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윤 칼럼(23-43)> 한국의 실험미술
어제는 전국에 장맛비가 쏟아졌으나, 오늘(6월 27일, 화요일) 서울 지역 날씨는 맑았다. 필자는 오전에는 세브란스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조재호 교수의 진료를 받았으며, 오후에는 아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미술사 강의를 수강했다. 정하윤 박사(이와여대)의 강의는 ‘인물로 보는 한국미술 100년’의 제8강으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에 관하여 이야기 했다.
필자는 지난 2019년 12월 23일부터 2020년 2월 4일까지 전립선암(prostate cancer) 치료를 위해 토모테라피(TomoTherapy) 방사선치료를 28회를 받았다. 방사선치료를 받은 후 PSA(Prostate Specific Antigen, 전립선특이항원) 수치가 8ng/ml에서 0으로 떨어졌다. 일 년에 두 번 PSA검사를 한다. 전립선암(前立腺癌) 종양표지자 PSA의 정상범위는 4ng/ml미만이다.
오늘 미술사 강의에서는 실험미술 작가 중에서 이건용(1942-), 정강자(1942-2017), 이승택(1932-) 등 세 사람만 다루었다.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전시회가 지난 5월 26일에 개막하여 7월 16일까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는 쳥년작가들의 선언으로 시작된 한국의 전위적 실험미술을 동시대로 소환하여, 초(超)국가적으로 그 의미를 묻고자 기획되었다.
뉴욕 구겐하임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과 공동으로 주최한 이번 전시에서는 29명의 작가가 제작한 99점의 작품과 31점의 아카이브(archive, 기록보관파일) 자료를 소개한다. 특히 당시 한국 사회와 ‘젊은 그들’의 창작에 미친 영향에 대해 주목하며, 이들의 작품이 오늘의 삶과 미술에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하였다. 이를 위하여 사회 문화사를 토대로 주제를 구성하였다.
당시 실험미술은 지금의 한국 현대미술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뿌리이자 토대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의 형식과 내용의 다양성을 확장시켜주고, 예술가로서의 의식과 태도에 대한 성찰, 미술제도의 변화와 대중의 인식 확대 등에 대해 크게 이바지했다. 하시만 이러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실험미술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관련 전시와 연구들이 시작됐다.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했다. 홍익대학교 미대와 계명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군산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이건용은 한국 현대 미술사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70년대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와 ST(Space & Time) 활동을 통해 ‘논리적 이벤트’라고 명명되는 그의 행위예술은 한국 행위예술 발전의 모체가 되었다. 1970년대 답답한 캔버스에서 구현되는 협소한 주제 놀이에서 벗어나고자 많은 작가들이 ‘탈평면(脫平面)’을 외쳤다.
이건용은 우리나라 현대 미술사에서 이벤트의 대표주자로서 1975년부터 1980년까지 무려 50여 개의 작품을 내놓았다. 당시 평면은 미술계의 헤게모니(hegemony, 패권)를 장악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구조에 답답함을 느껴 ‘입체’ 혹은 ‘사건·행위’를 통해 미학적 자율을 찾고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용은 공간, 상황, 장소, 신체 등이 연루된 ‘행위’를 주목했으며, 이를 ‘이벤트’로 명명했다.
이건용의 대표작으로는 ‘장소의 논리’(1975)와 ‘신체 드로잉’(1976)을 들 수 있다. ‘신체 드로잉’은 신체를 제한하는 극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에서 드로잉을 하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극한 상황은 7가지로 화면 뒤에서, 화면 앞에서, 옆으로 서서, 팔에 깁스, 다리 사이에, 양팔로, 어깨를 축으로 등이다. 이 작업은 극한의 신체 구속에서 평면에 가해지는 미묘한 차이를 시각화한다.
이건용은 “행위미술은 공연하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있는 사람과 개념과 상황을 같이 공감하고 쓰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008년 이건용은 <나, 지금, 여기>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열었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이건용 작가는 2022년 8월에 열린 개인전 <Reborn(재탄생)>에서 기존의 신체드로잉에 변주를 가한 다양한 스케일의 회화 및 설치 작품 20여 점을 선보였다.
<전강자>는 1942년 2월 8일 대구에서 출생하여 2017년 7월 23일 서울에서 위암(胃癌)으로 별세했다. 1962년 영남대학교 디자인과 중퇴 후 1967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1985년에는 홍익대 대학원에서 미술교육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 남상진 영화감독과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를 두었으나 이혼했다. 이혼 후에 서울 반포에 입시미술학원을 차렸으며, 원생들이 넘쳐났다.
1968년 5월 20일, 서울 무교동 소재 음악다방 ‘세시봉’에서 홍익대 미대 졸업생들이던 강국진, 정찬승, 정강자 등 세 사람이 당시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투명풍선과 누드(Transparent Balloon and Nude)’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 퍼포먼스로 존 케이지(John Cage)의 전위음악이 흐르는 실내공간에서 관객들이 정강자의 누드에 투명풍선을 불어 부착시키고 이를 터트렸다.
이와 같은 단순한 내용이었으나, 여성의 육체를 판타지(fantasy, 상상)적으로 해석하는 남성들의 시각을 와해시킨 참여형 퍼포먼스(performance, 행위예술)였다. 이 프로젝트는 기성의 남성중심적 세계와 가치관에 도전하는 강력한 페미니즘(feminism, 여권주의)적 주장을 드러내고 있어 미술사적 의미를 가진다. 또한 정강자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되었다.
전강자는 청년작가연립전(1967) 등 당시의 주류 미술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도전을 응집한 기념비적 전시에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그룹 ‘신전(新展)’ 동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투명풍선과 누드’(1968)로 잘 알려져 있는 그는 한국현대미술 초기 해프닝 및 퍼포먼스를 이끌며 1960-70년대 한국의 문화계와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다. 1970년대 후반부터 회화작업에 전념했다.
1977년 가족과 함께 돌연 싱가포르로 떠났으며, 동남아시아 염색 기법 ‘바틱(Batik)’을 활용한 작품들을 다수 제작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뒤 1990년대까지 남미, 아마존, 남태평양 등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과 원시의 삶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삶과 꿈이 투영된 환상의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말년에는 우주 만물의 초소 단위인 원과 인위적인 직선을 결합한 ‘반원’이라는 기하학적 형태로 모든 사물을 환원하는 실험에 집중하며, 201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예술적 도전을 이어갔다.
<이승택>은 1932년 함경남도 고원에서 태어나 19살까지 살다가 6.25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으로 내려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으며, 1955년 홍익대학교 미대 조소과에 입학해서 1959년에 졸업했다. 1956년부터 인천 맥아더 동상과 같은 사실적 조각 제작에 참여하여 80여개의 동상, 기념물 제작에 참여했다.
이승택은 한국 실험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1960년대 이후 현재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을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기성 미술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예술실험은 1980년 무렵 ‘비조각’이라는 개념으로 정립된다. 작가는 1980년 중반 이후 사회, 역사, 문화, 환경 등 삶의 영역으로 관심의 지평을 확장하면서 퍼포먼스, 대형 설치, 사진 등으로 작업의 영역을 더욱 넓혀나갔다.
이승택은 1986년 후화랑에서 개최한 ‘이승택 비조각전’에서 작가는 붉은색과 푸른색, 검은색의 천들과 노끈으로 묶은 기둥 막대 등을 벽에 걸러나 바닥에 놓은 설치 작업을 주로 선보이며, 기이하면서도 섬뜩한 무속적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승택은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생각으로 전통, 설화, 민속, 무속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켜 왔다. 작품 ‘설화’는 전통 장승을 소재로 한 것이다.
이승택 작업에 대한 평가를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기존에 대한 거부와 도전, 둘째, 예술에 대한 반개념적 정신, 셋째, 조각의 범주을 멋어나는 비조각의 추구, 넷째, 한국적인 것의 현대화이다. 이것은 미술과 조각개념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재고하면서 얻어진 결과이다. 이를 바탕으로 이승택은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작품 세계를 펼쳤다.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사진> (1) 한국실험미술 전시회, (2) 이건용 작가와 작품, (3) 정강자 작가와 작품, (4) 이승택 작가와 작품
靑松 朴明潤 (서울대 保健學博士會 고문, AsiaN 논설위원), Facebook, 27 June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