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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
이선규
배기가스를 한 움큼 뱉어내고 버스가 떠났다. 매캐한 냄새가 파고들어왔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나 고개를 돌렸다. 앞마당만한 주차장과 폐쇄된 검문소 같은 매표소가 흑백 슬라이드처럼 시선에 감겨들어왔다. 느릿하게, 존재를 감추듯이, 드러나고 싶지 않은 곤충처럼 납작 엎드려있다. 찌푸려진 주름살처럼 가라앉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구름 사이로 흔적 남길 곳을 찾던 하오의 햇살이 구름에 갇히길 반복했다. 아이 얼굴에 핀 버짐 같은 잔설이 대합실 양철지붕 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투명유리창 하단에 옹색하게 뚫어놓은 반원의 수납구 위에 매표소라는 글자가 보였다. 애초 흰색 시트지였던 것이 때가 벗겨지지 않아 회색빛 글자가 되어버렸다. 유리창 위에는 버스 시간표와 요금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버려진 액자처럼 걸려있다.
일차선 도로를 횡단하여 매표소로 걸음을 옮겼다. 주차장에서 가시 같은 바람이 날아들었다.
“천상리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운전수와 잡담에 열중하던 매표원은 금빛으로 염색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어디요?”
방해받은 때문이었을까, 퉁명스러웠다.
“천상리요!”
“천상리 가는 표는 안 팔아요. 돈 내고 그냥 타면 돼요.”
매표원은 다시 운전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금방이라도 핏방울이 흐를 것 같은 그녀의 손톱이 망막에 잔상으로 남았다. 무안함 때문에 주위를 몇 차례 두리번거렸다. 대책도 없이 대합실에 들어가 양옆으로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대합실은 손바닥만했고, 출입문은 열린 채 고정되어 있었다. 난로에 채워진 냉기 때문인지 한기가 엄습했다.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한겨울이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열려진 출입문으로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차장 한쪽 구석에서 더벅머리 청년이 버스에 비누거품을 바르며 세차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가 신고 있는 고무장화가 살아있는 생선의 등같이 번질거렸다. 한 걸음 옆에 놓인 드럼통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날름거리는 시뻘건 불꽃이 연기 사이로 드러났다. 드럼통 안에서 소멸의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전령 같았다.
담배를 비벼 끄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천상리행 버스 시간을 알아놓지 않은 것이었다. 주위를 살폈다. 당황하면 나도 모르게 되풀이되는 습관이었다.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합실을 빠져나와 매표소 유리창 위에 걸린 시간표와 요금표를 살폈다. 매직으로 쓰인 글자들 사이를 살펴보았지만 천상리라는 글자는 찾을 수 없었다. 또다시 안갯속을 더듬듯 천상리행 버스 시간을 찾아보았으나 무위였다. 다해도 열 군데가 넘지 않는 목적지들 가운데에서 천상리라는 글자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내 탓만은 아닐 것이다. 비록 승차권도 발권되지 않는 작은 곳이라고 해도 시간표는 있어야 옳았다. 그들이 감추어놓기라도 했단 말인가? 무언가 못마땅했다. 담배 한 개비를 베어 물고 매표소 안을 기웃거렸다. 수납구로 얼굴을 갖다 대자마자 매표원과 운전수의 웃음소리가 한데 얼려 나를 밀어내었다. 나는 숙였던 상체를 올려 세웠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다시 수납구로 고개를 숙이려다가 멈추었다. 나로 인해 방해받았다고 오인한 그녀가 내게 던질 퉁명스러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매표원이 눈치채지 못하게 잰걸음으로 매표소 앞을 벗어났다.
매표원에게 발권에 대해 물었을 때, 시간도 함께 물었어야 했다. 나의 면밀하지 못함을 탓하는 순간 아내가 떠올랐다. 아내가 지금의 나와 같은 입장에 놓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러나 그것은 성립되지 않는 가정이었다. 아내는 어떠한 경우에도 나와 같이 답답한 상황과 대면하지 않는다. 아내가 천상리에 가려 했다면, 더구나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할 계획이었다면, 아내는 인터넷을 통하여 미리 연결 편과 시간표를 확인했을 것이다. 아내는 여러 경우를 비교한 후, 가장 편리한 시간과 경로를 선택하였을 것이다. 시간표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나와는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추위 때문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비교였다.
아내와의 신경전은 이미 그 시작부터 나의 완패가 예정된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하루의 말미를 주던 관례와 달리 그때에는 예상외로 일주일이란 기한을 포상처럼 주었다. 무엇을 노린 포상이었을까, 미리 주는 포상에는 분명한 의도가 감추어져 있을 텐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주어진 결론에 순순히 굴복하라는 경고의 의미였다. 어찌되었든 아내의 배려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내게는 견디기 어려운 고문 같았다. 추측건대 아내는 나의 항복을 우아하게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강요되지 않은, 자발적인 항복의 형식을 갖추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나의 결심을 밝히도록 아내가 정해준 날, 다시 말해서 내가 아내에게 항복을 선언하여야 할 시한이 정해진 날, 출근길에 아내로부터 수령하였던 일찍 귀가하라는 명령에 불복하고 회식자리에 참석했다. 나의 귀가는 자정을 넘겼다. 아내는 그럴듯한 의식을 갖추어 수락하고자 하였던 나의 항복 선언을, 동네 꼬마 무릎 꿇리듯 받아내겠다고 계획을 바꾼 듯 날 선 눈으로 재촉했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었지만, 나는 월급 한번 밀린 적 없는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외환위기를 겪을 때나 구조조정이다 무어다 해서 한 치 앞을 요량하기가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도 용케 지켜온 자리다. 물론 능력이 있어서 임원이 되고, 숨 가쁘게 밀려온 경제난 속에서 살아남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굳이 꼽는다면, ‘죽은 듯이 살고, 나서지 않으면 중간은 한다.’는 진리를 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였다는 것, 아마 그 정도일 것이다.
동료들이 우르르 거리로 내몰려나간 숫자만큼 비례해서 빈 책상이 늘어나고, 사무실이 마치 기계총 걸린 아이의 머리통처럼 듬성듬성 빈 의자가 덩그마니 놓일 때도, 매일 아침 내 책상 위엔 항상 따뜻한 찻잔이 놓였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아내는 몰랐다. 내가 지켜낸 내 위치에 대하여 아내는 이따금 경멸에 가까운 시선을 보냈다. 아내는 하나도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사는 것이 곧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내가 천상리를 떠나 서울로 유학길을 나서던 그 전날까지 귀에 못이 박이게 듣고 또 듣던 말이었다. “참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다. 그렇듯 죽은 척하며 살아야 한다. 그게 바로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길이야. 너희 아버지 봐라. 참지 못하고 죽은 척하지 않으니 결국 남은 게 뭐야. 명심하고 죽은 듯 세상 살아라. 죽은 듯 사는 세상이 바로 올바르게 산 세상이야.” 그럴 때면 어머니는 마치 두 개의 다른 얼굴을 컴퓨터로 합성해놓은 듯한 표정을 짓곤 했는데, 참으로 행복한 웃음과 절망적인 슬픔이 절묘하게 배합된 그런 표정이었다. 그랬음일까, 나는 어머니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고, 기억 속에 있지도 않은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리고 튼튼한 뿌리를 지닌 건실한 머리카락으로 건재하고 있는 모습을 어머니의 마지막 눈에 깊이 새겨 드리는 효심을 발휘하였다.
“오늘 결론을 내리자고 했잖아요.”
아내의 음성이 가팔랐다.
“이 아파트를 팔면 거기에 우리 셋이 불편하지 않게 살만한 집을 장만할 수 있다고 해요. 여러 가지가 부족하겠지만 어쩌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목적이 뭐예요? 아이들 때문에 사는 거잖아요. 그 이외에 무엇이 있어요. 어서 늦기 전에 결정하세요!”
아내는 누구네는 언제 떠났고, 누구네는 또 언제 떠날 예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하도 들어서 이젠 그들의 이사 날짜마저도 훤하게 꿰고 있을 지경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큰아이와 초등학교 삼 학년인 막내가 아내의 손에 이끌려 태평양을 건너서 새로운 문명과 지식으로 무장하기 위하여 떠나야 한다. 며칠 전에 떠난 누구처럼, 또 며칠 후에 떠날 누구처럼.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공부도 뒷받침이 필요한데, 우리 여건도 감안해야지.”
내가 순순히 수긍하지 않자 아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아이들 아버지라는 사람이.”
아내가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반론을 제기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아내는 당혹감을 측은함으로 환치시켰다. 그러나 나는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밟히면 꿈틀하는 미물도 있다는데!
“꼭 그렇게 해야 해? 내게도 아버지로써 자식을 교육할 권리와 의무가 있잖아!”
“고리타분한 말씀 좀 그만하세요. 보세요. 당신이 만일 유학이라도 했었다면 지금같이 조그만 회사 임원자리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이들마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부모가 할 도리예요?”
“이곳에는 그렇게 길이 없단 말이야?”
“정말 그렇게 답답한 소리만 할 거예요?”
나는 입을 닫았다. 예견했듯이 어떻게 아내를 이길 수 있는가. 명쾌하고 간결한 아내의 산수, 나는 여태껏 거기에 동조하고 박수를 보냈다. 세상의 도전으로부터 나의 우유부단함을 막아주었던 고마운 아내의 산수. 하지만 아내의 산수는 새로운 방정식을 만들었다. 그 수식에 따라 아내와 두 아이는 태평양을 건너고 나는 회사 근처 원룸으로 이사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슈퍼컴퓨터라도 동원했는지 방정식의 해법을 도출해내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인생이 이렇게 손쉽게 결정되고, 이렇게 재빠르게 각도를 바꿀 수 있도록 복잡하지 않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떠났다. 그리고 잘 사육된 동물처럼 나는 매일 매일 유치된 인생을 살 듯 원룸에서 회사를 부지런히 오고 갔다. 이 년이란 세월을, 패배감과 고독과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지치도록 무료함을 떠안고, 쳇바퀴 위의 다람쥐가 되었다. 아내는 물론 아이들이 그리웠다. 어떻게 그들이 그립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 기다려보자, 아내가 옳은 길을 선택했다는 믿음이 썩어가는 상처에 발라진 연고 같은 것 아니었던가!
아이들이 가끔씩 엽서를 보냈다. 사진에는 하얀색 페인트칠이 되어있는 집과 초록색 잔디가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아내도 활짝 웃고, 아이들도 활짝 웃었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의 행복을 질투할 남편이, 아버지가 있을까. 그러나 그들의 사진을 들고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는 표정은 그들의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사진에 보이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이 그나마 유치장에 갇힌 영어의 몸에게 던져주는 사식처럼 고마울 뿐이었다.
내 책상 위에 더는 따스한 찻잔이 놓이지 않게 된 날, 그러니까 내가 기계총에 걸려 여지없이 뽑혀 나가는 머리카락이 되던 날, 나는 용기를 내어 전화했다. 그곳은 밤이고 이곳은 낮이었다. 나는 다리 다친 다람쥐같이 웅크리고 방 한구석에 처박힌 채였다.
“별 일 없지요? 내가 한번 나가고 싶은데 이곳 실정이 호락호락하지 않네요. 아이들 바라지하기에도 하루가 짧고, 게다가 경비도 만만치 않으니, 아무튼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지내세요.”
나는 아이들의 목소리도 듣고 싶었지만, 아내가 시간계산도 잘하지 못한다며 나를 나무랐기 때문에 더 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그 시간은 아이들이 내일을 위하여 휴식하여야 할 시간이란 것을 왜 아버지는 모르는 것인가? 가느다란 거미줄 한 가닥이 천장에 매달려 눈에 보이지 않는 대류의 흐름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거미줄을 낚아챘다. 거미줄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고 없었다.
원룸의 전세금을 뽑아 변두리의 월세방으로 옮기고 나머지 모두를 아내에게 송금했다. 적어도 몇 달은 버티리라. 구차한 일이었다. 그리고 육 개월여, 천상리 가는 버스 시간조차 알지 못해 나는 또 다른 구차스러움과 만나고 있었다.
더벅머리 청년을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천상리. 청상은 화전을 일구고자 어린 나를 업고 터를 잡았다. 밭일에 고운 두 손이 이랑처럼 패여도 지난한 세월을 소진하며 희망을 그러잡고 놓지 않았다. 누구라서 미래를 알까. 당신의 희망은 이제 스스로 소진한 재를 주워 담기 위하여 천상리행 버스를 찾고 있었다.
더벅머리 청년은 내가 다가서는 것도 모르고 세차에 열중했다. 검은색 고무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버스에 부딪치며 사방으로 튀었다. 완성되지 못한 삶의 잔해들, 결빙되지 않은 물과의 불가근. 여전히 드럼통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불꽃은 이따금 시뻘건 혀를 날름거렸다.
“혹시 천상리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있는지 아십니까?”
더벅머리 청년은 고무호스를 꺾어 물이 새어나오지 못하게 단단히 잡았다. 그가 호스의 늘어진 부분을 잡아채듯 허공에 던졌다. 구불구불 감겨있던 호스가 순식간에 곧게 펴지더니 바닥에 굴렀다. 저렇듯 쉽게 펴지는데, 한 번의 손놀림에 감겨진 호스를 저리도 쉽데 펴는데. 곧게 펼쳐진 호스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천상리요? 거기는 하루에 두 번밖에 버스가 다니지 않아요. 아침 여섯 시와 저녁 여섯 시요. 그렇게 두 번이요.”
그가 쥐고 있던 호스를 풀자 다시금 물줄기가 뻗으며 언 땅에 떨어졌다. 그는 호스를 끌며 곧바로 버스 뒤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대합실로 되돌아왔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선택이 강요되었으므로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다. 네 시간. 아침에 출근하여 점심식사 때까지도 대략 네 시간 정도. 그 시간이 지루했었던 기억은 없다. 그러나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네 시간은 매우 길고 지루한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지난 육 개월 동안 한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진저리를 쳐야 했던가를 떠올리자 그만 맥이 풀리고 말았다.
나는 던져진 시간의 부피에 짓눌리며 표류하는 선원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길손다방’. 돌연 내 시선에 난파선 조각 같은 다방간판이 흘러 들어왔다. 어차피 주어진 시간이고, 그 시간을 아무 의미 없이 허비한다고 해도 이제 더는 달라질 것도 없었다. 내가 재단하고 요량하여야 할 시간의 폭은 결심을 굳힌 이후 이미 그릇에 담겨진 물처럼 한정되어 버렸다. 늦게 도착한 천상리와 일찍 도착한 천상리가 나를 변화시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의미하게 허비하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도 간절히 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지만, 내게 던져진 버거운 시간의 부피는 그 의미를 달리했다.
도로 휴게소에서 비운 국수 가닥이 명치끝에 그대로 걸려있어서인지 오슬오슬 한기가 느껴졌다. 따뜻한 차라도 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다방에 가기로 한 결정은 잘한 일 같았다. 휴게소에서 국수 가닥을 삼키면서 지금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가 나의 무엇을 위함인가, 한참 생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 국수를 다 비웠다.
다방 한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어항 옆에 앉았다. 맞은편에는 스포츠머리를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사내는 TV를 보고 있었다. 난로 가에 서서 역시 TV를 보고 있던 오십 대 여자가 느린 걸음으로 주전자를 들었다. 여자는 조심스럽게 뜨거운 물을 컵에 부었다. 컵에서 향기 없는 김이 피어올랐다. 매일 아침 내 책상에도 저렇게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놓여지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찻잔이 책상에 놓이는 순간 많은 안도를 그 잔에 쏟아 부었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그 김에 서려 마술처럼 살아 오르곤 했었다.
“커피 주세요.”
“크림, 설탕 다 타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여 여자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잠깐의 소요가 침잠하고 평상으로 되돌려진 공간에서 길손은 길손이 흡인하는 대로 아무 저항 없이 이끌렸다. 무료한 시간과의 줄다리기를 위하여 지속된 답답한 부동과의 대결. 눈을 뜨고 있을 때나 감고 있을 때나 대결은 마치 영구불변의 진자처럼 항성을 유지하고, 나는 신음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했다. 결과가 예비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슬리퍼소리와 커피잔이 놓이는 소리, 티스푼과 커피잔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다시 여자의 슬리퍼소리. 출입문이 열리고 더벅머리 청년이 다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커피잔 너머로 더벅머리 청년을 살폈다. 그는 TV에 열중하고 있는 맞은편 사내 앞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누님, 쌍화차 한잔 해주우―, 아주 따끈하게.”
더벅머리가 강 건너편 사공이라도 부르는 듯 말했다.
“세차는 끝냈어?”
TV를 보던 사내가 물었다.
“할 일 없어서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그것도 힘드네요.”
사내는 작은 체구였지만 등판이 단단해 보였다.
“전화해봤어요?”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전화해볼까요? 세 시까지는 고칠 수 있다고 했는데.”
더벅머리가 휴대전화를 들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다 끝났단 말이지? 그럼 차 이리로 갖고 와. 여기서 기다릴게. 수고했어.”
전화를 마친 더벅머리 청년이 다시 한번 나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다 고쳤답니다. 다행히 부속을 쉽게 구해서 빨리 끝냈대요. 아무튼 큰일 날 뻔했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상상도 못 해봐요. 그걸 여기까지 끌고 왔으니 기적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임시로 끌고 다니려고 낡은 걸 샀더니만, 그래도 미리 손을 봐두었어야 했는데.”
사내의 말끝에서 후회가 묻어났다.
“그럼, 지금 출발하게요?”
“그래야지,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다들 반가워하시겠습니다.”
“그렇겠지.”
더벅머리 청년은 쌍화차 잔을 들고 후루룩거리더니 생각난 듯 말했다.
“참, 형님. 어차피 천상리를 둘러서 가셔야지요?”
“그 길 외에는 없잖아. 왜, 새로 생긴 길이라도 있어?”
“새로 생기다니요. 이 촌구석에 길 놓아줄 눈 먼 양반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건 왜?”
더벅머리 청년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저분이 천상리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웬만하면 길동무하라고요.”
“아는 분이야?”
사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몰라요. 나한테 버스 시간을 물어보더라고요.”
사내를 따라 일 톤 트럭에 올랐다. 트럭은 겉으로 보기에도 매우 낡아 있었다. 그러나 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다. 아무려면 어떨까, 끝까지 동반할 아무것도 이젠 남아있지 않은데.
“불편해도 좀 참으세요. 워낙 낡아서.”
“별말씀을, 저로써는 고맙기가 이를 데 없지요.”
“길동무가 생겼으니 저도 잘된 일입니다.”
트럭은 깊은 산간으로 접어들었다. 개활지 사이를 흐르는 내를 따라 콘크리트로 포설된 좁은 도로를 달렸다. 도로는 트럭의 원활한 주행을 방해하려는 듯 심하게 굽어져있었다. 전방을 주시하는 사내의 표정이 무심했다. 굽은 길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은지 대어들 듯 속도를 내어 달렸다.
“브레이크가 고장이었다면 대단히 위험했겠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좁은 공간 안에 내려앉는 적막이 답답했다.
“임시방편으로 고치기는 했지만 다시 손을 봐야지요. 십년감수했습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천상리에서 한 삼사십 분 정도 더 가야 돼요.”
“고향 가시는 길입니까?”
“고향은 아니고 처갓집 비슷한 곳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내는 수형 기간 동안 연락이 두절된 아내의 소식을 탐문하기 위하여 나선 길이었다. 그는 열흘 전 가석방되었다. 그가 오 년의 형기 가운데 삼 년을 넘기고 얻어낸 가석방이라며, 삼 년을 강조했다.
“곧 소식을 들으시겠군요.”
“전화로 이곳저곳 수소문했지요. 그러나 신통한 결과가 없었어요. 교도소에서 나오자마자 몇 군데 짚이는 곳으로 찾아가 보았지만, 허사였고.”
차창으로 마른 나뭇가지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도로에는 군데군데 잔설이 얼어붙어 빙판을 이루었고, 도로 옆 개울가에도 투명한 얼음조각들이 깨진 거울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사고무친. 사내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앞에 닥치는 대로 일하며 악착스레 돈을 모았다. 약간의 종자돈이 생기자 과일행상을 시작으로 전국의 장터를 누비며 장돌뱅이를 했다. 부지런을 떤 결과 마침내 떠돌이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규모의 자본이 형성되었다.
“철공소 차려놓고 고사 지내는 날 펑펑 울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루어낸 철공소였겠습니까. 비록 작고 비좁았지만 내겐 바다보다도 넓었지요. 열심히 했습니다. 살라고 내보내 준 목숨이니 열심히 살아야 했지요.”
철골조를 생산해서 건설회사에 납품하는 규모로 철공소를 키웠던 사내의 역정을 들으며 아내를 생각했다. 나의 실직을 아내에게 감출 수 없었다. 축척 삼천 칠백만 분의 일 지도에서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두 뼘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삼천 칠백만 분의 일은 상상할 엄두가 나지 않는 숫자였다. 얼마나 먼 곳인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거리였다. 그 먼 곳에서 전파를 타고 들어오는 아내의 음성은 켜켜이 날이 서 있었다. 마치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렷했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
침묵은 가장 안전한 도피처가 될 수 있을까.
“대답해보세요.”
기계. 그렇다. 신선한 잉크와 살을 베어낼 듯 단정하게 정돈된 종이들. 그리고 미끄러지듯 흐르는 부드러운 기계의 모터소리. 그러나 나는 불행히도 기계가 아니었다. 무엇이 아내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며칠 후 아내가 다시 전화했다. 아내의 음성은 단호했다. 무엇이든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는데, 아내의 음성은 그 천리에 역행했다.
“내가 감당하겠어요. 자식 건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면 아비 될 자격도 없잖아요.”
아내의 등 뒤에서 장모의 모습이 환영처럼 어른거렸다. 장모는 내 자격을 박탈하는데 아내를 도와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자식과 나의 존재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첨삭의 논의를 주고받았을까. 그들 마음대로 이리저리 내 운명의 선을 긋고 있을 때 나는 짐작이나 했을까. 타인으로부터 생성된 내 운명의 그림들, 무얼까? 창문을 통해 망연히 올려다본 하늘에는 달도, 해도 없었다. 다들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금은 낮일까, 밤일까. 사위는 반투명의 어둠에 휩싸여 은밀한 권유를 독가스처럼 뿜어내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기어드는 반투명의 불온함. 내 운명을 삼킨 아내도 이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더군요.”
사내의 사업은 순조로웠고 아내도 얻었다. 아내는 귀여운 아들을 출산했고 사업처럼 아이도 잘 성장했다.
“주 거래처였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그 당시는 부도가 마치 유행처럼 기승을 부릴 때 아니었습니까? 건설경기가 찬바람에 꽁꽁 얼어붙었으니 부도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지요. 일군업체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우르르 나가자빠지고, 배길 재간이 없었어요. 마치 부도를 내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을 정도로 경쟁적으로 부도가 났으니, 하청업체들이 전멸을 했지요.”
사내의 얼굴에 씁쓸한 회한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받지 못한 돈은 결국 갚아야 할 돈의 액수를 두 배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더군요. 그러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손해를 보았을 테니 나도 일정 부분은 감수하리라 마음먹었지요.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다 생각하니 그렇게 되더군요. 순진하지 않았으면 바보였겠지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건설회사가 부도나면 껍질만 남는다는 말도 알고 보니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건설회사 사장은 미리 거액을 숨기고 시기를 저울질하다가 유행처럼 부도가 번지자 작심을 한 경우였다. 사장은 잠적했고, 납품업체와 하청업체들이 채권단을 구성했다. 혈기방장했던 사내가 채권단의 대표를 맡았다. 하나씩 하나씩 추적해나가는 동안 건설회사 사장이 고의적으로 부도를 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분개했다. 채권단과 함께 전국을 뒤진 끝에 그를 찾아내었다. 그는 젊은 여자와 관광지 콘도에서 한가롭게 골프를 치며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 죽어나갈 형편이 되었는데 그러고 다니더란 말입니다. 눈에 불이 나더군요. 질긴 게 목숨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이었습니다. 욱하는 성질에 주먹 몇 번 휘둘렀는데 싸늘하게 식더군요.”
사내가 나지막한 숨을 토했다. 트럭이 몹시 덜컹거렸다. 이어서 불안정한 커브를 그렸다. 나는 그가 다소간 흥분의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 슬며시 불안해졌다. 그러자 곧바로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무엇을 위한, 무엇을 보호하기 위한 불안함인지 생각하니 계면쩍기까지 했다. 쉽사리 놓지 못하고 있는 식은 삶에 대한 본능적인 관성? 어디면 어떠랴. 나는 호기로운 배짱을 채우듯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말라붙은 나무 이파리를 굴리던 바람이 더욱 빠른 속도로 트럭을 핥으며 지났다. 사내는 굳게 입을 다문 채 운전대를 부여잡았다. 그는 좀체 흥분이 진정되지 않는 듯했다. 구곡양장, 도로는 끊어질 듯 이어지며 산기슭을 따라 어지럽게 돌았고, 사내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 갔고, 트럭은 거칠게 속도를 높였다.
“아내도 비참한 상황에 놓이고, 그나마 알뜰히 모아놓았던 재산도 모두 다 날아가고 없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참담했겠지요. 그래도 한두 해는 용케 참고 견디는 기색이더군요. 그러나 면회 때 보는 아내의 안색은 점점 나빠져 갔습니다. 그러더니 두 해가 지난 후 더는 아내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교도소에 있으면서 수소문해보았는데 이런저런 믿기지 않는 말들만 들려오더군요. 물론 헛소문이라고 치부했지만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했지요. 다만 사실이 아니길 바랐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겠지요. 가장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 얼마나 사는 것이 막막했겠습니까? 다 내 책임이고, 내가 부른 일이니 내가 감당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헛소문이었다면 혹시 그의 아내는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은 아닐까. 사방이 철벽처럼 견고히 막히고 출구조차도 폐쇄되어 해도 달도 보이지 않는 공간. 아직은 끊어지지 않은 생명줄처럼 외부와 연결된 오직 하나,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 급격히 감소되기 시작한 수신 횟수에 비례하여 매일 매일 그 숫자만큼 주소록에서 지워 나간 전화번호들, 숫자와 함께 병기된 뜯겨져 나간 살점 같은 이름들. 함께 웃고, 함께 슬퍼했던 사람들의 이름들. 마침내 송수신 기능을 정지해버린 전화기. 암흑 속에서 명멸하다 사라지는 아득한 발광체의 단추들. 그리고 온몸에 스미는 연기처럼 나른한 유혹과 숨 막히는 정적.
속도계의 바늘이 팔십과 구십 사이를 분주하게 오고갔다. 나는 좀 더 느긋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밭은 헛기침을 했다. 골짜기가 깊어서인지, 먹장구름이 내려앉아서인지 도로에는 희끗희끗한 어둠이 가루처럼 묻어나기 시작했다.
길을 나서던 나는 무엇에라도 작별인사를 해야 할 것 같은 강박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두리번두리번, 멈칫거리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나를 유치시키고 있던 방은 나의 석방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대상으로부터 거부를 접하고 나니 배신감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구차해질 것이 뻔한 작별인사는 생략하는 것이 옳았다. 두려움과 악수를 나누고 내 심장을 파먹던 식인거미와도 고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작별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므로 외출이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기뻤다. 말라버린 웃음이 꽃처럼 피어났다. 그때 마침 수초 속에 숨은 물고기같이 꼬리를 감출 듯 부유하던 천상리를 떠올렸다. 내 모호한 목적의식 안에 감추어진 불온한 의미가 나를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음을 알아챘다. 명치끝이 아팠던 것은 국수 가닥 때문이 아니었다. 며칠 전 나는 아파트 공사장 작업반장으로부터 막일을 하기에는 부적격자라는 판정을 받았다.
바람소리와 함께 차창을 지나던 메마른 나뭇가지들에서도 꽃이 피어났다. 소멸을 위한 개화. 개화를 담보한 소멸. 나뭇가지에서 피어난 꽃들은 계곡에서 보이는 하늘을 가리기 시작했다. 저 하늘을 다 덮으려면 얼마나 많은 눈꽃이 필요할까. 풀풀 날리는 눈꽃에 내가 실리고 내 몸이 하늘로 견인되는 착각에 빠졌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사내가 나부끼는 눈발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나에게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럽습니다. 아내와 자식을 찾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이!”
사내가 읊조렸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내는 자신에게 좀 더 확실한 세뇌를 시도하려는 듯 이번에는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지금 당장 아내의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생각만 하면 좋은 결과가 찾아온다는데, 곧 반가운 소식을 접하겠지요.”
정말 그럴까? 확신하지 못하는 생경한 말을 자연스럽게 꺼내고 있는 내가 낯설었다. 트럭에 편승한 고마움에 대한 아부, 체념이 불러들인 잔혹한 조롱. 트럭은 개활지를 벗어나 산등성이로 향하는 가파른 길을 올랐다. 길은 하늘에 닿아있었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고지를 오르기에 트럭은 힘겨워했다. 하지만 사내의 굳게 다문 입이 거침없이 트럭을 밀어 올렸다.
“언덕배기 조금 못미처 공동묘지 입구에서 내려주시겠습니까?”
“공동묘지 입구요?”
사내가 곁눈으로 나를 살폈다.
“누가 계십니까?”
“부모님을 모셨습니다.”
사내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부모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은 회한을 심어주는 말일까 짚어보았다. 하지만 그도 알 것이다. 무엇이든 항상 만족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스스로를 소진했던 것 아니던가. 부족이 더 이상 부족함으로 인식되지 않을 때. 채워야 할 것이 더는 남아있지 않을 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트럭이 공동묘지로 들어서는 길가에서 멈췄다. 사내가 먼저 내렸다. 사내가 길가에 서서 오줌을 누기 시작했다. 나부끼던 눈발은 점점 더 굵어지고 하늘은 이미 눈송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내도 자식도 그리고 내 인생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그때가 바로 다시 시작할 때지요.”
나는 불현듯 그에게 도움이 되는 작별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떠나는 자의 옹색한 여유, 초조함이 스며든 가장된 여유. ‘행복하게 사십시오.’ 아니면 ‘원하는 것을 이루길 빌겠습니다.’ 그러나 내 작별인사는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내의 말이 더 빨랐다.
“궁금하지만 묻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날 쓸쓸히 부모님 찾아오셨을 땐 혼자만 아는 사연이 있겠지요. 아무쪼록 인사 잘 여쭙길 바랍니다.”
내가 작별의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는데 사내가 다가왔다. 아무렇게나 찢은 종이에 볼펜으로 큼지막하게 적은 전화번호를 내밀었다.
“내 전화번홉니다. 필요하면 전화하세요. 읍내 나가는 버스가 이 시간에는 없을 겁니다. 택시라도 불러드리지요.”
사내가 고개를 들어 굵어진 눈발을 바라보더니 트럭에 올랐다.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내게 보내는 마지막 전언이기라도 한 것 같았다. 나는 그 무위함을 외면하며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사내의 트럭을 보았다. 산발한 여인네의 머리처럼 눈발이 뒤엉키며 휘날렸다. 바람이 칼날처럼 매서웠다.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려 목을 감쌌다. 사내를 기다리고 있을 소식이 궁금해졌다. 사내가 아내 소식을 하루라도 빨리 접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아니 그가 당도한 곳에 그의 아내와 아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를, 세상에 던지는 마지막 바람처럼 진심으로 빌었다. 그는 언제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아내의 소식을 접하게 될 것이고, 그에게 날아든 소식은 그가 불태우는 재기의 의욕과 반응할 것이다. 사내의 트럭이 가뭇가뭇 시야에서 흐려졌다. 눈발은 점점 더 굵어지고 바람이 드셌다. 나는 들고 있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를 구겨 눈발 속으로 던졌다.
몇 발짝 되짚어 공동묘지로 향하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고막을 찢는 강력한 브레이크 파열음이 들렸다. 나는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보았다. 눈발 속에서 사내의 트럭이 빙그르 돌았다. 트럭이 발길에 채인 짐승처럼 깎아지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트럭은 시야에서 사라져버리고, 뒤이어 계곡 깊은 곳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다. 나는 자력에 끌리듯 언덕배기를 향하여 전력을 다하여 질주했다.
계곡에서는 폭발이 한번 더 일어났다. 굉음이 계곡을 진동시켰다. 날름대는 불길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눈발 사이로 치솟아 올랐다.
─반년간지 『시에티카』 2014년 · 하반기 제11호
이선규
서울 출생. 2012년 『시에티카』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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