리 기록에 인색
실제 양만춘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거의 없다.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가공인물일 수도 있다. 대부분 ‘안시성주(安市城主)’로만 표현돼 있다. 조선 후기에 와서야 일부 자료에 ‘양만춘’이라고 전하고 있다. 왜 그럴까?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패배한 당나라도, 후에 삼국을 통일한 신라도 고구려의 승리 기록에 인색했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 ‘안시성’의 상영은 우리의 동북 아시아 지역에서 고구려의 기개를 잘 드러낸 승전사를 소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더욱이 중국이 지금 자국의 국경 안에서 이뤄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므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생각할 때 영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은 고구려를 고대중국의 지방민족정권이라고 주장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하려 하고 있다.
권력 장악한 연개소문도 건드릴 수 없었던 장수 양만춘
당시 양만춘과 연개소문의 관계는 영화의 표현대로 실제로 불편했다.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대막리지가 돼 권력을 장악했을 때도 양만춘은 굴복하지 않았다. 연개소문은 하는 수 없이 안시성의 통치권을 그대로 인정했다. 연개소문도 건드릴 수 없을 만큼 확고한 위치를 차지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당나라가 침입했을 때 두 장수는 불편한 관계를 뒤로하고 연합해 고구려를 지켰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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