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4.10일 경찰의 대우차 노조원에 대한 무리한 폭력 진압으로 경찰 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과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 폭력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고, 또 경찰이 편집해서 방영한 노동자들의 모습이 나오는 비디오를 보면서 노동자들 또한 경찰 폭력을 유도했다라는 양비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경찰 폭력에 대한 실태에 대해 얼마전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여..... 더 자세한 내용은 자료실에 올려놓겠으니 꼭 읽어보시기를...
1) 농민대회에 대한 경찰의 폭력탄압 사례
(1999년 12월 / 2000년 7월)
1. 1999. 12.10 전국농민대회(2차 민중대회)
1999년 12월 10일 오후 1시 서울역에서 전국의 농민 15,000여명과 노동자 학생 5,000여명 총 20,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농가부채 완전해결, WTO수입개방 반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99 전국농민대회 및 2차 민중대회를 진행하였다. 집회를 마치고 서울역에서 정리집회 장소인 명동성당으로 거리행진을 하는사이에 서울역앞 4거리와 신세계 백화점 4거리에서 전경과의 충돌이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백골단, 흑골단까지 동원한 경찰병력은 무자비한 연행과 폭행으로 대오를 분산시키고 100여명이 연행되고 아무런 저항의지가 없는 60-70대 노인에게까지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여 뇌출혈을 일으키는 등 중상 50여상을 포함하여 총 200여명이 부상당함.
심지어는 이날 저녁 집회를 마치고 평화적으로 동국대로 이동하고 있던 학생들에 대해 경찰이 조직적으로, 체계적으로 무자비한 폭력, 테러를 자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저녁 9시 10분경 대한극장 앞에 이른 학생들은 진양상가 쪽 골목골목에 배치되어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던 전투경찰 ( 방패번호 1031, 1032, 1074 ) 에 의하여 3방향으로 기습당하여, 퇴로도 없이 진압을 당하기 시작했다. 사전 경고도 없이 자행된 갑작스런 기습공격으로 1000여명의 학생들은 폭 3-4 미터의 협소한 경사진 골목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땅바닥에 쓰러진 학생위로 수십명의 학생들이 포개져 넘어졌다. 아래 부분에 깔린 학생들이 거의 질식사지역으로 몰리고, 사람죽는다는 아우성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경찰들이 쓰러진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곤봉세레를 가하고, 방패로 찍는가 하면 도로 위쪽에 서있는 경찰들은 쓰러진 학생들에게 돌을 마구잡이로 계속 던졌다. 어린 학생들에게 무자비하게 가해진 경찰의 이런 폭력, 테러로 말미암아 200여명의 학생들이 중,경상을 당하였고, 특히 항공대 이재희 학생은 경찰이 던진 돌을 맞아 한눈을 실명당했다. 또한 세종대 정은숙, 용인외대 윤미정 학생은 저산소증과 심한 전신타박상, 신체내부출혈등으로 의식불명의 상태가 되어 산소호흡기로 연명하면서 뇌사상태의 소견을 보이는 등 위태로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천만다행으로 정은숙학생은 의식을 회복되었고, 윤미정 학생은 다음날 ( 11일 ) 낮이 되어서야 의식이 겨우 돌아오게 되어,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으나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집회참가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맨손의 어린 학생들에게 경찰이 사전 경고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폭력, 테러로 기습하여 이런 심각한 상황을 만든 것은 바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죄] 로 처벌받아야 마땅한 범죄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범죄적 폭력 진압을 자행하고도 경찰이 ' 취루탄없은 시위원년' 운운을 입에 올리는 것은 파렴치한 것이라 하겠다.
2. 2000. 7.25 전국농민대회
2000년 7월 25일 오후 1시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전국의 농민 15,000여명과 노동자, 학생 5000여명 총 2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농축산물 가격보장, 농가부채해결, WTO 수입개방 반대 7.25 전국농민대회가 개최 되었다.
집회를 마치고 명동성당까지 거리행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종로4가에서 경찰과의 약간의 충돌이 있었고 이과정에서 전투경찰, 백골단등을 앞세운 공권력은 평화적인 행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종로4가에서 대오를 절반으로 차단하고 무자비한 연행과 폭행을 자행함. 이에 성난 농민들은 대오가 완전히 분산되어 정리집회 장소인 명동성당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과의 심한 충돌이 일어났으며 농민의 돈을 갈취하고 방송차 2대가 유리창이 깨지고 완전히 파손되었으며 약 70여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총 300여명이 부상을 당하고 100여명이 연행을 당하였다. 경찰의 무비자한 폭력적 탄압에 결국 정리집회 장소인 명동성당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종묘공원에서 정리집회 후 해산함.
2000년 7.25 전국농민대회 부상자 현황
2) 2000년 6월, 7월 롯데호텔노조·사회보험노조 경찰침탈과정에서의 경찰폭력 사례 및 부상자 명단
Ⅰ. 7월 10일 폭력적 강제 진압과 단병호 위원장 불법 강제연행 경과
□ 7월 10일 11:00시에 롯데호텔 3층에서 노사협상을 갖자고 제안하고, 이 제안에 의해 조합원과 교섭대표가 명동성당에서 롯데호텔로 이동.
□ 경찰의 출입 봉쇄로 인해 노사교섭은 무산되고, 조합원은 성실교섭을 요구하며 호텔 앞 주차장에서 12:00부터 집회.
□ 경찰과 조합원 대치가 길어지면서 사태 수습을 위해 18:20경 단병호 위원장 롯데호텔 앞 도착.
□ 간단한 대책회의를 갖고 일단 롯데호텔 앞 농성 집회는 해산하기로 결론을 맺고 이를 조철 관광연맹 위원장이 발표하기로 결정.
□ 조철 관광연맹 위원장이 방송차에 올라 대책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해산 후 명동성당으로 집결하라는 지침을 전달하자 경찰이 진압시작.
□ 진압이 시작되자 조합원과 밀착된 경찰은, 앉아 있는 조합원들이 밑에 깔릴 경우 사고를 염려해서 '밀지말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바로 뒤에 있는 지휘자가 '밀어', '다 끌어내' 라며 명령.
□ 진압이 폭력적일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라고 보는 것은 첫째, 집회 대오를 해산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했음에도 강제로 해산작전을 시작했다는 것과 둘째, 폭력진압이 현장 상황에 의해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지휘계통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 이 과정에서 단병호 위원장이 의경에 의해 사지가 들리고 호송차량으로 연행되었으며, 차량안에서는 단병호 위원장을 자리에 강제로 앉히려는 과정에서 폭언과 폭력이 행사되었다.
Ⅱ. 6월 29일, 7월 1일 강제진압 과정에서 드러난 과잉 폭력
□ 파업사업장 경찰병력 투입은 경찰의 강제적 진압과 이에 대응하는 조합원들의 저항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는 심각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위험한 작전 가운데 하나이다.
□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롯데호텔 진압 작전은, 조합원이 건물 2층에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현장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사고에 대비한 보호장치를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 3시간 동안 강행되었다.
□ 진압작전이 강행된 3시간 동안 롯데호텔 조합원의 저항은 36층 실내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연막탄, 공포탄 등을 막기 위한 것이었고 저지선이 무너진 후에는 모든 기력을 소진한 뒤였기 때문에 저항할 의사를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다.
□ 조합원들에게 폭행이 가해지고, 조합원들이 집중적으로 부상을 당한 것은 바로 저항을 완전히 포기한 뒤 부터라고 보면 된다.
□ 시회보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찰이 투입되기 직전까지 사회보험 조합원들은 창가에 서서 걱정스럽게 밖을 쳐다보았을 뿐 어떠한 저항도 없었으며, 경찰투입이 시작된 뒤에는 사고를 우려한 지도부의 지침에 따라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 경찰은 진압 작전을 시작한지 불과 30분도 안돼서 현장을 제압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합원과 경찰 사이에 커다란 마찰이나 충돌이 없었음에도 3급 장애인을 포함한 36명이 진단 82주에 해당하는 부상을 입었다.
Ⅲ. 롯데호텔 파업을 지원한 민주노총 활동가에 대한 표적테러
□ 롯데호텔과 사회보험에 에 경찰병력이 투입 된 이후 7월 11일 현재까지 경찰의 폭력 과잉 진압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노동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 이 가운데 부상 정도가 심해서 병원 치료를 받은 노동자는 28명이나 되고, 특히나 롯데호텔 파업에 지원을 나갔던 민주노총 조직쟁의실 활동가와 서울지역 본부 활동가들 8명이 집중적으로 폭행을 당한 것이다.
□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 이수희 본부장이 6월 30일 수십명의 경찰에 둘러 쌓인 채 안면을 집중적으로 집단 구타를 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수술 후 2주일간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민주노총 이근원 조직쟁의실장(어깨 부상), 오동진 사무처장(안면 외상), 김정근 조직 2국장(집단 구타 머리 외상 6바늘 봉합), 심동진 조직 2부장(안면 외상 9바늘 봉합), 황명진 조직 1부장(외쪽 다리 부상), 박상윤 서울지역본부 조직부장(안면 외상 9바늘 봉합, 머리 외상 5바늘 봉합), 여성오 서울지역본부 조직부원(안면 외상)이 심한 부상을 당했다.
□ 이 가운데 롯데호텔 파업지원 담당자 김정근 조직 2국장은 6월 30일 새벽과 7월 1일 두 차례, 총 세 차례에 걸쳐서 병원 신세를 졌으며 박상윤 조직부장은 6월 30일 눈밑 외상으로 봉합 수술을 받은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7월 6일 머리를 다시 곤봉으로 맞고 봉합 수술을 받았다.
□ 롯데호텔 파업지원 담당자 두 명이 다섯 차례에 걸쳐 폭행을 당한 것은 우발적인 사태로 설명할 수 없는 표적 테러이며, 6월 29일 이후 집회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폭행은 전혀 무장하지 않은 조합원에게 가해진 과잉 진압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Ⅳ. 과잉 폭력 진압에 동원된 병력과 지휘체계를 밝히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 민주노총은 롯데호텔과 사회보험 파업현장에 경찰병력이 투입되면서 가해진 모든 폭행과, 이로 인해 발생한 부상자와 부상 정도를 보면서, 경찰 폭력이 극에 달한 이유와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 6월 29일 롯데호텔 파업현장에 경찰병력이 투입되기 직전 이무영 경찰청장이 청와대를 다녀왔다는데, 경찰병력의 투입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직시를 했는지 여부를 밝히고, 노동현장에 정부가 경찰병력을 동원해 개입하여 노사문제를 파행으로 몰아간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해야 한다.
□ 롯데호텔과 사회보험 파업현장에 테러진압을 주임무로 하는 솔개부대가 동원되었다는데, 이 부대의 지휘체계를 밝히고, 조합원의 목숨을 담보로 한 과잉 폭력 진압의 책임을 물어 이무영 경찰청장을 파면해야 한다.
□ 롯데호텔과 사회보험에 경찰병력이 투입된 것은 사측이 성실한 교섭을 해태하고 정부에 의존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를 수수방관하고 기본적인 역할마저도 포기한 최선정 노동부장관의 직무유기에 대해 책임을 묻고 파면해야 한다.
□ 6월 29일 이후 민주노총 집회 .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맨몸뿐인 시위대에 무차별 폭행을 가한 부대의 지휘책임을 묻고, 부상자 치료비 일체를 배상해야 한다.
□ 파업현장에 경찰병력 투입된 지난 6월29일과 7월1일부터 롯데호텔과 사회보험 건물에 조합원 출입을 막고 있는 경찰병력을 철수 시켜야 한다.
Ⅴ. 사회보험 노조 경찰의 불법 폭력진압 실상 ( 7월 1일 )
● 7월 1일 새벽 3:00경 대테러 진압부대인 경찰특수부대원을 포함한 3000여명의 경찰병력이 공격을 시작했다. 노사실무협상장 바로 윗 층인 7층에는 고가사다리가 동원되어 유리창을 깨고 진입해 들어오면서 연막탄과 곤봉, 방패를 사용하는 무차별 진압이 시작되었고, 1층 로비에서 무저항 자세로 있던 300명의 노조원들에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 김한상 노조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경찰력에 전혀 저항을 하지 않았던 2000명 노조원들은 상상할 수 없었던 폭언과 폭력에 치를 떨었다. 집기가 날아다니고 몽둥이와 군화발이 닥치는대로 퍼부어지는 미친 듯한 폭력은 임신부도 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장애인 노조원에게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무차별 집중 구타가 행하여지기도 하였습니다.
● 고층, 심지어 15층 옥상까지 공포에 떨며 이리저리 쫒기는 노조원들을 위해서 안전장치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은 이들이 노조원들을 무엇으로 생각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매를 맞고, 무릎이 꿇리고, 욕설을 들으며 모멸감과 분노에 몸을 떨면서도 우리 노동조합원들은 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순순히 연행되어 갔다. 그러나 경찰폭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버스 안에서도 집요하게 계속되었습니다.
● 이러한 폭력은 공단 전층에서 똑같이 벌어져서 공단건물내에 있었던 2000여명의 노조원중 200-300명의 노조원들이 무차별 살상에 의하여 머리가 깨지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당하였습니다.
● 결국 1660명의 노조원들이 경찰서에 연행되어 감금되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경험하였으며, 현 김대중정권이 인권을 보호하는 정부라고 대외에 홍보하면서도 실제로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경찰력을 동원하여 과잉진압과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는 인권유린의 정권임을 비로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 사회보험 노동조합 7/1 경찰병력 투입시 부상자(36명 진단 총 82주 / 장애 3급 장애인 폭행)
*롯데호텔 노동조합 6/29 경찰병력 투입 이후 부상자 120명
3) 2000년 12월 노동자대회 경찰폭력사례 및 부상자 명단
■ 당시의 상황
노동자, 학생 등 약 2만여명 참가해 노동자대회 개최, 본대회 시작 전에 전태일 열사 근로기준법 조형물과 피켓을 경찰측이 강제로 차단하여 노동자들과 충돌이 일어나 노동자 10여명 부상. 집회를 마친 후에 민주노총은 대학로에서 명동까지 편도 전차선 행진에 대한 집회 허가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종로 5가 접어들 때 경찰이 원천봉쇄하여 노동자와 충돌하여 다수 부상자 발생.
■ 총 부상자 수 128명(11/14 현재)
1) 병원별 부상자 현황
- 서울대병원 : 26명
입원 : 박재경(고대학생) - 각막부상, 수술.
치료 후 퇴원 : 25명.
- 이대 동대문병원 : 35명
입원 : 황창호(화학섬유 수석 부위원장) - 인중 구멍
정철수(출판사 직원) - 인도에서 방패로 안면 구타, 이 3개 부러지고 턱과 이 마에 금.
이동희(현대자동차 전주지부) - 얼굴 전체 찰과상, 수술.
현광훈(공공연맹) - 방송차에 타고 있는 상황에서 전경에게 방패로 찍혀서 차는 파손되고 얼굴 부상,13일 이대 목동병원에서 수술 예정.
치료 후 퇴원 : 민병삼(경기동부 금속노조) - 눈위 찢어짐, 공공연맹 초청 일본인 1명, 그 외 30명.
- 국립의료원 : 13명
입원 : 박성찬(서울대학생) - 안경이 깨지면서 각막파손, 실명가능성 높음.
김용제(서울대학생) - 머리와 전신 짓밟힘, 중상, CT 촬용 필요.
치료 후 퇴원 : 11명
- 서울 백병원 : 5명
입원 : 전남대학생 - 코에 구멍, 광주에서 입원 예정.
치료 후 퇴원 : 4명.
- 연세병원 : 2명
입원 : 김영대 (민주노총 부위원장) - 눈 위 부상, 수술
김두한 (노동이론정책연구소) - 얼굴 방패로 찍힘.
- 충무병원 : 1명
입원 : 김기준 (한국철도차량) - 무릎 부상
- 경희의료원 : 10명
치료 후 퇴원 : 10명
- 성북 중앙병원 : 20명
치료 후 퇴원 : 학생 20명
- 금속연맹
현대자동차 전주지부 대의원 김주일, 손가락 검지, 온몸 타박상, 안경 파손.
- 동성애자 인권연대
대표 임태훈, 머리 찢어져 8바늘, 뒤통수 공봉 맞아서 부었음.
양무릎 찰과상 등쪽 염좌.
상근자 배홍현, 방패에 찍혀서 왼쪽 중지, 약지 찢어짐.
왼쪽 무릎 허벅지 염좌.
- 건설산업연맹
건설산업연맹 부위원장 배명호, 경찰이 끌고가 집단구타 엉덩이, 무릎 심한 타박상.
건설산업연맹 통일위원장 장광수, 경찰 곤봉 구타로 오른손 살점 떨어져나감.
인천지역 서정식, 경찰 곤봉에 부상 머리 4바늘 꿰멤.
인천지역 정남헌, 경찰 곤봉에 부상 머리 8바늘 꿰멤.
동두천지역 김보현, 경찰이 던진 병을 막다가 다침, 손 13바늘.
하남지역 위원장 양태조, 방패에 찍힘, 정밀검사 중.
서울지역 노오남, 경찰구타에 의해 엄지손가락 타박상.
서울지역 민경섭, 경찰구타에 의한 무릎 타박상.
서울경기지역설계 장달수, 넘어진 상태에서 경찰이 밟음, 허리 심하게 다침, 정밀진단중
대전지역 정성일, 경찰 집단구타에 의한 얼굴 통통 붓고 갈비뼈 1대 금감.
경기광주지역 사무국장 임현순, 경찰 곤봉 구타로 팔 심하게 부음.
경기광주지역 체육부장 정진복, 넘어진 상태에서 경찰이 밟음, 허리다침.
경기광주지역 조통부장 이성수, 경찰 집단 구타로 온몸 타박상.
- 충북지역본부
심재봉 : 한국네슬레 조직차장, 머리 7~8Cm 찢어짐, 치료 중
고흥창 : 전국축협노조 충북본부 영동지부장, 눈위 5Cm 찢어짐. 치료 중
홍의면 : 청주지역택시노조 평화분회 부분회장. 곤봉에 맞아 복숭아뼈 탈골. 현재 입원 치료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