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픈가’
전주 사랑통증의학과 원장 이기재
우리의 몸은 작은 세포들이 모여서 여러 조직들을 이루고 이러한 조직들이 몸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을 이루며 기관들이 기능적으로 공통성을 가져 11개의 기관계를 구성하게 됩니다.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지시를 내리는 신경계, 이를 수행하기 위한 골격계와 근육계,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위한 소화계, 에너지 합성에 필요한 산소를 받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호흡계, 받아들인 에너지와 산소를 몸 곳곳에 보내기 위한 순환계, 내외 면역을 위한 면역계와, 피부계, 이를 조절하기 위한 내분비계와 비뇨기계 그리고 종족 번식을 위한 생식기계까지 각기 다른 기능을 담당하면서도 서로 연관되어있는 우리 몸의 기관계들은 생리학의 가장 기본 원리인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며 서로 상호작용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의 혈압이나 맥박 등을 측정하며 “환자의 바이탈이 떨어지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이는 우리 몸의 기능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징후들로 대표적인 Vital sign(활력징후)으로는 아래와 같은 4가지를 말합니다
혈압, 맥박, 호흡 수, 체온
이러한 활력징후가 정상적인 범위에서 벗어난 경우는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몸의 항상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는 바이러스 감염과 싸우기 위해 우리 몸의 기초 체온을 높이는 상태일 수도 있고 다량의 출혈이 발생한 경우 혈액을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맥박을 빠르게 하여 심박출량을 유지하는 상태일 수도 있으며 동맥경화증에 의해 좁아진 혈관을 통해 주요 장기로의 혈액을 부족함 없이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혈압을 높게 유지하고있는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통증은 제5의 활력징후 라고 불립니다. 우리에겐 아프고 불편한 감각이지만 통증이 없다면 외부의 위험 요소에 대하여 대응할 능력이 떨어지기에 앞의 4가지 활력 징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발에 못이 찔려서 출혈이 발생해도 아프지 않다면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결국 출혈로 인해 낮아지는 혈압과 빨라지는 맥박의 보상이 뒤따르게 될 것이며 방치 시 감염에 의한 체온 상승과 빠른 호흡 등이 순차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래서 통증은 손상된 곳, 내 몸의 회복이 필요한 곳으로부터 발생하는 강한 신호로서 쉬어야 함을 알립니다. 이것이 급성기 손상 시의 통증의 역할입니다. 손상된 인대나 근육 등의 회복을 위한 강제적인 휴식을 도모하는 몸의 항상성 유지 기능입니다. 따라서 손상된 인대나 근육 등이 회복되고 나아지면 통증 또한 같이 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급성기 통증은 1개월 이내에 사라지며 염증이 있는 경우 소염진통제 혹은 부신피질호르몬제(스테로이드)의 작용이 그 경과를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인간은 텔로미어라 불리는 염색체의 말단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짧아지고 그 복제 능력이 감소합니다. 손상된 인대나 근육 등은 젊은 시절에는 회복이 매우 빠르지만 나이가 들게 됨에 따라 그 회복속도가 점점 더디어만 갑니다. 노화의 과정에 따라 몸의 손상된 부분에 대해 휴식이 필요하다고 알리는 이 강렬한 신호는 증가하고 길어져만 갑니다. 수십 년간 나를 눌러온 중력의 힘은 내 몸을 땅으로 계속 잡아 이끌게 됩니다. 결국 무덤으로 들어갈 때까지 중력의 힘은 계속됩니다. 길어야 100년의 삶입니다. 하지만 100년을 살면서 아프지 않은 사람과 골골대며 계속 아픈 사람이 있습니다. 통증의학과 의사로서 반복되는 같은 부위의 통증 치료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도 슬픈 일입니다. 급성기 통증의 경과를 줄여드릴 수는 있지만 통증의 원인이 되는 자세나 동작을 회피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러한 노화와 함께 진행되는 만성 통증은 급성기 통증과 조금 다릅니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3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으로 정의되며 신경자체가 손상되었거나 원인을 찾지 못하여 지속되는 통증, 뇌 내의 호르몬적인 문제, 디스크, 협착, 오십견 등 급성기 손상에서 회복되지 못한 조직들이 만성 통증을 일으킵니다. 염증 반응이 지속될 수도 있고 미세하게 눌린 신경들이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성 통증 또한 급성 통증과는 같이 회복의 시기를 놓친 조직에서 오는 신호이므로 유해하다고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치료를 위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통증이 오래되었을수록 변화 또한 오랜 기간이 필요합니다. 거북목, 굽은 등으로 양측 어깨 통증과 두통 등을 호소하는 경우 이러한 자세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졌다면 하루면 다 나을 것입니다. 특정한 자세를 이루기 위해서는 뼈의 정렬과 붙어있는 근육과 인대 등이 고유수용감각에 의해 조절되고 유지됩니다. 수년간 수십 년간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굽어졌는데 고작 한두 달 치료받아서 교정될 수 있다면 치료자는 인간이 아닌 신일 것입니다. 시간을 몇십 배나 빠르게 흐르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결국 치료 이후 증상 호전이 있더라도 통증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생활 행태 변화가 필요합니다. 퇴행성 관절염이 심하면 걷지 마십시오. 허리가 아프면 누워서 쉬십시오. 어깨가 뭉치고 두통이 생긴다면 핸드폰을 내려놓으십시오. 어떤 통증은 노화의 한 과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늙어감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합니다.
아프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노화의 진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텔로미어가 노화의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지도 50여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노화는 진행되고 있고 통증은 증가하고 있습니다.
빌 앤드루스의 텔로미어의 과학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연장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권고사항 : 비타민 D3, 오메가 3 지방산, 비타민 C,E(항산화제), 스트레스 감소와 규칙적인 명상, 고강도 운동
주의사항 : 흡연, 좌식생활, 우울증 방치, 체중조절 실패, 비관적인 관점
노화를 막는 위와 같은 방법이 통증을 줄이는데도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습니다.
급만성 통증 모두 삶을 살아감에 있어 노화와 함께 진행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통증에 대하여 적응하고 순응하고 조절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