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고
슈퍼스타즈 야구잠바 - 몸통부분은 곤색, 소매부분은 하얀색으로 80년대의 컬트 야구단
삼미에게 어울리지 않게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은 평범함을 온몸으로 거부했다.
하얀색 소매엔, 곤색의 이따시만한 별이 바바박 박혀 있었다.
즉 삼미 어린이회원들은 원더우먼의 팬티를 연상시키는
야구잠바를 입고 다녀야했던 것이다.
인천지역에선 삼미에 대한 애정으로 요 야구잠바를 입고,
학교에 등교하는 대담한 소년들이 한반에 몇명씩 관측되었다.
제2편 - 화려한 프로야구의 뒷골목, 암울한 인천
박철순의 역투로 우승의 감격을 맛본 곰돌이 소년팬들이 알록달록 예쁜
야구모자, 앙증맞은 빨간 야구잠바를 입고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82년......
방망이를 거꾸로 잡고도 3할은 쳐낼듯이 투수들을 우롱하던 백인천에 열광하며 '게브랄티!!'를 외치던 청룡 소년 팬들이 야구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한껏 느끼던 그때,,,
'청룡' 유일하게 영어를 사용하지 않은 야구팀이었다
어릴땐 라이언즈, 타이거즈가 이름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청룡'이 너무 이쁜 이름인 것 같다.
원년 최초의 바부 '이선희'를 탄생시켰지만,
역시 80년대의 팀으로 손색이 없는 '라이언즈' 소년팬들이 '우리에겐 우승뿐!!'을 외치던 바로 그때,,,
-참고-
이선희 - 아마 최고의 좌완 투수에서 원년 최초의 바부로 전락한
비운의 명투수. 프로야구사상 최고의 드라마틱 '홈런' 이었던 김유동의 그랜드슬램을 헌납한 비운의 주인공.
김유동은 그후 갈비집인가 물텀벙이집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이선희는 어떻게 되었는지...
제이~ 스치는 바람에~
이길때보다 질때가 많다고 부산의 자갈치 소년 야구팬들이 배부른 투정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아따 거시기 머시냐 무등산 소년들이 김봉연-김성한-김준환의 홈런쇼에 열광하던 바로 같은 시각에 운명의 장난으로 6번에 1번을 간신히 이기던 컬트야구단,
(후기리그에는 8번에 1번 이겼다....... 5승35패 -_-;) 삼미 슈퍼스타즈의 어린이 회원이 되었던 인천 소년들은 원더우먼 빤쓰를 연상시키는 야구 점퍼를 장롱
속에 처박아 버린채 억센 팔자를 탓하며, 염세적인 소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82년, 삼미는 그후 17년이 걸려도 넘어서지 못한 아니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를 1할대 승률을 올리며 인천소년팬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 삼미슈퍼스타즈 >
원년멤버 -
투 수 : 인호봉.김재현.감사용.오문현
포 수 : 최영환. (금광옥)
1 루수 : 조흥운. 김구길
2 루수 : 장정기. 이철성
3 루수 : 김무관. (장정기)
유격수 : 허운. 송경섭
좌익수 : 김호인. 박준영
중견수 : 양승관
우익수 : 김경남
지 명 : 금광옥
(선수 이름들도 하나같이 특이하다.)
전두환 대통령의 존나 멋진 강속구(?) 시구와 이종도의 드라마틱한 개막전 역전 만루홈런에 힘입어 대한민국 소년들은 프로야구에 완존히 매료되어버리고 만다.
이로인해 82년도에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다.
1. 어린이 취침시간의 급격한 변화
착한 어린이들은 9시에 잠자리에 들어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열기속에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실시됨에 따라 정확한 오리엔트 시계가 9시를 가리킴에도 아랑곳 없이 초등학생들이 귀가는 커녕, 야구장에서 그날의 스트레스를 그날에
풀고 있었다.
이로인해 어린이들의 정상적인 바이오리듬이 깨지고 학교생활 부적응이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2. 어린이들의 사행심리 조장
야구경기 있는날이면 국민학생들은 승부결과에 대해 돈내기가 성행하여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그래봐야 틀려도 안갚으면 고만.
3. 전국적 왕따현상
전국적으로 슈퍼스타즈 어린이회원들이 여타 어린이 회원들에게 개무시를
당하여 성장과정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소년시절부터 동요보다는 조용필의 한오백년과 같은 성인가요를
즐겨부르는 등 심각한 조로현상을 보여주었다.
"아무렴~~그뤄취~~ 그러쿠우말구"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내려 주던 김유동의 한국시리즈 만루홈런,
물론 대구소년들의 염장을 질러버렸겠지.
이들과 함께 82년의 불후의 걸작 홈런으로 기억되는 이종도의 개막전 만루홈런 축포와 함께 프로야구는 진정 화려하게 개막했다.
슈퍼스타들의 첫출발도 순조로웠다.
첫경기에서 맞붙은 초호화진용의 삼성을 격파하고 만것이다. 끼야호~~
다만 그것이 82년에 슈퍼스타들이 라이온스에게 거둔 전체 승수의
딱 절반이었다. -_-++
슈퍼스타들한테 불의의.... 이런 제기랄~
불의의 일격을 맞은 라이언즈는 곧 정신을 차리고 OB곰돌이와 선두다툼을
벌인다.
한국 프로야구의 꼭두새벽 82년 시즌의 라이벌은 곰돌이와 사자였다.
당시는 6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리안시리즈라는 선물을 선사하기 위해 팀당
총80게임 가운데 40게임을 치르는 전기리그와 김용희를 위해 만들어놓은
올스타전 이후에 40게임을 치르는 후기리그로 구분했다.
그리고 양리그의 우승팀이 코리안시리즈를 벌였다.
프로야구 첫 챔피언을 위한 코리안시리즈에는 전기우승팀인 곰돌이들과 후기
우승팀인 라이언즈가 진출했다.
전후기 통산승률에서는 OB가 1위였다.
삼성이 2위를 한 이유는 단 한가지,
슈퍼스타들에게 2패나 당했기 때문이었다....14승 2패 -_-;
이에 반해 OB는 16전 전승을 기록했다..... 이놈에 곰탱이들.
롯데의 간판타자 김용철이 쌕쌕 오렌지 주스 광고모델로 나올 때 명성으로 보나 뭘로 보나 자신이 봉봉 모델이 될걸로 언감생심 기대했던 김봉연의 홈런쇼에도 불구하고 해태는 얇은 선수층, 특히 투수진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우승권과는
멀어진다.
다만 강호 롯데는 정신을 못차리고 알수없는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시즌전엔 삼....성하고 친하게 지낼줄 알았는데 시즌내내 삼....미하고 친하게
지낼줄은 아무도 생각을 못했다.
다만 김용희와 김용철....
용용 부라더스의 방망이 쇼만이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오비 곰탱이의 페넌트레이스를 이끌고 당시 최고의 마운드를 자랑하던 삼성
마운드와 홀로 맞짱뜨던 박철순이 전기리그에만 경악의 18승을 기록하는 동안
슈퍼스타들은 10승을 기록했다.
그들의 존재이유는 프로야구의 밑거름......
거름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 시켜준 후기리그였다.
아무도 부인하진 못하리라!!
그들로 인해 프로야구는 화려하게 꽃피었다는 사실을....
삼미는 후기리그에서 방어율 6.61을 기록하며, 그들의 경기를 찾은 야구팬들에게 방망이 쇼를 선사했다.
물론 방망이는 그들 것이 아니었지만. 각팀의 스타들이 홈런, 타점, 타격,
다승 부문의 상위를 차지했지만 평범한 스타와는 비교도 안되는 우리의 슈퍼스타들은 그까짓 개인기록은 우습게 알았는지 관심도 없었다.
다만 도루부문에서 80년대 최고의 발발이 김일권을 제치고
삼미의 조흥운이 도루1위를 기록했다.
.......그럼머하나.....잔루인걸...
인천야구팬들은 좁은 지역주의를 넘어서 야구 자체를 즐기며 아무나 이기는 팀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_-;
어쨌거나 본인도 삼미를 제외한 다른 팀중에선 OB곰돌이가 라이언즈나 청룡보다 좋았다. 사실 삼미는 좋아했다기보다는 애증이 점철된 그냥 정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같은 거였지만. 학다리 신경식의 포구나 유지훤(유지현이 아님)의 화려한
수비, 김광수의 귀여운 수비-_-; 김우열의 홈런쇼.
원년 최고의 해결사 양세종,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박철순.
그리고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던 교타자 윤동균.
그는 베어즈 선수란 당연히 곰돌이처럼 보여한다는 전통을 심었으며 이후
심정수-김동주로 이어지는 곰돌이 강타자 체형의 본이 되었다.
심지어는 용병도 곰으로 뽑았다. 우즈~
가을의 화려한 축제에 초대된 곰돌이와 사자 소년팬들.
초대되진 않았지만, 따라온 슈퍼스타즈 팬들의 환호속에
코리안 시리즈는 개막되었으며 시리즈 내내 버버버벅 거리던 김유동의 밤하늘을 가르던 만루홈런이 모든 소년들의 가슴속에 아로새겨지며 그렇게 82년 시즌이
끝났다.
슈퍼스타즈 소년들도 즐거웠다.
코리안 시리즈 내내. 비록 구경꾼이었지만 말이다.
전기리그 40게임중에 24게임 출장 18승을 올렸던 박철순은 후기리그의 혹사와 코리안시리즈의 무리한 등판으로 인해 우승의 영광은 누렸지만, 이와 함께 오랜
시간 악몽처럼 그를 괴롭히고 야구팬들을 애타게 했던 부상 또한 얻게 된다.
임당수에 다이빙한 청이처럼 우리들이 야구라는 멋진 세상에 눈뜨도록
혼신의 역투를 했던 소년시절의 영웅 박철순을 잊을 수 없다.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사를 바꾸었을지도 모를 명투수는
그렇게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와 자신과의 싸움을 십수년간 해야했다.
어린마음에 김영덕 감독을 디게 좋아했던 내 자신이 미워진다.
그땐 너무 어렸으니까......
작년 보스톤 감독이 김영덕이었다면
보스톤은 젤로 미운 양키즈를 누르고
월드시리즈에 올랐겠지......
다만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선수생명과 맞바꾸고서... 말이야.
하지만 불사조는 이겨냈다........멋지게....다시 날아올랐다.
그는 불사조니까.
제 3편 미완의 혁명.......아아 83년,
꼴찌가 프로야구 역사를 정복하......알뻔하다.
장효조, 김시진 뿐 아니라 82년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영웅들이 팀에 속속
복귀하여, 83년 시즌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이덕에 삼미도 임호균과 김
진우 배터리를 보강하게 되었다. 이제 삼미도 타팀과 겨룰 정도로 강해진
것인가.......로떼에는 최동원+심재원 배터리에 유두열이.......라이온즈에
는 김시진, 장효조가......청룡 에는 김재박, 이해창이...... 베어즈에 쓰리
런의 사나이 한 대화 제길.....그 정도 보강 안된 팀이 없었다.벌써 현실을
현실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소년들이었다
'어쨔거나 작년보다 못하겠는가.......'
그래도 걱정이 앞섰다.....그럴지도 모를 수퍼스타즈!였기 때문이었다.버뜨
그러나..........
기적은 원래 세상의 버려진 곳에서 발생하는 법.......가장 아름다운 꽃은
쓰레기더미속에서 핀다고 하지않았던가.....
83년, MBC와의 시범경기에서 정구선
-김진우-이영구가 한국최초의 3연속
타자 홈런을 기록했던 것이다.그리고 마지막
으로 이건 아픔과 슬픔을 가져야 했던 나의
몫이다. 이런 비슷한 기록을 작년에 많이
기록했지만 그건 삼미 투수진이 기록했던
것이었다.
이런 기록은 삼성팀에 의해 인천구장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인데, 믿을 수 없
게도 이날의 주인공은 삼미였던 것이다. 청룡 팬들은 경악했지만, 가장 경악
한 것은 역시 인천팬들이었다.
'쟤들 드디어 돌았나봐..........'
그리고..........
일반적인 물리법칙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초인이 홀연히 등장했다.
그 이름....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가끔 생기곤 한다.
⊙ 철완너구리 장.명.부.
1983년 벽두에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국내 최초로 재일동포선수 수입
이 삼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계훈련비 아껴서 어디다 썼는
가 했더니......
일본프로야구와의 격차는 방망이 거꾸로 잡고도 3할을 칠 백인천에 의해 여
실히 드러났으며, 더이상 잃을 것 없는 삼미는 여기서 돌파구를 찾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인'장명부는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컬트야구단, 슈
퍼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는 장명부의 볼배합까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은 없었지만,어쨌든 그때는
디게 성의없이 던진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당시 한국타자들
머리위에서 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있는 타자들에게는 전력을 다하지 않는 피칭을 하다가 위기의 순간
이나 강타자들에게는 성의를 쫌 보여줬다. 야구역사상 타자들이 최고로 무
시당하는 순간이었다. 여느 투수들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투구스타일였다고
기억한다. 힘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투구패턴에 가
끔씩 섞어 던지는 빈볼...
명부가 생각하는 데로 모든 타자들은 놀아나고 있었다. 일본프로야구의 15승
투수로 팀을 우승까지 이끌었던 장명부에게 갓 태어난 한국프로야구가 완존
한 수 배우는 순간이었다. 아직 빈볼의 역할이나 의미가 무엇인지 전혀 모
르던 국내팬들에게 타자의 몸쪽, 머리쪽을 겨냥하는 빈볼과 넘어진 타자를
향해 비웃듯 던지던 특유의 실실쪼개는 입가의 미소
하여간......그는 진정 '마인'이었다.
장명부는 위협투구의 진수를 보여줌으로써,한국프로야구에 써스펜스를 가미
하였으며. 또한 메이저리그급 몸싸움을 유도하여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에
수년앞서 한국적 액션스페타클을 보여주게된다.
'괴인' 장명부는 3주라는 짧은 기간에 8연속게임 완투승 이라는'눈으로 보고
도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달성한다. 등판간격 조정이나 선발 마무리 가릴 것
없이 마구잡이로 나서 슈퍼스타즈 경기의 60%이상 등판을 했던 '초인' 장
명부 최근의 조웅천이나 이혜천에 비하면 머 특별할 것도 없다고 생각할 지
도 모르겠다......무엄하다.
인조인간 마징가도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36번의 완투가 있었다.160게임도
아니고 100게임을 치르는 동안에 말이다. 야구탄생이래 가장 야구를 우습게
본 사나이의 등장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선발, 중간, 마무리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았고 투수
진 부족으로 인해, 에이스는 열댓번의 완투를 하기 마련이었으며 이닝 수를
200이닝을 넘기는 경우는 흔했다.
최동원, 김시진, 박철순 등 초창기의 명투수들은 모두 시대적요구(?)에 의해
상당히 혹사를 당했다.다만 장명부는 묵묵히 국어사전을 고쳐 쓰고 있었다.
혹사?? 무리한 등판??
83년 장명부는 427과 1/3이닝을 던졌다. 당대의 철완 김시진(229 1/3이닝)과
최동원(208 2/3이닝)을 합쳐야 비슷한 이닝수가 나올 따름이었다.
하이콜드 냉장고같은 초절전 절약형 투수도 아니었던 그가 이정도 이닝을 던
졌다는 것은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중노동이었다.전날 완투 후 다음날 마
무리로 나서는 그의 엽기적 투구행각에 대해
'정신력의 위대한 승리다'
'참을 수 없는 무지의 강인함이다'
'정신조차 초월한 히로뽕 기운이다' 라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아직까지 정설은 없다.
20승투수는 몇 년 안에 다시 등장할 수 있겠지만,장담컨데, 국내프로야구에
서 30승투수는 육백만불의 사나이나 바야바가 야구선수로 데뷔하기 전엔
불가능할 것이다.
'바.야.바....우워어어...우워어어. <---- 바야바
'바야바가....자신없다는데여? <---- 바야바 말 해석중
그러고 보니.....좀 있으면 박찬호도 육백만불의 사나이가 되는구나..
.........하여간 장명부는 그는 진정한 '마인'이었다.
(*참고 : 30승투수
80년대 일상적인 용어였던 20승이 넘기힘든 벽이 되어버린 지금, 30승? 그
건 말이쥐 올해1년 마운드에서 불살르고, 야구인생 불꽃처럼 막내릴 각
오하고 정민태 정도의 투수가 어제 완투하고 오늘은 마무리로 무대뽀 등
판하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물론 박진만이 30-30을 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영영 밥숟가락 놓는 불상사가 생길수도 있다. )
막가파식 등판으로 프로야구에 신선한(신선했나요...)충격을 던지며 불붙은
프로야구 열기에 신나통을 던져버린 사나이가 있었으니, 83년의 진정한 히어
로, 30승 투수, 그 이름 장.명.부.였다.
평범한 투수들이 족히 3년은 걸쳐 던질 공을, 한 시즌에 뿌려댔던 600만엔의
사나이, 그 이름 철완너구리 장.명.부
하지만 3년걸릴 노쇠현상을 한시즌만에 이룬탓인지 이듬해인 84년 시즌엔 평
범한 투수로 전락해버리고.이제 막오른 너구리의 전성시대는 바로 막을 내린다.
83년에 잠시 외도를 했던 슈퍼스타즈는 이듬해부터 제정신을 차리고 이후 5년
간 기복없이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꾸준히 꼴찌를........)
1. 정신차린 슈퍼스타들
한 여름밤의 꿈처럼 83년의 씨즌은 그렇게 아쉽게도 지나가 버렸다 삼미 사장
은 무심코 장명부에게 ‘30승=1억’보너스를 약속했다가 장명부가 진짜 달성
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든가 뭐라든가.
하여간, 장명부는 이전에도 없고, 이후에도 없을 기염을 토하며 인천야구의
구세주로 떠올랐다. 인천야구는 이렇게 새로 태어나는 것인가.
장명부라는 초인의 위력을 실감한 슈퍼스타즈의 프론트는 그와의 재계약이
외에는 다른 대안은 마련하지 않았을 정도로 상황파악이 하나도 안되고 있었
으니.
국가대표출신이 즐비한 화려한 선수진을 거느리고도 최악의 성적을 거두며,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라이온스는 너구리 한마리만으로도 80년대의
팀인 자신들보다 나은 성적을 올린 삼미를 보며, 자극받아, 재일동포 배터리,
김일륭과 송일수를 수입하게 된다.
1983년엔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묶여 있다 돌아온 장효조와 김시진이 이미 입
단하여 명불허전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고,'헐크' 이만수의 괴력은 인간보다
짐승쪽에 가깝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었던 바, 84년 시즌을 앞두고 일본에서
김일륭이 떠들석하게 날아오면서 라이온스는 전성기를 구가할 진용을 완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파악이 전혀 안되는 슈퍼스타즈 선수들은 작년 자신들
이 발휘할 수 있는 체력과 기량을 200%를 발휘해버린 이후 마라톤 레이스를 완
주해버린 단거리 선수처럼 심신이 지쳐있었으며,트레이드를 통한 선수보강은,
어느 누구도 그들의 활약상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전성기를 이미 가볍게
넘겨 버린 '썩어도 준치'콤비 백인천, 김유동 뿐이었다.
게다가 신인보강에선 초호화 멤버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어급 신
인들...........과 안면이 있는 선수들을 스카웃하여 작년에 이어 강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마음뿐이었음을 철없는 인천소년팬들은 상황파악은
전혀 하지 못한채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자, '초인' 장명부는 '범인'으로 전락하고 장명부의 추락
과 함께, 잠시 '우리 슈퍼스타즈 맞아?' 하며, 자신들이 미사일 방망이인줄로
착각했던 슈퍼스타즈의 타자들은 지난해의 도깨비 방망이로서의 위용은 간데
없었다(원래 없던거니까)
............세상은 모두
제자리를 찾아 돌아가고
있었다.
멋모르고 덩달아 뛸때는 부담없이 잘하다가 갑자기 상황파악이 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 탓에 방망이는 허공만을 가르고, 그들은 칼춤을 추었다.
애써 잊으려 했지만 머리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은 떠나질 않았다.
'우리는 슈퍼스타즈였어..........라이온스가 아니라......
'마자, 난 공갈포였었지....으으
장명부와 함께, 일본에서 건너와 한껏 방망이를 뽐내며 83년을 슈퍼스타즈의
해로 수놓았던 재일동포 이영구는 84년에 최다 병살기록을 세우며 진짜 '영구'
가 되버리고 만다.
원래 바부하고 같이 지내다보면 바부가 되게 마련이란 진리를 새삼스럽게 증
명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또한 작년 미사일타선(역시 아무래도 어색하다)의 핵심멤버였던, 우락부락한
용모로, 외모로만 보면 홈런이 마구 뿜어져 나올 듯했던 금광옥은 그라운드
에선 순한 양으로 변해버리고,
방망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나온 클린업트리오에 한술 더 떠서 하위타선들은
'하위타선전멸'이라는 인천야구의 전통을 만들어내기 이른다.
이제 막 오른 듯 보였던 너구리 신화는 바로 막내려버렸다.그렇게 장명부는
80년대 인천프로야구의 전설의 고향이 되어버렸다.
모든 팀의 '지혜로운 영양간식' '차려놓은밥상'으로 전락해버린 슈퍼스타즈.
군계일학 정구선의 활약만이 눈물겨운 84년의 시즌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
처럼, 끊없는 계단처럼 인천소년 팬들의 앞에 펼쳐졌다.
2. 벌거벗은 승부욕의 두얼굴
84년, 영원한 우승후보 라이온스는 어제의적 오늘의동지 내일은팽 김영덕을
맞이하며 차근차근 우승을 위한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82년과 83년 한국시리즈에서 바부역할과 구경꾼 역을 맡아야했던 라이온스는
이러다 '물먹는 사자'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84년을 라이온스의
해로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전기리그는 준비된 시나리오의 제 1막이었다.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삼성은 후기리그에는 느슨한 경기운영으로, 파트너를 고르기
시작했다.
원년에 라이온스를 상처입은 사자로 전락시킨 장본인 자다가도 한국시리즈만
생각하면 '쉬펄~ 하면서 벌떡 일어나게 만든,바로 그 베어스가 후기리그 우승
을 위해 순항을 계속하고 있었다.
베어스는 결코,절대로,네버,노웨이, 용납할 수 없었으며, 하기룡, 유종겸,
오영일의 삼각편대와 바람의 아들 '이해창' HIT BY PITCHED BALL의 달인
*김인식이 포진한 청룡도 맘에 안들었다.
* 김인식
'데드볼' 또는 순수우리말로 '몸에 맞는 공'에 달
관한 허슬플레이어. 데드볼이란 말에서 알수 있
듯이, 잘못 맞으면 밥숟가락 놓을수도 있는 위험
한 상황. 김인식은 이런 몸쪽 공을 피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주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연속경기 출장기록이다.
최근의 그의 계보를 공필성이 잇고 있다.
(그는 선동렬의 직구도 피하지않는, 투지를 넘어
선 무모함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청룡과의 한국시리즈에서 승리한 타이거즈보다는 원년 삼미덕에 꼴찌
를 면했던 자이언츠가 맘에 꼭 들었을 것이다.
물론 슈퍼스타즈가 한국시리즈 파트너로 더욱 맘에 들었겠지만, 그건 삼성의
혼자만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모든 팀이 져주기를 각오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녔다.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자이언츠를 선택하게 하기로 맘을 먹은 삼성은 롯데가
후기리그에서 우승하기까지 지대한 공을 세운다.말이 좋아 지대한 공이지,
자이언츠와의 연속경기에서 라이온스 팬들에게 조차 낯설은 투수들을 선발로
내세웠으며 모든 플레이에서는 허점이 드러나는등, 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욱 떠올리기도조차 싫은 사실은 지난해 타격왕을 제외한 타점, 홈런킹 이만
수를 전무후무한 타격 3관왕으로 만들기 위해 타격왕 레이스를 펼치던 자이
언츠의 홍문종에게 10연속 고의사구를 지시한 김영덕 감독의 추태였다.
홍문종이 이 10타석가운데 안타만 하나 쳤어도,타이틀은 그의 것이 될 수
있었다. 김영덕 감독의 선수의 대한 사랑으로 애써 좋게 받아들이고 싶지만,
프로야구판을 말아먹기에 부족함 없는 선례를 기록한 것이었다.
그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즌을 지나 로떼 자이언츠는 후기리그 우승의
감격을 맞이하게 되며 라이온스는 전기리그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성적인 5위
를 기록한다.
물론 6위는 프로야구의 기초공사, 영원한 바닥판 슈퍼스타즈였다.
라이온스는 승부를 조작하면서도 그 밑으론 내려갈 수 없었다.
드디어 84년 가을, 프로야구사상 가장 극적인 한국시리즈가 펼쳐진다.
라이온스 필름 제작, 김영덕 각본, 감독으로 한
국시리즈가 펼쳐졌으나 이건 왠걸, 주연은 김일
륭으로 할려던 애초의 시나리오와는 상관없이
난데없는 최동원이 지맘대로 주연을 맡아 버렸다
'황금의 팔' 최동원은 7경기 가운데 5경기를 등
판하여 4승을 따내며 80년대의 팀, 라이온스를
생까버리며, 80년대의 바부팀으로 만들어버렸다.
그것까진 참겠는데 역대 한국시리즈 중 최고의
조연 역할마저 유두열이 쌱~가져가 버렸다
차려놓은 밥상을 자이언츠에게 갖다받친 꼴이 되
고 말았던 것이다. '철완' 타이틀을 놓고 장명부
와 일합을 견줄만했던 최동원은
씨리즈 4승이라는 얼토당토안한 기록을 세우며 롯데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게되며, 유두열은 7차전 끝내기 쓰리런이라는 대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진짜 멋있었다. 명승부의 영원한 파트너......삼성.-_-;