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항공전사에 관심이 많아서 자료를 읽다
독일 공군을 듀튼가사단이라는 중세 기사단에 비유하더군요
듀튼기사단???
이런 의문에서 자료를 찾다 중세 서부유럽 3대 종교가사단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얼마전에 다빈치 코드에서도 나온 템플기사단도 이중에 하나더군요
템플기사단이이야 워낙 유명해서... ^^
근데 듀튼과 요한기사단은 좀 생소하더군요
이래저래 흥미로운 이야기인듯해서 자료를 짜집기해서 간략하게 올렸습니다 ^^
+튜튼기사단 [Teutonic Order]
튜튼기사단은 중세 유럽과 이슬람의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던 시대의 3대 기사단 (튜튼, 템플, 요한)
중의 하나로서 기사들이 게르만 민족들로 구성되었다하여 어떤이들은 '독일기사단 (Deutscher 0rden)'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튜턴기사단은 1190년 제 3차 십자군들이 아콘 (돌레마이)을 포위하였을 때 뤼벡와
브레멘 시민들이 부상병 구호를 위해 세운 병원에서 기원하며, 유대지방의 성지방위를 담당하는 종교 기사단으로
변모하여 1198년에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
이들은 흑십자 (黑十字) 휘장을 붙인 백색 망토를 입었으며, 의료 외에 이교도와 싸우는 임무까지 맡아 독일
황제나 제후로부터 광대한 영토를 기증 받았으며 후에는 검우기사단 (劍友騎士團)과 통합됨으로써 기반이 확고해졌다.
1226년에는 폴란드 마조비아공의 부름을 받아 발트해의 슬라브족을 교화시키는데 성공하였고, 동프로이센 지방의 개척과
포교의 임무도 맡게 되었다.
이후 활동 중심지는 프로이센으로 옮겨져 1309년 마리엔부르크에 본부를 설치하여, 각지 도시에 성을 축조하면서
무력으로 개종시켜 독일인의 세력을 확장시켰다. 튜튼 기사단은 14세기에 전 유럽을 호령하며 절정기를 누리다가
15세기 폴란드에게 패배하면서 점차 그 세력이 약화되었고 이후에는 명맥만 유지하다가 1809년까지 최후까지 잔존한
가톨릭계 기사단이 교회재산 국유화로 영지가 몰수되어 소멸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은 독일인들에게는 독일민족의 영광을 이룩한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으며 중세 독일문화의 독자적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요한 기사단 [Ordo Equitum Sancti Johannis]
몰타기사단또는 로도스기사단이라고도 한다.
템플기사단·독일기사단(튜튼기사단)과 함께 중세 서유럽의 3대 종교기사단이다.
제1차 십자군시대에 남(南)프랑스의 수도사 제라르(Gerard)에 의하여 병상자(病傷者)의 간호를 목적으로
예루살렘 부근에 설립되었으며, 1113년 교황에 의하여 수도회로서 공인되고 그뒤 템플기사단의 예에 따라
종교기사단으로 개조되었다.
(수도사(修道士)뿐만 아니라 세속의 기사도 포함되며, 십자군시대에는 이교도와 싸우는 군사조직이었으나
부상자 및 환자의 간호와 구조를 맡은 병원단(病院團)으로서의 성질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병원기사단이라고도 한다.
이슬람의 의료제도를 도입하여 서유럽 각지에 병원을 설립하고 나환자(癩患者)의 수용시설도 만들었다)
1099년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 병원장이자 수사인 제라르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사역을 집중시켰다. 그는 성지에 이르는 도상의 프로방스와 이탈리아 여러 도시에
숙박소를 지었다. 상처를 치료받은 십자군 기사들은 이 병원에 재산의 일부를 기부했고
성지에 남은 십자군 기사는 구호기사단의 단원이 되어 이 기사단을 부강하게 발전시켰
는데, 이들이 병든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돌보고 이슬람교도와 전쟁을 수행했다.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된 이후 십자군의 지배가 끝나게 되자, 구호기사단은 키프로스로
후퇴하여 순례자들과 병든 사람을 계속 돌보고 성지를 다시 정복하기를 희망하면서 성지
근처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1309년 로도스를 정복하여, 그곳에 병원을 세우고 동지중해의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독립국가가 되었다. 1522년 오스만 투르크족이 로도스를 정복했지만
1530년 황제 카를 5세가 구호기사단에게 몰타 섬의 소유권을 위임했다. 몰타에서 기사단의
세력은 절정에 달하여 오스만 투르크군의 맹렬한 공격을 잘 막았으며, 이곳에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진보된 방법으로 기사단을 운영했다.
(십자군 후 키프로스섬·로도스섬으로 후퇴하여 해적적 무역단이 되어 오스만투르크 해군과 싸웠다.
그뒤 크레타섬, 이어 몰타섬으로 본거지를 옮겼으며 근세에는 몰타섬의 한 전제주의 국가가 되었으나,
프랑스혁명 때 혁명정부에게 영토를 몰수당했다.
현재는 그 단장이 추기경의 위계(位階)를 허용받는 로마의 한 수도회이며, 독일·영국에도 각각 요한기사단이라는
분파가 있다.)
투르크족의 침략위협이 약화된 17~18세기에는 쇠퇴기를 겪다가 1798년 나폴레옹에게 몰타
섬을 점령당했다. 1834년 이 기사단의 본부는 로마에 세워졌으며, 오늘날도 여러 분야에서
인도주의적인 사업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현재는 그 단장이 추기경의 위계(位階)를 허용받는 로마의 한 수도회이며, 독일·영국에도 각각 요한기사단이라는
분파가 있다.)
+템플기사단 [Ordre des Templiers]
신전(神殿)기사단·기사수도회라고도 한다. 1118년 샹파뉴 기사인 위그 드 파양스가 순례보호를 목적으로 결성하고,
성 베르나르두스의 후원으로 1128년 수도회로서 교황의 공인을 받았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신전 터를 본거지로 삼아 시리아·팔레스타인 각지에 성을 쌓고 성지 방어의 주력으로 활약하였다.
기부로 받은 토지가 많았으며, 금융업으로 거액의 부를 축적하였다.
이후 1307년에 이르러 프랑스 왕 필리프 4세가 왕권 신장의 수단으로 이들을 이단으로 간주,
프랑스 각지에 있는 3,000여 수도원의 회원들을 모두 체포하고 재산까지 몰수한 뒤 6년간 이단 심문을 단행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5세의 항의와 별도 조사를 위한 빈 공의회가 12년간 계속된 끝에 이 기사단은 결국 해체되고,
재산도 요하네스기사수도회로 승계되었다. 최초의 기사수도회로서 십자군 전쟁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2차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의 JG 27 전투비행단 제 3연대 (gruppe)의 부대마크가 듀튼기사단의 망토에 그려진 흑십자
마크와 유하하더군요 ^^
첫댓글 좋은 정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
기사단에 얽힌 이야기들을 미스테리에 많이 접목 시켜서 기사단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었는데~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