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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대표 명절답게 부처님오신날(5월12일)이 다가오면서 사찰은 봉축준비로 분주하다. 승가대학 학인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다. 부처님오신날 방학 전 도량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쓸어내고, 도량을 밝힐 연등도 만든다. 지난 4월18일 김천 청암사승가대학에서도 울력이 한창이었다. 육화료에 모인 스님들은 곱게 꼬아 놓은 연잎을 붙여 전통등을 만들고 있었다. 청암사 승가대학 화제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원화스님이다. 열다섯 살에 출가해 승가대학 2학년이 된 스님은 학인 스님들 사이에서 여전히 막내라 스님들의 귀여움 독차지하고 있다. 말괄량이 같은 원화스님과 그 곁을 지켜주는 도반 혜도스님, 혜장스님을 만났다. 승가대학에서 두 번째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는 스님들의 얘기를 들었다. |
지난 4월18일은 청암사에서 연등을 만드는 날이었다. 청암사 학인 스님들과 대중 스님들이 모여 연잎을 한 장 한 장 붙이며 정성껏 연등을 만들었다. 연등울력시간에도 원화스님은 분위기 메이커였다. |
청암사 마스코트 원화스님
유쾌함 넘치는 천진불 같아
BTS 좋아하는 10대 청소년
틈나면 공부한다는 혜장스님
딸 같은 도반과 못 놀아줘
미안하지만 이번 생엔 공부!
도반에게 엄마같은 혜도스님
맡은 일 최선 다하는 책임감
행사 좀 줄었으면 하는 바람
신입 학인 스님들이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인수인계 전이라는 스님들은 2학년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막내라고 했다. 혜도스님은 “후배 스님들이 아직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희가 막내역할까지 병행 중이라 바쁘다”고 소개했다.
혜장스님은 이제 겨우 눈이 좀 떠지는 것 같다고 한다. “처음 승가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하나하나가 다 생소해서 뭐든 힘들었다”며 “제가 또 잘 잊어버리는데, 그에 비해 원화스님이 빠르게 흡수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부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원화스님은 어떨까.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다르게 스님은 “우리 치문 때는 이렇지 않았다”며 “인수인계를 빨리 받아서 작년 이맘 때 쯤 찬상도 나르고, 이불도 나르고 했는데 요즘엔 치문반 스님들이 상반 같다”고 불만 아닌 불만을 토로한다.
고대 이집트 어른들이 “요즘 애들 버릇없다”고 한 얘기를 출가한지 2년 된 스님에게 들으니 놀랍고 한편으론 웃음이 난다. 계간지 <청암> 편집장을 맡고 있는 혜소스님은 원화스님의 얘기를 듣고 “그 얘기는 모든 학인 스님들이 하던 얘기”라며 새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부처님오신날 연등울력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것을 느낀다. 혜도스님은 “작년엔 막내라 종두 소임을 맡아서 선배 스님들 심부름을 도맡았는데 올해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울력하는 시간이 좀 늘었다”고 한다. “풀 나르고 연등 나르면서 선배 스님들이 연등울력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전부였다”는 혜장스님은 “눈으로 볼 때 잘 하거 같았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익숙해지려니 울력이 끝나서 아쉽다”고 한다.
작년에도 연잎에 풀 붙이고 올해도 풀을 발랐다는 원화스님은 일취월장했다고 자평했다. “작년에 선배 스님들이 풀을 척척 바를 때 저 혼자 느릿느릿 했다면 이제는 속도가 난다”며 “오히려 다른 스님들에게 ‘빨리 좀 하이소’ 하고 말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울력도 울력이지만 공부도 늘었다. 원화스님은 “예전에 경전을 펴면 검은 건 글자고 흰 건 종이였는데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고 자랑했다. 스님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태국에서 유학했고 중학교 과정을 마치기도 전에 출가를 해 한문을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스님은 “아비 부(父) 어미 모(母) 정도만 알고 왔는데 이제는 한문 <원각경>을 읽을 수 있다”며 “주지 스님 앞에서 <원각경> 다 읽은 날에는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대방에서 <원각경>읽고 환희작약 하던 원화스님의 모습은 청암사 대중 스님들 모두의 뇌리에 박혀 있다. 대방이 떠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지르며 자화자찬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주지 상덕스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원화스님에게 상덕스님은 울타리 같은 존재다. 늘 푸근하게 대해주고 어리광도 받아준다. 힘들 때는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가끔 지나치면 혼날 때도 많지만, 상덕스님의 격려가 있어 <원각경>도 무사히 독파할 수 있었다.
한문 때문에 이번 생에 출가 안하려고 했을 정도라는 혜장스님은 바쁜 마음에 시간 날 때마다 대방에서 공부를 한다. 스님은 “늦게 출가했지만 이번 생에 반드시 공부의 씨앗을 심어놓고, 다음 생에는 공부가 무서워서 도망을 다니는 게 아니라 부처님 법을 만났을 때 바로 뭔가 할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혜장스님의 각오를 곁에서 듣던 원화스님은 추임새를 빠트리지 않았다. “우리 셋 중에 혜장스님이 한문을 제일 잘하는데 엄살을 부린다. 대방에서 공부하느라 저랑도 안 놀아준다”며 애교어린 투정을 부린다.
청암사승가대학 2학년 스님들이 즐겁게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원화스님, 혜장스님, 혜도스님. |
외계인 침공도 막아준다는 질풍노도의 중2, 열다섯 원화스님을 만난 도반 스님들은 세대 차이를 느낄까.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원화스님은 “제 반항심이 작년보다 심해진 것 같다. 제 생각에도 위태위태하다. 마음속에서 경보가 울리는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고 너스레를 피운다.
“억눌렸던 마음이 표출된 것은 아니냐”며 은근슬쩍 놀리는 혜장스님은 “우리 도반들도 경계하고 있다. 사춘기 딸과 갱년기 엄마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던데, 우리는 원화스님을 절대 못 이긴다”고 백기를 들었다.
원화스님으로부터 ‘엄마’라고 불리는 혜도스님은 “스님과 무사히 승가대학을 졸업하면 성불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웃는다. 엄마와 딸 같은 나이 차이에도 쿵짝쿵짝 대화가 이어지면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청암사 승가대학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떤 스님이 되고 싶냐고 스님들에게 물으니 원화스님은 “승가대학을 졸업해도 미성년이라 구족계를 받을 수 없다”며 “검정고시 준비가 우선”이라고 한다. “엄마가 시험공부 하라고 책을 바리바리 보내주셨지만 승가대학 생활도 빠듯해서 검정고시 공부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며 “책을 경상에 올리려면 허락도 맡아야 되는데, 이제 겨우 2학년이 그러는 건 제 생각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어른스럽게 대답한다.
“그때그때 저에게 주어진 소임에 충실하자는 주의”라고 밝힌 혜도스님은 “구족계 수지 후에 포교든 교육이든 어떤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혜장스님은 율학승가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다. 처음에는 늦은 나이에 출가해 전문교육기관까지 가야하나 생각했는데 공부하다보니 계율을 모르고서는 스님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한다. 또 스님은 “누구나 와서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수행자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각자의 바람을 물으니 스님들마다 간절함이 담겨 있다. 혜도스님은 “출가 전에는 스님들이 이렇게 바쁘게 사는 줄 몰랐다”며 주지 스님에게 “행사 좀 제발 줄여달라”고 부탁했다. 원화스님도 “학교에서는 앉아서 강의만 듣고 필기하면 됐지만, 여기서는 머털도사처럼 머리카락을 뽑아서 복제인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바쁘다”며 혜도스님의 손을 들어줬다.
원화스님의 바람은 한 수 위다.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사실은 청암사 모든 대중 스님들이 아는 사실이다. 휴대폰은 사용할 수 없지만, 스마트캠퍼스용 아이패드로 틈틈이 여가생활을 한다는 원화스님은 틈만 나면 방탄 노래를 흥얼거려 스님들 사이에선 유명하다. 방탄 멤버들이 불국사, 향일암, 보문사 등을 방문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는 원화스님은 청암사에도 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저학년 스님들은 주로 연잎에 풀칠을 담당한다. |
연잎을 붙이는 건 구참 스님들의 몫이다. |
정성껏 만든 연등을 툇마루에서 말리고 있다. |
[불교신문3487호/2019년5월11일자]
김천=어현경 기자 사진=김형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