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동시집 50권. 우주의 창으로서의 이곳, 이곳의 창으로서의 나, 나의 창으로서의 작은 아이, 그 아이가 작아지고 작아진 나뭇잎 하나, 밥알 하나를 들여다보는 눈, 너도 그랬던 거니 들어주는 귀가 동시라고 생각한다는 송선미 시인. 이 동시집에는 들과 산과 은하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산 시인에게 들과 산과 은하수는 너무나 멀고 관념적인 것이었다. 그보다는 변기 물과 구겨진 수건을 들여다보았다. 우주의 이치와 문제의 정답을 알려 주기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에 귀를 기울였다. 시인이 겪어 노래할 수 있는 것들로 ‘나’에 집중해 과감하게 그만의 세계를 꾸린 것이다. 그래서 종이로 만든 핸드폰, 살 빠지고 휘어진 고물 우산, 선물로 받은 볼펜은 송선미라는 시인의 몸을 맞이해서 생생하게 우리를 찾아올 수 있었다. 그 생생함이 그려 내는 파동은 읽는 이의 파동과 만나 더욱 커다랗게 공명한다.
●‘나님’의 눈과 귀로 만나는 세계 달콤한 사과는 조금씩 작아지고 사과의 문장은 자꾸만 이어지네 동그란 사과 향긋하고 동그란 사과 아삭 「사과 아삭」 부분 아삭 베어 물면, 이어지는 문장과 문장을 타고 읽는 이의 마음에 도달하는 향긋함. 송선미의 동시다. 베어 문 조각은 ‘나’ 자신을 예쁘게 여기고 걸음걸이를 씩씩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 씩씩한 걸음걸이로 낯선 길을 걷고, 두루미와 바람을 만나고, 어느새 자라난 나를 만난다. 이 동시집엔 내가 나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동시들이 담겨 있다. 태어날 때 아빠는 손가락이 여섯 개 엄청난 힘 나오는 손가락이 하나 더 그 손가락 자르고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의 여섯 번째 손가락」 전문 누가 뭐래도 나는 아버지의 여섯 번째 손가락을 자르고 태어났으며, 이 한 숟가락의 밥은 모두 194개의 쌀알로 이루어져 있다 (세어 보았다) 이 194개 한 알 한 알은 심으면 싹 나는 씨앗이었다 (오늘 배웠다) 싹 내고 자라서 꽃 피우고 열매 다는 (벼꽃은 아주 작아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작아도 무사히 수정을 마칠 수 있다고 한다) 194포기의 벼가 될 볍씨였다 이 엄청난 한 숟가락의 밥을 지금 나님께서 먹는다 「씨앗이었다」 부분 194포기의 벼가 될 194개의 쌀알로 이루어진 한 숟가락의 밥을 먹고, 경숙이네 아줌마가 내게 붙인 것은 딱지. -여우 같은 계집애 그 옆에 나는 스티커를 붙였다. -나는 경숙이보다 키가 크고 더 이쁘고 웃음이 많고 내 동생 승훈이를 사랑하지요 「딱지 옆에 스티커」 전문 이쁘고 웃음 많고 동생을 사랑하기에 당당하게 나는 나여도 괜찮다고 긍정한다. ●송선미 시인의 첫 번째 배낭에서 나온 첫 동시집 송선미 시인은 2011년 동시전문지인 『동시마중』에 7편의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올해로 7년째 동시를 쓰는 그는 처음 동시가 찾아왔던 2010년 9월 11일 밤을 또렷이 기억한다. 자려고 누웠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일어나면서 그것들이 뼈와 몸을 갖춘 노래가 되었어요. 자기들을 좁은 머리 안에서 꺼내 달라고 아우성치는 느낌이었어요. 한 글자라도 흘릴까 봐 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까지 뛰어가 정신없이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그 첫 시가 「어떤 시를 읽었던 밤」이고, 그때 한꺼번에 열세 편인가를 썼어요. 지금 생각하니 ‘시마(시 귀신)’가 찾아왔던 것 같아요. 동시를 쓰기 위해 시인은 좋아하는 것들과 바라보는 것들, 듣는 것들의 중심을 바꾸었다. 그해 발표된 모든 동시들을 챙겨 읽으며 닥치는 대로 읽고 필사하고 녹음하고 듣고 그리며 동시를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일과를 바꾸었다. 시는 한순간 찾아와 싹을 틔운 듯 보이지만, 그 씨앗은 오래전부터 뿌리와 줄기와 나뭇잎을 품고 얼굴을 내밀길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아빠 없는 크리스마스 밤에, 애니메이션 <나루토>를 보던 날에, 불쌍한 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아픈 일은 한참 울음을 울고 나서 시가 되었고 궁금했던 일은 여러 번 질문을 던져서 답을 얻었다. 얼굴을 내밀고서도 몇 년을 더 기다려서야 시가 되기도 했다. 동시집 맨 마지막에 실린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은 5년이 걸려 나온 시이다. “이젠 내 귀를 빌려줄게요/ 내 눈을 빌려줄게요”로 끝나는 시였는데, 시어가 거칠어서 곳곳에 붙여 두고 틈이 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완전히 새롭게 바뀐 이 시를 읽으면 배낭을 메고 낯선 곳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의 기분 좋은 설렘과 희망으로 부푼다.●살 빠지고 휘어진 고물 우산이 송선미라는 시인을 맞이해서 시가 되었다 같은 사물이지만 맞이하는 ‘몸’이 뭐냐에 따라 얻어 내는 말이 바뀌기도 해. 굴러가던 가랑잎이 농사꾼이라는 ‘몸’을 맞이해서 거름이 되기도 하고, 시인의 ‘몸’을 맞이해서 시 한 편이 되기도 하고, 그냥 쓰레기가 되어 포대에 담기기도 하고, 나같이 관심 없는 ‘몸’을 만나 그냥 와삭 밟혀 으스러지기도 하는 것처럼._해설 중에서, 탁동철(시인) 우주의 창으로서의 이곳, 이곳의 창으로서의 나, 나의 창으로서의 작은 아이, 그 아이가 작아지고 작아진 나뭇잎 하나, 밥알 하나를 들여다보는 눈, 너도 그랬던 거니 들어주는 귀가 동시라고 생각한다는 송선미 시인. 이 동시집에는 들과 산과 은하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산 시인에게 들과 산과 은하수는 너무나 멀고 관념적인 것이었다. 그보다는 변기 물과 구겨진 수건을 들여다보았다. 우주의 이치와 문제의 정답을 알려 주기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에 귀를 기울였다. 시인이 겪어 노래할 수 있는 것들로 ‘나’에 집중해 과감하게 그만의 세계를 꾸린 것이다. 그래서 종이로 만든 핸드폰, 살 빠지고 휘어진 고물 우산, 선물로 받은 볼펜은 송선미라는 시인의 몸을 맞이해서 생생하게 우리를 찾아올 수 있었다. 그 생생함이 그려 내는 파동은 읽는 이의 파동과 만나 더욱 커다랗게 공명한다. 여행을 떠났지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컸으니까 어디 어디 갔었느냐고? 무엇을 보았느냐고? 아 그건, 나중에 말해 줄게 내겐 더 높은 옷장 위 배낭이 또 있으니까 여행을 떠날 거야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부분 시를 찾아 여행을 떠났던 시인이 돌아와 첫 번째 동시집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 벌써 다른 곳을 둘러보기 위해 새 배낭을 꾸렸다. 몰랐던 새와 나무의 이름을 알아내고, 낯선 곳의 풍습과 인사법을 공부하고, 어느 구석에 가라앉은 먼지까지도 관찰하여 함께 나누기 위해. 딱지 옆에 예쁜 스티커를 붙여 주는 자기 긍정과 믿음, 위안과 치유, 놀라운 기쁨들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행복해지기 위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 설찌는 특유의 감성으로 읽는 이의 마음에 길을 낸다. 발을 놓으면 두근대는, 처진 어깨를 다독여주는, 유머러스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래 걷고 다시 걸어도 좋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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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송선미/문학동네어린이/2016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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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25 09:36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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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송선미 시인의 첫 번째 동시집!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사랑 많이 받길 바랍니다.^^
첫 동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