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다 / 조달이
‘쪼다’는 제구실을 못하는 좀 어리석은 사람을 낮추어 일컫는 말이다. ‘이 쪼다 같은 놈을 보았나’와 같이 쓰는 말이다. 이 말은 ‘조달’의 변한 말이다. 일상에서는 주로 ‘조달이’의 형태로 쓰인다. 조달이의 ‘-이’는 자음으로 끝나는 일부 고유 명사에 붙어, 어조를 고르는 구실을 하는 접미사로서 ‘길동이, 갑순이’ 등의 끝에 쓰인 그 ‘-이’다.
‘조달이’는 경음화 된 ‘쪼달이’란 말과 함께 지금도 쓰이고 있는 말이다. 통상 바보 같은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이 쓰이는 과정에서, 쪼달이를 소리 나는 대로의 ‘쪼다리’로 인식하게 되었고, 끝내는 끝음절 ‘리’를 떼어버리고 ‘쪼다’란 속어도 쓰게 된 것이다.
이 말의 밑동이 되는 조달은 석가의 제자 이름인데, 석가를 시해하고자 했던 못된 사람이다. 원명은 데바닷타인데 이를 한역(漢譯)하면서 축약하여 조달(調達)이라 했다. 그는 석가의 사촌 동생으로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지만, 야망이 지나쳐 스승인 석가가 이끌고 있던 교단(敎團)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몄다.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아사세왕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의 도움을 받아 왕실의 검은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해, 걸식을 하러 나온 석가를 밟아 죽이려고 시도했던 인물이다. 조달은 머리는 명석하였지만, 헛된 욕심이 지나쳐 나쁜 짓을 일삼아 끝내는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타고난 자질은 명민했지만, 그것을 잘못 써서 악인이 되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바보 즉 ‘조달이’고 ‘쪼다’다.
인간은 그 본성이 선한 존재인가, 악한 존재인가?
맹자는 선하다고 하여 성선설을 주장하였고, 순자는 악하다 하여 성악설을 주장하였으며, 고자(告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인간의 의지에 따라 행해진 행동에 의하여 결정될 뿐이라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장하였다.
중생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불교는 성선설 쪽에 가깝고, 인간에게 원죄가 있다는 기독교는 성악설에 가깝다. 그리고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가는 것이 옳다는 노자의 사상은 성무선악설에 가깝다.
이리 보면 이것이 맞는 것 같고, 저리 보면 저것이 맞는 것 같다. 현자들이 그렇게 말한 연유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최고선에 도달시킬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을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니, 꼭 집어 어느 한쪽으로 단정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석가나 공자 그리고 예수,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이 있는가 하면, 그들을 죽이려 한 인간들도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석가를 죽이려 한 데바닷타, 은화 세 닢에 스승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 공자를 모함하여 죽이려 한 환퇴(桓魋), 청년들의 영혼을 더럽힌다는 명목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한 멜레토스도 있다. 다 같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판이한 모습을 지닌 것이 인간이다.
아무렴 타고난 근기(根機)와 수행에 따라, 성인도 소인도 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다. 어떻든 하루아침에 성인은 되기 어렵지만, 망나니 같은 ‘쪼다’만은 되지 않아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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