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5,3)
시편 1장은 ‘행복하여라!’라는 행복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이렇듯 시편의 행복 찬양처럼 마태오 복음 5장 ‘참행복’ 선언 역시 첫마디를 ‘행복하여라’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를 예전에는 ‘진복 팔단’이라 하였습니다. ‘참 행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고 활동하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존재와 삶으로 추구하고 실현해야 하는 진복眞福, 지복至福입니다. 참행복은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로 가난, 슬픔, 온유, 의로움, 자비, 깨끗한 마음, 평화, 박해를 통해 실현해야 합니다. 이를 알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입니다. 그런데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참행복을 어떻게,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행복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행복에 대한 명언도 많고,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꿈꾸는 행복! 그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이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복된 좋은 운수이다.’라고 규정했습니다. 행복의 정의는 시대별로, 지역별로, 종교별로, 개인별로 다릅니다만, 행복의 본질은 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먼저 여러분이 생각하는 행복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저와 우리의 생각을 모아 나름대로 대충 요약해 보자면, 첫째, 행복은 남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몸이 건강한 상태입니다. 둘째, 행복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이며, 내 안에 있습니다. 셋째, 행복은 거창하지 않아도, 아주 소소한 것에 있습니다. (* 흔한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입니다.) 넷째, 순간순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또 만족하는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행복론’에서 행복이란 “만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타인과 비교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꾸준히 선을 행하는 데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행복이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과정은 소홀히 하고 결과에만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느님 안에서 행복하십니까?
요즘 들어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고마워 혹 고맙소>를 자주 표현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가까이 있기에, 늘 곁에 있기에 나와 더불어, 나의 곁에 ‘너’가 있음에 무심해지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그 ‘너가 거기-있음’이 바로 우리 행복한 삶의 시작이며 계기입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너’에게 고마워할 줄 아는 감정을 품을뿐더러, <고맙소 혹 고마워> 라고 표현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조지 매이슨 대학 심리학과 ‘토드 키쉬단’ 교수는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유려하고 유창한 언변이나 화려하고 거창한 ‘이벤트 혹 서프라이즈’에 있지 않습니다. 진심 어린 한 마디,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연설을 마치자 그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병마가 당신을 삼십 년간이나 휠체어에 묶어놓았는데 운명이란 녀석에게 너무 많이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호킹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손가락을 이용해 타자를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대형 모니터에 그의 말이 전해졌습니다. “제 손가락은 여전히 움직일 수 있고, 제 두뇌는 여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생 추구하고 싶은 꿈이 있고, 저를 사랑해 주고, 제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참행복 선언은 단지 선언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라는 하느님의 호출이고 초대이며, 약속이고 명령입니다. 행복하여라!, 는 예수님의 선포는 우리가 행복하게 이 땅에서 살기를 바란다는 것만이 아니라 삶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속일지라도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고 바람이라는 확언입니다. 참행복 선언과 선포는 예수님 안에서 누려야 할 인간 구원의 본성과 상태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여 지복의 깊이를 체험하고 살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며 하느님을 볼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5,3.9,8,12)
참행복은 세상적인 행복, 행운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훨씬 더 넘어서야 하지만, 진복을 향해 나아가는 데 행운은 위로이고 위안이라고 느껴집니다. 뜨거운 햇빛 쏟아지는 거리를 오래도록 걷다가 잠시 나무 그늘에 쉴 때 느끼는 행운을 우리는 필요하고, 슬프고 힘들고 불안할 때 더욱이 그렇습니다. 다만 이런 행운에 집착하거나 연연해서 안주하거나 그 상태에 머물지 않고, 참행복이 제시하는 그리스도인의 8가지 존재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되잡고 묵묵히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무엇에 앞서 참행복을 선언한 배경과 제시한 의도를 꿰뚫어 이해하고 수용하고 실현할 때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음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행복을 선언하시고 참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사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삶은 마음으로 가난했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했으며, 모든 이에게 온유하고 자비로웠으며, 늘 사람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하고 평화를 누리도록 하셨으며, 의롭고 옳은 일을 하면서도 그로 인해 겪은 모든 힘듦과 어려움을 기꺼이 하느님과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물론 많은 사람이 당신의 선언에 동참하도록 초대하시고 독려하셨습니다. 그때 갈리리 호숫가에서 예수님의 기쁜 소식, 참행복의 외침을 들었고 보았으며, 느끼고 만지면서 경험하고 깨달은 바를 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와 삶이 예수님 당대 제자들과 군중 그리고 지금의 저희에게는 참행복으로 이끄는 안내서이며, 참행복을 누릴 수 있는 보증서입니다.
조경수는 「행복이란」 노래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수 없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참행복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앞에 사셨던 8가지 존재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바로 참행복의 정도正道입니다. 주님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으며, 행복이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도 결국 주 예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 당신 없는 행복이란 있을 수 없을뿐더러, 당신 없는 행복은 원하지 않습니다. 살아도 주님과 함께, 죽어서도 주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사오니, 저희 또한 당신이 선언한 진복팔단을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저희와 늘 함께해주십시오. 그게 우리의 소망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