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이며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지치기'가 무엇인지 알려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다음 구절을 읽어보면 됩니다. 성경은 다음 구절에 답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요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요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가지치기란 열매를 더 많이 맺게 하도록 깨끗케 하는 것을 말합니다. 3절을 보니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깨끗케 됩니다.
제가 들어본 가지치기에 대한 간증 중에 가장 잔인했던 간증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제가 청년부 시절에 청년부 지체 하나가 우리 소모임에 선교사님을 한 분 초대해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이분은 선교지에서 차 사고로 팔을 하나 잃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비극을 잘 극복하셨고 팔 하나로도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그 비극을 이겨 낸 비밀(?)은 바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으며 자신의 팔이 하나 잘려 나간 것은 하나님의 가지치기였다'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게 생각을 하니 고통을 이길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납득할 수 있었다 해서 그 생각이 다 성경적으로 맞는 것일까요? 물론 그 선교사님도 잘못된 교리의 피해자입니다만, 그분의 간증은 청년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극심한 오해를 남겼습니다. 선교사로 헌신까지 한 사람을 축복하지는 못할망정, 팔을 하나 잘라서 가지치기를 하는 하나님이라니요! 그 청년들 중에 "그래! 나도 열매를 많이 맺고 싶으니 하나님의 가지치기를 당해야겠다." 이런 사람 하나도 없었습니다. "열매 맺기를 포기하고 멀쩡한 신체를 가지고 사는 게 낫겠다." 이런 결론을 내렸지요.
"일어나는 모든 일(악한 일 포함)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라는 생각은 우리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그 고통을 무감각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를 들어 무릎 통증이라면 그것의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한 것이 아니라, 마취 주사를 놓아서 감각이 없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선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악한 일들이 우리의 머리로 해석이 되질 않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해 보이는 악의 그림자 앞에서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고 차라리 우리의 감각에 마취 주사를 놓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 오늘날에도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창세 이후, 항상 일어났었겠지요) 인류의 기본 가치를 무너뜨리는 악한 자들의 사기극 앞에서, 그 실체를 알고 대항하기보다 그냥 받아들이는 선택을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감당하지 못해 진실에 눈감았다고 해서 진실이 진실이 아닌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죄로 타락한 이 세상에서는 진실이 오히려 참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강도를 만나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의료시설이 너무 열악했기 때문에 팔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는데 그 강도떼는 자유의지로 선교사님이 탄 자동차를 들이받았고 그 악의 결과로 이 선교사님은 팔을 하나 잃게 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사악한 일입니까? 이 악을 바로 파악하고, 그 악에 분노 하고, 고통을 통감한 뒤, 그들을 용서하는 과정은 뼈아픈 과정입니다. 그러니 그 과정을 겪고 나서 성숙해지는 것보다는 '이것은 하나님께서 내가 더 강해지라고 보내신 고난이야."하고 말아버리는 것이 훨씬 더 쉬운 길입니다. 마취제죠. 여기서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러한 '운명론'을 선택하신 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그렇게 배웠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합니다. 그런 악한 일을 보낸(?) 하나님인데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니 말입니다. 정말 엄청난 신앙이죠. 하지만 또한 엄청난 오해입니다.
세상의 타락, 인간의 죄성, 성도에게 남아 있는 육신, 이 세 가지는 엄청난 힘의 악으로 우리 앞에 커다란 산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그 산과 싸우겠다고 결단하는 것에는 큰 용기가 필요하고 또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항상 선하시다'라는 바른 교리와 그에 따른 바른 신앙 또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하나님은 오직 선하신 분이기에 악과 싸우기로 선택하는 것'은 어떻게 다른 결과를 가져올까요?
우리 청년부는 그 선교사님과 아주 좋은 시간을 가졌고 좋은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교사님으로 인해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가고, 하나님 말씀대로 더 하고 싶어진 청년이 있었을까요? 물론 그분은 정말 좋은 분이셨고, 그분 자체에게는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선교사님의 간증을 통해 만난 하나님은 정말 끔찍한 하나님이었습니다. 가지치기를 한다고 자녀의 팔을 하나 잘라버리다니요! 만약 그렇게 한 존재가 어떤 사람이었다면? 자기 딸을 더 훌륭하게 만들겠다고 딸의 팔 하나를 절단되도록 한다면? 당장 경찰에 잡혀가겠지요. 그것은 범죄니까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왜 막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사사건건 막으셨다면 오늘날 우리들 중에 몇명이나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입을 막아버리신다면? "에이, 그거랑 팔이 하나 잘려져 나가는 거랑 비교하다니..." 하지만 몇십 년 전에 어떤 사람에게 들었던 그 악한 말이 지금도 우릴 괴롭히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을 사사건건 막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악이 창궐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룰 능력이 있으시고 그렇게 하시려면 그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필요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악한 일이 일어나는 배경을 알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마귀 사탄을 대적하는 결단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 우리가 진실을 직면하고 악을 대적하여 성장하는 과정을 말씀을 통해 하시겠다는 겁니다. 말씀으로 자기의 생각을 채우고자 하는 사람을 통해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케하시는 방법, 가지치기를 하시는 방법은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서 가지치기를 하신다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것들을 제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안에 말씀과 다른 것이 제거될 때, 그것을 깨끗케 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엡 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결과적으로 가지치기란 말씀으로 생각이 새롭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깨끗하게 되고, 거룩하게 되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말씀으로 우리를 깨끗케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