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이 패망 하던 날 / 朴正熙 대통령의 日記(1975년 4월 30일) 1975년 4월 30일 월맹 탱크가 사이공의 월남 대통령 관저인 독립궁 철문을 부수고 들어가 월맹 깃발을 올리고 있을 때 朴正熙(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청에서 수출진흥 확대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길을 걸으면서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공산군은 처음에는 티우 대통령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 다고 하더니 후임인 후옹 대통령도 물러나라고 했고, 그런 뒤 민 대통령이 들어서자 그와는 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 니다. 월남의 反정부 인사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지금 피난길을 걷고 있으면서 그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있는 지 어떤지 궁금합니다. 앞으로 공산치하에서 그 反정부인사들이 지금까지 했던 '인권과 자유'를 달라는 그 주장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주의 깊게 지켜봅시다.”
의 자유 수호를 위하여 8년간이나 싸워서 그들을 도왔다. 연파병수 30만 명. 이제 그 나라는 멸망하고, 월남공화국이란 이름은 지도상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참으로 비통하기 짝이 없다.
를 우리는 보았다. 남이 도와주려니 하고, 그것만을 믿고 나라 지키겠다는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망국의 비애를 겪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난 연후에 아무리 후회 해 보았자 後悔莫及(후회막급)일 것이다. 충무공의 말씀대로 「必死卽生(필사즉생) 必生卽死 (필생즉사)이다. 이 강산은 조상들이 과거 수천 년 동안 榮枯盛衰(영고성쇠)를 다 겪으면서, 지켜오고 이룩한 조상의 나라이자, 조국이다.
원히, 영원히,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켜가야 한다. 저 무지막지한 붉은 오랑캐들에게 더럽혀서는 결코 안 된다. 지키지 못하는 날에는 다 죽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한다면 결코 못 지킬 리 없으리라.》 거의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건국 초기에는 국민들의 사기가 왕성하고, 건설에 대한 의욕이 높아 外敵(외적)의 위협이 있더라도 능히 이를 격퇴할 수 있으나, 위협이 없어지면, 국민이 방심하여 사치해지고 그 같은 사치 가 만성화될 때 衰殘(쇠잔)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금 우리 눈 앞에는 위기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침략자의 뜻이 성취 될 경우 우리 민족사의 反轉(반전)을 초래할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 적어도 대한민국의 지도자라면 이 정도의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이 확립돼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 이야 말로 이 나라를 나라답게 지켜낸 命世之才(명세지재) 중의 한 분이다. 털끝 하나라도 훼손시키려는 자들은 하늘이 용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