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빗점골이란 숨은 골짜기가 있다. 오래전 이태의 남부군을 읽은후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마친 빗점골에 꼭 가보고 싶었다.
당시 다니는 산악회에 제안하여 회원 17명과 함께 2009.523 (토) 05시 30분에 천안을 출발하여
경남 하동군 화개면 의신리에 자리잡은 삼정마을까지 25인승버스를 타고 가서 10시 10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원래 계획은 이현상아지트를 보고 명선남릉 타고 올라가 형제봉을 거쳐 벽소령 작전도로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는데 이현상아지트를 찾지 못하고 왼골까지 가게 되었다.
첫번째 나타난 계곡을 먼저 건너고 길을 찾는데 선두회원이 건너다 물에 빠지고 여성회원들이
건너기엔 수량이 너무 많고 바위가 미끄러워 한분씩 건네 드렸지만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다는걸
예감하였다.
한참을 가도 이현상아지트가 안나오고 길은 계곡따라 희미하게 이어져서
산악 회장님이 선두에서 길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명선남릉길을 놓쳤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계곡길은 정말 경치가 좋았다
커다란 폭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내가 1일 총무를 부탁한 미모의 여회원이 상추 쑥갓, 돼지고기와 삼겹살, 불판2개를
준비해와 맛있고 푸짐한 점심을 먹을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 수많은 산행을 함께 하였지만 그후 4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남성회원 한분도 유산균막걸리를 5병이나 가져오셨는데 아무도 없는 깊은 계곡에서
먹는 막걸리는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던중 라디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긴급뉴스를 들었다
몇년후 백두대간 백봉령-삽당령산행을 마치고 삽당령아래 허름한 주막에서 그분이
다녀갔다는 친필 사인을 보았다. 정치적 우호관계를 떠나 참 인간적인 분으로 기억된다
폭포아래서 점심을 마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대나무밭을 헤치고 능선을 따라 올라오니
하늘이 보이고 토끼봉정상(1,543m)에 다다랐다.
삼정마을을 떠난지 4시간이었다. 토끼봉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원래 목적지인 명선봉쪽으로
가다보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지리산 태극종주를 나선 산악회 총산행대장님이다.
약속도 없이 이런 산중에서 조우를 하는걸보니 산악회에서 맺은 인연은 정말 소중하였다.
토끼봉에서 2시간을 걸어 명선봉(1,583m)에 다다르니 연분홍 철쭉이 피었고 우리가 올라온
빗점골 계곡이 보이고 장대한 지리산 주능선이 일망무제로 시야에 들어왔다.
하산은 명선봉에서 명선남릉을 타고 이현상아지트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했다.
명선남릉길은 길찾기는 쉬웠지만 가파르고 조망은 별로였다. 이길로 올라왔더라면 힘들었을거라고
회원들이 모두 한마디씩 한다. 사실 명선남릉을 타고 벽소령 작전도로로 내려오면 별 구경거리는
없었을 것이다. 최초에 명선남릉길을 놓치고 왼골로 올라간게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되고 말았다.
2시간 30정도 하산하니 이현상아지트가 보였다. 시간이 없어 기념사진 몇장 찍고 말았지만
쉽게 지나치기엔 역사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그는 남과북 모두에게 버림받고 퇴로를 차단당한채 이깊은 산골에서 토벌대의 총탄세례를 맞고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인간적 풍모를 잃지 않고 부하들에게 존경받았다고 한다
당시 토벌대장이던 차일혁총경은 비록 적장이지만 예를 갖추어 섬진강변에서 장례를 치러주었다 한다
차일혁총경은 중국 황포군관학교 출신으로 조선의용군에서 무장독립운동을 했던 분으로
6.25당시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문짝만 태워 천년고찰 화엄사를 보존할수 있게
했지만 명령불복종으로 감봉을 받았고 몇년후 금강에서 휴가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이현상아지트를 내려오자 마자 아침에 건넜던 절골계곡을 만났다. 목적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놓쳤던 셈이지만 그덕에 구경한번 잘했다. 산을 내려오니 18시 40분경 총 8시간 반의 산행을 하였다.
저녁은 화개읍 삼신리 늘봄식당에서 재첩백반과 참게백반, 은어회 은어튀김으로 먹었고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천안 집에 돌아오니 새벽1시가 다되었다.
빗점골 산행지도
첫댓글 산릉과 계곡에 역사가 숨어있군요.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지리산은 골짜기마다
민족수난기의 수많은 역사가 있습니다
빗점골에도 뭔가
숨은 역사가 있을 것 같습니다.
46세에 운명을 달리한
미모의 여회원이 안따깝게 느껴지네요.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착잡한 등산을 하셨겠어요.
반갑습니다
빗점골은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이 최후까지 저항했던곳으로
비록 우리의 적이었지만 그곳을 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저와 수많은 산을 함께한 동지이자 누이였지요
하필 빗점골에서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될줄 몰랐습니다
지리산은 많이 가봤지만 빗점골은 저도
말만 들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네요
지리산은 아픈 역사를 품은 곳이지요.
벽소령 달빛이 그립습니다.
반갑습니다
빗점골은 비탐방구간으로 길이 없어
경험많은 안내자가 없으면 많이 고생합니다
그래도 우리현대사 비극의 한장면이던 그곳은
가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남부군 영화로 봤던 그곳을 다녀오셨었군요.
산행 추억 중에서도 여러 추억들이 겹쳐진 곳이라 기억에 더 오래
남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남부군을 책으로 읽어보고 그현장을 한번 가보고 싶었습니다
지리산은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능선에 많은 역사의 현장이 담겨있지요
힘든 여정이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하루에 천안에서 지리산을 다녀오신
젊은 날의 등산 가는 날이었네요.
글에 나오는 무슨 골, 무슨 골 하는 골짜기 이름은
모르는 골짜기가 더 많습니다.
제가 안다고 해야 뱀사골, 피아골 정도...
휴전이 되었어도, 북한은 남부군을 북송해 달라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고,
한국 측이 빨치산을 북한에 '데려가달라!'고 제안했어도
북한 측은 일절 응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북한은 빨치산 유격대에게 하산해 도시로 들어가,
지하 활동을 계속하라는 지시만 보내왔다고 합니다.
전쟁에 써먹고 전쟁이 끝나도 거둬들일 생각도 없는,
그것이 무슨 나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15년 전만해도 50대 초반이네요.
일일이 등산일기를 적어 두셨나 봅니다.
빗점골, 잘 읽었습니다.
방장님 반갑습니다
부처님오신날 휴무를 앞두고 예전에 다녀와서 블로그에 저장했던
빗점골 산행기를 일부수정하여 올려봤습니다
말씀대로 북한에서는 월북한 남로당과 남부군 관련자를 모두 처형했지만
투항을 거부하고 희생된 이현상은 애국열사릉에 가묘를 만들고
그 가족들을 극진히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상적인 국가도 아니고 아직 변한것도 없습니다
15년전 만 52세의 청춘으로 주말마다 산야를 누비고 다녔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정성가득하신 댓글 감사드리며 석가탄신일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
오래 전
오르기 그리 어렵지 않던 노고단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산의 정기를 마시며
오르면 몸도 마음도 날아갈 듯 가벼웠지요
산을 사랑하시는 그산님은
좋은 추억들이 많아서 행복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루루님 반갑습니다
지리산은 코스가 굉장히 다양하고 숨은 비경도 많습니다
노고단은 성삼재에서 오르면 어렵지 않게 갈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저는 홀로 또는 여럿이서 지리산을 많이 가서 수많은 추억이 있습니다
지리산의 중첩된 산등성이 사진이 멋있습니다.
지리산 달궁. 인월. 뱀사골 등 지명만 떠 올려도 그립습니다.
푸른비님 반갑스빈다
달궁 인월 뱀사골을 아실 정도면 지리산에
대한 추억이 많으신것 같습니다
지리산은 능선이 장대하고 유장하여
산그리메가 아주 멋집니다
오늘에야 그산님 이름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
지리산이 등산으로 매우 힘들단 이야기는 들었지요.
저도 젊은 날 지리산의 추억이 있긴 합니다 .
그 밤에 왜 그리 비는 줄기차게 왔던지 ...
노무현 대통령 . 미모의 산우
죽음은 슬픔이지요 .
잘 읽었습니다 .
아녜스님 감사합니다
그산은 그산에 가고싶다의 준말이고
추억이 있는 산 가고 싶은 산 등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일반인이 가지 않는 빗점골에서 그분의 소식을 들었고
오랫동안 함께 산행했던 그녀와의 이별에 많이 마음아파했었습니다
책으로 만난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는 여정의 의미는 각별할 것 같습니다.
뜻을 함께 한 일행이
우여곡절 빗점골에 다다르는 과정 또한
책 속의 한 페이지처럼 다가오네요.
플로라님 반갑습니다
저는 이런 답사여행을 즐기는 편입니다
산행중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회원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잘따라주어서 모두에게 고마운 산행이었습니다
오래전의 이야기를 마치 제가 현장에서 같이 힘들게 따라 오르는 기분으로 읽습니다.^^
그저 살살 얕은 산을 다니는 저로선 경외스럽습니다.^^
둥실님 반갑습니다
저는 어렸을때부터 산을 좋아하여
홀로 또는 여럿이서 산을 많이 다녔습니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산행다닐 생각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