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게 한 용서
나 인 구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아침 6시면 집을 나서 7시 이전에 학교에 도착하는 일이 생활화되던 시절이다. 관리자가 되어서인지 선생님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이었다. 한 방송부 학생이 내게 와서 “방송실의 컴퓨터 본체가 없어졌어요.” 한다. 나는 야간 숙직담당 용인(傭人)을 불러 저녁에 일어난 일을 물어봤다. 그는 별일 없었으나 아침 일찍 어떤 학생이 방송실을 들렸다 나가는 것을 본 것 같다고 했다. 방송실에는 컴퓨터 몸체만 떼어간 자리가 비어있었고 다른 것은 그대로였다. 나는 이런 사건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고 방송실 문을 잠갔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하고 학생들이 컴퓨터에 많은 관심을 가질 때라 컴퓨터가 있는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 구매하기엔 조금 비싸서 웬만한 학생들은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이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했다. 얼마 전 학교 현관에 진열되었던 역사 유물들이 몽땅 털려 학교가 발칵 뒤집혀 경찰들이 와서 지문채취 등 야단법석을 한 적이 있었기에 무척 고심했다. 나는 방송부장 학생에게 1교시 수업이 끝 난후 방송부 학생 전원을 방송실로 모이도록 했다. 그리고 방송실 문을 잠그고 각자에게 A4 용지 한 장과 볼펜을 주면서 “여기에 각자 자기소속과 성명을 쓰고 방송실에 있던 컴퓨터 몸체를 어떻게 하면 제자리에 올 수 있는가를 적어보라고 했다. 그리고 용지와 볼펜을 나누어준 것만 만지라고 했다. 학생들이 쓴 용지를 난 손으로 받지 않고 대 봉투 위에 놓고 가라고 했다. 난 ”이 용지는 손대지 않았다. 이 없어진 몸체가 돌아오지 않으면 지문채취방법으로 경찰에 의뢰할 생각이다. 오늘 일어난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자. 우리 방송부의 수치이니 그리 알라. 몸체를 영 찾지 못하면 내가 사서 놓겠다. 너희들은 걱정 말고 수업만 잘 받아라.“하고 돌려보냈다. 지금생각하면 너무 잔인한 나의 행동에 죄지은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나는 방송실을 드나든 것은 방송요원들이라고 생각하고 외부 침입자는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어린 학생들의 양심에 호소하려 지문 채취라는 극단의 방법으로 학생들을 설득할 요량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컴퓨터를 훔쳐 팔아서 용돈이나 벌려고 한 짓으로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 큰딸이 대학 다니던 시절 비싼 컴퓨터를 사주었는데 어느 날 도난당한 일이 번뜩 떠올랐다. 나와 아내는 컴퓨터의 엄청 비싼 가격에 속이 상했지만 딸아이는 그 속에 든 논문 등 자료에 더 실망했던 것이다. 나는 방송실 컴퓨터의 가격보다는 그 속에 내장 된 방송관계 행사등 주요 자료들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 날 하루를 고심하며 보내고 숙직 담당 용인에게 “오늘 저녁부터 내일 아침까지는 방송실 주변가까이 가지 말고 먼 곳에서 관찰해보라고 당부하고 퇴근했다. 야간 자율학습이 밤10시까지여서 난 10시 조금 넘어 퇴근했다. 학생들에게 한 나의 행동이 몹시 맘에 걸려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내는 없던 일로 하고 몸체하나 사서 채워놓으라고 했다. 왜 학생들을 의심하느냐며 나무라기까지 했다.
이튿날, 여늬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하였다. 용인이 멀리서보니 한 학생이 아침 일찍 방송실에서 나가는 것 갔더란다. 난 방송실로 들어갔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컴퓨터 몸체가 탁자위에 놓여있지 않은가. 나는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숙직담당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하고 1교시 후 방송부 학생들을 방송실로 모이도록 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잘못 했다. 이 컴퓨터는 도난당한 것이 아니고 어제 S 선생님이 수리하려고 집에 가져갔다가 오늘 가져오셨다. 그 선생님이 컴퓨터가 느리고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집에서 손 좀 보고 가져왔단다. 말하지 않아 죄송하다고 하셨다. 어제 너희가 쓴 종이는 읽지도 못했다. 다시 돌려주마.“ 하고 학생들을 돌려보냈다.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 머리가 아팠다. 오죽 갖고 싶으면 가져갔을까. 밤새 얼마나 고민하고 마음 조렸을까. 호랑이 같은 나의 성미를 잘 아는 학생이 잠도 못자고 얼마나 벌벌 떨고 있었을까. 혹시 들키면 퇴학 당하지 않을까하고 고심했을 것이다. 내 머릿속엔 온갖 상념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 후 아니 그해 졸업식 후 방송부 졸업생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교감선생님 죄송합니다. 교감선생님이 하신 그날의 일은 영원히 잊지 않고 평생 저의 가슴에 묻고 살겠어요. ”너희들을 의심한 내가 잘못했다“라는 그 말씀 영원히 잊지 않을래요. 선생님의 용서는 욕심을 버리게 했어요. 감사합니다.” 이 편지를 받고 나는 기도했다. 저희에게 잘못한일을 저희가 용서하듯이 나의 죄를 용서하며 살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빌었다. 인간은 참 나약하다. 쉽게 죄짓고 용서하지 못한다. 아니 용서는커녕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까지 한다. 그건 욕심이라는 무게 때문이다. 난 오늘 그 학생이 하루 만에 자기를 용서한 그 마음을 훌륭하게 생각한다, 그는 사회에서 선한 일을 할 거라고 확신한다. 작은 용서로 욕심을 버리고 양심으로 마친 학창시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