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뉴세문경을 통해 본 한반도의 청동기 시대
1. 두가지 청동거울 다뉴조문경, 다뉴세문경
다뉴조문경> BC10세기경 한반도와 만주 동북부, 연해주 등 고조선 영토에서 발견되었다. 거친무늬 거울이라고도 부른다.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청동기 유물로 청동거울, 청동검, 그리고 청동방울을 들 수 있다. 이 중에 청동거울은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을 들 수 있다. 다뉴조문경은 BC 10세기 경 초기 청동기 시대의 것으로 거친 무늬의 청동경이고 다뉴세문경은 BC 5세기 후기 청동기 시대에 발견되는 것으로 세밀하고 정교한 무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한다.
1960년에 충청도 논산에서 발견된 다뉴세문경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정교하게 배치되어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지름 21.2cm의 원에 1만 3000여개의 정교한 선이 그어져있으며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은 0.3밀리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다뉴세문경> BC5세기경 한반도에서만 30여개가 발견되었다. 잔무늬거울이라고도 부르며 더 할 나위없이 가는 선으로 이루어진 무늬가 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한국의 청동거울을 보고 놀란 일본학자들은 다뉴세문경은 중국에서 제작한 것이며 다뉴조문경은 한국에서 중국의 다뉴세문경을 서투르게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다뉴세문경은 중국과 일본에 전무하며 한반도 남한지역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한국에는 청동기 시대가 없다고 믿고 싶어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속속 거푸집이 발견되면서 이러한 청동기가 자체제작된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청동기 문화의 전달 방향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한 것만은 아니란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2.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은 우리민족의 영토에서만 발견되었다.
다뉴조문경 및 다뉴세문경 제작을 통해 보건대 한국의 청동기는 중국과 다른 독창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다뉴조문경 및 다뉴세문경은 고조선의 영토에서만 발견이 된다.
BC1000여년전 다뉴조문경은 중국동북부, 러시아 연해주, 한반도에서만 발견되며 이곳은 고조선의 영토로 우리 민족이 살았던 곳에서 세형동검, 동과, 동모, 방울들과 함께 출토된다. 한반도에서만 100여점이 넘게 출토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교한 다뉴세문경은 일본과 중국에는 전무하며 BC5세기 경 한반도의 남한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다.
3. 우리민족이 사용한 거푸집은 중국의 것과 달랐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청동기를 제작한 거푸집은 중국의 것과 확연하게 달랐다. 중국은 진흙거푸집을 사용한 반면 우리조상들은 활석거푸집을 사용하였고 삼국시대에는 모래거푸집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활석거푸집을 사용했기에 우리조상들은 다뉴세문경과 같은 정교한 청동기를 제작할 수 있었다.



평안남도 맹산에서 발견된 청동거울 거푸집. 한성백제박물관 소장
4. 우리조상들은 세계 최초로 청동제작에 아연을 사용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우리 조상들이 청동기 제작에 세계 최초로 아연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함경북도 나진에서 발굴된 BC10세기 청동방울 유적에서 13.7%의 아연이 포함되었으며 황해도 봉산군 송산리에서 발견된 다뉴세문경과 주머니 도끼에서도 각각 아연이 7.4%, 24.5%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현재 청동제작에서 아연을 사용한 것은 기원전 20년에 로마에서 청동동전 제작에 사용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왔다. 또한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도 청동기 제작에서 아연을 사용하지 못하였다.
아연은 기화점이 낮아서 쉽게 기화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러한 점을 극복하여 더 아름답고 질이 좋은 양질의 청동기를 제작했던 것이다.
5. 우리나라 청동검의 제작연대가 중국보다 빠르다.
그동안 청동기문명은 중동지방에서 BC 5000년경에 자연동이 발견되고, BC4000년경에 실용화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BC3000년경 코카서스-이란고원에서 청동기가 주조된 것이 시초이다.
이것이 BC2200년경에 중국에 전달되고 시베리아에는 다른 경로로 BC1200년경에 전달되어 한국에도 전달되었다고 보고 있었다.그러나 최근 활발한 유물조사들은 이러한 결과들을 뒤짚고 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검은 비파형동검과 세형동검 두 종류이다. 비파형동검은 요령식동검이라고도 불리며 요서, 요동, 한반도에서 발견된다. 세형동검은 한국식 동검이라고 불리며 한반도와 일본에서만 발견된다.
남한지역에서도 양평군 양수리 지역에서 BC 1900년, 영암군 장천리 주거지 BC2635-2365에 해당되는 유물이 발견되어 윤내현 교수는 고조선의 청동기문화를 BC2500년으로 올려잡았는데 이것은 중국청동기 시작은 물론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조선 건립시기보다 빠른 것이다.
북한의 유적발굴상황은 더 시기를 앞당긴다. 1990년 평양 상원에서는 BC3000년 전반의 비파형 화살촉이 발견되었다.
이에 북한에서는 한반도의 청동기 시작을 BC4000년경으로 보고 비파형동검은 기원전 2500년경 세형동검은 BC14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6. 청동거울의 변천을 통해 본 고조선의 역사
한편 청동 거울은 고조선의 중국영토에서도 발견이 된다. 요서지역인 조양에서는 비파형 청동검과 함께 다뉴조문경이 발견된다고 한다.
이 청동거울은 귀족들만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삼국시대에도 일종의 하사품으로서 임명장과 같은 구실을 했다. (일본에서 17개가 넘게 발견된 인물화상경은 무령왕의 위임을 받아 곤지가 일본호족들에게 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요동수도 심양에서는 다뉴조문경과 다뉴세문경의 중간 형태의 청동거울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정교한 무늬를 가진 다뉴세문경은 BC세기 경부터 출토된다. 국보로 지정된 다뉴세문경은 충주, 공주, 아산, 논산 등 충청도를 중심으로 BC 2세기 경에 다뉴세문경이 발견되었다.
다뉴세문경만 발견된 것이 아니라 거푸집까지 발견되는데 이것은 거울을 제작해서 제후들에게 전달하는 주체가 한반도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7. 우리나라 청동기 문화를 주도한 사람은 누구일까?
우리나라의 청동기가 중국이나 시베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를 이끈 사람들은 누구일까?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만약 북한의 주장대로 BC4000년경에 이미 청동기가 시작되었다면 중앙아시아 쪽에서 환국이나 다른 부족들이 이동해 청동기 문명을 전달했을 것이며 이란보다 더 빨랐으니 환국으로부터 문명이 이동했다는 환단고기의 기술부분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BC2500년 전부터 만든 비파형동검은 한반도나 조양에 있었던 단군조선 세력이라고 볼 수 있겠으며, BC1400년부터 만들어진 세형동검 그리고 BC1000부터 만들어진 다뉴조문경은 기자가 요서의 조양에 근처에 정착한 후 장당경으로 이동한 단군세력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충청도 지방에서 만들어진 다뉴세문경은 BC5세기 경의 유물로 진국세력이나 1903년간 존재하고 망한 단군조선 세력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과학자 이종호가 본 우리문화 유산. 이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청동기 문화를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