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제애
내 아우는 나보다 세 살 아래인 46년 개띠다.
그래서 그런지 양띠인 나보다 훨씬 팔팔했다.
내가 중학 2년 여름방학 때였나보다.
대청마루에 엎드려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랫뜸에서 어느 할머니가 야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에 애를 어떻게 가르쳤기에 남의 애를 뚜드려 패~"
그건 완수 할머니였다.
서울에 사는 완수가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왔는데
내 아우가 그와 어울리다가 무엇이 아니 꼬았던지
두들겨 팼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어 나가
내 아우를 집으로 끌고 오면서 두들겨 팼다.
왜 남의 욕을 먹고 다니느냐, 는 거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들은 훈계 중 하나는
"나가서 싸우고 다니지 말아라"였다.
그 말씀을 왜 하셨는지는 외가에 들렸을 때 깨달았다.
어머니의 사촌댁에 들려봤더니 두 자매가 자주 싸우는 거였다.
그로부터 나는 형제란 카인과 아벨의 관계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형제애보다 경쟁, 시샘, 질투, 이런 속성들..
그럼에도 나는 늘 아우를 마음에 두고 지냈는데
어느 날 남산도서관에서 나오는데
지나가던 택시가 내 앞에 서더니 "형!" 하고 부르더라.
그때 나는 대학입시를 위해 도서관에 출입하던 때였고
내 아우는 영업용 택시 기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쩌면 형제가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지...
그러면서 그때까지 번 돈을 나에게 용돈 하라고 쥐어 주더라.
궁했던 시기라 달리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머니에 넣고 헤어졌는데
그때 그 장면이 나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나는 당시 교직을 버리고 무작정 상경해
대학에 들어간다면서 알바이트와 공부를 겸하던 때였고
내 아우는 국민학교 졸업과 동시에 상이용사인 숙부님 케어를 하다가
숙부님이 상경하자 아우도 상경해 택시기사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런 연유로 나는 늘 아우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지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골의 전답과 가재도구를 몽땅 아우에게 넘겨줬다.
세월은 흘러
얼마 뒤에 제수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영진이 아빠가 바람 나서 가출했으니 어쩌지요?"
그것 참!!
그래서 그랬다.
"돈 떨어지면 돌아오게 되었으니 기다려보세요."
"그럼 저는 어떻게 살아요?"
그것 참!!
그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었고,
부조금이 들어온 게 좀 있어서 그걸 제수씨에게 드렸다.
"이거 가지고 계세요."
아주 주자니 여동생들의 반란이 염려되어 그랬지만
그냥 쓰라는 의미였다.
아우가 미웠지만
"그래, 너도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바람이라도 피워봐야겠지~"
이런 마음으로 자위하면서 기다리려니
아우는 결국 돌아오더라.
세월은 또 흘러 평형을 이루게 되느니
엊그제엔 내 생일이라고 제 집에서 잔치상을 베풀어주던데
시골의 가산을 내가 차지했더라면 내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을까...?
부끄럽지만 나의 형제애는 이런 것이었지만
마음자리 님의 형제애가 아름다워 이에 화답해봤다.
첫댓글 나도 내 남동생과는 의가 좋습니다
어머니는 3남매 똒같이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고 큰소리 치셨지만 천만에 말씀
어머니 돌아가시니까 아파트 3 채가 다 미국에 있는 남동생 이름으로 되있습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내가 남동생의 아파트 3채를 관리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살아 생전에 남동생 왈 나는 형은 믿는다고 말을 했답니다
나는 수고비만 받으면서 지금까지 7 년 동안 동생의 아파트 관리를 해 주었고
가끔 월세 수입금을 미국의 동생에게 보내 주었구
2채는 팔아서 돈을 동생에게 보내 주었구
1채는 최근에 영구 귀국한 동생에게 아파트 등기부 등본 , 전세 계약서 , 전세금을 넘겨 주었습니다
월세는 아직은 내가 받고 있습니다만 받는 즉시 동생에게 보내고 있습니당
이정도 이면 사이가 좋은 형과 아우 이지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형 노릇 톡톡히 하고 있군요.
그런 형제 많지 않아요.
롯데가가 형편없는 집안인데
왜냐하면
형 편은 없고 아우 편만 있답니다.
@석촌 형편없다~ㅎㅎㅎ
그러게요 불로소득은 언제나
후유증이 있어요.ㅠㅠ
선배님께서 시골 가산을 받지 않으신건
천만다행이예요.^^
내 아내는 다 주는거 싫어했는데.
글쎄요.
형님인 석촌님을 보면 동생분 역시
건실한 살람일 것 같습니다.
옛 분들은 자식도 나누어 가지는 가 봅니다.
석촌님의 선친께서는 동생분을 극진히 사랑하셨기에...
형님 생일에 생일 잔치를 열어 주신 아우님도
역시 형제애이네요.
석촌님, 동생의 형제애 자랑이시죠.^^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석촌님,
태평성대님,
그리고 며칠 전
글을 올리셨던
마음자리님
모든 분들
형제간의 우애
깊으신 분들 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저 또한
다섯 형제 자매중
셋째로
어머니께서
자녀들을 위해
헌신하셨지만
누님과 형님의
도움과 희생
또한 컸습니다.
나중에 적잖은
도움을 드렸지만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형제애가 깊으신
석촌님께서도
아우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오형제가 의가 좋았던 모양이군요.
저야 뭐.
형제는 카인과 아벨의 관계 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서관까지 찾아와서 형에게
돈을 주고 간 동생.
그리고 시골 재산을 제수한테
주신 석촌 님.
그 관계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의가 좋은사람도 있지만
돈때문에 사달이 나기도 하죠.
아름답게 유지되고 있는 형제애는 드물어서
그걸 보면 아주 흐뭇하게 합니다.
형(누나)은 형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제몫을
해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저는 20대에 동생들의 학비를 보탠 일이
있는데 아무도 기억을 못 하니 서운한 맘이
들던데, 그 또한 제가 부족한 탓이겠지요.
그래도 형은 형이지요.
그래서 형만한 아우는 없다는 말도 나왔겠죠.
너그러이 아우르시고
지혜로운 형님 ᆢ
남보다 못하다는 서운함 우리 형제애 에
제 맘 접고 접고
스스로 위안 하며 시위 의 표시 연락 차단 중이죠!!!
사람 관계란 복잡한고로 형제애나 자매애도 여러갈래의 모습이 있게 마련이지요.
오는 22일 수필방ㅇ번개에 나오시길.
어머니 생전에 늘 하신 말씀이
'형제간에 의 상하면 안 된다'였어요.
다행히 어렵게 살았어도 남매지간의
정들은 잘 유지된 것 같습니다.
결국 형제애가 되겠지요.
매일 싸우고 치고 받아도 형제는 변함없는 형제입니다. 그리고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내가 잘하면 형제도 잘하는법입니다. 혼자사는 큰누이도 43년생입니다. 저는 퇴직후 연금받고 살면서 두며느리에게 매달 30. 큰누이에게 20을 간식비로 주었습니다.
요새는 여동생이 바톤터치해서
큰언니에게 매달 20을 줍니다. 힘들다고 하면 다시 제가 할겁니다.
작은돈도 아니지만 큰정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