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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해(瑟海)’는 내륙해(內陸海)? 해(海)? [제6편∼上]
2026년 10월 11일
○ 「슬해(瑟海)」 : 「瑟」 : 《거문고, 슬(瑟) : 중국(中國) 고대(古代) 아악기(雅樂器)의 하나. 앞은 오동나무(梧桐--)로 만들고 뒤는 밤나무로 만들어 25줄을 매었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는데,
즉(卽), “슬해(瑟海)”란 「거문고(瑟)를 닮은 바다”를 말하는 것이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
• 그 “예(例)”를 들면 : “비파호(琵琶湖)”는, “그 호수(湖水)의 생긴 모양(模樣)이 비파(琵琶)를 닮아 호수(湖水)의 이름이 비파호(琵琶湖)가 되었다”라고 당당(堂堂)하게 설명(說明)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도조선사(半島朝鮮史)”에서는 이러한 예(例)와는 전혀 다르게 전혀 다른 설명(說明)을 하고 있다.
• 즉(卽), 슬해(瑟海) [出處 : 鏡城郡 邑志] : 「슬해(瑟海)는 바다에 쌓인 모래가 해마다 그 위치를 옮겨서 그 심천(深淺)의 차이가 매우 심한, 특이(特異)한 바다이다」라고 하였으니, “슬(瑟)”이라는 뜻과는 전혀 무관(無關)한 설명(說明)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韓半島)를 둘러싸고 있는 서해(西海), 남해(南海), 동해(東海)중에서 어디에 있는 바다가 「바다에 쌓인 모래가 움직여 이동(移動) 바다의 깊고 얕음이 크게 차이(差異)가 나는 특이(特異)한 바다가 있다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 「동해(東海)는 바다가 깊기로 유명(有名)하고, 바다 깊이가 얕음이 있는 바다는 서해(西海)다.」라는 사실(事實)은 일반상식(一般常識)에 속한다.
• 한반도(韓半島)【조선반도(朝鮮半島)】의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학계(學界)는, 슬해(瑟海)가 어디냐? 하는 질문(質問)에도 제대로 답변(答辯)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학자(學者)마다 그 “슬해(瑟海)” 위치(位置)가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종합(綜合)해보면 : 「“슬해(瑟海)”는 반도(半島) 땅이나 반도(半島) 주변(周邊) 해역(海域)과는 관련(關聯)이 없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卽),
• ‘슬해(瑟海)’ 이야기를 전개(全開)하기 전에 먼저 「옛 조선(朝鮮) 강토(疆土)는 오늘날의 반도(半島) 땅이 아니었다」라는 논거(論據)를 제시(提示)하고, 그것으로 고증(考證)하며, 논리(論理)를 편 다음, 「슬해(瑟海)는 반도(半島) 두만강(豆萬江) 동(東)쪽 바다가 될 수 없다」라는 논리(論理)를 설명(說明)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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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艮翁集 23, 說【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 : 1,719(肅宗, 45)∼1,791년(正祖, 15)】
《二劒說 : 余儒者。自幼好讀書。未嘗學劒。力又不任劒。獨甚愛劒。見人帶劒。輒喜動色。以爲此丈夫之服。頃年余在鍾城塞上。得善冶劒者李東平。又得日本國良鐵於古軍器。命造二劒。一長一短。短者形如月始生。故刻名其上曰秋朏。☛ 旣而余騎匹馬獨行豆滿河上。東過赤池。登烏碣泛瑟海。北瞰後春。蕃胡之窟黑龍之源。明年南歸。過長白歷鬼門。蹈大漠之墟涉重關之險。踔數千餘里。集幽荒乘駭懼。爲汗漫之遊。以二劒自隨。卒陸無虎兕魑魅之驚。水無蛟龍鯨鼉之患。若得 a234_474c神物之助。而恠獰惡毒懾伏避之。數歲以來。淹宦京師。逐薦紳大夫學治文墨事。不復與二劒相狎。今忽見之。已沒沒蛛塵間。追憶曩遊。惘然若前生事。赧大功之遺負。惜良器之沈鬱而已。然凡物之材。必遇其主。不遇主者命也。遇主而不遇用者時也。奚獨劒哉。遂歎嗟而書之。》
위의 인용(引用)한 ‘이검설(二劒說)’의 저자(著者) “이헌경(李獻慶) : 1,719(肅宗, 45)∼1,791년(正祖, 15)”은, 한양(漢陽) 도성(都城)에서 태어나, 19살에 감시(監試)에서 수석(首席), 동부승지(同副承旨), 북청부사(北靑府使), 형조참의(刑曹參議), 가선대부(嘉善大夫), 대사간(大司諫), 예조참판(禮曹參判), 한성부윤(漢城府尹) 등을 역임(歷任)한 관리(官吏)로, 분명(分明)한 것은, 조선왕조(朝鮮王朝) 조정(朝庭)에서 활동(活動)했다는 사실(史實)이다. ‘중국인(中國人)이 아니다.’
➥ 위의 글 중(中)에서 《☛ 旣而余騎匹馬獨行豆滿河上。東過赤池。登烏碣泛瑟海。北瞰後春。蕃胡之窟黑龍之源。그 후 내가 한 마리의 말에 올라 홀로 두만강(豆滿河) 강변을 따라 달리며, 동(東)쪽으로 적지(赤池)를 지나고, 오갈(烏碣)에 올라 슬해(瑟海)를 건넜다. 북(北)쪽으로는 후춘(後春)의 오랑캐 소굴과 흑룡강(黑龍江)의 근원을 내려다보았다. 明年南歸。過長白歷鬼門。蹈大漠之墟涉重關之險。踔數千餘里。: 다음 해 남쪽으로 돌아오며 ➠➠➠ 장백산(長白山)을 지나 귀문(鬼門)을 통과하고, 대막(大漠, 광활한 사막)의 폐허를 밟으며, 험난한 관문들을 넘어 수천 리를 달렸다.》라고 하였으니, 기가 막힌 내용(內容)이 밝혀질 수밖에 없는 내용(內容)을 담고 있다.
➊ 「오갈(烏碣)에 올라 슬해(瑟海)를 건넜다」라고 하였다. 서두(序頭)에서 말하기를, “내가 한 마리의 말에 올라 홀로 두만강(豆萬江) 강변(江邊)을 따라‘… …오갈(烏碣)에 올라 슬해(瑟海)를 건넜다.”라고 하였으니, 말을 타고 슬해(瑟海)를 건넜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슬해(瑟海)는 두만강(豆萬江) 하구(河口) 앞바다를 말한다고 하는데 이곳을 어떻게 말을 타고 건널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고, 그곳을 건너 어디로 가는 것이냐? 북해도(北海道)로 가나?
’두만강(豆萬江)을 건넜다‘라면 이해(理解)가 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말을 타고 건넜든, 배를 타고 건넜든 슬해(瑟海)를 건너서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이다.
➋ 또 하나 ’거대(巨大)한 미스터리(mystery)‘는, 「明年南歸。過長白歷鬼門。蹈大漠之墟涉重關之險。踔數千餘里。: 다음 해 남(南)쪽으로 돌아오며 장백산(長白山)을 지나 귀문(鬼門)을 통과하고, 대막(大漠, 광활한 사막)의 폐허를 밟으며, 험난한 관문들을 넘어 수천(數千) 리를 달렸다.」라고 한 것이다.
차분하게 위 내용(內容)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는 「귀문관(鬼門關)」이다.
➥ 『명년(明年), 곧 다음 해에, 남(南)쪽으로 돌아오며 장백산(長白山)을 지나【그렇다면 위의 글 ➊의 내용(內容)은, ’장백산(長白山) 북(北)쪽 땅에 대한 설명(說明)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귀문(鬼門)을 통과(通過)하여, 대막(大漠)【광활(廣闊)한 사막(沙漠)】의 폐허를 밟으며, 더하여 험난(險難)한 관문(關門)을 넘어서 수천(數千) 리(里)를 달렸다』라고 한 것이다.
➊ 「장백산(長白山)의 남(南)쪽에 귀문(鬼門)이 있고」… …“귀문(鬼門)”은, 「조선사(朝鮮史)에 등장(登場)하는 귀문관(鬼門關)은 : 「함경도(咸鏡道) 경성(鏡城)에 있는 관문(關門) 이름이다.」라고 전(傳)해진다. 북병영(北兵營)은, 경성(鏡城)에 있던, 북병사(北兵使)가 주둔(駐屯)하던 영문(營門)이다. 귀문관(鬼門關)에 대해 그 위치(位置)를 살펴보자.
• 귀문관(鬼門關) : 《吉州以北, 明川之鬼門關 : 길주(吉州) 以北으로 명천(明川)에 있다.》
• 귀문관(鬼門關) : 《[宋子大全 隨箚 卷1] : 마운령(摩雲嶺) 이북 경성(鏡城)에 있다.》
• 귀문관(鬼門關) : 《부령(富寧)과 경성(鏡城) 사이에 있는 관문(關門) 이름이다.》
• 귀문관(鬼門關) : 《北道의 吉州에 있고,… …명천은 실로 귀문관 밖의 땅이었다.》
• 귀문관(鬼門關) : 《鬼門關外是愁州 : 귀문관(鬼門關) 밖은 수주(愁州)이다.》
• 귀문관(鬼門關) : 《咸鏡道 明川縣과 鏡城都護府 사이에 있다. [新增東國輿地勝覽 50, 咸鏡道 明川縣 鎭堡]》
• 서계집(西溪集) 1권 / 詩 [北征錄 병오년(1,666, 顯宗, 7) 겨울부터 정미년(1,667) 봄까지. 北道兵馬評事로 부임할 때 지은 것이다] 귀문관(鬼門關)을 지나며 (3수) : 《殭骸藉藉平沙裏, 冤魄啾啾積雪間 : 모랫벌엔 시신들 켜켜이 쌓여 있고, 쌓인 눈 속 원혼들 구슬피 울어 대네. 無限古今征戰士, 幾人生度鬼門關 : 무수한 고금의 전사들 중에, 살아서 귀문관(鬼門關) 지난 이 몇이나 되겠는가.》: 간옹집(艮翁集) 내용(內容)을 뒷받침하고 있다.
’귀문관(鬼門關)을 지나며‘라는 것은, 모래벌엔 시신(屍身)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는 것은, 그곳이 대막지대(大漠地帶)였음을 알 수 있다.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21권 / 문부(文部) 18 ○ 척독 하(尺牘下) / 장지국(張持國)에게 답함. 신해년(1,611) 1월 : 《僕仰負明時。百謫難贖。其不出鬼門。幸矣。敢以流落殊方爲恨耶。: 나는 이런 태평 성대에 죄를 지었으니 백 번 귀양가더라도 속죄할 길이 없습니다. 귀문관[鬼門關 장백산맥(長白山脈)의 한 줄기] 밖으로 추방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니 감히 먼 지방으로 귀양가는 것을 한스러워하겠습니까.》
• 이계집(耳溪集) 5권 / 시(詩) / 삭방풍요(朔方風謠) 정유년(1777, 정조1) 겨울, 출척(黜陟)당하여 경흥부사(慶興府使)로 보임되었을 때이다.〔丁酉冬 黜補慶興府使〕/
《귀문관〔鬼門關〕 : 在明川府北三十里。野中有山。曰甫老只德。長坂成路。行十餘里。忽然地形凹陷如入深坑。四岸壁立。土色皆黑。巖石多竅穴如蜂窠。陰晦不見日光。中有大川彎曲。沙礫堆積。無片土可食。數三撥戶。以石覆屋。不似陽界。名以鬼門。誠非過矣。中置驛院。以憩行旅。: 명천부(明川府) 북쪽 30리 지점에 있다. 들판 가운데 산이 있는데 보로지덕(甫老只德)이라고 한다. 긴 비탈로 난 길을 10여 리쯤 가면 홀연 지형이 쑥 꺼져서 마치 깊은 구덩이로 들어가는 듯하다. 사방 언덕이 벽처럼 둘러싸고 서 있는데 흙 색깔이 모두 검다. 암석은 대부분 벌집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어두컴컴하여 햇볕이 들지 않는데 가운데에 큰 시내가 굽이쳐 흐르고 있다. 모래와 자갈이 퇴적되어 있어 농사지어 먹고살 만한 땅이라고는 한 뙈기도 없으며, 두서너 발호(撥戶)는 돌로 지붕을 덮고 있어, 이승이 아닌 듯하니 귀문이라 이름한 것이 참으로 과하지 않다. 중간에 역원(驛院)을 두어 여행자들이 쉬도록 하였다.》라고 하였으니, “귀문관(鬼門關)”에 대하여 이보다 더 정확(正確)하고 상세(詳細)한 설명(說明)은 없을 것 같다.
☛ 『귀문관(鬼門關) 또는 귀문(鬼門)은, 「길주(吉州) 이북(以北)의 부령(冨寧)과 경성(鏡城) 사이에 있던 관문(關門)을 말하는 것인데, 명천부(明川府) 북(北) 30리(里) 지점에 있다』라고 하였으니, 큰 차이(差異)가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반도(半島) 땅에서 현실화(現實化)될 수 없는 ’특이(特異) 지형지세(地形地勢)‘인 “대막지대(大漠地帶)”에 대해서는, 불가능(不可能)한 이야기다. 즉(卽),
➋ 「귀문(鬼門)을 통과(通過)하면 곧바로 대막(大漠)의 터(墟)를 밟으며」라고 한 것이 「반도(半島) 땅과는 “십 원 한 장”의 관계(關係)도 없다」는데 있는 것이다. 즉(卽),
•《☛ 旣而余騎匹馬獨行豆滿河上。東過赤池。登烏碣泛瑟海。北瞰後春。蕃胡之窟黑龍之源。그 후 내가 한 마리의 말에 올라 홀로 두만강(豆滿河) 강변을 따라 달리며, 동(東)쪽으로 적지(赤池)를 지나고, 오갈(烏碣)에 올라 슬해(瑟海)를 건넜다. 북(北)쪽으로는 후춘(後春)의 오랑캐 소굴과 흑룡강(黑龍江)의 근원을 내려다보았다. 明年南歸。過長白歷鬼門。蹈大漠之墟涉重關之險。踔數千餘里。: 다음 해 남쪽으로 돌아오며 ➠➠➠ 장백산(長白山)을 지나 귀문(鬼門)을 통과하고, 대막(大漠, 광활한 사막)의 폐허를 밟으며, 험난한 관문들을 넘어 수천 리를 달렸다.》라고 했기 때문이다.
곧, 저자(著者)는,
㈠ 《한 마리의 말에 올라 홀로 두만강(豆萬江) 변(邊)을 따라 달리며》
㈡ 《동(東)쪽으로 적지(赤池)를 지나고》
㈢ 《오갈(烏碣)에 올라 슬해(瑟海)를 건넜다(泛)》라는 것인데… …두만강(豆萬江) 하구(河口) 바다를 “슬해(瑟海)”라고 하였는데, 무슨 재주로 동해(東海) 곧 슬해(瑟海)를 건너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인데… …두만강을 건넜다는 것은 이해(理解)될만한 일이지만, 기마 막히게도
㈣ 《또 북(北)쪽으로는 후춘(後春)의 번호(蕃胡)의 소굴과 흑룡강(黑龍江)의 근원을 내려다보았다.》라는 것인데… …흑룡강(黑龍江)의 근원(根源)은, 반도(半島) 땅에 없으며, 지류(支流)가 있을 뿐이다.
㈤ 곧 《후춘(後春)과 흑룡강(黑龍江)의 근원(根源)을 바라보이는 곳에서, 해를 넘겨, 이제는 남(南)쪽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㈥ 《장백산(長白山)을 지났다》라는 말은, “당시(當時)의 저자(著者)는 장백산(長白山)의 북(北)쪽에 있었다”라는 말이 된다. 위의 글 “㈠+㈡+㈢+㈣+㈤”에서 말하는 곳은, 모두가 장백산(長白山)=백두산(白頭山) 북(北)쪽에서의 여정(旅程)이었다.
㈦ 《백두산(白頭山)을 지나고 귀문(鬼門)【부령(富寧)과 경성(鏡城)사이에 있다】을 통과(通過)하여, 대막(大漠) 곧 광활(廣闊)한 사막지대(沙漠地帶)의 터【허 : 墟 : 터, 옛터】를 지나, 험난한 관을 넘어【重關之險】왔다》라는 것이다.
여기 대목(臺木)이 중요(重要)한 이유(理由)는 반도(半島) 땅이나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 존재(存在)할 수 없는, 불가능(不可能)한 특이(特異)한 지형지세(地形地勢)인 “대막(大漠)”을 지났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백두산(白頭山)=장백산(長白山)” 남(南)쪽의 귀문관(鬼門關)을 지나면 바로 “대막지대(大漠地帶)가 광활(廣闊)하게 펼쳐져 있다”』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이(特異)한 자연환경(自然環境)이 펼쳐져 있는 곳은, 지구(地球)라는 행성(行星) 안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곳은, 딱 한군데가 존재(存在)하고 있는데, 반도(半島), 또는 그 북방지대(北方地帶)에서는 그 지세(地勢)를 품을 수 없는 거대(巨大)한 곳이다.
곧, 『벨루하산(Belukha Mt, 4,506m)의 빙하(氷河)와 귀문관(鬼門關)과 그 남(南)쪽에 광활(廣闊)하게 펼쳐져 있는 준갈이(準葛爾) 사막지대(沙漠地帶)이다』 이러한 곳은,
☛ 「벨루하산(Belukha Mt)과 남(南)쪽 준갈이분지(準葛爾盆地)를 말하는 것이다.」
☛ 「벨루하산(Belukha Mountain)」은, 역사서(歷史書)에 등장(登場)하는「알타이(Altai) 산(山)=아이태산(阿爾泰山)=금산(金山)=【別盧哈山 : 4,506m • 友誼峰 4,374m • 奎屯峰 4,082m = 蒙古語 : 金山】=벨루하산[Belukha Mt]」을 칭(稱)하는 것이다. 「일반적(一般的)으로 ‘별노합산(別盧哈山)과 우의봉(友誼峰)’의 두 봉우리를 ‘벨루하산(Belukha Mountain)’이라고 칭(稱)한다.」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阿爾泰山,古稱「金山」,蒙古和中國新疆交界處的一座山脈】에서도 확인(確認)되고 있다.
• 벨루하산(Belukha Mountain)은, 1년 내내 눈이 내린다. 당서(唐書)에서, 당(唐) 시대(時代)의 변새시인(邊塞詩人)들이 “한해(瀚海)와 백장(百丈)의 빙벽(氷壁)”을 노래했던 곳으로, 동(東) 벨루하봉(4,506m), 서(西) 벨루하봉(4,440m) 2개 봉우리로 이루어졌다. 옛 금산(金山)이며, 아이태산(阿爾泰山)이며, 알타이(Altai) 산(山)이며, 장백산(長白山)이며, 백두산(白頭山)인데, ’백두산(白頭山)은, 2개 봉(峰)으로 이루어졌다‘고 ’백두산기(白頭山記)‘에서 말하고 있다.】
• “광활(廣闊)한 대막(大漠)의 터(墟)를 지나서”… …준갈이분지(準葛爾盆地) : 「出處 :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準噶爾盆地, 海拔高度 500-1000m, 東西長約 700㎞,南北寬約 379㎞,總面積約 135,000만㎢」라고 하였으나, 면적(面積)은 어디까지를 포함하느냐에 많은 차이(差異)를 보인다. 「Naver 지식백과 / 동서(東西) 약 1,100㎞, 남북(南北) 간 넓은 곳은 800㎞로 면적은 380,000㎢이다.」라고 설명(說明)한다.】
이러한 것이 바로 자연환경(自然環境)이다. 이러한 자연환경(自然環境)은, 결코 왜곡(歪曲)하고 조작(造作)할 수 없다는 점이다.
➌ 《더하여 험난(險難)한 관문(關門)을 또 넘어서 수천(數千) 리(里)를 달려 남(南)쪽으로 내려왔다》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장백산(長白山)에서 남(南)쪽으로 내려와 귀문관(鬼門關)을 넘어, 광활(廣闊)한 대막(大漠)의 터를 지나서, 험난(險難)한 관문(關門)을 또 넘어서 수천(數千) 리(里)를 내려왔다」라는 것인데… …장백산(長白山)에서 귀문관(鬼門關)을 통과(通過)하고, 또 광활(廣闊)한 대막(大漠)의 터를 지났다는 말은, 이미 천리(千里) 길을 왔음에도, 또 험난(險難)한 관문(關門)을 통과(通過)하여 수천(數千) 리(里)를 내려왔다는 말은, 4-5 천리(千里) 이상(以上)을 남(南)쪽으로 내려왔다는 듯이 되는데,
위에서 말하는 여정(旅程)과 방향(方向), 거리(距離) 등을 감안(勘案)해 보면 : “조선(朝鮮) 영토(領土)”에 대한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의 東 西 二 千 里, 南 北 四 千 里」와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의 在 盛 京 東 一 千 八 百 里, 東 西 距 二 千 里, 南 北 距 四 千 里」의 기록(記錄)이 역사적(歷史的) 사실(事實)로 다가오는 것이다.
두 통지(通志)에서 말하는 조선(朝鮮) 영토(領土)에 대한 동서남북(東西南北) 거리(距離)는, 조선(朝鮮) 천자(天子)가 직접(直接) 통치(統治)하는 직할(直轄) 구역(區域)을 말하는 것이다.
• 이 글을 쓴 필자(筆者)가 ’3∼4‘ 천리(千里)를 갔다는 말은 남해(南海) 바닷가에 이르렀거나 남해(南海) 한가운데에 있어야 마땅한 거리(距離)다. 곧 “반도(半島) 땅의 이야기가 될 수 없다”라는 것이다.
•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슬해(瑟海), 장백산(長白山), 흑룡강(黑龍江) 근원(根源)” 등(等) 모두는 반도(半島)와 그 북방지대(北方地帶)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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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계집(耳溪集) 5권 / 詩 / 朔方風謠 〔丁酉冬 黜補慶興府使 : 정유년(1,777, 正祖, 1) 겨울, 출척(黜陟) 당하여 慶興府使로 보임되었을 때이다.〕
磨天嶺 /《在磨雲之北。橫截端川,吉州之間。: 마운령(磨雲嶺) 북쪽에 있으며, 단천(端川)과 길주(吉州) 사이를 횡단하고 있다. 舊號伊坡嶺。高峻危險。過于磨雲,鐵嶺,咸關。便是坦途。此乃北路第一嶺阨。: 옛날에는 이파령(伊坡嶺)이라 불렸다. 가파르고 험준하여 마운령(摩雲嶺), 철령(鐵嶺), 함관령(咸關嶺)을 지나는 것은 평지를 걷는 셈이니, 이곳이 바로 북로(北路)에서 으뜸가는 영애(領阨)인 것이다. 上頂奇峰簇立。俯臨無地。惟見大海茫茫。정상에는 기이한 모양의 봉우리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면 육지는 없고 망망대해만 보인다. 鄭東溟詩所謂前臨有大澤。盖乃北溟云一句。描寫盡之。筆力可畏。: 정동명(鄭東溟)의 시에 이른바 “앞으로는 대택(大澤)에 임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명(北溟)이라 하네[前臨有大澤, 蓋乃北溟云]”라는 한 구절이 이 광경을 남김없이 잘 묘사하였으니, 경외할 만한 필력(筆力)이다. 此嶺一帶。舊有九阨。中年並植木塞路。只通此嶺。: 이 고개 일대에는 옛날에는 아홉 군데의 협로(狹路)가 있었는데, 중엽에 모두 나무를 심어 길을 막아버리고 이 고개만 통하게 두었다. 而嶺脚入海處。有棧路。可通步行。置城津僉使守之。: 고개 기슭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 잔도(棧道)가 있어 걸어서 다닐 수 있는데, 성진 첨사(城津僉使)를 두어 지키고 있다.》라고 하였으니,
•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의 문집(文集)에 있는 원문(原文)을 확인(確認)해 보자 : 東溟集 2권 / 오언절구(五言絶句) 62수 / 〔登磨天嶺 : 마천령에 오르다.〕
《驅馬磨天嶺, 層峯上入雲. 前臨有大澤, 蓋乃北海云. : 말을 몰아 마천령(磨天嶺)에 올라서 보니, 겹친 봉은 구름속에 들어가 있네. 앞쪽에는 큰 호수에 임해 있는데, 이 바다를 북해(北海)라고 부른다 하네.》라고 한 것을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가 인용(引用)했다는 것이다.
☛,☛,☛ 그런데 문집(文集)을 번역(飜譯)하고 주석(註釋)한 분께서는 말하기를 : 이 구절(句節)은,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 123 대완열전(大宛列傳)의 ’엄채(奄蔡)‘ 설명(說明)에서 “[臨大沢無崖, 蓋乃北海云. : 끝이 보이지 않는 대택(大澤)에 임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해라고 한다]라고 한 구절(句節)에서 가져온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卽), 《史記, 史記卷一百二十三, 大宛列傳第六十三[司馬遷] / 《奄蔡〈正義《漢書》解詁云:「奄蔡即闔蘇也。」魏略云:「西與大秦通,東南與康居接。其國多貂,畜牧水草,故時羈屬康居也。」〉在康居西北可二千里,行國,與康居大同俗。控弦者十餘萬。臨大澤,無崖,蓋乃北海云》라는 곳에서, 「臨大澤,無崖,蓋乃北海云」라는 구절을 정두경(鄭斗卿)이 인용(引用)하고, 다시 홍양호(洪良浩)가 정두경(鄭斗卿)의 이 구절(句節)을 다시 인용(引用)했다는 것이다.
㈠ 卽, 사기(史記) 원문(原文) 기록(記錄) : 《臨大澤,無崖,蓋乃北海云. : 끝이 보이지 않는 대택(大澤)에 임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해라고 한다.》
㈡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인용(引用) : 《前臨有大澤, 蓋乃北海云. : 앞으로는 대택(大澤)에 임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명(北溟)이라 한다.》
㈢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 인용(引用) : 《前臨有大澤。盖乃北溟云. : 앞으로는 대택(大澤)에 임해 있는데, 이곳이 바로 북명(北溟)이라 한다.》
☛ 그러나 사기(史記)를 그대로 인용(引用)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문맥(文脈)은 전혀 다른 것이다. 즉(卽), 「마천령(磨天嶺) 앞에는 대택(大澤) 곧 ’큰 호수(湖水)‘에 임하는데, 북명(北溟)이라고 한다.」하였으니, 전혀 다른 것이다. 또 하나 지적(指摘)하고 싶은 것은,
「우리 학계(學界)에서 번역(飜譯)하는 분들은 이렇게 중요(重要)하다고 생각하는, 판단(判斷)되는 구절(句節)을 꼭 오역(誤譯)하는지를 알 수 없다.」 분명(分明)하게도 “대택(大澤)”이라고 하였지, 바다를 뜻하는 “대해(大海)”라고 하지 않았다. 번역(飜譯)은 “대택(大澤) 또는 큰 호수(湖水)”라고 해야지, “큰 바다(大海)라고 하면 어찌 되겠나?”
대택(大澤)은, 큰 내륙해(內陸海)를 말하는 것이고, 대해(大海)는 큰 바다를 말하는 것이다.
➥ 즉(卽), 「두만강(豆萬江) 하류(下流), 슬해(瑟海)는, 단천(端川) 앞의 바다인 슬해(瑟海)는, 동해(東海)가 아니라 “대택(大澤) 즉(卽) 큰 호수(湖水), 내륙해(內陸海)였다”」라는 뜻이니, 「이 땅은 반도(半島) 땅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 결론(結論)은, 위에서 말하는 「마천령(磨天嶺), 마운령(摩雲嶺), 단천(端川), 길주(吉州), 철령(鐵嶺), 함관령(咸關嶺) 등의 지명(地名)은, 반도조선(半島朝鮮)의 것이 아니었다」라는 뜻이고, 「옛 조선왕조(朝鮮王朝)는 중원대륙(中原大陸)의 토착왕조(土着王朝)로 군림(君臨)했었다」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시(詩) 전(全) 구절(句節)을 보자
어제 마운령 지나고 / 昨日過磨雲
[1] 오늘 마천령 오르네 / 今日上磨天
마운령은 그래도 오를 만하거니와 / 磨雲尙可攀
마천령 높기가 하늘을 찌르네 / 磨天之高薄太玄
수레바퀴 삐걱삐걱 조도를 구르니 / 車聲軋軋轉鳥道
[2] 위태로운 잔도 비탈진 돌길 공중에 매달렸네 / 危棧側磴空中懸
[3] 앞사람 발이 뒷사람 이마에 오니 / 前人足在後人頂
십 리를 돌아봄에 줄줄이 행렬 늘어섰구나 / 十里回顧猶比肩
울창한 나무 빽빽하니 고슴도치 털 같은데 / 萬木森束如蝟毛
왕왕 용과 호랑이가 몸 뒤친 형상이어라 / 往往龍倒而虎顚
겹겹 얼음장 깊고 깊어 바닥을 알 수 없고 / 層氷谽谺不見底
때때로 놀란 날다람쥐와 겨울 솔개 보이네 / 時有驚鼯與凍鳶
정신은 아찔 입은 쩌억 말문이 막히고 / 神眩口呿不能語
눈 쌓인 길 언 살결엔 땀이 줄줄 흐르네 / 積雪寒肌流汗漣
일찍이 들으니 천금의 몸은 마루 끝에 앉지 않는다 하니 / 嘗聞千金之軀不垂堂
어찌 동전 한 닢 던지듯 목숨 가벼이 하랴 / 胡乃性命輕如擲一錢
앞에서 당기고 뒤에서 밀며 한 걸음씩 내딛어 / 前挽後推運寸步
수도 없이 돌고 돌아 정상에 다다랐네 / 百折千回到上巓
마천령은 어찌 이리 멀고 높은가 / 磨天之巓何遼廓
일월은 거꾸로 뜨고 구름 무지개는 앞뒤로 있네 / 日月倒景兮雲霓後先
깎아지른 듯 선 기이한 봉우리 웅장하고 빼어나니 / 奇峰削立雄且秀
만 장의 고개 옥 같은 가지엔 금련이 피어 있네 / 萬丈瓊枝擢金蓮
표연히 높은 하늘에 몸이 올라 있으니 / 飄然身在九霄上
두 겨드랑이에선 바람이 일어 절로 나는 듯해라 / 兩腋風生自翩翩
칼 짚고서 한 차례 길게 읊조리노라니 / 倚劍一長嘯
사방을 둘러봄에 어쩌면 이리 아득한고 / 四顧何茫然
위로 푸르디푸른 하늘 사방에 펼쳐 있고 / 上蒼蒼兮四垂
아래로 아득하고 아득한 대지 가없도다 / 俯渺渺兮無邊
촉도의 험난함도 여기엔 미치지 못하리니 / 蜀道之難猶不及此
나는 술잔 잡고서 적선에게 물으려네 / 我欲把酒問謫仙
높은 곳에 기대 정동명 떠올리노니 / 憑高却憶鄭東溟
어이하면 서까래처럼 큰 웅혼한 필력 얻나 / 安得健筆大如椽
[4] 그대 보지 못했나 백두산이 이천 리 내달려와 / 君不見白頭之山奔騰二千里
[5] 동쪽으로 푸른 바다에 와서 앞으로 나가지 못했네 / 東到滄溟不能前
겹겹이 가파른 힘찬 산맥이 막혀서 퍼지지 못하자 / 岪嵂贔屭欝未洩
불쑥 분기탱천하여 위로 북두성 꼬리에 연이었네 / 卓犖奮迅上與斗尾連
함관은 자식뻘 철령은 손자뻘이니 / 咸關爲兒兮鐵嶺爲孫
장할사 우리 북쪽 국경에 위엄을 펼치누나 / 壯我北門張威權
신령한 기운 흩어져 빼어난 물건 되니 / 靈氣散爲物之英
고개에선 옥 나오고 못에서는 구슬 나오네 / 玉出岡兮珠出淵
산에는 맹수 물에는 큰 물고기 있어 / 山有猛獸水有長魚
소달구지 포위하고 병선(兵船) 삼켜버리네 / 摶牛車兮呑戈船
태곳적 길 열고 뚫은 것 사람 힘 아님을 비로소 알겠나니 / 始知厥初開鑿非人力
거령의 손과 뇌공의 채찍 누가 빌려주었나 / 誰借巨靈之掌雷公鞭
위대할사 윤 시중이여 / 偉哉尹侍中
부월(斧鉞) 잡고 왔던 것 그 어느 해였나 / 仗鉞來何年
[6] 병사를 이끌고서 대막을 횡단하여 / 提兵絶大漠
단박에 오랑캐 비린내 씻어버렸네 / 一膊掃腥羶
또 듣건대 김 원수는 / 又聞金元帥
나라의 위엄을 혁혁하고 원대히 펼쳤네 / 邦威赫遠宣
손으로 제갈량 백우선(白羽扇) 휘두르고 / 手揮孔明羽
몸에는 등애의 담요 말았네 / 身裹鄧艾氈
[7] 육진의 강토는 야인들 살던 곳 / 六鎭疆土野人墟
[8] 개척한 곳 모두가 고구려 옛 산천 / 拓盡句麗舊山川
가죽옷 입고 자작나무집 짓던 곳 영토로 편입되고 / 皮衣樺屋入版圖
흰 갈대 누런 띠풀 자라던 곳 좋은 밭으로 변했네 / 白葦黃茅化良田
험고한 마천령은 사통팔달 대로 같으니 / 磨天之險若通衢
남쪽 솜옷과 북쪽 베옷을 시전에서 교역하네 / 南緜北布交市廛
두만강 물결 띠처럼 흐르고 / 豆滿江水流如帶
후춘 산색 개어 안개 없네 / 後春山色晴無煙
내 옛사람 생각하며 길게 탄식하며 / 我思古人長嘆息
말안장에서 출새곡(出塞曲) 소리 높여 부르네 / 據鞍高歌出塞篇
출새곡 노랫소리 참으로 비장하니 / 出塞之歌正悲壯
고개 돌려 장안 바라봄에 몇천 리 길인고 / 回首長安路幾千 -引用-끝-
➊ 위의 글 “[1]+[2]+[3]”을 보면 : 마천령(磨天嶺)은, 겨우 해발고도 709m에 불과(不過)한 고갯길임을 생각하면, 위의 표현(表現)이 좀 황당(荒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관령(大關嶺)이 해발고도(海拔高度) 832m임을 생각하면 말이다.
대관령(大關嶺)을 넘던 길은 꼬불꼬불 산길이었으나, ‘조선(朝鮮) 중종(中宗) 때의 강원도(江原道) ’관찰사(觀察使) 고형산(高荊山)‘이 산줄기를 깎아내고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길을 정비(整備)했다’라고 전(傳)해지고 있다.
위에서 언급(言及)하고 있는 「危棧側磴空中懸 : 위태로운 잔도 비탈진 돌길 공중에 매달렸네. 前人足在後人頂 : 앞사람 발이 뒷사람 이마에 오니」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는 고갯길은? 그곳이 북한(北韓) 땅이니, 가보지 못했으니 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고도가 709m에 불과(不過)하다는 것을 보면… …전후(前後)의 구절(句節)을 “반도(半島) 땅의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해발고도(海拔高度) 680m의 산(山)을 하루에 두, 세 번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反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➋ 위의 글 “[4]+[5]”을 보면 : 「君不見白頭之山奔騰二千里 : 그대 보지 못했나 백두산이 이천 리 내달려와, 東到滄溟不能前 : 동쪽으로 푸른 바다에 와서 앞으로 나가지 못했네」라고 하였는데… …황당(荒唐)하다 못해 아찔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백두산(白頭山)에서 ‘2’ 천리(千里)를 내달렸다”라는 곳을 “마천령(磨天嶺)”이라고 한 것이다. 과연 백두산(白頭山)에서 2 천리(千里)를 내려왔을까?
백두산(白頭山) 천지(天池)에서 단천(端川)까지 겨우 180∼200㎞에 불과(不過)하다. 백두산(白頭山)에서 남(南)쪽으로 ‘2’ 천리(千里) 800㎞를 내려오면 과연(果然) 어디에 닿을까? 남해안(南海岸)의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닷가에 닿는다.
또 동(東)쪽으로 ‘2’ 천리(千里)를 달려가면 어디에 닿을까? 바로 열도(列島)의 북해(北海)도 남(南)쪽 바닷가까지다. 곧 “반도(半島) 땅의 마천령(磨天嶺)이 아닌 대륙(大陸)의 마천령(磨天嶺)을 말하는 것이다.”
➌ 위의 글 “[6]”을 보면 : 「提兵絶大漠 : 병사를 이끌고서 대막(大漠)을 횡단하여」라고 한 것을, 학계(學界)의 번역(飜譯)과 주석(註釋)을 한 분은 말하기를 :
《[주-D010] 대막(大漠)을 횡단하여 : 대막은 본래 중국 서북부의 광활한 사막 지역을 일컫는 말로, 흉노족이 거주하던 곳이다. 후한(後漢) 때 흉노를 정벌한 두헌(竇憲)의 공을 기려 반고(班固)가 지은 〈봉연연산명(封燕然山銘)〉에 “마침내 고궐을 넘어서 계록으로 내려가 적로를 경유하여 대막을 횡단하였다.[遂陵高闕, 下鷄鹿, 經磧鹵, 絶大漠.]”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23 竇憲列傳》 여기서는 고려 때 여진족이 살던 동북면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즉 여진족의 지역으로 쳐들어가 영토를 개척하였다는 말이다.》라고 설명(說明)하고 있다.
「대막(大漠)」이란, 주석(註釋)한 분의 말대로 ‘중국(中國) 서북부(西北部)의 광활(廣闊)한 사막(沙漠) 지역(地域)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을 ‘윤관(尹瓘) 장군(將軍)이 20만(萬) 대군(大軍)을 이끌고 가 정복(征服)하고, 영토(領土)를 개척(開拓)했다는 뜻이다.’ 결코 주석(註釋)한 분의 말대로 옛 사서(史書)의 기록(記錄)을 인용(引用)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 이러한 분들에게 질문(質問) 한 가지를 하고 싶다. 즉(卽), 「백두산(白頭山) 남(南)쪽의 귀문관(鬼門關)을 넘으면 대막(大漠)이 펼쳐져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이것도 사서(史書)의 기록(記錄)을 인용(引用)한 것이냐?」 하고 말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에게는, 이러한 선인(先人)들의 기록(記錄)이 “악몽(惡夢) 중의 악몽(惡夢)으로 기억(記憶)”되겠지만 : 「진실(眞實)은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곧 「백두산(白頭山)은, 대막(大漠)이 광활(廣闊)하게 펼쳐져 있던 서북방(西北方)에 있었다는 것이고,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이다. 그곳은 숙신씨(肅愼氏)의 숙신국(肅愼國)이, 읍루(挹婁)가, 물길(勿吉)이, 말갈(靺鞨)이 있었던 곳이고, 뒤에는 달단(韃靼), 몽고(蒙古)와 금(金)이 다툼을 벌였던 곳으로, 오늘날에도 돌궐(突厥) 지명(地名)이, 달단(韃靼) 지명(地名)이, 몽고(蒙古) 지명(地名)이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➍ 위의 글 “[7]+[8]” 내용을 살펴보자.
『[7] 六 鎭 疆 土 野 人 墟 : 육진의 강토는 야인들 살던 곳』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야인(野人)이란 바로 건주여진계(建州女眞系)를 말하는 것인데, 이들 종족(種族)은 당시(當時)의 조선인(朝鮮人)들과는 다른 이민족(異民族)이었다는 사실(事實)이고, 우리 카페에서 수차(數次)에 걸쳐서 원전(原典) 원문(原文)을 들어 상세(詳細)한 설명(說明)을 한 바 있다.
『[8] 拓 盡 句 麗 舊 山 川 : 개척한 곳 모두가 고구려 옛 산천』이라고 하였다. 옛 고구려의 산천(山川) 곧 영토(領土)였다는 뜻이다. 맞는 말이고 이는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이다. 당(唐) 재상(宰相)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에 의하면 : 「수(隋) 때에 이르러 점점 커져 동서(東西) ‘6’ 천리(千里)나 되었다」라고 하였다. 아주 쉬운 예(例)들 들어보자.
• 중원대륙(中原大陸) 오늘날의 북경(北京)으로부터 서(西)쪽으로 ‘6 천리(千里)를 가면 : ’알타이산맥(Altai, 山脈)=금산산맥(金山山脈)’을 넘으니,
“예(例), 1” :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으로부터 서(西)쪽으로 오늘날의 신강성(新疆省)까지 고구려(高句麗)의 영토(領土)였다」라는 뜻이다.
• 「동(東)쪽으로 가면 : 동해(東海)를 건너 북해도(北海道) 땅을 지나 동(東)쪽의 태평양(太平洋) 바다에 닿는다.」
“예(例), 2” :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으로부터 만주(滿洲) 땅을 지나, 동해(東海)를 건너, 북해도(北海道)를 지나, 동(東)쪽 태평양(太平洋)까지 고구려(高句麗)의 영토(領土)였다」라는 뜻이나, 동해(東海)는 바다이므로 인간(人間)이 살아갈 수 없는 곳이므로, 동(東)쪽으로 ‘6’ 천리(千里)가 아닌「서(西)쪽으로 ‘6’ 천리(千里)가 역사적사실(歷史的事實)이 되는 것이다.」
➥ 곧 「중원대륙(中原大陸)의 극동(極東)으로부터 신강성(新疆省)까지가 ‘수(隋)’ 때의 고구려 영토(領土)였다」라는 뜻이다. 이는 정사(正史)라고 부르는 25사(史)보다 더 정교(精巧)하고 정밀(精密)하며, 신뢰(信賴)할 수 있는 ‘두우(杜佑)의 통전(通典)’에서 말하는 것이다. 2026년 10월 11일 [글쓴이 : 문무(文武)]

첫댓글 * 다음 편은, [슬해, 하]편으로, 그렇다면 슬해는 어디에 있는 어떤 호수를, 어떤 바다를 말하는 것일까?
"슬해(瑟海)"는,
큰 호수 즉 내륙해일까?
바다(海)를 말하는 것일까?
*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는 "슬해(瑟海)"라는 말은, 17세기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현재 반도학계에서조차 그곳에 어디인지 설왕설래 할 뿐이다.
* 항상 즐겨찾는 것이지만 : 반도 5,000년 역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반도학계, 제정신을 좀 차려야 하지 않을까?
* 우리나라 국민들은 같은 민족이요, 같은 땅에서 살고 있는.......그러나 경상도쪽 분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여러가지가 있는 것 같다.
* 보수층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꼭 "000"같은 같은 막장나가는 그런 인물들을 "지역구 의원"으로 선출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서 지방경제가 죽어간다고 ? 아우성... ...지역구의원을 왜 뽑나?
*선출한 의원을 통해 중앙정치계에서, 정부서,, 예산도 받아오고, 개발사업도 얻어오고, 지방특색에 맞는 개발도 요청하고... ...
뭐 이런 활동을 하라고 국가예산을 통해 급료도 주고...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런데... ...지금 그 쪽 의원들 중에서 과연 누가 이런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 분이 있나?
허구헌 날 정치싸움으로 날 새며, 헛소리만 날리고 있지 않나?
* 반도 사학계도 이와 똑같다.
도대체 반도 대한민국에서 "학계"는 무엇을 하는 분들이 계시나?
지명 하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분들이... ...백두산에 만년설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분들이 어떻게 사학자라고 명함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까? '한양에서 경흥까지 3천리다' 하면 왜 3천리일까? 를 설명해야 하는 것인데?
* 또 어떤 때는,
"大澤"을 '큰 바다'라고 하지 않나?
이런 분들 때문에,
조선사는 두번, 세번 왜곡되고, 조작되어 '희극화'되어가는 것이다.
* 또 한가지,
변경지방의 지형지세를 설명하는 문구를,
꼭 '중국 사람들이 말한 것을 차용, 인용한 것이다'라는 것으로 지들 멋대로 만들어버리면,
수백년 전에, 글을 쓴 저자는 뭐가 되나?
* 이래서 학계분들을 "한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 옛 고전 원문을 좀 보고 공부하고 연구를 하라'는 것이다.
* 물론 앞으로 게재할 예정분이지만 : "한해"는 지금도 "이곳, 저곳"으로 확정된 곳이 없다.
특히 우리나라 학계는
고비사막이다.
바이칼호수다
항애산이다
등등 자신들이 주장하는 맥락에 따라 맘대로 추정하고, 추측하여 말한다.
* 그러나 고전 원문을 보면 : 전혀 다른 '중앙아세아의 대택'을 지칭하고 있다.
* 우리 학계가 언제쯤, 제대로 된 조선사를, 한글 해설서가 아닌, 원전 원문에서 말하는 조선사를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