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19/옥수수 이야기 3]새들의 먹잇감으로 줄 수야…
어제는 이웃동네 친구의 옥수수를 따주느라 하루종일 진땀을 흘렸다. 전북지역 폭염주의보가 내렸으니 30도를 훨씬 웃돈 모양이다. 그늘을 피하여 마을창고에서 박스작업을 하는데, 감로수甘露水는 역시 찬물이다. 5시 택배트럭에 72상자를 상차하고 나니,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오늘 새벽 5시 30분, 들판의 옥수수밭을 가보고 경악을 했다. 사방팔방 잘 익은 옥수수들이 비둘기와 까치들의 ‘밥’이라니?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미물인 새들이 어느 밭에 옥수수가 맛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퍼지면 하루아침에 일제히 몰려 ‘작살’을 낸다고 한다. 6시, 남원과 전주의 네 친구에게 이제 딸 만한데, 오늘 역사적인 작업을 도와달라는 SOS를 쳤다.
모두 흔쾌히 오케이. 역시 친구 밖에 없다. 착착 도착하여 한 고랑씩 맡아 옥수수 1번(첫번째 달린 것)을 화아확- 제키기 시작했다. 10시 반, 2천여개가 동네 팔각정모정에 쌓였다. 쌓아놓고 보니 거창하다. 들판에서 모정까지 운반수단은 트럭. 옆동네 친구가 팔 벗고 나서 가능한 일이다. 이제부터는 종이상자를 테이핑하여 30개씩 넣어야 한다. 오후 5시 택배트럭이 올 때까지 몇 상자나 작성(일본말로 ‘미쓰구리’라고 한다)할 수 있을까? 100개를 만들려면 3000개의 옥수수가 있어야 한다. 진용을 새로 했다. 3명은 다시 옥수수밭으로 진군하고, 나머지는 박스 작업하면서 작성된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으로, 그것으로도 어림없어 동네 형수씨에게도 부탁했다.
다행한 것은 오후부터 비 올 확률이 60%여서인지 날씨가 흐렸다. 어제같은 땡볕 그 자체이면 오늘의 작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후 5시까지 ‘죽어라고 해’몇 상자나 했을까? 불행히도 100개에 8개 모자란 92상자. 그것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보내놓고 나니 몸은 축 늘어졌어도 머리 속은 개운하다. 내일은 몇 개나 만들어 보낼 수 있을까? 이틀새 주문이 모두 350개. 과연 주문량을 채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두 번째 옥수수까지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상품으로는 내놓기가 거시기하다. ‘젊은 청년’ 넷이 작업하는 게 안타까웠는지, 어느새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달려들었다. 옥수수를 수년째 재배해 재미를 톡톡히 봤다는 아주미는 우리같은 아마추어 기 죽이는 것은 문제가 아니게 폼부터 달랐다. 막 딴 옥수수를 다듬는데 부엌칼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다. 새꺼리 먹는 시간도 아껴서 가능한 택배물량이었다. 달려온 친구 다섯 명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는 일, 동네 아주머니 세 분까지 손을 보태니 졸지에 마을의 공동작업(울력)이 된 것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미물인 새들은 옥수수 알을 쪼아 먹는 맛을 알까? 콩잎이 나오면 콩잎만 싸아악 훑어먹는다. 일일이 쫓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얼룩덜룩 비닐을 사방에 둘러쳐도 잠시 막는 것일뿐, 원천적인 방지는 불가능. 도대체 새(떼까치, 비둘기 등)와 산짐승(멧돼지, 고라니 등) , 두더쥐 등 때문에 농사를 짓을 수가 없다. 물론 풀과의 전쟁은 우선순위이다. 애써 지은 농사를 그들의 먹이로 바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접근을 원천봉쇄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우매한’ 인간들을 비웃는 듯하다. 하여, 오늘 절반이라도 옥수수를 따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이틀새 그야말로 ‘쑥밭’을 만들어버린다는 농사선배들의 말이 솔직히 믿기지는 않지만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 속사정을 편히 카톡으로 농산품을 주문하는 도회지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는가? 이해를 바라는 것조차 무리임을 알지만, 야속하기 짝이 없다. 한번이라도 농민들의 노고를 최소한의 인간적 배려로 이해하는 마음이 앞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건 그렇고, 택배 상자마다 <알림의 글>을 써 복사를 하여 넣어드리려고 했는데, 너무 바쁘고 정신이 없어 하지 못했다. 내용인즉슨, 먼저 신청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후, 옥수수 맛있게 쪄먹는 법 등을 안내하는 것이다. 그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 동영상 몇 개만 보면 모두 따라할 수 있다. 옥수수 껍질을 거의 다 벗기고 양푼솥 등에 물을 옥수수가 거의 잠기도록 잘박하게 넣고, 소금 한 숟갈과 뉴슈가 반 숟갈을 넣어 30여분 끓이면 된다. 백종원이라는 쉐프를 아시리라. 먹방에 너무 많이 등장하는, 완전한 방송인이자 엔터테이너라 할 수 있는데, 워낙 능글능글 임기응변도 능하여 도무지 밉지가 않다. 그가 안내하는 계란과 옥수수 삶는 법을 봐보셔라. 옥수수 까먹는 방법까지 알려주면서 싱긋 웃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더구나 엄청 예쁜 탤런트출신하고 결혼해 아이도 많이 나았다던가.
어제밤 솥에 옥수수 20여개를 까 그대로 해보았는데, 제법 잘 삶아진 것같았다. 3개, 5개씩 이웃집을 돌며 내가 처음 지은 옥수수로 쪘으니 드셔보라며 돌렸다. 그런 착한 일을 한 때문인지, 오늘 너무 힘들고 시간에 쫓기는데, 모두 달라붙어 도와주었기에 불과 오후 서너 시간에 90개가 넘는 택배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내일은 몇 개나 따 몇 상자나 택배로 보낼 수 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곤피곤피한 몸뚱아리를 눕힌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