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人生)은 여행의 연속 #겨울 여행 코스(경기도 수원시 주변을 답사하고자)
양양빙어축제 →수원성 →세마대 → 융릉,건릉 →화산용주사
☆ 화성(華城)=수원성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길이 5,520m, 둘레 5,744m, 높이 4.9m~6.2m이며,
면적은 18만 8048㎡으로 읍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수원성은 성구조가 백성을
전시에 모두 성으로 피할수있게 설계된 구조물로 인정되어
1963년 사적 3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원 화성은
한국 성의 구성 요소인 옹성, 성문, 암문, 산대, 체성, 치성, 적대, 포대,
봉수대 등을 모두 갖추어 한국 성곽 건축 기술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되어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조선시대 '성곽의 꽃'이라고 불리는 수원화성은
1794년부터 2년 반 걸려 1796년 완성되었다. 정조 때였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세도세자에 대한 측은한 마음을 품고 있던 정조는
아버지 묘를 명당 자리로 모시는 것이 염원이었다.
마침 후보지로 수원 고을 뒷산(지금의 화산)이 물색됐고,
기존의 수원은 현재의 위치인 팔달산 아래로 옮긴다는 계획을 세웠다.
왕의 효성심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도 있겠지만,
숨은 뜻이 따로 있었다.
노쇠한 왕(영조)의 52년간 통치가 막을 내리자
새로 등극한 젊은 왕 정조는 강력한 왕권 구축을 절감하였다.
사도세자의 사건도
당파의 권력 쟁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왕권 확립을 위해서는 기득 세력을 누르고
신진 세력을 기용하여
신하의 세력이 한쪽으로 불거지지 않도록 해야 했고,
재정적 뒷받침과 군사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기존의 한양에서 이 모두를 새로이 얻기는 어려웠다.
자신의 뜻을 펼 새 거점이 필요했다.
시대를 앞서간 신도시 건설의 발상은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왕의 의지 아래 탄생됐다.
1792년,
정양용이 31세 때 수원성을 직접 만든 거중기로 사업을 지휘하여
거중기를 써서 건설 경비를 4만냥이나 절약하였고,
노동자 두 사람이 약 10톤 또는 그 이상의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세계유산 조선 왕릉 ☆
2009년 6월 30일 세계유산으로 등재.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비 홍씨의 능.
영조 12년(1736)에 세자가 되었고
영조 38년 뒤주 속에 갇혀 28세로 창경궁에서 돌아가셨다.
바로 보이는 정자각과 우측에 보이는 비각
정자각에서 바라 본 융릉.
뒤주의 비극 속에 가려진 아버지의 마음이 머물고 있는.
비각의 비문을 읽고 있는 며느리와.....
건릉가는 길목이나 주변이 울창한 참나무숲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이 길로 죽 가면 건릉과 홍살문이 보입니다.
건릉은
조선 제22대 정조와 왕비 효의왕후 김씨의 능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내어나(1752년 영조 28년)
35년 세손이 되었다.
영조가 승하하자 왕위에 올라 재위 기간 동안
탕평책,규장각 설치, 등 문물제도를 정비 보완하였으며,
많은 업적을 남겨 호학 군주로 불린다.
49세로 창경궁에서 돌아가셨다.
건릉을 자세하게 볼 수 없었습니다.
☆ 화산 용주사 ☆
용주사는 조선 제22대 왕 정조가사도세자의 묘를 화산(花山)으로 옮겨
융릉이라 칭하고 용주사를 세원 능침을 관리하고
사도세자의 명복을 비는 재궁으로 건립하여
사후에라도 효를 실천하고자 했다.
낙성식 전에 대왕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기에 절 이름을 용주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첫댓글 가족과 함께 즐겨 찾은 순백으로 덮힌 아름다운 겨울의 사적들을 이렇게도 소상하게 엮으려면 하루는 좋게 걸렸을 것 같구료, 수고하신 덕으로 안방에서 편안한 겨을여행을 함께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지면만 차지했지만 3박 4일의 여정이었지요.
지기님 행복하네요. 한가하게 여행도 다니고.
며느님과 함께 한 보람있는 하루가 지기언냐의 작품속에 고스란히 배여 있네요.
아제..바라,,아제아제 바라 아제바라..~~...뜻은 알 수 없어도 목탁과 함께 외는 스님의 불경소리가 영상과 일치가 되는듯 합니다.
사도세자의 아드님 정조의 안타까운 효심을 떠올려 보며 짙은 베이지색 긴코트 입은 지기언냐에게서 아름다운 나타샤를 연상케 하네요...*^^*
눈길을 며느리 부축 받으면서 여행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요.
마음이 따뜻하고 며느리가 얼마나 이쁘고 사랑스러웠던지.
2007년도에 배불뚝이 둘째며느리랑 미국 서부여행을 3박으로 다닐 때도 그랬어요.
지기님 복도 많은기라. 배불뚝이는 늙었어도 시어머니가 부축해야하는 기라.
우리나라 역사가 살아있는 수원성과 용주사의 테마여행 자세히 잘 보았습니다. 여행은 이렇게 해야하는데.......
노년이라 평지만 다닌답니다.ㅎㅎㅎ
눈 덮힌 용주사 구경 잘 했습니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줍니다.
정조대왕의 효심으로 이루어진 곳이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여행지는 멀리만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둘러보아야 할 곳이 많지요.
수원성 지나가며 보았으나 조용히 살피지 못했는데 건릉 까지 소개 해 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젊은 날엔 멀리. 노년엔 가까운 곳을 택하게 되었답니다.
불경소리 보여지는 그림들 엄수함을 보여주시네요
절마다 사천왕을 훌쩍 지나치게 되는데 이번엔 사천왕이 무얼 하는지 유심히 보고 왔답니다.ㅎㅎㅎ
죄업이 많아서 무서웠거던요.ㅋ
젊은 날엔 여행이라는 어휘로만 다녔었지요. 다녀 와선 무엇을 보고 왔는지 잊어 버리곤 또 가곤 했지요.
요즘엔 주로 지역별로 테마식으로 건물,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여행다닌답니다.
수원시는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새였습니다.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세마대와 권율장군]도 의미 깊었었습니다.
여행기는 눈을 너무 혹사해서 쉬엄 쉬엄 늦게야 편집을 마쳤습니다.
쉬엄쉬엄 하소
용주사가 사도세자의 願刹이란 점을 소상히 밝혀주셨군요. 용주사는 통일신라양식의 고려종이 있어, 미술사쪽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답사코스가 되고 있습니다. 또하나 김홍도의 작품인 後佛幀畵가 유명한데 탱화에 처음으로 양감이 나타나고 있어 우리 회화사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追而]후불탱이라함은 불상 뒤에 걸어두는 불화를 말합니다. 한자로 幀畵라쓰고 읽기는 탱화라 읽습니다.
자그마하지만 박물관엔 희귀한 물품들이 있었습니다만 눈뜬 장님이라....
고려종은 국보120호라고 하네요. 자세한 안내 감사합니다. 려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