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짜증나는 라이벌입니다. 멀찌감치 따돌렸다고 믿었는데 금세 따라붙네요. 70전 40승 19무 12패....
승패의 숫자 만큼이나 멀리 멀리 따돌렸다고 믿고 싶었으나 일본 축구의 욱일승천의 기세가 무섭네요.
일본의 축구 개혁은 멕시코 올림픽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됩니다.
1968년, 일본은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고, 당시 분위기로는 아시아 최강의 축구 대국이 된 듯 느꼈습니다.
그러나 프로리그의 부재, 또한 직업 선수의 부재라는 한계를 체감하고 1980년대에 이르러 J리그의 발족을 위한 움직임을 개시합니다.
일본의 뜻 있는 젊은이들은 동메달 이후 일본이 자기만족이라는 소아병에 걸렸다고 진단하고, 이미 K리그를 시행한 한국을 배우려고 하는 등 여러 의욕찬 모습을 보입니다.
그들이 결국 선두에 세웠던 대표적인 인사는 가마모토와 가와부치 같은 친독일계 인사였고, 이들의 사상으로 독일의 축구리그 (잉글랜드보다 독일이 더 탄탄한 리그 운영을 보여준다는 것은 이미 정설입니다.)의 일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J리그가 탄생합니다.
이때 일본은 [기술]이라는 화두에 목이 마른 사람들이었고, 전통의 라이벌 한국의 [정신력과 체력]에 대해 신경질 적인 반응을 나타내게 됩니다. 때문에 어디까지나 1990년대까지 일본이 추구하는 바는 매우 아름답고 간결한 [예술적, 기교적 축구]였고, 이는 거듭거듭 일본축구계의 화두로 남습니다.
일본은 J리그 출범 이후 한국을 압도한 듯 보였습니다. 한국이 1992년 아시안컵 예선탈락(태국에게 패)을 하는 등 축구가 정체되어 있는 사이, 일본은 미우라 카즈요시, 나카타 히데토시 등의 테크니션들을 거듭 배출하며 [일본식 기술축구]가 아시아를 평정하게 됩니다.
1994년 도하의 기적(이라크가 골을 넣어준 덕분에 한국 대표팀은 94년 월드컵에 나갔지요.)으로 한국이 아슬아슬한 명예를 지키고 있는 사이, 일본은 절치부심의 심정으로 칼을 갈았고, 1998년 월드컵에 진출하였으나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함은 물론, 토쿄 한복판에서 이민성의 역전골로 그토록 몸서리치게 싫었던 라이벌 한국에게 큰 상처를 입고 감독의 목을 치는 결의를 다졌습니다.
2002년 월드컵의 절반을 빼앗겼다고 느낀 것도 무참하게, 대회 4강까지 진출하며 대회의 시작과 끝까지 살아남은 것은 한국이었습니다.
일본이 대체 무엇으로 한국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었을까요?
허정무 감독과 동년배인 오카다 타케시 (허정무 55년생, 오카다 56년생)를 비롯하여, 일본에 의한 한반도 식민지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해서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대한 근원없는 우월감이 존재하지 않는 한일전 2세들에게 한국은 그저 [벽]에 불과했습니다.
저 벽을 넘지 않으면 안된다, 저 벽을 어떻게든 타도해야 한다.
그러나 결국 일본은 [한국의 축구]를 처절하게 증오하였음에도 [한국의 축구]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일본이 다른 길을 걸어준 덕분에 한국에서는
[일본의 축구]를 처절하게 증오하였음에도 [일본의 축구]를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졌죠.
한일의 관계를 극명하게 이야기하자면
한국은 이미 2008년부터 초등학교까지 전면적인 주말리그 경기를 진행하고 있으나,
일본은 아직 초등부 리그화를 실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애초에 리그화라는 숙제는 양국에게 던져졌으나, 한국은 일본에서 제기한 문제제기를 보다 빠른 행보로
자기화, 한국화하는 놀라운 스피드를 보여주었고, 일본은 이에 크게 자극받아 2010년 하반기를 목표로 리그 구성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홍명보라는 대표적인 극일인사는 일본에서 한국인 선수에 대한 매우 훌륭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만 일본에게 지는게 싫었다는 그는 니시노 감독의 가시와 레이솔에서 뛰면서 "우월한 한국 축구를 펼치는 한국인" 이라는 평가를 얻어냈고, 이에 많은 일본 지도자들이 일본 선수와 한국 선수의 기본적인 자질에 대해 퀘스쳔을 던지게 됩니다.
일본에서 한국에 대한 가장 많은 정보력과 인맥을 가진 학벌은 "와세다 학벌"입니다.
현재 일본 축구협회는 기술위원장-국가대표 감독 으로 이어지는 중요라인을 와세다 학벌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대학시절 매년 일본과 한국에서 고려대 축구부와 교류전을 펼쳤던 그들은
또한 "고려대 출신"이 축구협회 수장으로 있는 한국에게서 보다 친근함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투쟁심, 향상심, 정신력, 집중력, 체력"은 기본이며, 이에 대한 보완 없이는 일본 축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위기의식이 강화되었습니다. 가장 근접거리에 있는 라이벌에게서 결국 솔루션을 찾은 셈입니다.
한국이 [일본식 기술축구의 가능성]에서 자기발전의 화두를 얻었다면
일본은 [한국식 체력전과 정신력]에서 자기발전의 화두를 얻고 있습니다.
이제 한일 양국의 축구전쟁은 더 재미있는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한국선수들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승점 4점으로 우루과이와 16강전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선수들은 역대 최약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승점 6점으로 파라과이와 16강전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늘 저 날파리 처럼 지겹게 따라붙는 파란옷의 남자들을 증오해 왔지만
어느 새 그 증오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둘은 서로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서로를 닮아가는 라이벌은 차라리 우정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누구의 책 제목처럼, "한(恨)과 정(情)이 뒤섞인 라이벌 관계"입니다.
남자답게 승부를 즐겨보시렵니까? 이번 월드컵, 왠지 한일 전쟁의 새로운 무대가 시작된 듯 하군요.
패하고 싶지는 않군요. 아시아 최초의 별은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정말 좋은 글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항상 양국의 축구 스타일이 접목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대회에서 일본이 그모습을 보여주네요.
[추천] 대공감하지만... '우정'은 아직 제게는 힘든 단어네요... ㅠㅠ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일본'국'에 대한 악감정은 논외로 하고....
정말 좋은 글입니다. 며칠 새 격앙되었던 가슴이 스륵 가라앉는군요.
선수들이나 허감독도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첫 문장의 "참으로 짜증나는 라이벌입니다." 라는 부분.. 확 와닿습니다. ㅎㅎ ^^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한일 전쟁의 새로운 무대의 시작 이라는 글이 와 닿네요...
추천합니다^^
일본과 비교되는 게 너무 싫었는데 이글을 보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멋지네요~~
멋진 글이군요! 짜증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관계. 곁에 있는 이상 항상 같이 갈 수 밖에 없기에 서로의 모습에 자극을 받는 듯 합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우리가 자극을 받고, 그들도 우리에게 자극을 받는 부분이 있었겠죠.
마지막 문장에서 가슴이 쿵쾅거림을 느낍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아 공감은 가는데, 그래도 참 이 찝찝한 기분 아 돌아버리겠네요 대체 일본한테 무슨일이 있었던건지 ...........
[추천] 아... 전 왜이리 쿨하지 못할까요... 망할 ㅜㅜ
좋은 글입니다. 어쨌든 배울 것이 있는 라이벌이 가깝게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요. 겉으로는 쿨하기로 했습니다. 16강 축하합니다. 그런데 왜 오늘은 아침부터 신트름이 나는지....ㅋ
우와~ 잘 읽었습니다. 저는 한일 양국을 생각하면 무조건 우리팀이 더욱 좋은 결과를 내길 간절히 바라지만, 일본의 활약만 생각하면 아시아팀을 얕본 축구 강국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선 통쾌한 감도 있어요. ^^;
좋은 글이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피지컬적으로 대형 스트라이커가 안나온다는게 한계죠.. 축구는 골넣는 경기이기에... 전 일본이 고마울때가 있어요.. 축협이 오바할려면 옆에서 한방씩 먹여주죠.. 이번 월드컵도 일본이 16강 탈락했다면.. 축협 기고만장했을겁니다.. 반면.. 지금은 일본 8강 진출 할까 두려움에 떨고 있겠죠.. 성적에서 일본이 앞서 나가는 것도 뭐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래야 98년도 월드컵 이후 분위기로 돌아가서 한국축구 무엇이 문제인가 하구 100분 토론도 한번 할거 아닙니까? 그래야 한국축구의 뿌리는 k리그다 뭐.. 이런 분위기 확산될거 아닙니까?
한국 축구를 위하여 일본이 일정 정도 한국과 겨룰 수 있는 나라란 것을 싫어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는 늘 저 날파리 처럼 지겹게 따라붙는 파란옷의 남자들...(2)..대박..어찌 제 생각하고 같은신지..ㅎㅎㅎ
추천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