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심각한 장애인 인권 침해가 신안에서 발생했습니다. 사회는 ‘염전노예’ 사건이라고도 합니다. 이 사건은 1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지난 4월 염전사건 1년을 맞아 서울신문에서 1년 후의 모습을 특집 형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내용 중 놀랐던 것은 당시 그곳에서 구출되어 가족이나 지역으로 돌아갔던 60여 명의 피해자 중 40여 명이 다시 염전으로 돌아갔으며, 13명만이 시설 등에서 생활하며 사회에 정착해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문은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가족의 무관심 함께 그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지원 체계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라고 보도했습니다. 저는 후견인입니다 제가 후견하고 있는 분은 염전노예사건의 피해자이십니다. 이 글을 쓰기 전 민철씨(가명)에게 전화를 드려 잡지사에서 후견 관련 글을 부탁받았는데 민철씨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금년 초 한 신문사에서 민철씨께 후견 관련 인터뷰 요청이 있었는데 “싫다”는 의사 표명하신 적이 있어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민철씨가 본인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작년 7월 발달장애인 후견지원 중앙지원단(보건복지부 운영)에서 신안 염전 피해자 중 한분이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후견인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가 후견인으로 활동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작년 8월 저는 민철씨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서 진행된 후견심판을 받으러 가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4시간 동안 고향, 형제, 부모님, 염전에서의 생활, 지금 생활하는 시설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법원에서 후견심판 절차가 끝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에서 저는 민철씨에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민철씨는 7년여 전 염전에 들어가면서 연락이 끊긴 가족을 찾고 싶고, 본인 명의의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후견인으로 확정되면 함께 가족을 찾고 핸드폰을 개통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약 한달 후인 9월초에 법원으로부터 심판 결정문이 도착하고 후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후견인으로써 저에게 주어진 후견업무는 강제노역 관련 등 범죄피해 구제 및 회복에 관한 사무 지원, 일상생활, 직장생활 등과 관련된 사무 후원이고, 대리권은 강제 노역 등과 관련된 형사절차 진행, 변호사 선임, 금융기관 채무관련 조회입니다. 후견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민철씨의 빚 연대보증 관련 일이었습니다. 민철씨가 거주하는 시설로 빚보증 관련 우편물을 이미 받아둔 상태였습니다. 저는 민철씨와 함께 신용보증기관을 방문하여 내용을 확인하고, 변호사에게 의뢰했습니다. 두 번째는 민철씨의 핸드폰을 개통한 일이었습니다. 민철씨와 시설 직원이 핸드폰 개통을 위해 대리점을 방문했는데 170여만원의 요금이 미납되어 개통이 안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민철씨와 함께 관계 통신사를 방문하여 명의도용 신고를 했습니다. 통신사로부터 명의도용이 되었음을 확인받고 핸드폰을 개통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민철씨의 가족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올 3월 초 평택의 주민센터로부터 시설로 연락이 왔습니다. ‘민철씨 동생이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데 생명이 위독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병원 문병 후 민철씨의 조카를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조카와 얘기 중에 안타깝게도 4형제 형 2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후 동생은 안타깝게 사망했습니다. 동생 사망 후 민철씨는 상속자 신분으로 동생이 가입한 보험의 사망보험금 수령, 일하던 직장의 산업재해 신고에 따른 유족급여와 장례 수령, 그리고 동생의 채무를 직접 처리해야 했습니다. 저는 후견인으로써 상속 관련 후견업무가 없었기 때문에 주변의 법률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가족들에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정보만을 제공했습니다. 현재는 사망보험금 수령, 보험해지금 수령, 유족급여를 수령했고, 법원의 상속포기 관련 판결이 나오면 수령된 돈을 가족들에게 분배하는 일과 이후 민철씨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수립하는 일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후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일들이 민철씨에게 중요한 일들이기에 후견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활동 시간도 부족하고 낯선 법률문제를 처리하다보니 많이 힘이 듭니다. 후견인은 다 할 수 없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공후견 지원제도는 피후견인의 특정영역의 사무를 지원하는 ‘특정후견’을 주 사업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이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고, 후견인의 일부 지원을 통해 발달장애인들의 잔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에서 정한 원칙입니다. 저는 공공후견제도 운영의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가끔은 특정후견인으로 피후견인을 지원하는데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특정후견과 관련된 일만 처리하기에는 연결되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후견인으로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삶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일반은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대신해 모든 것을 다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후견인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이 피후견인일 경우 그런 오해는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후견제도가 발달장애인의 자립적 삶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후견인과 피후견인 스스로의 노력과 책임, 주변인들의 관심과 지원, 정부와 지방정부의 자립지원을 위한 정책이 함께 해야 합니다. 장애계에서는 성년후견제도와 관련해 최근 두 가지 상반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정부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 2015.11.21.시행)에서 발달장애인의 후견제도 이용지원을 위한 절차와 내용을 규정함으로써 제도 안정성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부 장애인단체들은 성년후견제도 폐지 추진연대를 만들어 성년후견제도가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법률적 권한을 ‘대리’하도록 하여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후견제도가 갖는 의미가 크고, 개선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어떤 제도이든 시행 2년차가 다양한 자료들이 축적되고, 제도 관련 논의와 실제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정부와 지방정부, 법원, 관련 민간단체, 사회일반은 최근 장애계가 요구하는 의사결정지원 체계에 대한 검토와 함께 현행 성년후견제 시행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도의 실 수요자인 발달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그리고 후견활동을 하는 후견인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송남영 한국지적장애인복지협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