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스승의 날을 앞두고 모처럼 최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지난 1월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같이 살던 따님을 통해 들었다. 향년 91세.
고3때 담임선생님으로 유일하게 살아 계셔서 3-4년전에는 연락이 되어 친구 몇명이 스승의 날에 찾아가 뵌적이 있다. 서울서 먼거리인 파주시 금촌역 운정신도시 근처에 상가건물 3층에 연로하신 사모님과 둘째 따님과 어렵게 살고 계셨다.
선생님은 고문을 아주 재미있게 가르치시고 제자 사랑이 지극하셨다. 고문을 한참 성에 대한 민감한 나이에 처용가나 쌍화점에 나오는 남녀간의 애정행각을 빗대여 풀이해주어 조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좋으신 분이었다.
우리가 고등학교다닐때는 지방서 기차타고 통학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수원과 안양에서. 인천서 그리고 파주 일산에서 심지어 평택에서도 서너명이 학교를 다녔다. 선생님을 찾아 뵙게 된 계기도 평택서 3년을 꼭두새벽 통학하던 친구가 어느날 산에서 내려오면서 당시 학교를 70일넘게 결석해 졸업이 안되는것을 알고 어머니께서 평택서 찾아오셔 담임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애 좀 살려 달라고 애원하셨단다. 고민하신 선생님이 69일로 출석부를 고쳐 졸업할수 있었다며 5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꼭 선생님께 감사인사 드리고 싶었다고 해서 수소문끝에 찾아 갔었다.
고3때 문과반 담임하던 최선생님 반에는 유독 운동선수들이 많았다. 축구.럭비.아이스하키.탁구.농구등 국가대표급선수들이 그반에만 10명이 넘어 오전수업만하고 오후에는 빠져나가는 선수들이 많아 늘 수업시간이 어수선한 편이었지만 선생님은 선수들에게 잘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선생님을 두번 찾아갈때 동기들이 앞장섰고 그리고 선후배들이 도움을 주어 선생님 약값에 쓰시라고 첫해는 520만원이 둘째해는 320만원을 전해 드렸는데 같이 선생님댁에 두번 같이간 사업으로 성공한 아이스하키 선수 출신인 친구는 100만원을 봉투에 따로 드렸다.
어제 오전 최선생님의 별세소식을 알리니 176명의 동기 대화방이 하루종일 선생님을 추억하며 명복을 비는 것으로 가득찼고 두어시간 지난후에는 2개월전에도 체육을 가르치셨던 액션배우같이 잘 생기셨던 김선생님도 별세소식이 알려져 추도의 하루가 되었다. 당시 우리가 최선생님을 모시고 식당에 갔을때 깡마른 모습이 안타까워 많이 드시라고 해도 옛날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셨다. 집에 다시 들어가 커피한잔을 하는데 오래된 장식장에서 교사시절 해외연수로 말레이시아에서 사오신 주석컵을 꺼내 하나씩 주셨고 그다음해는 미국사는 아들이 보냈다는 영어로 쓰인 바르는 약을 주셨는데 알고보니 관절염약이었다. 나는 많이 있으니 너희들 필요하면 쓰라고 주셨는데 요사이 집사람이 요긴하게 바르는 것을 보니 선생님 생각이 더욱 났다.
철모르던 시절 우리를 인도해준 선생님들은 이제 거의 다 세상을 떠나셨지만 앨범을 보면 옛날이 그립기만 하다.
못살던 시절. 학교도 다니기 어려웠던 그시절이 그렇게 흘러 갔다.
첫댓글 사제지간의 정이 참 도타웠네요.
그런 스승 한 분이라도 모셔왔다면 행복이지요.
그런 제자를 뒀어도 스승님은 행복이고요.
그때는 학생들을 악의적으로 때리는 선생님도 많았어요.. 그러면 사회에 나와 절대 찿아 가지 않았죠..
4월 15일 별세하인
우리 선생님을 떠올리게 되는 글입니다!!!
선생님들의명복을빕니다
우리도 나이가 먹었으니 당연히 세상떠난 분이 많습니다. 자연의 순리죠.
선생님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한마디
나는 중동창회 에서 나 중2 와 중3 때 담임 선생님을 했던 상업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 년이 지난후의 나를 알아보시기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년 후에 작고 하셨다는 소식에 안타까웠습니다
나 중1 학년때 나의 가정교사였던 선생님을 나 대학교 합격한 이후에
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 선생님을 찾아 갔었구
선생님 퇴근 후에 댁에서 저녁 식사 대접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도 지금 쯤은 작고 하신거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선생님한테 과외받는 학생들은 거의 잘사는 집애들이였어요.. 우린 감히 꿈도 못꾸던 먼나라 얘기였죠.
회자정리라고는 합니다만,
철모르는 시절의 스승님은 평생 스승입니다.
졸업한지 반백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스승님을 잊지 못하지요.
모교라는 이름이 평생을 따라 다니듯이
모교에 계셨던 선생님은 떠나시질 않지만,
세월이 인연을 나누어지게 합니다.
옛스승님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언덕저편님과 동창분들,
소식 자주 전하고 계시겠지요.
우리등기들도 479명 졸업하여 공식적으로 68명이 죽었습니다. 연락안되는 친구증에도 상당수 세상떠났을겁니다. 요새도 가끔 외국으로 이민간 애들이 간간이 등장합니다. 보고 싶다며..
스승의 날을 앞두고 운명하신 소식이 안타깝군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선생님은 1999년에 2억9천을 퇴직금 일시불로 받았으나 자식들 넷이 손벌려 조금씩 주다보니 어렵게 사셨습니다.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4관왕 전모선수가 외손녀랍니다.
제자들이 늦게까지 찾아주는 그
보람이 스승으로서 가장 큰 기쁨이셨겠지요.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고 선생님이 제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가르쳤다면 어린 제자들도 다 알아서 존경하고 흠모하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