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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묵상글 ( 재의 수요일. - 그리하여 올바르게.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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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리하여 올바르게>
마태오 6,1-6.16-18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올바르게>
벗을
만나는
자선
벗과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이
하느님 닮은 내가
벗을 오롯이
보듬게 하소서
그리하여 올바르게
하느님을
만나는
기도
하느님과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이
하느님 닮은 내가
당신 앞에 오롯이
서게 하소서
그리하여 올바르게
나를
만나는
단식
나와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이
하느님 닮은 내가
나와 오롯이
마주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올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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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
- 태세의 전환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사순시기가 다가오면
왠지 부담감이나 긴장감도 같이 다가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여서 며칠 전서부터 이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낼까,
부담감과 긴장감을 가지고 생각에, 생각을 더 하다가 어제 문득
은총의 사순시기라고 하는데 이런 자세여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며
태세의 전환, 이것이 사순시기를 옳게 맞는 것이요, 회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악에서 돌아서는 것을 회개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되지만
하느님 자비에로 돌아서는 거라고 생각하면 기꺼울 것이고,
단식하고 좋아하는 술을 끊는 것을 생각하면 우울하지만,
단식한 것으로 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마음을 바꾸면 뜨거워지겠지요.
그러다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으니 다음 구절,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란 말씀이 눈에 뜨였는데,
그런데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생각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긴 받았다는 뜻인가?
아니면, 요즘 말로 은총을 개무시하여 아예 받지도 않았다는 뜻인가?
저의 경우, 은총을 개무시하지는 않고
받을 때는 감사히 잘 받으나 오래 간수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은총을 흘려버리거나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은총은 하느님께서 무상으로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는데,
이 선물을 귀히 여기지 않아 처박아 놓거나 남 줘 버리는 것과 같지요.
귀히 여긴다면 선물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는 은총의 Revival이 이뤄질 텐데.
그렇습니다. 귀히 여겨 은총의 Revival이 이뤄진다면,
말 그대로 은총이 매일 새록새록 되살아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처럼 기도할 때 사람들이 보라고 기도하지 않고,
골방에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사랑에 오래 잠길 것이고,
사랑의 선물을 몰래 꺼내 보고 또 꺼내 보고 할 것이며,
그때마다 사랑이 되살아나고 사랑이 되살아남으로써 나도 되살아날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받지 않는 사람은
이웃도 되살아나도록 이웃사랑 곧 자선에 그 은총을 쓸 것입니다.
이 경우, 물론 자선을 Showcase 용으로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진정 사랑해서 하겠지요.
사실 진정한 자선이야말로 은총을 가장 귀하게 받는 것입니다.
약 한 알로 여러 사람의 병이 낫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나눠 먹는 것이고 자선은 그런 거잖아요?
우리가 하는 단식과 재계도 하느님 은총을 헛되이 받지 않게 하기 위한 겁니다.
근자에 제가 방심과 조심을 자주 얘기하는데
방심할 때 지갑을 도둑맞기 쉽듯
조심하지 않고 방심하면 하느님 은총도 헛되이 사라집니다.
단식이나 재계는 우리 마음이 풀어지지 않도록(방심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붙잡게 하는 것(조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지금이 바로 은혜로운 때이고 구원의 날이라고 합니다.
‘때’란 ‘기회’의 다른 말입니다.
‘기회’란 또 ‘위기’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현명하다면
이 사순시기를 구원을 위한 기회의 때가 되도록 태세 전환을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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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이영근 아오스딩 신부님.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4.15.18)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오늘, <말씀전례>는 우리를 ‘회개’에로 초대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주 너희 하느님께로 돌아오너라.”(요엘 2,13)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제1독서>에서 예언자 요엘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단식하고, 울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은혜로운 구원의 날을 맞이하라.’고 말해줍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들처럼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하지 말고, 숨어계신 하느님의 의로움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는 몸과 옷을 찢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는 뉘우침이며, 자신을 드러내는 의로움이 아니라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회칙 <신앙의 빛>에서는 ‘회개’를 “주님을 향해 거듭 되돌아가는”(13항) 것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우리 자신을 맡기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거듭해서 기꺼이 변모되려”(13항)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첫째는 ‘회개’가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회개’가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 지속적인 회개의 삶을 수도승들은 ‘제2서원’으로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적인 회개는 부르심에 대한 끊임없는 응답으로 지속됩니다.
이처럼, ‘회개’는 ‘뉘우침’이라는 내적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옴’이라는 실행을 요청합니다. 곧 마음만 찢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행동의 요청이요, ‘새로운 부르심’에 대한 소명의 삶을 불러옵니다. 결국, 회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올바르게 유지하는 견인력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이는 의로움의 본질이 하느님 앞에 놓인 처지, 곧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임을 말해줍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 앞에 드러난 행동이나 결과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 생각을 보십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의로운 생활의 중심은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보상 받고자 했습니다. 혹 우리도 그러고 있지는 않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나 봉사나 사랑을 통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나의 경건함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니 늘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마태 6,6)의 현전을 마주하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의로움은 단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 진실된 마음을 말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기도(기도나눔터)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 6,1)
주님!
선을 과시하지 않고, 악을 거짓으로 치장하지 않게 하소서!
제 마음이 당신 사랑에 씻기어지고 마음의 단식으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의로움을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지 않게 하시고, 마음이 기도로 순결하게 하소서!
오늘도 당신의 영으로 차오르고 당신 앞에 머무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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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
부활의 기쁨을 희망하며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이라는 말은 40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중대한 사건을 두고 그를 준비하는 기간을 상징합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재를 지켰고, 엘리야도 호렙산에 갈 때 천사가 주는 음식만 먹으며 40일을 걸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인 부활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40일간의 기간을 정하여 기도와 희생으로 재를 지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부활의 영광이 없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몸소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에게 부활의 희망을 안겨주셨습니다. 기쁨이 큰 만큼 거기에 걸맞은 부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은 자선과 기도, 단식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자선할 때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하라.” 단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이 모르게 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해하며, 좋은 평판을 받기를 기대하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내면의 힘을 길러 그런 것에, 민감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내적인 힘이 있으면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단식은 자신에 대한 절제와 극기의 상징입니다. 그냥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단식 함으로써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겪으신 배고픔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순간부터 배고픈 이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온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돕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 내가 허기져봐야 굶주린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기도는 내 삶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하느님과 통교하게 됩니다. 마치 전등이 발전기와 연결됨으로써 빛을 발하듯 기도는 우리를 하느님과 연결해 줍니다(구엔 반 투안 ). “기도는 심장과 심장의 만남입니다”(마더 데레사). 사실 기도는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안에 살려면 호흡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왜 호흡을 해야 합니까? 하지 않으면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미 신앙인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수록 그만큼 더 가치가 있습니다(샤를 드 푸코).
자선은 단식과 기도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기도의 열매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풀어야 합니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민첩하게 해야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누가 보든 그렇지 않든 자선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바치는 좋은 예물입니다. “자선으로 씨를 뿌리면 열매는 천국에서 넘치도록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저함이 없이 베풀어야 합니다.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은 서로를 보완해 줍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을 맞으면서 기도하고 단식을 지켰는 데 그 희생을 누구를 위해 봉헌하려고 하셨나요? 아침을 굶고 나니 배가 고파요. 그래서 점심을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셨어요. 그렇게 한다면 알맹이가 빠진 것이지요. 평소에는 굶어도 굶었다는 생각도 없이 지나치는데 사순절이 되면 유난히 배가 고파 옵니다. 마음먹고 무엇인가 하려고 할 때 유혹의 빌미는 항상 있습니다.
기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해요. 오히려 너무 바빠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바빠서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리고 자선은 베풀면 베풀수록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아쉽고 아까운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기뻐하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한꺼번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하시는 분은 평생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일상생활의 작은 일에서부터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에 자주 듣는 말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죄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죄는 하느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는 하느님께로 다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외적인 기도와 단식, 자선에 앞서 마음의 단식과 자선, 그리고 기도에도 소홀함이 없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은혜로운 때, 구원의 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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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50이 넘은 분들 중에서 탤런트 김혜자를 모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그분을 ‘전원일기’에서 조용한 내조로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정숙한 아내요 엄마의 모습으로 보았습니다. ‘사랑의 머길래!’에서는 보수적인 남편에 순종하지만 자신의 딸은 자유롭게 살도록 도와주는 현명한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엄마의 바다’에서는 갑자기 다가온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가정을 지키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언젠가 화보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의 소개를 보면서 아프리카의 굶주린 어린이를 돌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탤런트 김혜자 선생님은 “나는 직업을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너무 이상해요. 연기는 그냥 나예요”라고 말하였습니다. 탤런트를 직업이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합니다. 연기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아니면 작품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금도 망설임이 없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에서 교만함이 아니라, 자신의 일(mission)에 대한 자부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어진 역할이 곧 자신이라는 열정으로 61년을 연기자로 살아왔습니다.
저도 뉴욕에서 지내면서 몇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미주지사의 일, 부르클린 한인성당의 일, 퀸즈성당의 일, 동북부 엠이 대표 사제의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일을 핑계로 지금 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비겁한 행동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자랑한다면 교만한 행동입니다. 신문을 만들 때면 매의 눈으로 교정을 보고, 직원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 됩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 할 때면 미리 고백성사를 주고, 강론 준비를 성실히 하면 됩니다. 동북부 엠이와 함께 할 때면 미리 일정을 잡고 계획된 일이 차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제게 주어진 일(mission)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기쁘게 지내면 하느님께서는 더 큰 은총을 주시고, 축복을 주심을 믿습니다. 촉매가 있으면 더 큰 에너지를 얻는 것을 봅니다. 제가 함께 하는 성당의 교우들이 신문사를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동북부 엠이에서는 행사가 있을 때 신문사에 광고를 주고 있습니다. 신문사에 필요한 기사를 보내 주기도 합니다. 군림하는 주인공이 아닌, 봉사하는 주인공이라면 언제든지 응답해야 합니다.
교회는 오늘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시기를 지내게 됩니다. 은혜로운 회개의 때를 시작하면서 신앙인들은 사순시기의 주인공이 되면 좋겠습니다. 대림과 성탄 그리고 연중의 신앙생활에 머물지 않고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에 동참하는 사순시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4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앞으로 사십일 동안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4가지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자선’입니다. 나의 능력과 재능을 이웃을 위해서 기꺼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진 재물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봉사’입니다. 손이 두 개 있는 것은 하나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발이 두 개 있는 것도 하나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셋째는 ‘기도’입니다. 묵주기도, 성체조배, 성경읽기, 십자가의 길, 피정은 사순시기를 풍요롭게 하는 보물창고입니다.
넷째는 ‘단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를 선포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단식하셨습니다. 단순히 음식을 절제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는 것이 진정한 단식입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갑자기 죽음을 맞지 않게 하시고, 회개할 시간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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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이제 막 걸음마를 걷기 시작한 영아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368걸음으로 701미터를 걷고, 1시간에 17번 넘어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몇 번이나 넘어져야 제대로 걷게 될까요? 한 천 번은 넘어졌다가 일어나야 이제 도움 없이도 스스로 잘 걸을 수 있게 됩니다. 성인이야 걷는 것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생각하지만, 영아에게는 어떨까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넘어졌다가 일어나는 일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쳤기에 점점 넘어지는 횟수가 줄어들고, 또 잘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걷는 것을 넘어서 뛰어다니게 됩니다.
우리 삶도 이 영아의 걸음마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부터 잘 걷고, 잘 뛰는 영아가 없는 것처럼, 실패 없는 안정된 삶이란 소위 성공의 삶만을 살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이 아닐까요?
영아는 그 많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지금 성인인 사람 모두 이렇게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았던 영아의 시절을 지나갔음을 떠올린다면, 좌절이나 절망하지 않는 DNA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실패의 순간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늘 도와주시기에 그분 안에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실패를 경험하곤 합니다. 처음에 주님과의 만남에서 얻었던 기쁨과 행복의 순간이 어느 순간 아무런 감정이 없게 됩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도 됩니다. 주님의 존재에 대한 의심도 생깁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뒤로 미룹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여유가 생기면, 할 것 없으면, 복잡한 일이 없어지면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도 실패 없이는 제대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함께하려는 사람만이 신앙생활의 큰 진전을 이루게 됩니다.
교회가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고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거행하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이지요.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기쁜 주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위해는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수난과 죽음의 길을 우리도 따라가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물론 주님처럼 실제로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시련으로 보이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하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절망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너머에 있는 부활을 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 삶 너머에 있는 희망의 주님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통해, 주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신앙의 진척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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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공포는 반응이고, 용기는 결정이다(윈스턴 처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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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회개와 기쁨의 거룩한 사순시기
-올바른 수행-
어제 어느 자매로부터 받은 카톡 메시지가 고마웠습니다. 참으로 아름답게 익어 성숙되어 가는 영적 삶을 살아야 겠다는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이 거룩한 은총의 사순시기, 참 좋은 격려와 자극이 됩니다.
“신부님, 멋지세요!”
뜬금없는 메시시가 궁금해 즉시 누군가 물었고 이어 온 답신입니다.
“안녕하세요. 카톡에 사진이 올라와서 멋지다는 생각에 반가워서 말씀드렸어요. 저는 2주전 남자 아이들과 피정 다녀온 자매입니다. 드문드문이지만 갈때마다 신부님이나 수사님들 연세드시는 모습이 보기 좋고 아름다워 하느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오늘 2월22일 재의 수요일부터 바야흐로 은총의 거룩한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회개와 올바른 수행의 영적훈련으로 삶의 질서를 바로 잡고 주님과의 관계를 새롭고 깊이하는 복된 시기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에 소개된 “제49장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라는 내용이 은혜로워 후반부 3개절만 생략하고 전부를 나눕니다. 여전히 오늘날도 귀한 가르침과 깨우침이 됩니다.
“수도승의 생활은 언제나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아야 하겠지만 이러한 덕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이 사순절 동안에 모든 이들은 자신의 생활을 온전히 순결하게 보존하며, 다른 때에 소홀히 한 것을 이 거룩한 시기에 씻어내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악습들을 멀리하고, 눈물과 함께 바치는 기도와, 독서와,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회와 절제에 힘쓸 때, 합당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소의 섬김의 분량에 어떤 것을 이 시기에 더 늘일 것이니, 곧 특별한 기도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절제이다.
그리하여 각자는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자기에게 정해진 분량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느님께 바칠 것이다. 즉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
결코 우울하고 어둡고 무거운 고행의 사순시기가 아닙니다. 아니 그 반대로 성령의 기쁨을 가지고 올바른 수행에 힘쓰며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리는 복된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베네딕도 규칙 전장을 통털어 “기쁨”이란 단어가 오직 제49장에만 2회 나온다는 사실이 참 각별하게 생각됩니다.
그러니 성령의 기쁨,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부활 축일을 기다리며 자발적 올바른 수행생활에 충실해야 하는 회개의 사순시기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이 회개의 여정이지만 특히 사순시기는 그러합니다. 구체적으로 오늘 독서는 회개와 화해에 대하여 복음은 사순시기 올바른 회개의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 요엘 예언자의 말씀이 현실감있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너희는 시온에서 뿔 나팔을 불어, 단식을 선포하고, 거룩한 집회를 소집하여라. 백성을 모으고, 회중을 거룩하게 하여라.”
교회 전례 공동체에 속한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돌아올 것을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은총의 사순시기, 개인적이자 공동체적 회개가, 무엇보다 생태적 회개가 절실한 때요, 전쟁과 재난에 시달리는 전 세계 나라들의 회개가 참 절박한 시기입니다.
“주님,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누구보다 종교 지도자들, 정치 지도자들이 참으로 진지하게 회개와 더불어 시편 화답송 후렴을 바치며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 할 때입니다. 그러면 요엘 예언서처럼 주님께서도 당신 땅에 열정을 품으시고, 당신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화답송 시편 51장,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제하의 시편을 깊이 되새겨야 할 재의 수요일입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저의 죄악을 없애 주소서.
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제 잘못을 깨끗이 지워주소서.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
회개와 함께 가는 화해요 화해의 기쁨과 평화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된 사순시기 하루하루가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에 걸맞는 올바른 수행이 바로 복음에서 소개되는 사순시기 대표적 수행인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 올바른 자선입니다. 회개의 진정성은 이런 올바른 수행을 통해 입증되며 열매를 맺습니다.
세 수행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바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는 수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말한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라고 못박으며 절대 이런 위선적인 수행을 하지 말라 하십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참으로 진실하고 겸손한 수행, 하느님 중심의 수행을 하라 하십니다. 순서로 하면 기도, 단식, 자선으로 입증되는 회개의 진정성입니다.
첫째, 올바른 기도입니다.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관계의 회복을 뜻하는 올바른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둘째, 올바른 단식입니다.
나와의 소통으로 나와의 관계의 회복을 뜻하는 올바른 단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셋째, 올바른 자선입니다.
이웃과의 소통으로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뜻하는 올바른 자선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제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한결같이 진실하고 겸손한, 감쪽같이 숨겨진 올바른 수행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수행이요, 닫힌 이기적 수행이 아니라 하느님께 활짝 열린 기도의 수행, 자신에게 활짝 열려 있는 단식의 수행, 이웃에 활짝 열려 있는 자선의 수행입니다. 참된 회개와 함께 가는 이런 올바른 자발적 기쁨의 사랑의 수행이 우리를 참으로 순수하고 자유롭게 합니다.
일년 영적 농사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특별 영적훈련의 은총의 사순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부활 축일을 기다리며 자발적 기쁨으로 참된 회개와 더불어 진실과 겸손의 올바른 수행에 전념해야할 은총의 거룩한 사순시기, 간절한 마음으로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께 도움을 청합시다. 주례 사제가 머리 위에 재를 얹어 주시며 하신 다음 말씀 마음에 새기고 은총의 사순시기 내내 진실하고 겸손한, 자발적 기쁨의 회개의 수행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3,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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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22. 재의 수요일. 민동규 다니엘 신부님.
찬미 예수님
벌써 한참 전의 이야기입니다.
신학과 신학생 어느 겨울 방학 중 주임 신부님의 허락을 받고 산속 작은 수녀원에 피정하러 갔습니다. 피정하는 기간 안에 재의 수요일이 들어 있었습니다. 피정에 참여한 이들과 저는 이른 아침부터 미사를 준비했습니다. 미사와 아침기도가 끝날 무렵 한 수녀님께서 제게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부탁하셨습니다.
학사님. 미사를 집전해주실 사제께서 지금 본관 3층 첫 방에 와계십니다. 사실 제가 모시러 가야 하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요. 학사님께서 그분을 이곳으로 모셔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신부님께서 오셨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첫 방 앞에 도착해 노크하였습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방문을 빼꼼히 열었습니다. 틈으로 보이는 방 안에는 작은 책상과 그 책상에서 책을 보시는 신부님이 보였습니다.
신부님. 미사 준비 끝났습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라고 말했고 그분은 저와 제 뒤에서 함께 내려오셨습니다. 미사가 시작되고 제의를 입으신 조금 전 사제분께서 입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알아봤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이셨습니다.
재의 수요일 미사 중 재의 예식이 있습니다. 그때의 추기경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시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설렘과 떨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재의 예식 중 그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에게 겸손과 떨림으로 다가오기를 바랍니다.
하느님 품으로 언젠가 돌아갈 우리를 다시 한번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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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그곳에 갔었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합니다. 물론 모든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공을 가지고 하는 운동은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공으로 하는 운동은 대부분 접해본 것 같습니다.
운동 중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운동은 등산, 오래달리기…. 입니다. 그 운동의 의미를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가 알게 되겠지요?
오늘도 탁구장에 다녀왔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탁구장 내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여기저기서 함성과 환호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열정적으로 탁구라는 스포츠에 빠져 있었습니다. 모든 신경을 작은 공에 집중하고 그 작은 공을 어떻게 한 번 더 넘겨볼까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 열정 속에 빠져서 저도 한참을 그들과 열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지로 돌아왔습니다. 씻고 성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녁기도를 하고 제가 좋아하는 호칭기도를 천천히 봉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까 탁구장에서의 열정으로, 공 한번을 정성스레 넘기는 마음으로 한 번씩 한 번씩 호칭기도를 바쳤습니다. 또한 온 신경을 작은 공에 집중하듯이 모든 신경을 한곳에 세워놓고 깨어 있음을 느끼며 한 번씩 한 번씩 호칭기도를 바쳤습니다.
오늘도 그곳에 다녀왔습니다. 열정과 집중과 정성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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