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윤석이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대중 앞에 나타나서는 지금은 관심을 한 몸에 모으고 있다. 요즘은 ‘너무 잘나가서 걱정’이라는 김윤석을 만났다.
“갑자기 유명해지고 요즘 내가 겪은 변화들, 달라진 일과 가족 이야기”배우 김윤석은 단연 올해의 발견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오동구(
류덕환)의 거친 아버지, <타짜>의 절대악이나 다름없는 아귀. 두 역할로 그는 단숨에 주목받는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는 이전부터 TV 드라마를 통해 이미 아줌마들의 스타가 돼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일찌감치 성공이 예상되던 준비된 배우였다.
“내가 송강호와 닮았다고요?”그 성공의 1차 종착역은 단연 <타짜>. 이미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한 <타짜>는 공공연히 ‘천만’이라는 예상이 나올 정도로 그 흥행세가 가파르다. 이 작품에서 김윤석은 오랜 기간 단련된 것 같은 잡티 없는 굵은 목소리, 상대방의 기를 단숨에 누르는 대사의 순발력, 그리고 위압적인 눈빛까지 영화의 후반부를 절대적으로 지배한다. 물론 원작 만화의 아귀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늙수그레한 외모에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원작의 아귀와 달리 김윤석이 연기하는 아귀는 마치
하드보일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잔인무도한 인물이다.
<타짜>의 김윤석은 <천하장사 마돈나>에서와는 또 다르다. 오동구의 아버지가 나름 인간적인 냄새를 간직한 불쌍한 인물이라면, 아귀는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극악무도한 인물이다. 아무런 빈틈도 없다. 자신에게 복수를 부탁하는 인물에게 “복수 같은 그런 순수한 인간적 감정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그게 내 아버지 복수도 아닌데, 식칼로 배를 쑤시든 망치로 머리를 찍든 고기값을 번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윤석이 스스로 정의하는 아귀의 세계는 그렇다. 그게 도박
범죄자들을 쫓는 형사의 얘기라면 틀려지겠지만 사기도박의 세계를 그리기에 철저히 냉정하게 그려져야 한다고 본 것이다.
“그 세계가 다소 멋지고 낭만적으로 그려질 수 있고 그 우정이나 의리가 부각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도박의 끝에 얼마나 끔찍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나, 얼마나 섬뜩하고
괴물 같은 존재가 버티고 있나, 하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아귀를 보면서 ‘아, 도박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천하장사 마돈나>의 그를 보면서 송강호를 떠올렸을 법하다. 유사한 연기 스타일과 더불어 마치 송강호가 <
초록물고기>, <
넘버3>에 단숨에 등장한 것처럼 그 역시 마치 우리 주변 어디에선가 본 듯한 얼굴로 나타난 것이다. 나이로는 김윤석이 형이며 실제로 그들은 비슷한 점이 많은데다 같은 스승을 두고 있다. 먼저 송강호는 경남 김해, 김윤석은 부산으로 두 사람 모두 경상도 출신이며 연우무대, 극단76에서 함께 활동했다. 심지어 함께 자취생활을 했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다.
“같이 자취를 한 게 아니고 내가 자취하면서 잘 살고 있는데 거기에 강호가 와서 지낸 거죠. 강호는 형이랑 같이 있었는데 그게 좀 불편하고 내가 더 편하니까 나한테 온 거예요. 자취방이 수유리에 있었는데 대학로하고 가깝기도 하고 그래서 새벽까지 술 마시다가 집에 못 가게 된 애들 다 몰려와서 자고 그랬죠. 송강호랑 비슷해 보인다는 얘기 정말 지겹도록 들었어요. 기본적으로 우리 둘 다 추구하는 연기관이나 좋아하는 연기 스타일이 너무 비슷해요. 하지만 나와 작업해본 감독들은 둘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말해요.(웃음)”
우리 주변의 인물 같은 친근감이 느껴지는 배우영화배우로서의 그가 착실하게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다면, TV 드라마 속의 김윤석은 이미 중요한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었다. 아침드라마 <있을 때 잘해!>는 단연 그 선두에 있다. 아마도 그는 젊은 영화 관객이 아니라 TV 앞의 아줌마들이 가장 먼저 발견한 배우일 것이다. 아줌마들의 욕을 한 다발씩 들으면서 그는 차근차근 성장했다. 드라마 속 인물 하동규는 바람난 남자이긴 한데 뭔가 좀 이상하다. 절대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정 안 가는 인물이지만 이상하게 계속 눈길이 가는 남자다. 그래도 <천하장사 마돈나>, <타짜>와 비교하자면 어딘가 공통적으로 좀 비도덕적이고 마음이 쉽게 가지 않는 인물들을 연기했다.
“참 이상해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이상하게 올해 들어온 세 편 모두 뭔가 좀 잘못되고 빠져 있는 모습이에요. 조그만 인간적 매력이 발견된다 할지라도 완전히 좋아하기도 힘든 인간이고. 그렇게 다들 겹쳐지는 모습이 있긴 한데 하동규의 경우는 무엇보다 배역 자체가 묘한 매력이 있어요. 가령 하동규는 법을 어기는 범죄자나 조폭이 아니라 오직 도덕이나 윤리로만 욕할 수 있는 캐릭터죠. 나쁜 놈이긴 하지만 딱히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닌 거예요. 그런 묘한 경계선에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어쨌건 중요한 것은 하동규건 아귀건 오동구 아버지건 간에 다들 좀 실제 생활에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부류의 인간들이라는 점이죠.(웃음)”
김윤석의 연기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전혀 느끼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연기에는 인물을 돋보이게 하려고 오버하거나, 캐릭터를 풍부하게 만든답시고 특별한 설정을 하는 경우가 없다. 말 그대로 정말 우리 주변의 인물 같고, 그냥 그 세계에 사는 사람을 가만히 몰래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연기에 자연스레 빠지게 만드는 묘한 흡입력이 있다. 그는 스스로도 ‘겉멋’을 경계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아무래도 송강호와 함께 머무른 극단76의 영향이 크다. 1990년에 서울로 와서 그는 연우무대를 시작으로 극단76에도 몸담았다.
“연우무대를 나와서 낭인생활을 하다가 기국서 선생을 만나 정말 강렬한 충격을 받았어요. 연극이라는 게 결국은 인간에 대한 얘기, 인간에 대한 집요한 탐구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멋이라는 게 화려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가진 것 하나 없는 떨거지가 담배꽁초 하나 딱 주워서 기분 좋게 피우는 게 멋이라는 것도요.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이죠. 소위 ‘아우라’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그런 데서도 나오는 거예요.”
부산은 김윤석의 고향이자 그의 연기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만큼 지금의 김윤석을 만든 건 바로 부산의 추억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영화를 좋아해 주말이면 꼭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봤고 부산 연극도 많이 보러 다녔다. 사실 그는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살았지만 당시 그런 ‘예술에의 꿈’은 시쳇말로 ‘집에서 맞아죽을 짓’이었다. 그러던 차에 부산 동의대에 입학하면서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 본격적인 배우의 꿈을 키웠다.
만날 데모하고 휴교령이 내리던 시절,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는 청년기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묘한 매력이었다. ‘대학생 김윤석’은 이때부터 엄청난 활약을 했다. 전국대학연극제 본선 진출도 한번 못 해본 동아리가 그의 연출로 <견습아이들>을 무대에 올리면서 본선 진출은 물론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부상으로 유럽 연수까지 다녀오게 된다. 러시아, 폴란드 등 동유럽을 돌아다니며 그는 세상이 참 넓다는 걸 느꼈고, 이전보다 더욱 성숙해졌고, 그 기억을 발판으로 나중에 서울 대학로로 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털웃음을 짓게 되지만 한때 그도 부산에서 혹독한 방황기를 보낸 적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연극을 하기 싫다는 생각에 무작정 부산으로 내려간 것이다.
“참 게으른 선택이기도 한데 정말 그렇게 살기가 싫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부산에서 ‘극단 현장’에 들어가 활동하다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 몇 년 그렇게 연극하고 술 마시고 다니다 보니까, 정말 아등바등 출연하려 애쓰고 그러는 게 갑자기 너무 싫더라고요. ‘에이씨 안 할래, 바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산으로 내려갔죠. 지금은 가족이 있으니 그런 건방지고 치기 어린 생각을 할 수 없지만 내 연기 인생에서 일탈은 그때 딱 한 번이었어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기에 남들이 다 바보라고 했죠. 정말 후회 많이 했어요. 그때의 기억이 나를 객관화해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아내는 뮤지컬 배우, 벌써 두 아이의 아빠무작정 부산에 온 그는 광안리에 라이브 재즈 카페를 열고 지냈다. 그러던 중 기획사를 차린 친구의 제안으로 1997년 ‘극단 예오’를 차리고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연기도 연기지만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방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 고되고 한계가 있는 작업이었다. 송강호로부터는 만날 ‘다시 오라’는 전화가 왔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옛 동료들과 함께, 공연에 참여했고 학전에서 <의형제>에 출연했다. 특히 <의형제>에서 모자지간으로 출연한 연극배우이자 뮤지컬 배우인 방주란과 결혼식도 올렸다. 지금은 어엿한 두 아이의 아빠. 이때의 김윤석은 바로 지금의 김윤석과 같다 해도 틀리지 않다.
“다시 서울로 오고 보니 내 스스로 좀 달라졌다는 걸 느꼈어요. 작품 분석, 인물 분석하는데 이전과 좀 달라진 것 같고 쉽게 말해, 그 기간 동안 좀더 어른스러워진 거 같았죠. 열정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무조건 열불을 토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 치기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았어요.”
이렇게 먼 길을 지나 지금 김윤석은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특히 올해 그는 몸이 서너 개라도 모자랄 시간을 보냈다. TV 드라마에다 영화는 물론 4년 만의 연극 <가을날의 꿈>까지. 그사이 드라마는 소위 너무 잘나가서 난리가 났고, 영화는 출연하는 족족 새로운 감독과 제작사의 캐스팅 타깃이 됐다. ‘다시는 이런 스케줄 잡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그는 한바탕 몸살을 앓았다. 아직 <타짜> 이후의 작품을 정하진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신작 시나리오가 그에게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뻔하다. 그래도 아직은 조심스럽다. 눈앞의 성공에 일희일비할 나이는 지났기 때문이다. ‘연출’의 꿈을 접은 지는 오래지만 요즘 그에게 탐나는 역할이 있긴 하다.
“<
실락원>은 소설도 영화도 다 좋아하는데, 그런 유의 현실을 이기지 못하는 멜로영화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사랑의 힘을 믿지 못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애절한 멜로 말이에요.”
김윤석은 여전히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도전에 목말라 하고 있다. 이전보다 편한 자리에서, 익숙한 캐릭터로 계속되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그런 건 언제나 배우 김윤석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변함없는 신인의 마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