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투수와 타자가 서로를 속이려는 찰나다. 직구를 던질 듯 어깨를 열었다가
슬라이더를 꽂아 넣고, 다음 공은 느린 커브로 타자의 타이밍을 무너뜨린다. 관중은 단순히 공이 날아가는
궤적만 보지만, 그 안에는 이미 몇 수 앞을 내다본 계산과 심리전이 숨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야구는 머리로 하는 스포츠”라고.
그런데 요즘 국제 정세를 보고 있으면, 그 말이 야구장을 넘어 세계 무대까지 확장된 듯하다. 특히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 국면은 마치 한 편의 기묘한 야구 경기 같다. 투수는 공을 던지기 전에 이미 다음 세 공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 경기의 투수는 공을 던지면서도 생각이 계속 바뀌는 듯하다.
오늘은 협상이다가, 내일은 공격이다. 공격을 선언했다가 다시 유예를 하고, 그러면서도 뒤에서는 병력을 증원
한다. 마치 번트를 댈 것처럼 자세를 취했다가 갑자기 강공으로 전환하는 것도 아니고, 강공을 외치다가도 다시
배트를 거둬들이는, 묘하게 리듬이 끊기는 플레이다.
이걸 두고 사람들은 ‘TACO’(Trump Always Chicken Out)라고 부른다. 한 방 때리고 빠진다. 야구로 치면 몸쪽
깊숙이 위협구를 하나 꽂아 넣은 뒤, 다음 공은 바깥쪽으로 한참 빼버리는 식이다. 타자는 순간 움찔하고, 다음
공에 손도 못 대고 물러난다. 분명 효과는 있다. 문제는, 그 패턴이 반복되면 타자도 눈치를 챈다는 점이다.
지금의 상황이 딱 그렇다. 한 번은 강하게 압박하고, 한 번은 물러선다. 그 사이에서 상대는 “도대체 이 투수의
진짜 구종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친다. “혹시 저 투수, 아직 자기 공도 정하
지 못한 건 아닐까?”
야구에서 가장 위험한 투수는 구속이 빠른 투수가 아니라, 의도가 분명한 투수다. 느린 공을 던지더라도 왜 그 공을
던지는지 아는 투수는 타자를 지배한다. 반대로, 공은 빠르지만 생각이 흔들리는 투수는 결국 볼넷을 남발하고 만다.
지금 벌어지는 국제 정치의 마운드 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펼쳐진다. ‘길 잃은 분노’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분노는 강력한 에너지지만, 방향을 잃으면 그저 허공을 가르는 공이 된다. 포수의 미트(mitt:포수 글러브)를
향해 가지 않는 공은 아무리 세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이 기묘한 경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구는 9회 말 2아웃
이후에도 뒤집히는 스포츠다. 지금의 TACO 작전이 단순한 즉흥적 플레이인지, 아니면 상대를 교란하기 위한 고도의
심리전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경기는 관중이 즐기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점이다. 야구장에서라면 헛스윙 한 번에 웃고 넘길
수 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공 하나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마운드에 선 투수는 과연 어떤 경기를 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경기의 끝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