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물을 가든지 반드시 입구에 '머릿돌' 혹은 '정초(定礎)'라고 새겨진 돌을 볼 수 있다. 건물의 이름과 설계한 사람, 준공한 날짜 등을 돌에 새겨 적게끔 법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초(礎)는 주춧돌이다. 주춧돌은 집 지을 때 기둥을 세우기 전에 터를 다진 후 기둥 놓을 자리에 놓는 네모난 돌이다.

초석(礎石)
세월이 흘러 집이 불타거나 허물어져 흔적이 없어져도, 터를 파 보면 주춧돌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주춧돌의 위치만 보고도 원래 건물의 규모와 크기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은 사라진 옛 건물의 복원은 주춧돌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주춧돌로 남은 집터의 흔적이 바로 '터무니'라는 주장도 있다.
터무니, 즉 터의 무늬조차 없으면 달리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겠기에 하는 말이다. 그래서 주춧돌도 남기지 말라는 말은 흔적조차 없애라는 뜻이다. 실제 백제의 왕궁은 주춧돌도 남지 않아 오늘날 그 정확한 위치와 규모를 알 수가 없다.
정초(定礎)는 주춧돌 놓을 자리를 정하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집의 설계도면이 완성되어 공사가 시작되었다는 말과 같다. 예전에는 건물의 주춧돌을 놓을 때 반드시 정초식(定礎式)을 열어 사고(事故) 없이 공사를 마칠 수 있도록 고사(告祀)를 지냈다. 정초식은 본격적인 공사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起工式) 비슷한 것이었는데, 오늘날에는 공사가 마친 것을 알리는 준공식(竣工式)처럼 되어 버렸다.
초석 위에는 기둥[柱]이 놓인다. 주춧돌은 그러니까 주초석(柱礎石)이다. 주춧돌이 놓이면 건물의 크기와 기둥의 위치가 결정되므로, 그 다음부터는 집 짓는 일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된다. 오늘날도 절터나 왕궁터에 가면 가지런히 줄을 맞춰 놓여진 주춧돌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신라 시대의 사찰 황룡사 터현재 남아 있는 주춧돌을 통해 엄청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