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6. 4. 24 - 4. 25
2. 여행지 :
o 김포 장릉 : 국가유산청 100 선정
o 강화 고인돌+ 역사박물관 : 국가유산청 100선정
o 고창 판소리박물관 : 국가유산청 100선정
o 고창 읍성
3. 명소 해설
가. 김포 장릉 :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
o 장릉은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원종(1580~1619)과 인헌왕후(1578~1626) 구 씨를 모신 능이다.
o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광해군의 이복동생)으로 태도가 신중하고 효성과 우애가
남달라 선조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o 1604년 임진왜란 중 왕을 호종 했던 공으로 호성공신 2등에 봉해졌다.
왕을 뜻하는 '종'이라는 묘호를 갖고 있음에도 원종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낯선 까닭은
그가 생존 당시의 왕이 아니라 추존된 왕이기 때문이다.
o 원종은 사망할 때 정원군인 '군'의 신분이었으므로.
현재 남양주시 금곡동 처갓집 선산에 초라하게 묻혀 있었다.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정원군의 아들 능양군(인조)이 왕이 되자
이미 고인이 된 정원군은 정원대원군으로 높여졌고,
o 10년 후에 묘호가 원종으로 추존되었으며. 묘도 원으로 추승되어 흥경원이라 했다.
이후 원종의 무덤은 현재의 자리인 김포시로 옮겨지면서 장릉이 되었다.
o 인헌왕후는 아들이 즉위하자 연주부부인이 되었고 궁호를 계운궁이라 했다.
1626년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김포 성산 언덕에 예장했다가 원종의 능인 현재 자리로 천장했다.
나. 강화 고인돌
o 1964년 7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o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높이 2.6m,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7.1m, 너비 5.5m이며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o 부근리 고인돌은 모두 10기(基)로, 비지정인 128번 고인돌을 제외한
9기가 세계유산에 포함되어 있다.
o 받침돌[支石]은 두개의 긴 굄돌만 있는데 방향은 대략 남북이다.
다. 강화 역사박물관
o 강화역사박물관은 강화의 문화유산을 보존·연구하여 전시할 목적으로
세워진 공립박물관으로 갑곶돈대 옆에 있었던 것을 2010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하여 영상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o 상설전시실에는 강화의 선사유적지와 고려왕릉에서 출토된 유물과 향교,
전통 사찰 소장품 등의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고,
o 기획전시실에서는 해마다 다채로운 주제의 특별전이 열린다.
라. 고창 판소리 박물관
o 고창군 고창읍에 위치한 판소리 전문 박물관. 부지 면적 5,525.45㎡,
건물 연면적 1,219.29㎡에 5개의 전시실과 작업실, 연구실 등을 갖추고
2001년 6월 25일 개관했다.
o 2006년 11월 박물관 2층에 기획전시실과 자료실을 설치했다.
o 상설전시실은 판소리도, 모흥갑판소리도, 광대줄타기 등이
전시되어 있는 입구의 ‘멋마당’에서 시작된다.
o 원형전시실인 ‘명예의 전당’에서는 판소리 역사에 관한 영상과
‘세계 무형문화유산과 판소리’를 주제로 전시된 사진을 관람할 수 있다.
‘소리마당’에서는 판소리의 역사와 함께 판소리 광대들의 유물인 소리북, 합죽선 등을 볼 수 있다.
‘이나리마당’은 동리(桐里) 신재효와 고창의 소리꾼들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공간이다.
‘발림마당’은 판소리 여섯 마당의 눈대목을 들을 수 있고,
판소리 전승방식인 ‘구전심수’(口傳心授)를 통해 단가와 고법을 배울 수 있는
‘구전심수교실’이 마련되어 있는 체험 공간이다.
마. 신재효 고택
o 신재효 고택은 판소리 이론가이자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1812~1884)가 살던 집으로, 철종 1년(1850)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광무 3년(1899)에 그의 아들이 고쳐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o 원래는 소박한 초가 사랑채로,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고창 경찰서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국가가 관리하며 옛 모습을 복원했다.
바. 고창 읍성(모양성)
o 고창읍성은 고창 지역의 진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반등산을 에워싼 형태로 축조되었다.
반등산이 고창읍의 남쪽에 있어 읍성은 북쪽을 향해 축조되었다.
o 따라서 읍성은 남고북저(南高北低)의 지형에 따라 지어졌으며, 북문이 정문이다.
o 성벽에 '제주시(濟州始)', '화순시(和順始)', '나주시(羅州始)' 등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전라도의 여러 고을을 동원하여 성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o 아울러 '계유년(癸酉年)'에 축조했다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종 1년(1453) 혹은 그 보다 이른 태조 2년(1393)에 읍성이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o 성벽은 일반적인 읍성처럼 자연 할석을 이용하여 허튼층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o 성문은 동문, 서문, 북문이 있다.
그중 현재의 고창 읍내 방향으로 통하는 북문이 정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3개의 성문에는 옹성이 마련되어 있으며, 성벽을 따라 모두 6개소의 치성이 있다.
o 고창읍성의 공북루는 주춧돌 위에 문루를 세우고 문을 만들었다.
즉 고창읍성의 정문 격인 공북루는 마치 관아의 외삼문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