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9일 하느님 뜻 찾기 백 명이 설교를 들으면 백 가지 이야기를 한다. 설교 주제를 명확히 드러내지 못한 탓이 제일 크겠지만,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성향도 그에 못지않은 거 같다. 죄인의 설교는 그래도 되지만 하느님 말씀은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말씀하신 그대로, 한 자 한 획도 바꾸지 말고 듣고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 그게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울은 하느님이 직접 뽑으신 이스라엘 최초 왕이다. 그런데 그는 하느님께 배척당했다.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하느님 말씀을 제멋대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무엘 예언자를 통해 사울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셨다.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니 “너는 이제 가서 사정없이 아말렉을 치고, 그들에게 딸린 것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남자와 여자, 아이와 젖먹이, 소 떼와 양 떼, 낙타와 나귀를 다 죽여야 한다.”(1사무 15,3) 죄는 적군을 전멸시키듯, 씨앗조차 남기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없애버리고 끊어버려야 한다는 뜻이겠다. 하느님 명령대로 사울은 아말렉을 전멸시켰다. 그런데 그는 아말렉 임금 아각과 양과 소와 기름진 짐승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들과 새끼 양들, 그밖에 좋은 것들은 모두 아깝게 여겨 완전히 없애 버리지 않았다.(1사무 15,9) 그에 따르면 그것들은 주님께 제물로 봉헌하려고 가져온 전리품이었다.
사울이 한 행동은 세속적으로 보면 경제적으로 좋고 합리적이었던 거 같다. 하지만 하느님 눈에는 그가 당신을 배척한 것이었다. 제사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빠짐없이 순종하는 게 중요했다. 죄는 협상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사정없이 매몰차게 끊어버려야 한다. 사무엘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2-23)
목적인 선하면 그 목적을 이루는 수단도 선해야 한다. 목적이 거룩하면 그 수단과 과정도 거룩해야 한다. 그런데 복잡하고 교묘한 세속 생활에서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무를 자르듯이 명확하게 구분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어려운 건 하느님 뜻을 아는 것이고 그보다 더 어려운 건 그걸 실천하는 일이다. 하느님 뜻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쁘고 악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죄인이다. 미사 성찬례 첫 부분은 정화 예식이다. 참회를 통한 정화다. 하느님 뜻을 어겨 더러워진 영혼을 씻어내는 거다. 성당에 들어올 때 성수를 찍어 성호를 긋는 것도 그런 예식이다. 하느님 뜻은 어려운 시험 문제 정답을 찾듯 알아내는 게 아니라 하느님 뜻을 따르려고 자신을 정화하는 사이에 그리고 거기에 더해 하느님의 뜻이 나와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나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걸 거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말고, 듣고 싶은 것만을 제멋대로 듣지 말도록 깨어 자신을 살펴야 한다.
예수님, 주님과 함께 지냈던 사도들은 고생도 많이 했겠지만 그때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겠습니다. 하느님 뜻을 말로 듣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걸 눈으로 보았으니 말입니다.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느님 뜻이 제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주님의 목소리를 가려내게 도와주십시오. 아니 그냥 알려주십시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