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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水. 흐림
그대, 수원에 가시거들랑.
화요일火曜日의 외출.
1981년 봄에 수원에 간 적이 있었다. 팔달문을 지나 화성행궁에서 서장대西將臺쪽으로 오르다보면 대승원大乘院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 절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위쪽에 있는 별채에 모여앉아 T.V를 통해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프랑스 뮤지컬 영화를 보았다. 같은 해 늦은 봄에 또 대승원에 들러 자주색 현미밥으로 점심식사를 했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는 화성행궁이나 서장대에 관해 듣거나 본 기억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천안이나 온양을 오고가는 길에 어쩌다 수원을 지나치기는 했지만 머물러본 적은 없는 듯하다. 그러다가 30여년餘年 만에 수원을 방문하게 되었다.
기차와 전철을 굳이 비교하자면 전국구와 지역구라고 구분해 볼 수 있겠는데 요즘 전철은 문산이나 동두천, 춘천, 온양 등지까지 쓱쓱 들어 다니는 판이니 전철의 가용범위가 많이 확장된 느낌이 든다. 전철은 레일 위를 달려가므로 노천露天을 지날 때에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차량 내에 기차 같은 편의 시설이 없어서 창밖을 보든지, 졸든지, 그도 아니면 마주 보이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해야 한다. 마주 보이는 사람을 보면서 상상을 하는 방법도 생각하기에 따라 참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 사람을 보면서 그와 연관된 간접상상이나 2차적인 상상을 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상상할 수도 있다. 우리가 전철좌석에 앉아 건너편 사람들을 마주보면 대체로 얼굴부터 보게 된다. 생소한 사람을 처음 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이 얼굴인데 얼굴부터 날름 본다는 말은 더 이상 상상을 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얼굴대신에 신발을 하나하나 봐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 사람 몸통 아래로 내려온 발을 감싼 한 쌍의 신발은 주인의 개성만큼 다양하고 얼굴만큼 섬세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 신발들을 보면서 각각 그 사람들이 입고 있을 옷과 그 사람 개성의 종착역인 얼굴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러고 난 뒤 내가 눈여겨 본 신발을 통해 상상으로 꾸며본 복장과 얼굴을 실물과 하나하나 대조해 가다보면 그 야릇한 조합과 의외성에 감탄을 하게 된다. 드물지만 신발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너무도 닮은 얼굴이 있어서 내심 고개를 끄덕이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역시 부분을 통해서 전체를 구성해보는 일은 상상력을 위한 도움닫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
전철은 미끄러지듯 달려서 멈췄다 출발을 반복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열린 문을 통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사당역과 금정역에서 지하철 노선을 바꾸어 탄 뒤 얼마간 있으면 전철은 수원역에 도착을 한다. 신역사가 청량리나 용산에만 들어섰으리라 생각을 한다면 큰 오산誤算이다. 30년이 지나는 동안 수원역에도 신역사新驛舍가 들어선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수원 역사驛舍를 나오면 커다란 분도기分度器를 땅바닥에 엎어놓은 듯한 0도, 90도, 180도 세 위치에 길이 나있다. 그 중 가운데 길이 매산로이다. 수원 역사 부근은 위치와 입지가 돋보여 팔달문 로터리와 더불어 수원의 상권과 금융권이 집중해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밀집되어 있는 상가와 수많은 통행인들의 숫자가 수원이 낯선 방문객에게도 수원지역을 대표하는 경제활동의 힘이 느껴온다.
사람이 사람을 처음 만나는 법法.
내가 그를 처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전철이 1호선 금정역에 도착을 하고나서 사람들이 타고 내린 얼마 뒤인 듯하다. 내가 서 있는 쪽 좌석 몇 자리가 비게 되자 손에 들고 있던 종이백을 머리 위 선반에 올려놓고 빈자리 하나에 앉는다. 금정역에서 전철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나머지 빈자리를 금방 채워 앉고, 남은 대부분 사람들은 중간 통로나 문 주변에 서서 무료한 표정으로 바깥 풍경을 내다보고 있다. 그는 내 맞은 편 문가에 서서 주로 바깥경치를 내다보고 있는데 전철이 역에 정차할 때면 전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인지 얼굴을 내 쪽으로 돌리고 사람들을 찬찬히 쳐다보다 다시 전철이 출발을 하면 창밖으로 얼굴을 향하고는 한다. 그러는 사이 두어 번 그의 옆에 빈자리가 났지만 구태여 좌석에 앉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내가 그를 의식하게 된 것은 그에게 별다른 특징은 없지만 가끔 양복상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 메모를 하는 것이 내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색 체크무늬 양복상의에 검은 바지와 밤색 구두를 신고 있으며 얼굴도 체격도 큰 편인데, 내 쪽을 향해 얼굴을 돌릴 때 모습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다. 나이는 오십을 전후로 해서 보이고, 별로 말 수가 없어 보이며, 건장한 체격을 한 저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일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화요일火曜日 오전에 어디를 가는 것일까?
나는 지금 친구를 만나러 수원에 가는 길이다. 오늘이 수원으로 시집을 가서 살고 있는 가장 친한 학교 동창 친구의 생일이라 그 애 직장에서 가까운 팔달문 근처에서 만나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지난 일요일 전화연락을 해놓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여의도에서 수원까지는 1호선 지하철을 이용하면 40분 남짓 걸리는 멀지 않은 거리인지라 이 친구와는 서로 오고가면서 자주 만나는 편이다.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닐 때보다도 이렇게 전철을 타고 좌석에 앉아 있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애착이랄까 호기심이 일어난다. 저 사람들은 이 시간에 어디를 가고 있으며 무슨 일을 하러 가는 걸까? 저 사람들은 예전에 내가 만난 적이 있거나 혹시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은 아닐까? 하는 등의 상상은 호기심도 자극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의 한 표현인 것 같아 흥미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맞은편 문가에 서 있는 그 사람이 눈에 띄게 된 것이다. 그러는 중에 성균관대역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몇 무리가 전철 안으로 들어와 갑자기 떠들썩한 분위기가 된다. 다음이 화서역, 그리고 그 다음이 내가 내려야 할 수원역이다. 시끄러운 대학생 무리와 섞여 떠밀리듯 열린 문을 통해 나간다. 역사에 들어선 뒤 검표대를 지나 넓은 홀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오르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점점 나를 따라온다. 물론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소리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누구나 뒤를 힐끗 돌아보게 된다. 조금 전에 전철 안에서 내 맞은 편 문 옆에 기대어 서 있던 그 남자가 나를 향해 바쁘게 걸어온다. 대체 무슨 일일까?
“저, 혹시 이것을 선반에 놓아두고 내리신 건 아닌지 해서요.”
그 사람이 하얀 내 종이백을 들고 서서 나를 보며 말을 한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내 두 손이 허전해져 옴을 느낀다. 소란스러운 대학생들 틈새에서 함께 내리다 선반에 올려놓았던 친구 생일 선물을 담은 종이백을 깜박 잊고 내린 모양이다. 금세 얼굴로 피가 몰리는 기분이 들면서 당황스러워진다.
“어머, 내가 종이백을 놓고 내렸나 봐요. 내 거 맞는데요.”
“그러세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자, 여기요.”
“아우, 감사합니다. 이걸 놓고 갔더라면 당황할 뻔했네요.”
“중요한 물건인 모양이지요?”
“그런 건 아니지만 오늘 꼭 필요한 물건이거든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뇨, 제가 우연히 보게 되었을 뿐입니다. 자, 그럼.”
지하철 2호선을 타고가다 사당역에서 한 번 노선을 4번으로 바꾸어 타고 다시 금정역에서 노선을 1호선으로 바꾸어 탄다. 금정역에서는 사당역과는 달리 지하철 노선 환승이 아주 편리하다. 내린 곳에서 바로 바꿔 탈 수 있어서이다. 2,3분가량 기다리니 신창이 종점인 전철이 들어온다. 문이 열리자 기다리던 승객들이 우우 몰려 들어간다. 여기저기 빈자리가 보이지만 수원역까지 몇 정거장 되지 않기에 그냥 서서 가기로 한다. 안쪽 문 옆으로 다가가 서 있는데 금방 빈자리가 사람들로 채워진다. 내 맞은 편에 서 있던 어떤 여자 분도 하얀 종이백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비어있는 좌석에 앉는다. 나는 내 맞은 편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신발을 저 왼쪽부터 하나하나 눈여겨 봐오면서 그 주인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으며 얼굴은 어떤 모양일까를 생각해본다. 성균관대역에서는 역 이름답게 풋풋한 대학생들이 몰려들어와 전철 안을 활기차게 만들더니 수원역에 도착해서는 내 앞에서 우르르 몰리듯 한꺼번에 내려버린다.
대학생들이 몰려나가고 나도 그 뒤를 따라 내리다가 입구 선반에 놓여 있는 하얀 종이백이 눈에 띈다. 가만있자, 저 종이백은 그 아래 앉아 있던 어떤 여자 분이 올려놓았던 것인데 그 여자 분은 이미 밖으로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빨리 나간다면 주인을 찾아줄 수 있겠군. 하고 생각하며 종이백을 선반에서 내려들고 바쁘게 문 밖으로 나선다. 신발과 옷이 무슨 색이었더라? 생각을 한다. 맞다! 짙은 군청색 구두를 신고, 보라색 스카프를 매고, 쥐색 반코트와 검정색 스커트를 입고 있었지. 아담한 체격에 삼십대 후반 전후로 보이는 도시 여성의 전형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고. 이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멀리서 뒷모습만 보아도 사람 찾기가 아주 쉬워진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자 검표대를 지나고 있는 여자 분의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바빠도 검표대를 지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검표대를 나서자 위층 계단을 오르고 있는 여자를 향해 여보세요! 하고 부르며 쫒아간다. 그렇게 서너 차례나 부르고 나서야 그 여자 분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 여자 분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보니 내 기억 속의 여자 분과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약간 다르다. 우선 스카프 색깔이 보라색이 아니라 녹두색 스카프를 매고 있다. 아담한 체격에 삼십대 후반 전후의 얼굴은 맞지만 가까이서 보니 잘 관리되고 밝은 표정이어서 그렇지 실제 나이는 아마 사십대 중반은 되었으리라 짐작을 한다. 요즘 여자 분들의 나이는 예상이 쉽지가 않다. 성형기술과 피부 관리기술의 발달로 여자들 몸매와 얼굴에 관한 시간이 얼마든지 역행할 수 있어서 인데 그런 이유로 여자 분들의 나이는 얼굴 생김새나 피부보다는 그 표정으로 짐작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때가 많다. 여하튼 주인을 만나 하얀 종이백을 건네주고 나니 주어진 숙제를 마친 듯이 마음이 홀가분하다.
매산로, 팔달로, 팔달문. 화성행궁, 화성성곽 길.
매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면 서울 어느 부도심副都心을 걷고 있는 것과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무언가 지방 도시다운 한가함이랄까 여유 같은 것이 공기 중에 흘러 다닌다. 올 겨울치고는 포근하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걷는 느낌이 편안하고 좋다. 그런데다 이곳은 서울이 아니지 않는가! 눈앞에 보이는 녹색 이정표에 도청오거리라고 쓰여 있다. 왼쪽으로는 도청과 도의회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시청과 시의회 가는 길이라 표시되어 있다. 내가 아는 어느 분께서도 저 어디에선가 근무를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쯤이면 시계를 봐가면서 점심식사를 할 궁리를 하고 계시겠지. 곧장 올라가다 팔달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팔달문 쪽으로 방향을 바꿔 걷는다. 조금씩 활기를 띄던 길이 팔달문 로터리 주변에서는 상당히 번잡해진다. 팔달문은 지금 외부에 비계를 설치해놓고 보수 중이다. 팔달문을 보니 삼십여 년 전의 모습들이 어슴푸레 기억이 난다. 그 때 우리들은 팔달문 앞에서 만나 근처에 있는 대승원으로 함께 올라갔기 때문이다. 팔달문 로터리를 끼고 돌아가는데 마주 오는 사람들 몇몇이 하얀 종이에 싸인 빵 같은 것을 뜯어 먹으면서 걸어온다. 나도 시장기가 약간 도는 참이라 저게 뭐지? 하고는 그냥 지나쳐간다. 거기서 머지않은 곳에 화성행궁이 있다. 행궁 주차장이 있는 곳을 지나 화성 성곽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왼편으로 동네가 보이는데 그 위로 황금색 여래입상이 불쑥 솟아 있다. 정오 햇살을 받아 황금색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는 중이다. 저기에 절이 있는 모양인데 저 절에 들렀다 서장대를 오르기로 하지. 생각하고는 그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대승원이라 쓰여 있는 이편 출입구가 아마 후문인 듯한데 왠지 절 이름이 낯이 익다. 대승원, 대승원이라... 아하, 그렇구나! 30여 년 전에 우리들이 하룻밤을 묵으면서 쉘부르의 우산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보았던 바로 그 절이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든다. 여기저기 잔설이 남아 있는 도량을 한 바퀴 돌아본다. 다른 곳은 눈에 익은 곳이 별로 없는데 정문인 일주문과 범종각, 그리고 아래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기억 한 구석에 아삼삼한 채로 남아 있다.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설마 있으랴 생각하고는 여래입상如來立像 앞에서 참배를 올리고 들어왔던 후문으로 다시 나가 서장대를 향해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선경도서관을 먼 발치로 지나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화성 성곽길이 나오고, 산등성이 따라 오르는 성곽길을 걸으면 머지않아 서장대에 이르게 된다. 길 가장자리와 음지쪽에는 아직 하얀 눈들이 그대로 쌓여 있다. 서장대에서 아래쪽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수원 시가의 전경을 둘러본 뒤 화성문과 장안문을 향해 걸어 내려간다. 그리고 장안문에서는 돌계단을 밟고 내려와서 다시 시내로 들어온다.
일상日常이란 생활이 반복 되는 일, 만남이란 시간과 공간이 서로 겹쳐지는 일.
다시 화성행궁 광장 앞을 지나고 팔달문 로터리를 끼고 돌아 나오는데 福 왕만두 찐빵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가게 앞에 진열된 찐빵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참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 시장하기도 해서 가게에 들어가 손바닥만한 찐빵 두 개를 샀는데 가게 안에는 앉아서 먹을 탁자가 따로 준비되어 있지가 않다. 그래서 하얀 종이에 싼 찐빵을 들고 나오다 생각을 하니 아까 여기를 지나올 때 사람들이 하얀 종이에 싸여있는 빵 같은 것을 손으로 뜯어먹으며 지나갔던 일이 생각이 난다. 아하, 그 사람들도 이 가게에서 찐빵이나 만두를 사서들고 걸으면서 먹고 지나갔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팔달문 로터리를 지나자마자 서장대로 올라가는 계단 길이 또 나타나고, 그 옆으로는 동네 안에 팔달사라는 절이 보인다. 팔달사 안으로 들어가 범종각梵鐘閣 아래 있는 벤치에 앉아 일없이 찐빵을 두 개나 먹는다. 마침 시장하던 참이라 찐빵 두 개를 달게 해치운다. 팔달사를 나서는데 이번에는 목이 마르다. 절에서 물을 마시고 나올 걸 하다 한번 내친 걸음을 되돌리기 귀찮아 그대로 걷다보니 길 오른편에 기업은행이 보인다. 그래서 순전히 따뜻한 물이 먹고 싶어 은행으로 들어간다.
요즘 은행 안은 여유 공간을 고객 휴게소로 꾸며놓아 간단한 차나 음료를 마시며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만들어놓는다. 그곳에는 녹차와 막대봉지 커피가 갖춰져 있는데 평소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가 어쩐 일인지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어져서 일단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난 뒤에 커피를 타서 안락의자에 앉아 홀짝 거리며 마신다. 그러다가 안쪽 상담실에서 상담을 마치고 잠시 차를 한 잔 마시려고 휴게실로 들어오는 수원역사에서의 그 여자 분과 딱 마주치게 된다. 만남이란 시간과 공간이 서로 겹치는 일을 말한다는 정의定義는 이럴 경우에는 매우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수원역사 계단에서는 하얀 종이백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었던 것처럼 은행 휴게실에서는 탁자에 차를 놓고 마주 앉아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런저런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끼리는 서로 알기 전에는 그저 많고 많은 객관적인 대상對象의 하나일 뿐이지만 서로 통성명通姓名을 한 뒤에 어느 정도 서로를 알고 나면 매우 주관적이고 의미 있는 상대相對가 된다.
“아, 그러셨군요. 그러니까 그 하얀 종이백에 들어 있던 게 친구 생일 선물이었군요.”
“그걸 놓아둔 채 잊고 내렸더라면 친구 생일 선물을 또 살 뻔 했지 뭐에요.”
30여년餘年 만에 수원을 방문 할 때는 혼자서 갔지만 수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말동무가 생겨 이야기를 나누면서 돌아온다. 수원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나는 금정역에서 지하철 4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내려야 한다. 우리는 전철 안에서 인사를 한 뒤에 나는 내리고 그 여자 분은 여의도까지 그대로 가기 위해 다시 자리에 앉는다. 생활이 반복되는 일 사이에 시간과 공간이 서로 겹쳐지는 일이 생기기도 하는 모양이다.
(- 그대, 수원에 가시거들랑. -)
첫댓글 생활이 반복되는 일 사이에서 시간과 공간이 서로 겹쳐지는 일 . . . 자주 일어나면 인연이 되고 . . .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