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죠스' 같은 영화를 싫어한다. 수영하지 못해 물이 두려운 것도 있지만 어류 자체를 싫어한다.
그에 반해 나는 소복에 머리를 헤치고 화면을 뚫고 나오는 '링' 같은 영화가 싫다.
깜짝 놀라 눈을 감거나 귀를 막는다.
아내는 상식적으로 화면을 뚫는 귀신이 어디에 있고, 오히려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이 진짜 무서움이라 한다.
이성과 감성이 두려움에 다르게 반응해도 사람만큼 무서울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는데 뒤통수치고 칼 꽂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믿었던 베드로는 주님 부인하고, 유능한 제자 가롯유다는 은 30에 예수 팔았다.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 이유다.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할 수 있어." 그게 인간이다.
이해할 뿐 신봉하지 말아야 한다.
진돗개 보단 못한 개판이 정치판의 일상이다.
그렇다면 진짜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 존재를 잊고, 은혜를 망각할 때이다.
풍랑 이는 호수 한 가운데 예수께서 지나가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
오병이어 엄청난 기적도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망각을 두려워해야 한다.
사람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받은 은혜 잊지 않아야 담대해진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쥐어짜는 치과의 고통도 잠시이고,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도 인생의 끝에 잠들듯,
영원의 통치자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엄청난 존경과 두려움이
죄와 근심 걱정에서 자유롭게 할 것이다.
할렐루야!
(막6:4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