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킹콩을 들다

[다다]

킹콩을 들다






[킹콩을 들다]를 [우.생.순]의 역도 버전 정도로 생각하기에는, 이 영화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투박한 감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킹콩을 들다]가 [우생순]의 성공에 힘입어 제작이 되었을 수는 있겠지만, [우생순]에 편승하려는 영화로만 볼 수는 없다. 물론 [킹콩을 들다]는 촌스럽고 거칠며 투박하다. 소품이나 셋트, 조명이나 연출 등 모든 분야에서 웰메이드 세련미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스토리 전개도 지극히 상투적이다. 박영자(조안)가 자신을 지도해준 옛 선생을 생각하며 베이징 올림픽 무대에 서는 결말 부분은 짜맞춘듯, 너무 인위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킹콩을 들다]에는 순수한 눈물과 해맑은 웃음이 있다. 완성도에서 볼 때 [킹콩을 들다]는 허점이 많은 영화다. 보성여중 학생들이 중앙여고 이름으로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는 과정에서 명쾌하게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중간 부분은 너무 늘어지게 편집되어 있어서 지루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열게 하는 친근함과 가슴을 흔드는 따뜻한 정서가 있다. 영화가 다른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삶의 다양함을 보여주고 자신의 삶을 바라보게 한다면, 시골 여자 중학교 역도부를 소재로 한 [킹콩을 들다]는 충분히 그 가능성을 담고 있다.


88 서울올림픽에서 아깝게 금메달을 놓치고 동메달리스트가 된 이지봉(이범수)은 그때 얻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역도를 그만 두고 세상살이의 밑바닥을 전전한다. 역도를 그만 두는 순간, 그의 삶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지만 그래도 단란주점 웨이터를 하는 그를 찾아와 시골 여중학교 역도부를 맡아서 다시 운동에 복귀하라는 선수 시절의 스승(기주봉)이 꼭 고마운 것은 아니었다. 역도는 그에게 애증의 대상이지만, 운동을 그만 두었을 때 찾아오는 절망감은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시골 학생들에게 거짓 환상을 심어주기는 싫었다.


이주봉이 보성여중 역도부 코치를 맡아서 본격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기 전까지의 과정은, [킹콩을 들다]의 전반부에 해당된다. 그것은 이 영화가 이주봉이라는 캐릭터를 형성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범수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도 그랬지만 루저 캐릭터를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한 페이소스가 있다. [킹콩을 들다]에서의 감동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들의 눈물 때문이 아니라 그 눈물의 원천이 되는 이지봉 역에 있고 그 배역을 제대로 수행한 이범수의 연기에 있다.


보성여중 역도부 캐릭터의 구성도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총이 없어서 사격부에서 쫒겨난 후 역도부원이 된 박영자(조안)부터 S라인 미모를 자랑하는 송민희(이윤희), 거동이 불편한 엄마를 번쩍 들기 위해 팔힘이 필요해서 역도를 시작한 효녀 서여순(최문경),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로서 뚱뚱하고 못생긴 캐릭터로 나오는 현정(전보미), 그리고 입만 열면 하버드 로스쿨 가겠다는 수옥(이슬비)까지, 대중적 재미를 위해 안배한 흔적이 강하기는 하지만 영화적 재미를 주는데 손색이 없다.


[킹콩을 들다]가 역경을 헤치고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되는 상투적인 성공담을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경기 자체의 승패에 집착하거나 그것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어린 여학생들의 정신적 멘토 역할로서의 이지봉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연이 어떻게 맺어지고 어떻게 그것이 지속되는가 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는 형성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보성여중 역도부 출신들을 이지봉에 이어서 지도하는 중앙여고의 코치는 이지봉과 모든 점이 대비되게 캐릭터가 그려져 있다.


이런 전형적인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는 효과는 상당하다. 어린 학생들이 스승 이지봉을 끝내 잊지 못하고, 그를 운동을 가르치는 코치에서 자신들의 삶의 멘토 역할로 자리잡게 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또한 관객들에 대한 정서적 호소력과 설득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