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 하혈하는 밤 / 이서빈
여보게
지렁이 흐느끼는 소리 들리지않는가
죽은 지렁이 혼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산허리 강발치 자욱한 안개로 떠돌고 있네
세상 불 켜지고 꺼지는 일, 모두 지렁이 환영(幻影)일세
징그러운 몸뚱이라 희롱하지 말게
죽은 영혼에 쌀 한 숟가락 넣어주듯
종(種) 영혼 한 톨 부활위해
밖을 숨기고 흰배로 중력을 걷어내며
꿈ڪ 틀ڪ 꿈ڪ 틀, 제 안의 온도 이식하는 것 좀 보게
누가 자신의 몸 저 지렁이인 줄 알겠는가
살충제 먹은 지렁이 하혈소리 지구를 적시고
속이 타 땅위로 올라오다 땡볕에 녹아
여기저기 시체 끌고 가는 불개미 운구 행렬 보이지 않는가
마당 한 쪽 흙,흑흑 바싹 말라 푸석한 지렁이 눈물소리
그건 세상에 위험이 급물살로 달려오고 있다 위급 알리는 통곡일세
만물의 영장 인간 파릇파릇 숲
모든 생명체는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모퉁이 안쪽에서
지렁이가 종야(終夜) 토해낸 눈물 한 점일 뿐이란 걸
자네는 아는가!
-- 이서빈 외 동인 시집 『함께, 울컥』 (지혜, 2022.10)
* 이서빈 시인
1961년 경북 영주 출생, 방송통신대 국문학과를 졸업.
201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달의 이동 경로』, 『바람의 맨발』, 『함께, 울컥』
민요시집 『저토록 완연한 뒷모습』
시인뉴스. 모던포엠. 현대시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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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이산화탄소를 들이마시고 산소를 토해낸다. 모든 동물들은 산소를 들이 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뱉어낸다.
이처럼 대자연은 상호 보완적인 공생의 관계 속에서 만물의 공동 터전이 된 것이다.
자연이란 인간이나 그 어떤 신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우주적인 질서라고 할 수가 있다.
자연은 거대한 그물망처럼 점조직으로 짜여져 있으며, 하나의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룬다.
이 선과 선들이 면을 이루고, 이 면들이 입체를 이루고, 이 입체와 입체들이 대자연의 우주가 된다.
대자연에는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존재하는 것도 없고, 어느 것 하나 더 하거나 뺄것도 없다.
물과 불과 바람과 흙의 균형과 조화, 산과 강과 바다와 들과의 균형과 조화, 태양과 달과 별과 은하계와의
균형과 조화, 산소와 이탄화탄소와 수소와 음과 양 등의 균형과 조화를 생각해보면
대자연은 너무나도 완벽하고 경이로운 체계와 질서로 구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빙하기에는 수많은 탄소들이 지하에 매장되어 있었고, 그래서 바다의 수위가 오늘날 보다 120m나 낮았다고 한다.
동식물들의 사체에 지나지 않는 화석연료를 너무나도 많이 채굴해낸 결과, 오늘날에는 남, 북극의 빙하들이
다 녹아내리고, 지구는 점점 더 더워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지구촌의 위기는 화석연료, 즉, 에너지 과다 사용의 위기이며, 자연의 법칙에 도전한
우리 인간들의 만행 때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은 본래 어느 악마보다도 더 월등하게 악질적인 악마이며,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돌대가리 중의 돌대가리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연이 거대한 그물망처럼 점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 모든 것이 균형과 조화 속에서
존재하고, 따라서 자연은 만물의 터전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나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순간, 우리 인간들은 모든 동식물들과 함께,
지구촌 대참사라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게 된 것이다.
만일, 호랑이와 곰들에게 총과 칼을 쥐어준다면 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종의 균형과 자연보호 차원에서
지구촌 인구의 60억 명 정도는 다 죽여버릴 것이다.
모든 동식물들이 ‘대자연 만세’를 부르고, 너도 나도 춤을 추며, 더없이 기뻐하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지렁이 하혈하는 밤]은 그가 이끌고 있는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 시집, 『함께, 울컥』에
수록되어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여기 열다섯 명의 시인이/ 앓고 있는 지구의/ 말을 번역했다”, “지구의 신음을 찍어 한 자 한 자 시를 엮었다”,
“지구는 한 번도 인간을 헤친 적 없고/ 인간은 한 번도 지구를 떠나서 산 적 없다”,
“동물의 숨소리 식물의 숨소리가/ 봄을 뚫고 튀어나와/ 싱싱해 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생태계를 새파랗게 키워낼 것이다.”(이서빈, 『함께, 울컥』 머릿말)
지렁이는 빈모강에 속하는 환형동물이며, 습기와 유기물이 충분한 토양에서 산다.
대부분 토양의 표면에서 살지만, 추운 겨울에는 약 2m의 굴을 파고 들어가고, 몸길이는 약 10cm 정도이며,
체절로 나누어져 있다고 한다.
무엇을 보거나 들을 수도 없고, 빛과 진동에 민감하며, 부패한 생물체를 먹고 살아간다.
지렁이는 토양에 공기를 유통시키고, 배수를 촉진시킨다.
유기물질을 빠르게 분해하여 영양이 풍부한 물질을 제공해주고, 또한, 수많은 어류들의 미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서빈 시인의 [지렁이 하혈하는 밤]은 생태환경 측면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지렁이 한 마리의 흐느낌에서
지구촌의 신음소리를 듣는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여보게/ 지렁이 흐느끼는 소리 들리지 않는가”라는 시구는 지렁이를 하찮은 미물이라고 폄하하는
우리 인간들의 마비된 의식을 일깨우고, “죽은 지렁이 혼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산허리 강발치 자욱한 안개로
떠돌고 있네”라는 시구는 죽어서도 정처없이 떠도는 지렁이의 너무나도 안타까운 비명횡사를 말해준다.
이 세상에 “불 켜지고 꺼지는 일”은 모두가 “지렁이 환영幻影”이며, 이 세상의 지렁이가 사라지면
모든 동식물들이 다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누가 감히 지렁이를 징그러운 몸뚱이라고 희롱할 수가 있겠으며,
어느 누가 “죽은 영혼에 쌀 한 숟가락 넣어주듯/ 종種 영혼 한 톨 부활위해/
밖을 숨기고 흰배로 중력을 걷어내며/ 꿈ڪ 틀ڪ 꿈ڪ 틀, 제 안의 온도 이식하는”
지렁이의 삶의 철학과 그 예술 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의 탐욕과 만행에 의해 “살충제 먹은 지렁이 하혈소리 지구를 적시고/
속이 타 땅위로 올라오다 땡볕에 녹아/ 여기저기 시체 끌고 가는 불개미 운구 행렬”을 보게 된다.
요컨대 이서빈 시인과 지렁이는 둘이 아닌 하나이며, 나는 그 지렁이와 함께 피를 토하듯이
한 자, 한 자 온몸으로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서빈 시인의 [지렁이 하혈하는 밤]은 검은 잉크로 쓰지 않고 붉디 붉은 피로 쓴 시이며,
또한, 그 시는 손으로 쓰지 않고, 지렁이처럼 “꿈ڪ 틀ڪ 꿈ڪ틀” 온몸으로 쓴 것이다.
마당 한쪽의 흙이 바싹 말라가면 흑흑하는 지렁이의 눈물소리가 들려오고, 지렁이의 눈물소리가 들려오면
그것은 세상의 위급을 알리는 통곡소리가 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파릇파릇한 숲만을 보지, 이 파릇파릇한 숲이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모퉁이 안쪽에서/
지렁이가 종야終夜 토해낸 눈물 한 점”의 소산이라는 것을 모른다.
부분은 전체와 관련이 있고, 전체는 부분과 관련이 있듯이, 지렁이 한 마리의 힘이
모든 생명체를 다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이다.
[지렁이 하혈하는 밤]은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들’과 이서빈 시인이 하혈하는 밤이며,
대자연의 푸른 숲과 모든 생명체들이 다 죽어가는 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의 탐욕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특권으로 포장되고, 만물의 영장이라는 특권이
‘돌대가리 중의 돌대가리들’인 악마들의 잔혹극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아, 이서빈 시인이여,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동물의 숨소리 식물의 숨소리가/
봄을 뚫고 튀어나와/ 싱싱해 지는 그날까지/ 우리는/ 생태계를 새파랗게 키워낼” 수가 있단 말인가?
돌대가리들 중의 돌대가리들인 악마들이 더 많은 특권과 더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모든 생태환경을 다 파헤치고
저렇게 지랄발광을 하고 있는 이 시대에----.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